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목자이자 참 농부農夫이신 하느님 - 참 목자, 참 농부 영성이 절박切迫한 시대-2021.7.18.연중 제16주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Jul 18,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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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7.18.연중 제16주일                                                      예레23,1-6 에페2,13-18 마르6,30-34

 

 

 

참 목자이자 참 농부農夫이신 하느님

- 참 목자, 참 농부 영성이 절박切迫한 시대-

 

 

 

새벽 휴게실에 들어서는 순간 7월18일자 가톨릭 신문 1면 큰 활자가 한눈에 들어왔고, 앞부분을 다시 읽어 봤습니다.

 

“기후와 감염병 위기 시대---‘생명농업은 선택아닌 필수. 산업화된 대규모 관행농업, 온실가스 대량으로 배출, 환경오염 피해자이며 가해자, 자연 순환 원리 존중하는 생명농업으로 대전환 절실, 한국교회 힘과 지혜 모아야.”

 

구구절절 공감이 가는 제28차 농민주일을 맞이하여 주교회의 생태환경위원회 위원장 박현동 아빠스의 담화문 요약입니다. 이어 매일미사 신자들의 기도 둘째 내용이 참 적절하다 싶었습니다.

 

“창조주이신 주님, 땅을 일구며 살아가는 농민들을 보살펴 주시어, 지구 온난화로 예축하기 어려워진 자연환경 속에서 힘을 잃지 않게 하시고, 농민주일을 지내는 교회가 농업의 소중함을 일깨우는데 앞장서게 하소서.”

 

작금의 시대에 최대의 화두는 기후변화, 기후위기, 기후재앙일 것이며 여기서 부각되는 산업농업이 아닌 생명농업의 중요성입니다. 예수님의 말씀도 생각납니다.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다.”(요한15,1)

 

언제 들어도 마음에 참 다정히 와닿는 말씀입니다. 누구보다 하느님을 가장 닮은 사람이 농부일 것입니다. 이런 진실한 농부들을 보면 순박하기가 수도자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참 목자이며 참 농부이신 아버지를 그대로 닮은 우리의 구원자 예수님입니다. 

 

참으로 우리 믿는 이들 모두가 한결같이 추구해야 할 ‘참 목자, 참 농부 영성’입니다. 비상한 영성이 아니라 인간은 물론 지구와 자연 전체를 망라한 존중과 배려, 공감의 영성입니다. 이제 사랑의 이중 계명은 사랑의 삼중 계명, 하느님 사랑과 사람사랑에 이어 자연사랑까지 확대되어야 할 절박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런 참 목자 영성의 상징적 인물이 우리 프란치스코 교황일 것입니다. 이번 교황청 성직자성 장관에 임명된 유흥식 대주교(나자로)와의 인터뷰 기사중 교황님과의 관계된 대목을 나눕니다. 

 

-“저는 유명한 신학자도 아니고 교회와 세상에 대해서도 박학하지 않습니다. 다만 신자들과 친근하게 지내고, 신학교를 사랑하면서 좋은 사제들을 양성하기 위해 노력하며, 그저 소박하게 사제들과 주교님들과 친교를 나누는데 조금 애쓸 뿐입니다.”

바로 대주교님의 이 대목에서 교황님은 목소리를 높이시며 다음처럼 말씀하셨습니다.

“주교님, 바로 그거예요. 그렇게만 하시면 됩니다. 실무를 잘하는 좋은 차관과 좋은 차관보를 임명해줄 테니까 일을 그분들이 하면 될 것입니다.”-

 

얼마나 멋진 교황이요 대주교인지요! 이어 교황님에 대한 대주교의 소개도 감동적이었습니다. 참 많은 감동을 선사하는 교황님입니다.

 

-‘교황님께서 추기경들을 지나서 40명의 주교들이 앉은 자리를 지나가시다가 저를 알아보시고 반갑게 인사를 나눠주셨습니다. 저로서는 큰 기쁨과 영광이었지요. 교황님은 놀랍게도 당신 앞에 있는 사람과 항상 눈높이를 맞춰 주십니다. 그래서 그분을 만나면 그분께서 오직 나만을 위해 거기 계신 것처럼 느껴집니다. 교황님의 또 한가지 특징은 언제나 실제적이고 구체적이라는 것입니다. 공중에 뜬 이론, 애매한 입장과 모호한 가르침이 아니고, 신앙생활도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삶의 실천으로 이어지도록 이끄십니다.-

 

참 우리는 이처럼 예수님을 닮은 착한 목자들을 모신 참 자랑스럽고 복된 천주교 신자들입니다. 세상 곳곳에는 묵묵히 착한 목자 영성을 사는 무수한 분들이 있으며 우리에게 이분들 역시 착한 목자 영성을 살라는 부단한 자극과 도전이 되고 분발 노력케 하는 원천이 됩니다. 

 

아주 예전 몇 년 동안의 주방장 소임을 통한 깨달음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삶과 농사일과 주방일의 원리가 똑같다는 것입니다. 안 하려들면 최소한도로 할 수 있겠지만, 하려들면 끝없이 해야 할 삶의 일들이요, 농사일들이요 주방일들이요, 얼마나 정성을 다했는지 한눈에 들어오는 일들의 현실입니다. 하여 영적 삶을 위한 성사聖事, 먹는 일을 식사食事, 농업일을 농사農事라 칭하는가 봅니다. 생명유지를 위한 삼대 필수 큰 일이 성사, 농사, 식사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참 목자 영성을 살려는 이들은 삶과 농사와 식사에 깊고 넓은 시야를 지녀야 함을 봅니다. 과연 어떻게 하면 참 목자 영성을, 농부가 아니면서도 참 농부같은 심성을 지닌 참 농부 영성을 살 수 있을런지요. 간단합니다. 참으로 평범한 일상에 지극히 충실하는 것이요 구체적으로 다음처럼 살면 됩니다.

 

첫째, 기도와 쉼입니다.

기도와 쉼입니다. 삶의 쉼표가 정말 중요합니다. 인생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평생 마라톤 경주입니다. 누구와 경쟁이 아닌 제 페이스대로 완주하면 되는 상대평가가 아닌 절대평가입니다. 하느님 눈엔 모두가 1등으로 살 수 있습니다. 바로 여기 필수적인 것이 기도와 쉼입니다. 중독의 병에 기도와 쉼보다 더 좋은 해독제도 없습니다. 아니 온갖 중독의 예방과 치유, 힐링에 기도와 쉼이 제일입니다.

 

코로나19 감염병이 바로 기도와 쉼을 통한 삶의 깊이를, 건강을 회복하라는 회개의 표징입니다. 이제 예전같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참으로 날로 본질적 깊이의 삶을 살아야 할 절박한 시기입니다. 기도와 쉼의 시간은 철저한 자기 성찰의 시간이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사도들의 활동 보고가 끝나자 즉시 쉴 것을 명령하십니다. 오고 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음식을 먹을 겨를조차 없는 제자들의 처지였습니다.

 

“너희는 따로 외딴곳으로 가서 좀 쉬어라.”

 

예수님은 하루의 일과가 끝나면 언제나 외딴곳에 머물러 기도와 쉼 중에 아버지와 함께 하며 영육을 충전시켰습니다. 사실 우리가 수도생활에 항구하고 충실할 수 있음은 바로 여기 외딴곳 성전에서의 평생 날마다 끊임없이 바치는 공동전례기도 덕분임을 깨닫습니다.

 

둘째, 사랑과 분별입니다. 

분별의 잣대는 사랑입니다. 사랑할 때 분별의 지혜도 나옵니다. 모든 덕의 어머니가 분별력임은 베네딕도 성인의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분별력의 지혜와 함께가는 조화와 균형의 중용입니다. 오늘 복음 후반부에서 주님의 분별력이 빛을 발합니다. 바로 연민의 사랑이 분별의 잣대임을 입증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배에서 내리시어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없는 양들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기 시자하셨다.’

 

착한 목자로서 예수님의 모습이 약여합니다. 참으로 가엾이 여기는, 측은히 여기는, 불쌍히 여기는 연민의 사랑이 참 목자 영성의 빛나는 표지임을 깨닫습니다. 예수님은 우선 말씀을 가르치심으로 군중의 영적 굶주림을 해결하십니다. 

 

절박한 군중들의 필요에 응답하느라 외딴곳에서의 쉼은 일단 보류하는 분별의 사랑이자 지혜입니다. 참으로 그림처럼 눈에 선한 아름다운 장면입니다. 우리의 이기적 삶을 부끄럽게 하는 회개의 표징이 되는 장면입니다. 사실 눈만 열리면 우리를 부끄럽게 하는 회개의 표징들 가득한 세상임을 깨닫습니다.

 

셋째, 화해와 평화입니다.

바오로 사도 역시 참 목자의 모범입니다. 공동체의 화해와 평화가 참 목자 영성의 빛나는 표지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그리스도 중심의 삶을 살 때 주님 친히 화해와 평화를 선물하십니다. 바로 우리 요셉 수도공동체가 이를 입증합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몸으로 유다인과 이민족을 하나로 만드시고 이 둘을 가르는 장벽인 적개심을 허무셨습니다. 또 그 모든 계명과 조문과 함께 율법을 폐지 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여 당신 안에서 두 인간을 하나의 새인간으로 창조하시고 평화를 이룩하시고, 십자가를 통하여 양쪽을 한 몸 안에서 하느님과 화해시키시어. 그 적개심을 당신 안에서 없애셨습니다.”

 

무슨 말을 보태겠습니까? 그대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과 하나됨으로 평화의 새인간으로 날마다 새롭게 태어나는 우리들입니다. 여기에 하나 추가할 것이 있습니다. 비단 인간 서로간뿐 아니나 세상 만물의 자연까지 아우르는 우리의 화해와 평화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너무나 자연을 약탈하고 착취한 결과가 오늘날의 기후위기요 코로나 감염병입니다. 다시 생각납니다. 하느님은 늘 용서하고 사람은 때때로 용서하지만 자연은 결코 용서하지 않는다는 말마디입니다. 참으로 생태적 회개의 적극적 실천을 통해 자연과의 화해와 평화가 참 절실합니다. 

 

넷째, 공정과 정의입니다.

공정과 정의의 목자가 참 목자요 우리의 희망입니다. 그러나 제1독서에서 불의한 악한 목자들을 질타하는 예레미야 예언자입니다. 예나 이제나 악한 목자들은 어디나 있는 법입니다. 

 

“불행하여라. 내 목장의 양 떼를 파멸시키고 흩어 버린 목자들! 너희는 내 양 떼를 흩어 버리고 몰아냈으며 그들을 보살피지 않았다. 이제 내가 너희의 악한 행실을 벌하겠다.”

 

우리 자신을 살펴보게 합니다. 정말 착한 목자 영성을 지닌 우리들이라면 이런 공동체의 분열과 파괴적인 일은 하지 못할 것입니다. 나누고 보살피고 떠받쳐 주는 존중과 배려의 사랑으로 공동체의 일치를 위해 최선의 노력은 못하더라도 훼방은 놓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결코 부정으로, 절망으로, 벌함으로 끝내지 않습니다. 참으로 믿는 이들에게는 희망의 구원이 있을 뿐입니다. 희망의 예언자 예레미아가 전하는 오늘의 복음입니다.

 

“보라, 그날이 온다! 내가 다윗을 위하여 의로운 싹을 돋아나게 하리라. 그 싹은 임금이 되어 다스리고 슬기롭게 일을 처리하며, 세상에 공정과 정의를 이루리리라. 사람들이 구원을 받고 안전하게 살리라.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주님은 우리의 정의’라고 부르리라.”

 

오늘이 그날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정의입니다. 마침내 예레미야의 예언은 공정과 정의의 참 목자 예수님을 통해, 예수님을 스승으로 둔 우리들을 통해 실현됨을 봅니다. 오늘날은 참 목자, 참 농부 영성을 탐구해야 절박한 시대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참 목자, 참 농부 영성을 지니고 살게하십니다. 1.기도와 쉼, 2.사랑과 분별, 3.화해와 평화, 4.공정과 정의의 영성입니다.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시편23,1).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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