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구도자(求道者)의 삶 -찾아라, 사랑하라, 섬겨라-2021.7.11.주일 유럽의 수호자 사부 성 베네딕도 아빠스(480-547) 대축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Jul 1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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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7.11.주일

유럽의 수호자 사부 성 베네딕도 아빠스(480-547) 대축일

잠언2,1-9 콜로3,12-17 루카22,24-27

 

 

 

참된 구도자(求道者)의 삶

-찾아라, 사랑하라, 섬겨라-

 

 

 

“아브라함아!”(창세22,1)

 

바로 오늘 종신 서원을 하는 아브라함 수사 상본의 성구입니다. 오늘은 유럽의 수호자 사부 성베네딕도 아빠스 축일이자 우리 성 베네딕도회 남양주 요셉 수도원의 정영훈 아브라함 수사의 종신서원식날이고 제 사제서품 32주년이 되는 날이기도 합니다. 

 

“정영훈 아브라함 수사님! 

종신서원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변함없는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에 완전한 신뢰를 드리며, “예”로 응답드리기 위해 가장 사랑하는 아들 이사악을 봉헌하러가는 아브라함처럼 그렇게 길을 나서는 수사님의 지향과 신뢰에 주님의 크신 사랑과 축복을 기원해드립니다.”

 

아마 종신서원식을 앞두고 이렇게 축하메시지 많이 받은 수도자도 드물 것입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 수사만 아니라 우리 하나하나를 부르시는 주님을 생각하며 우리의 성소를 새롭게 확인하는 절호의 날이기도 합니다. ‘과연 어떻게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 수 있나?’, 부르심을 받은 우리 모두가 항상, 날마다 물어야 할 질문입니다. 이런 부르심에 합당한 삶의 참 좋은 모범이 바로 오늘 기념하는 성 베네딕도 아빠스입니다.

 

성 베네딕도 아빠스! 시공을 초월하여 우리 모두의 멘토가 되는 전인적, 온전한 하느님의 사람이었습니다. 베네딕도란 이름 뜻 대로 참으로 복받은 사람이었습니다. 하느님- 아브라함- 요셉- 베네딕도, 일련의 믿음의 족보를 대하는 느낌입니다. 오늘 복음 선포에 앞선 부속가도 성인의 면모를 감동깊게, 인상적으로 보여줍니다.

 

-“새빛 선물 가져오는 위대하온 지도자를 기념하는 대축일

성총받은 그 영혼이 노래하는 찬미가는 마음 속에 울리네

동쪽 길로 가는 아름다운 성조 용모 감탄 울려 퍼지네

 

태양같은 생명으로 많은 후손 얻은 그는 아브라함과 같도다

작은 굴에 있는 그를 까마귀의 복사로써 엘리야로 알리네

강물에서 도끼 건진 성 분도를 엘리사 예언자로 알도다

 

무죄 덕행 요셉같고 장래일도 알아내니 야곱처럼 알도다

그의 생각 지극하여 예수님의 영복소에 우리 인도하소서.”-

 

‘스승이 없다’, ‘멘토가 없다’ 탄식할 것은 없습니다. 기념, 기억하라고만 있는 성인 축일이 아니라 우리 각자 성인을 보고 배워 살라고 있는 축일입니다. 시공을 초월하여 영원히 우리와 함께 현존하시는 주님을, 또 이런 성인을 멘토로 삼아 성령의 인도따라 살면 충분합니다. 

 

지난 7월8일 식당 독서시 들은 베네딕도 규칙서 내용이 새로운 감동이었습니다. 수도원 살림살이를 맡은 재무인 당가의 사람됨됨이에 대한 규정이지만 성인의 인품과 성인이 바라시는 이상적인 수도자상이 환히 드러나는 내용입니다.

 

“수도원의 당가로 선정될 사람은 공동체에서 지혜롭고, 성품이 완숙하고, 절제있고, 많이 먹지 않고, 자만하지 않고, 부산떨지 않으며, 욕을 하지 않고, 느리지 않으며, 낭비벽이 없고, 오히려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는 전체 공동체를 위하여 아버지처럼 해야 한다.

 

그는 모든 일들을 돌볼 것이나 아빠스의 명령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한다. 명령받은 바를 지킬 것이며, 형제들을 슬프게 하지 말 것이다. 만일 어떤 형제가 무엇을 부당하게 청하더라도, 무시함으로써 그를 슬프게 하지 말고, 부당하게 청하는 사람에게 겸손되이 이치에 맞게 거절할 것이다.

 

당가는 ‘잘 관리하는 이는 좋은 자리를 얻는다’하신 사도의 말씀을 항상 기억하여 자기 영혼을 보살필 것이다. 온갖 염려를 다하여 병자들과 어린이들과 손님들과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아 줄 것이니, 이 모든 일에 대하여 심판의 날에 헴바치게 되리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수도원의 모든 그릇과 전 재산을 제단의 축성된 그릇처럼 여겨 아무것도 소홀히 다루지 말 것이다. 인색하지도 말고 수도원의 재산을 낭비하거나 허비하지고 말 것이며, 모든 것을 절도있게 그리고 아빠스의 명령에 따라 할 것이다.“(성규31,1-12)

 

주옥같은 내용중 일부만 인용했습니다. 그 아득한 1500년전 옛날에 이처럼 현대인들에게도 공감이 가는 생각을 하고 글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구구절절 명료하고 완벽합니다. 그대로 성인의 전인적 면모를 보는 듯 합니다. 비단 수도원 당가뿐 아니라 참된 구도자의 삶을 추구하는 모든 이들에게 주는 가르침입니다. 영적일수록 현실적이라 했습니다. 진짜 영적인 사람은 이처럼 일상의 평범한 삶에 지극히 충실한 사람입니다. 뜬 구름 잡는 막연한 추상적인 영성이 아니라, 하늘 높이 뻗을수록 땅속 깊이 뿌리내리는 나무의 이치와 똑같은 영성입니다. 그래서 ‘기도하고 일하라’는 성 베네딕도회의 모토입니다. 어떻게 참된 구도자의 삶을 살 수 있겠는지요? 믿는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평생과제입니다.

 

첫째, “찾아라!”

찾아서 진짜 사람입니다. 찾는 인간, 바로 인간의 정의입니다. 진정 살아있음의 표지가 찾음입니다. 죽은 사람은 찾지 않습니다. 참으로 살아있는 사람은 끊임없이 찾고 묻습니다. 무엇을 찾느냐에 따라 형성되는 삶의 꼴입니다. 무엇을 찾습니까? 돈을, 명예를, 좋은 사람을, 자리를, 일을, 놀이를, 음식을. 찾습니까? 부귀영화를 찾습니까?

 

아닙니다. 찾음에 있어 우선순위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지혜를, 진리를 찾는 것입니다. 궁극의 지혜이신 하느님의 지혜이신, 진리이신 주님을 찾는 것입니다. 바로 오늘 제1독서는 감추어진 보물인 지혜를 찾으라는 간곡한 당부입니다. 참으로 간절히, 한결같이 찾을 때 찾습니다. 발견합니다. 만납니다. 찾지 않으면 절대 찾지도 발견하지도 만나지도 못합니다.

 

“내 아들아, 네가 만일 내 말을 받아들이고 내 계명을 네 안에 간직한다면, 지혜에 제 귀를 기울이고 슬기에 네 마음을 모은다면, 네가 예지를 부르고 슬기를 향해 네 마음을 모은다면, 네가 은을 구하듯 그것을 구하고 보물을 찾듯 그것을 찾는다면, 그때에 너는 주님 경외함을 깨닫고, 하느님을 아는 지식을 찾아 얻으리라. 

 

주님께서는 지혜를 주시고 그분 입에서는 슬기가 나온다. 그분께서는 올곧은 이들에게 주실 도움을 간직하고 계시며, 결백하게 걸어가는 이들에게 방패가 되어 주신다.”

 

참으로 지혜를, 진리 자체이신 주님을 찾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놀라운 축복의 선물입니다. 아니 이미 끊임없이 찾는 ‘순수한 마음’ 자체가 축복이자 구원이요 진짜 구도자의 삶입니다.

 

둘째, “사랑하라!”

사랑이 답입니다. 사랑밖엔 길이 없습니다. 평생 사랑의 학교 인생에서 사랑 공부중인 평생학인인 우리들입니다. 졸업이 없는 평생 사랑을 배워야 하는 우리들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참으로 사랑을 배워가며 하느님을 닮아가며 참된 구도자가 되어 갑니다. 제2독서 콜로새서에서 바오로 사도를 통한 주님의 말씀도 사랑하라는 한 마디 말로 요약됩니다. 구체적 사랑 항목은 다음과 같습니다.

 

“형제 여러분, 하느님께 선택된 사람, 거룩한 사람, 사랑받는 사람답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동정과 호의와 겸손과 온유와 인내를 입으십시오. 누가 누구에게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참아 주고 서로 용서해 주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입으십시오. 사랑은 완전하게 묶어주는 끈입니다.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을 다스리게 하십시오. 그리스도의 말씀이 여러분 가운데 풍성히 머무르게 하십시오.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느님께 시편과 찬미가와 영가를 불러 드리십시오.”

 

참된 구도자가 되어 하느님을, 형제들을 항구히, 한결같이 지칠줄 모르는 아가페 사랑으로 사랑할 때, 이처럼 우리의 사랑 나무들에 주렁주렁 달리는 풍성한 사랑 축복의 열매들입니다.

 

셋째, “섬겨라!”

우리에게 영성이 있다면 파스카 신비의 영성뿐이요 파스카 신비의 영성은 바로 섬김의 영성입니다. 수도원은 주님을, 형제들을 섬기는 배움터입니다. 섬김의 겸손, 섬김의 사랑, 섬김의 권위, 섬김의 직무등 끝이 없습니다. 섬김의 삶은 영성생활의 모두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예수님 친히 평생 섬김의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주님께서 최후만찬시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는 장면은 바로 섬김과 겸손의 사랑의 절정을 보여줍니다. 섬김의 여정중에 온통 자신을 비운 예수님의 삶이었습니다. 참으로 우리를 끊임없이 분발케 하는, 또 한없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는 예수님의 모범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우리 모두 지배하고 군림하는 사람이 아니라 겸손히 섬기는 어린이 같은 사람이 되라 하십니다.

 

“너희 가운데 가장 높은 사람은 가장 어린 사람처럼  되어야 하고 지도자는  섬기는 사람처럼 되어야 한다. 누가 더 높으냐? 식탁에 앉은 이냐, 아니면 시중들며 섬기는 이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사람으로 너희 가운데 있다.”

 

우리 삶의 중심에 섬기는 분으로 늘 현존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섬김의 한복판에서 만나는 주님입니다. 우리가 날로 예수님 사랑을 닮아가는 예닮의 여정은 그대로 비움의 여정이자 섬김의 여정임을 깨닫습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찾음과 사랑과 섬김의 여정중에 참된 구도자의 삶을 잘 살 수 있도록 도와 주십니다. 종신서원 예식중 ‘수쉬페’와 영광송으로 강론을 마칩니다.

 

“주님, 주님의 말씀대로 저를 받으소서, 그러면 저는 살겠나이다. 주님은 저의 희망을 어긋나게 하지 마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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