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워하지 마라 -주님은 늘 우리와 함께 계신다-2021.7.10.연중 제14주간 토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Jul 10,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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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7.10.연중 제14주간 토요일                                    창세49,29-31.33;50,15-26ㄱ 마태10,24-33

 

 

 

두려워하지 마라

-주님은 늘 우리와 함께 계신다-

 

 

 

엊저녁의 감동도 잊지 못합니다. 저녁 기도 전 수도원 경내 성모님상 배경의 소나무를 전지하는 형제를 보았는데 기도를 끝내고 났을 때도 온갖 정성을 다해 전지 중이었고, 저녁 식사후도 이어 끝기도후 어둑어둑 할 때까지 묵묵히 전지하고 있는 형제였습니다. 

 

무려 3시간 이상을 쉼없이 말없이 거기 그 자리에서 몰아沒我의 경지에서 전지에 몰두沒頭하고 있는 박응표 세례자 요한 형제였습니다. 모습 자체가 예술이라 사진에 담았습니다. 아니 오전부터 시작한 수도원 정원 전지였으니 하루종일 품삯도 없이 사랑으로 봉사한 형제였습니다. 참으로 수도원을, 하느님을 사랑하는 형제입니다. 그대로 주님 사랑의 현존같은 분입니다.

 

-“늘

거기

그 자리에 있어도

 

좋다

새롭다

아름답다

 

당신이

바로

그렇다”-

 

얼마 전에 써놓은 시가 생각납니다. 넉넉한 공간을 마련하여 시를 쓰니 참 좋습니다. 하느님은 바로 넉넉한 사랑의 내적 공간 자체이십니다. ‘당신이 바로 그렇다’, 당신이 지칭하는 바, 바로 늘 우리와 함께 계신 주님이십니다. 매일 하루에도 수없이 바라보는 하늘과 산입니다. 아주 예전의 시도 생각납니다.

 

“당신이

그리울 때

당신이

보고 싶을 때

 

눈을 들어

하늘을 본다

 

한 눈 가득 들어오는

가슴 가득 안겨오는

푸른 하늘

흰 구름

빛나는 별들

 

한 눈 가득 들어오는

가슴 가득 안겨오는

그리운 당신

보고 싶은 당신”-1998.11.22

 

아마 저보다 하늘과 산을 많이 바라보는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늘 거기 그 자리에 있어도 늘 새롭고 좋은 하늘과 산입니다. 수도원 십자로의 중앙에 자리잡고 있는 예수성심상도 바로 그러합니다. 이들 모두가 상징하는 바 주님이십니다.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예수성심상을 받치고 있는 바위판에 새겨져 있는 예수님 말씀입니다. 그분 앞에서 늘 거기 그 자리에서 그분 발치에 엎드려 기도하는 모습의 남자 모습의 바위 형상은 바라볼 때 마다 늘 새로운 감동입니다.

 

오늘 제1독서 창세기에서 형제들을 다정히 위로하는 요셉의 모습이 감동입니다. 참으로 하느님다운 모습입니다. 얼마나 하느님과 깊은 일치의 관계에 있는지 깨닫습니다. 흡사 예수님의 모습을, 하느님의 모습을 대하는 느낌입니다. 두려움의 그늘이 완전히 사라진 모습입니다.

 

“두려워하지들 마십시오. 내가 하느님의 자리에라도 있다는 말입니까? 형님들은 나에게 악을 꾸몄지만, 하느님께서는 그것을 선으로 바꾸셨습니다. 그것은 오늘 그분께서 이루신 것처럼, 큰 백성을 살리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이제 두려워하지들 마십시오. 내가 여러분과 여러분의 아이들을 부양하겠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고 거듭 말하며 형제들의 불안한 마음을 다독이는 대인군자大人君子 요셉입니다. 그대로 너그럽고 자비롭기가 하느님을 닮은 요셉입니다. 바로 우리에게 주어진 평생과제입니다. 문제는, 적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가 문제요 적입니다. 남을 탓할 것이 아니라 부단히 나를 탓하며 부단한 자아초월自我超越을 통해 주님을 닮아가는 것이 답입니다. 하느님은 참 좋으신 분입니다. 참으로 하느님을 믿고 희망하고 사랑할 때 하느님은 당신 최상의 방법으로 우리를 참 좋게 인도해 주실 것이니 추호도 걱정할 것은 없습니다.

 

형제들의 내적 수준을 한없이 능가하여 하느님을 많이도 닮은 요셉입니다. 같은 형제들이라도 주님과 관계의 깊이는 천지차이입니다. 그러니 궁극의 답은 단 하나, 주님을 날로 닮아가는 것뿐입니다. 근원적 두려움에 대한 답도 이 하나뿐입니다. 주님을 닮아 사랑과 겸손이 날로 깊어질 때 저절로 두려움은 사라지고 해소解消되는 문제들입니다. 

 

이렇게 깊이 하느님과 일치되어 살았기에 편안한 선종善終입니다. 오늘 창세기는 야곱에 이어 요셉의 죽음 장면도 참 인상적입니다. 파란만장한 삶중에도 천수天壽를 누리고 주님께 돌아가는 두 분의 유언입니다. 잘 살았기에 선종의 죽음입니다.

 

“나는 이제 선조들 곁으로 간다. 나를 히타이트 사람 에프론의 밭에 있는 동굴에 조상들과 함께 묻어다오.”

에 이어지는 담담한 야곱의 유언입니다. 죽음을 앞둔 요셉의 유언도 참 자연스럽고 아름답고 거룩합니다. 

“나는 이제 죽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반드시 여러분을 찾아오셔서, 여러분을 이땅에서 이끌어 내시어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데리고 올라가실 것입니다.”

 

정말 하느님의 꿈쟁이 요셉입니다. 장차 있게될 미래의 꿈도 보여주며 편안히 죽음을 맞이하는 요셉입니다. 이런 창세기의 주인공, 요셉을 닮은 아니 요셉을 능가하는 오늘 복음의 주인공 예수님이십니다. 우리의 궁극 목표이자 삶의 잣대는 주 예수님뿐입니다.

 

“제자는 스승보다 높지 않고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다. 제자가 스승처럼 되고 종이 주인처럼 되는 것으로 충분하다.”

 

바로 예수님을 궁극목표이자 우리 삶의 잣대로, 중심으로, 방향으로, 의미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필생의 과제가 이런 예수님을 사랑하여 알아가고 닮아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문제해결의 답도 이런 예수님뿐입니다. 우리의 두려움과 불안을 말끔히 불식시켜주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니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가 귓속말로 들은 것을 지붕 위에서 선포하여라.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오히려 영혼도 육신도 지옥에서 멸망시킬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 

 

참새 두 마리가 한 닢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그 가운데 한 마리도 너희 아버지의 허락없이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그분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

 

예수님 아니곤 어디서 누구한테 이런 위로와 격려의 말씀을 들을 수 있겠는지요. 인명人命은 재천在天입니다. 일어나는 일들이 모두 하느님의 뜻은 아니어도, 하느님의 허락없이 일어나는 우연한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하느님 섭리의 수중을 벗어난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정말 두려워할 것은 육신의 죽음이 아니라 영혼의 죽음입니다. 살아있어도 주님으로부터 떠나 고립단절의 삶을 자초하여 사는 이들은 살아있어도 실상 영혼이 죽은 이들이요, 육신은 죽었어도 주님과 함께 주님 안에서 살아가는 영혼들은 진짜 살아 있는 이들입니다. 

 

세상에 하느님 아닌 누구도 우리 영혼을 다치지는 못합니다. 하느님의 수중에 있는 우리 영혼들입니다. 그러니 영혼을 멸망시킬 수 있는 하느님을 두려워해야 할 것입니다. 공포의 두려움이 아니라 경외의 두려움입니다. 정말 하느님을 떠남으로 스스로 자초하는 심판의 지옥을 두려워해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참으로 하느님을 경외하여 두려워할 때, 하느님과 우리 영혼의 관계를 날로 깊이할 때 모든 두려움은 저절로 사라질 것입니다. 삶자체가 복음 선포요 증언자의 삶일 것입니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입니다. 그러니 그 무엇도, 그 누구도 두려워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하느님만을 경외하고 두려워하며, 삶자체로 복음을 선포하며 주님을 증언하는 것입니다. 참 행복과 기쁨과 평화도 바로 이런 삶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오늘도 사랑의 주님을 증언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 주십니다.

 

“거룩하신 그 이름 자랑하여라. 주님을 찾는 마음은 기뻐하여라. 주님과 그 권능을 구하여라. 언제나 그 얼굴을 찾아라.”(시편105,3-4).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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