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좋은 삶과 죽음 -하루하루 날마다 한결같이-2021.7.12.월요일 이 정우 바오로 수사(1933-2020) 선종 1주기 미사

by 프란치스코 posted Jul 12,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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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7.12.월요일 이 정우 바오로 수사(1933-2020) 선종 1주기 미사

마카베하12,43-45 마태5,1-12ㄴ

 

 

 

참 좋은 삶과 죽음

-하루하루 날마다 한결같이-

 

 

 

어제 성 베네딕도 아빠스 대축일 미사에 이어 오늘은 이정우 바오로 수사님의 1주기 기일미사를 봉헌합니다. 지나고 보니 참 잘 살다가 잘 죽으신, 말그대로 평소 빠스카 신비의 삶과 죽음을 사신 바오로 수사님이심을 깨닫습니다. 1933년에 출생하셔서 2020년에 선종하셨으니 만87세 천수를 누리신 것입니다. 멀리 있는 죽음같지만 제 나이를 빼보니 남은 햇수 15년입니다. 남은 하루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요!

 

정말 알 수 없는 죽음의 신비입니다. 하느님의 은총은 물론이고 은총에 앞서 하루하루 날마다 처음이자 마지막처럼 최선을 다하는 분투奮鬪의 삶도 은총의 좋은 죽음에 결정적임을 깨닫습니다.

 

“죽음을 날마다 눈앞에 환히 두라.”(성규4,47)

 

참 자주 인용했던 베네딕도 성인의 성규에 나오는 가르침입니다. 하루하루 날마다 깨어 죽음을 눈앞에 환히 두고 살 때 환상은 말끔히 걷히고 온갖 탐욕의 집착에서 벗어나 오늘 지금 여기서 본질적 투명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어제의 베네딕도 대축일날은 정영훈 아브라함 수사의 종신서원식으로 인해 참 축제같은 날이었고 오늘은 이정우 바오로 수사님 기일의 대조가 좋은 깨우침을 줍니다. 

 

삶과 죽음의 공존입니다. 멀리 있는 죽음이 아니라 평생 도반처럼 함께 가는 삶과 죽음입니다. 죽음이 있어 삶이 소중한 선물임을 깨닫습니다. 오늘은 기일, 어제는 축일, 바로 하루하루 죽는 그날까지 축일같은 삶을 사는 것입니다. 축일처럼 살다가 축일처럼 죽는 것입니다. 사실 선종하신 분들의 장례미사는 흡사 축일미사처럼 느껴집니다. 매일 축일처럼 살기위해 제 마지막 단 하나의 유일한 소원은 살아있는 그날까지, 죽는 그날까지 잘 쓰든 못 쓰든 매일 새벽  강론을 쓰는 것입니다.

 

“날마다의 강론은 내 사랑이요 운명이자 유언이자 위로와 치유의 구원이다.”

 

게시판에 붙여 놓고 늘 새롭게 확인하는 다짐입니다. 어제의 제 두 말마디도 잘 했다 싶어 나눕니다.

 

“오늘처럼 살면 되!”

 

바로 종신서원한 아브라함 수사를 포옹하며 한 격려의 말마디입니다. 매일 초발심初發心의 자세, 종신불톼終身不退의 자세로 종신서원 대축일처럼 살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의 주님 말씀도 생각납니다.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 그날 고생은 그날도 충분하다’(마태6,34). 그러니 하루하루 충실히 살면 내일은 걱정 안해도 됩니다. 내일은 내일대로 잘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축제처럼 사는 것입니다.

 

“너 역시 아름답다!(You are also beautiful!)”

 

어제 대축일 미사에 참석했던 코스타리카 대사 부부와의 만남에서 자매에게 드린 덕담입니다. ‘수도원의 주변 환경이 참 아름답다!’는 자매의 말에 즉각적인 응답이었습니다. 꽃보다 아름다운 하느님의 모상인 영혼들입니다. 그러니 하루하루 축제처럼 아름답게, 품위있게 성인聖人이 되어 사는 것입니다. 비상한 성인이 아니라 ‘참 나(眞我)의 평범한 성인이 되어 사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삽니까? 부활의 희망을 지니고 참 행복을 사는 것입니다. 제1독서 마카베오기 하권에 나오는 주인공 이스라엘의 임금 유다가 부활신앙의 모범입니다.

 

‘그는 부활을 생각하며 그토록 훌륭하고 숭고한 일을 하였다. 그가 전사자들이 부활하리라고 기대하지 않았다면, 죽은 이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 쓸모없고 어리석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경건하게 잠든 이들에게는 훌륭한 상이 마련되어 있다고 내다 보았으니, 참으로 거룩하고 경건한 생각이었다.’(마카하12,43ㄴ-45ㄱ).

 

제가 좋아하는 위령미사 감사송 다음 대목도 우리의 부활신앙을 북돋웁니다.

 

“그리스도께서 복된 부활의 희망을 주셨기에

저희는 죽어야 할 운명을 슬퍼하면서도

다가오는 영생의 약속으로 위로를 받나이다.

주님, 믿는 이들에게는 죽음이 죽음이 아니요

새로운 삶으로 옮아감이오니

세상에서 깃들이던 이 집이 허물어지면

하늘에 영원한 거처가 마련되나이다.”

 

미사시 감사기도 제3양식 위령 미사를 드릴 때 다음 죽은 이들을 위한 기도 역시 우리의 부활신앙을 더욱 북돋우기에 역시 제가 참 좋아합니다.

 

“성자께서 죽은 이들의 육신을 다시 일으키실 때에

저희의 비천한 몸도 성자의 빛나는 몸을 닮게 하소서.

또한 세상을 떠난 교우들과 주님의 뜻대로 살다가 떠난 이들을

모두 주님의 나라에 너그러이 받아들이시며

저희도 거기서 주님의 영광을 영원히 함께 누리게 하소서.

저희 눈에서 눈물을 다 씻어 주실 그때에

하느님을 바로 뵈오며 

주님을 닮고

끝없이 주님을 찬미하리이다.”

 

죽음의 어둠을, 두려움의 어둠을 말끔히 몰아내는 부활신앙의 빛입니다. 이런 부활신앙을 지니고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참행복을 사는 것입니다. 참행복을 살며 주님과 일치가 깊어질수록 참행복한 죽음에 부활입니다. 모세의 십계명의 소극적 금령들은 좋은 신자가 되게 할 수 있을 지언정 성인이 되게는 못합니다. 

 

모세의 십계명을 한없이 능가하여 우리를 성인이 되게 하는 적극적 평생 수행이 주님의 긴 산상설교중 서문에 해당되는 오늘 복음의 참행복 선언입니다. 평생 살아야 하는 평생과제가 바로 참 행복선언입니다. 세상의 가짜 행복이 아니라 오늘 지금 여기서 하늘 나라를 살게 하는 참 행복입니다.

 

1.“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2.“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3.“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4.“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5.“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6.“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7.“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8.“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이 진복팔단 꼭 마음에 새기시기 바랍니다. 이런 참 행복을 목표로 사는 사람들이 진짜 성인들이요 참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참 행복의 잣대가, 참 성덕의 잣대가 되는 평생 수행이자 과제인 진복팔단의 삶입니다. 참으로 생생한 부활신앙과 하늘 나라의 꿈과 희망은 참행복 수행의 원천이, 원동력이 됩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부활신앙과 더불어 참행복의 진복팔단의 수행에 항구할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마태5,12ㄱ).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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