우리의 자랑인 교회 공동체 -하느님의 한 가족-2021.7.3.토요일 성 토마스 축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Jul 03,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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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7.3.토요일 성 토마스 축일                                                             에페2,19-22 요한20,24-29

 

 

 

우리의 자랑인 교회 공동체

-하느님의 한 가족-

 

 

 

엊그제 7월1일 7월 첫날은 제 개인의 역사중에도 잊지 못할 날입니다. 요셉수도원에 부임한지 만 33년이 되는 달이기도 하지만 얼마전에 맞춘 새 수도복을 저녁기도부터 입은 첫날이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새 옷이기보다는 넉넉하고 편안해서 좋았습니다. 옷처럼 공동체도 나도 늘 넉넉하고 편안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늘 너그럽고 자비로운 주님을 닮아 너그럽고 자비로운, 넉넉하고 편안한 공동체가, 세상에서 가장 참되고 좋고 아름다운 진선미 공동체가 교회공동체요, 또 주님 향한 믿음, 희망, 사랑을 지닌 참 아름다운 이들의 신망애 공동체가 교회공동체입니다. 하느님의 참 좋은 선물이 교회공동체요, 교회공동체에 속해 있다는 것이 참 큰 축복입니다.

 

멀리갈 것 없습니다. 바로 우리 성 요셉 수도공동체가 그 좋은 증거입니다. 혈연의 가정공동체보다 더 친밀하고 가정적인 공동체가 하느님의 한 가족인 성 요셉 수도공동체입니다. 정말 이렇게 참 다른 사람들이 서로 보완하며 평생을 정주하며 살아간다는 자체가 놀라운 신비요 기적임을 늘 새롭게 깨닫습니다. 하늘 나라 공동체의 꿈을 앞당겨 실현하고 있는 교회 수도공동체입니다.

 

어찌 수도공동체뿐이겠습니까? 널리 깊이 보면 세례받아 신자가 된 이들 모두가 하느님의 한 가족입니다. 바로 이를 확인하는 참 좋은 미사전례입니다. 인종이, 국적이, 말이, 다 달라도 미사만 한 번 같이 하면 금방 형제처럼 가깝게 느껴집니다. 우선 세례명이 있어 세례명에 이어 형제님, 자매님 하며 다정히 자연스럽게 부를 수 있는 것도 얼마나 좋은지요! 면담고백성사시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도 하느님 안에서 한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어제 수녀원에서 고백성사때 드린 조언도 생각납니다.

 

“공동생활은 답이 없습니다. 지극히 기다리고 인내하며 날마다 새롭게 시작하는 것뿐입니다. 참으로 하느님을 믿고 희망하고 사랑할수록 마음도 진실해지고 순수해지고 겸손해져서 알게 모르게 서로의 관계도 우정도 깊어질 것입니다. 사랑할 때 마음의 순수요, 마음의 순수는 형제애의 기초가 됩니다.”

 

교회공동체의 축복이 한 둘이 아닙니다. 부질없는 물음이지만 만약 우리가 교회에 속한 하느님의 자녀가 되지 않았다면 지금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새삼 교회공동체에 속해 있음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깨닫습니다. 하느님의 한 가족인 교회 공동체의 특성에 대해 나눕니다.

 

첫째, 그리스도 예수님 중심의 공동체가 우리의 자랑입니다.

일치의 중심인 그리스도 예수님입니다. 다 달라도 일치의 중심인 주님을 바라보기에 획일화의 폭력적 일치가 아닌 다양성의 일치를 이루며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우리들입니다. 생각이, 마음이, 취향이, 성향이 같아서 일치가 아니라 바라보는 방향이 같아서, 늘 함께 공동체의 중심인 주님을 바라보며 살기에 일치입니다. 바로 오늘 복음이 죽으시고 부활하신 파스카의 예수님께서 공동체의 중심임을 뚜렷이 보여줍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두려움에 문을 닫아버린 제자들 공동체 한가운데 서시며 평화를 선사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주님께서 공동체에 임재臨在하시자 ‘벽壁은 변하여 문門이 되는’ 기적과 더불어 평화로 충만한 공동체가 됩니다. 우리 마음의 벽을 허물어 문이 되게 하심으로 공동체의 일치와 평화를 선물하시는 일치의 중심이신 주님이십니다. ‘불통의 벽’을 ‘소통의 문’으로 바꿔주시는 주님의 은총이요, 그대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입니다. 우리 또한 그리스도 예수님을 중심으로 하느님의 한 가족을 이루며 살기에 바오로처럼 고백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외국인도 아니고 이방인도 아닙니다. 성도들과 함께 한 시민이며 하느님의 한 가족입니다. 우리는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기초 위에 세워진 건물이고,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바로 모퉁잇돌이십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을 중심으로 얼마나 깊이 하나로 결속된 유기적 생명의 공동체인가 깨닫습니다. 일치의 중심이신 그리스도 예수님과 우정이 깊어지면서 주님을 닮아갈 때 겸손과 온유의 사람이 되어 저절로 공동체의 일치도 깊어질 것입니다. 행복기도중 즐겨 바치는 한 연이 생각납니다. 이런 고백이 일치의 중심이신 주님과의 관계를 날로 깊이합니다.

 

“주 예수님, 

당신은 저희의 전부이옵니다.

저희 사랑, 저희 생명, 저희 기쁨, 저희 행복이옵니다.

하루하루가 감사와 감동이요 감탄이옵니다.

날마다 새롭게 시작하는 아름다운 하루이옵니다.”

 

둘째, 끊임없이 성장하는 공동체가 우리의 자랑입니다.

무엇보다 내적인 성장, 내적인 성숙입니다. 육신의 외적 성장은 멈춰도 영혼의 내적성장과 성숙은 계속되어야 하듯 공동체의 내적 영적 성장도 계속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죽는 그날까지 겸손히 배우며 사는 평생학인의 자세가 결정적입니다. 분도 성인은 이런 수도공동체를 일컬어 ‘주님을 섬기는 배움터’라 정의합니다. 하느님의 참 좋은 선물인 주님의 배움터, 일터, 쉼터, 샘터가 되는 정주의 우리 분도 수도공동체입니다. 바오로 사도 또한 공동체가 영원한 현재진행형중인 내적 성장중에 있음을 언급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전체가 잘 결합된 이 건물이 주님 안에서 거룩한 성전으로 자라납니다.”

 

죽어있는 영혼이 없는 무기적 공동체가 아니라 살아 계속 성장중인 유기적 생명의 거룩한 성전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믿음의 성장, 희망의 성장, 사랑의 성장이 바로 내적 성장의 속내입니다. 공동체의 영혼은 그리스도 예수님이요, 우리는 거룩한 성전인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하나의 살아있는 세포가 됩니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산전례의 거행이 거룩한 성전인 공동체의 끊임없는 내적 성장에 결정적 도움을 줍니다.

 

셋째, 상호보완을 이루는 원만圓滿, 원숙圓熟한 둥근 교회 공동체가 우리의 자랑입니다.

서로 다르다는 것이 참으로 공동체를 풍요롭고 날로 둥글게 합니다. 형제 하나하나가 ‘신의 한 수’같은 하느님의 선물이요 함께 일치의 둥근 공동체를 이루어 갑니다. 보는 눈들은 얼마나 같기도 하고 얼마나 다르기도 한지요! 수도원 주변에서 이뤄지는 다양한 건축이나 일들을 보면서 감탄하는 것이 한둘이 아닙니다. 

 

도저히 내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형제들의 눈에는 보이는 것입니다. 이것은 한 둘이 아닙니다. 제가 못보는 부족한 것들을 채워주는 공동체의 형제들이나 수도원을 사랑하는 많은 분들에게 늘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오늘은 성 토마스 사도 축일입니다. 참 각별한 느낌을 주는 사도입니다. 이런 철저한 실증주의적 사도 때문에 제자공동체는 물론 오늘의 우리도 얼마나 귀한 진리를 깨달을 수 있는지요!

 

성 토마스가 없었다면 어디서 누구에게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이라는 고백을 들을 수 있겠는지요? 토마스 덕분에 당시의 제자들은 물론 오늘의 우리들도 참 귀한 진리를 배웁니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은 사람은 행복하다.”라는 오늘 복음 말씀과, 또 다른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요한14,6)는 말씀입니다. 토마스가 있었기에 주님으로부터 이런 주옥같은 진리를 끄집어 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도들중에서 참 특별한 성 토마스 사도입니다.

 

가톨릭 교회에는 성 토마스 사도가 서기 52년 인도의 남쪽 끝 부분인 케랄라 주에까지 가서 복음을 전파하다가 순교했다는 전승이 있습니다. 인도 공화국의 첸나이에는 시내가 내려다 보이는 토마스의 언덕이 있고 토마스 사도가 순교한 이 자리에는 성 토마스 성전이 있다 합니다. 그 옛날 인도에까지 가서 순교하셨으니 그 모험심과 용기가 참 대단합니다. 성 토마스는 동방의 사도이기에 안중근 의사도 토마스 세례명을 택했고, 조선의 두 번 째 사제인 최양업의 세례명 역시 토마스입니다. 중세 신학의 대가 토마스 아퀴나스 역시 사도 토마스 에게서 이름을 따왔습니다.

 

넷째, 삼위일체 하느님의 교회 공동체가 우리의 자랑입니다.

교회는 삼위일체 신비를 반영하며 또 참여하고 있습니다. 바로 오늘 제1독서 에페소서가 입증합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거처로 지어지고 있습니다.” 역시 현재진행형중인 천상 예루살렘 교회의 완성을 향해 순례 여정중인 삼위일체 교회공동체임을 깨닫습니다. 천상 예루살렘에서 비로소 완성될 교회입니다.

 

하느님이 계신 곳을 찾지 말고 하느님을 찾으라 했습니다. 지금 여기 하느님을 놔두고 외출해서 하느님을 찾는 어리석은 사람들이라고 마이스터 엑카르트는 말합니다. 바로 우리가 몸담고 있는 오늘 지금 여기 우리 교회 수도 공동체가 하느님을 만나는 하느님의 거처입니다. 하느님의 거처인 교회공동체 안에서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는 우리들입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전례 은총이 날로 순례 여정에 충실한 ‘거룩한 성전’이자 ‘하느님의 거처’인 참 좋은 교회 공동체로 성장, 성숙시켜 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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