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7.19. 연중 제16주간 월요일 탈출14,5-18 마태12,38-42
회개의 표징
-무지無知에 대한 답은 회개悔改뿐이다-
“주님, 당신 아닌 누구가 하늘에서 날 위해 주오리까
당신과 함께 있노라면, 즐거울 것 땅에는 없읍나이다
이 몸과 이 마음 다한다 하여도,
내 마음의 바위, 나의 몫은 항상 하느님.”(시편73,25-26)
눈 만 열리면 온통 우리를 부끄럽게 하는 회개의 표징들로 가득한 세상입니다. 성서의 이야기들 또한 대부분 회개의 표징들입니다. 결국은 회개의 표징들이 목표하는 바는 오늘 지금 여기 나의 회개입니다. 작금의 기후재앙 역시 참으로 강력한 회개의 표징입니다. 지구가 불타고 있다는 표현도 있습니다. 한밤중 일어났는데 역시 덮습니다. 새벽 인터넷 뉴스 역시 이상기후에 관한 뉴스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1천년만의 대홍수를 불러온 서유럽 폭우는 전후 서구 선진국을 떠받쳐온 견고한 시스템을 거대한 흙탕물과 함께 일거에 쓸어갔다. 최악을 가정해 만든 각종 재난, 재해 안전 기준, 이를 바탕으로 설계된 대응 체계와 시설은 현실로 다가온 기후변화 앞에 ‘20세기 낡은 시스템’으로 전락했다.
유럽뿐만 아니다. 올해 여름 북미, 시베리아, 동북아시아 등에서 기록적 폭염과 폭우, 홍수, 산불이 동시다발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기후위기는 선진국과 후진국을 가리지 않는다. 영화나 먼 미래의 일이 아닌 오늘 지금 여기 모두의 생존 문제가 됐다는 것을 자각할 때’라고 경고한다.”
기후변화보다 더 강력하고 절박한 회개의 표징도 없을 것입니다. 인간의 죄가 하늘까지 닿은 인과응보의 결과처럼 보입니다. 인류생존기반을 위협하는 기후재난 앞에는 백약이 무효요, 전체적, 자발적, 근원적 회개의 실천뿐이 없음을 깨닫습니다. 어제 교황님의 삼종기도후 베드로 광장에서 하신 주일 복음 묵상 나눔도 참 신선했습니다. 이 또한 회개의 표징이 됩니다.
“우리는 ‘마음의 생태학’(ecology of the heart)을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휴식, 그리고 관상과 연민’(rest, contemplation and compassion)을 통해서! 올 여름은 이것을 행해여야 할 좋은 시간이다.”
‘마음의 생태학’이란 표현이 참신합니다. ‘휴식-관상-연민’으로 이뤄진 마음의 생태학임을 깨닫습니다. 바로 이런 마음의 생태를 회복하기 위한 최적의 처방은 ‘회개와 겸손’뿐입니다.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인해 강릉은 4단계, 제주는 3단계를 긴급 발령했으니 결국은 휴가를 오지 말라는 이야기입니다. 올 여름은 정말 제 삶의 자리 깊이에서 마음의 생태를 돌보는, 하느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맛보고 깨닫는 ‘관상가’로 지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오늘 말씀의 이해도 확연해 집니다.
탈출기에서 모세의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외적으로 고군분투이지 내적으로 주님과 깊이 결속된 삶이기에 천하무적의 모세입니다. 탈출에 성공했습니다만 파라오의 추격에 위기가 닥치자 다시 과거를 그리워하며 울부짖는 이스라엘 백성들, 주님을 망각하고 허둥대는 무지에 눈 먼, 믿음 약한 인간의 보편적 모습을 보여 줍니다. 이 또한 우리에겐 ‘회개의 표징’이자 ‘믿음의 시험’이 됩니다. 모세를 통한 주님의 말씀입니다.
“두려워하지들 마라. 똑바로 서서 오늘 주님께서 너희를 위하여 이루실 구원을 보아라. 주님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워 주실 터이니, 너희는 잠자코 있어라.”
그대로 시련중이나 고통중인 오늘의 독자들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경거망동하지 말고 제 삶의 자리에서 조용히 머물러 주님께서 하시는 일을 관상하고 협조하며 회개의 표징들을 잘 읽으라는 것입니다. 인터넷 검색檢索보다는 삶의 현실에 대한 사색思索이 절실합니다. 영혼이 없는, 생각이 없는 사람들이 날로 늘어나는 작금의 현실입니다. 참된 회개가 절실한 세상입니다. 탈출기 마지막 말마디도 의미심장합니다.
“내가 파라오와 그의 병거와 기병들을 쳐서 나의 영광을 드러내면, 이집트인들은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회개의 표징들은 역설적으로 주님을 깨달아 알게 하는 주님 영광의 표징들입니다. ‘모든 일에 하느님께 영광’ 수도원 정문 바위판의 모토처럼 회개의 삶은 그대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과 직결됨을 봅니다. 복음의 예수님 또한 모세처럼 고군부투의 모습이지만 내적으로는 하느님과 깊이 하나로 결속된 삶임은 그분의 대응에서 잘 드러납니다.
시공을 초월하여 모든 세대의 무지에 눈 먼이들에게 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 자체가 영원한 하늘의 표징이자 회개의 표징인데 새삼 표징을 요구하는 무지에 눈 먼 율사와 바리사이들입니다.
“악하고 절개없는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 구나! 그러나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요나의 표징이 상징하는 바 그대로 사흘만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파스카 예수님입니다. 우리의 영원한 회개의 표징인 파스카의 예수님 하나만으로 족하다는 것입니다.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한 니네베 사람들을,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땅끝에서 온 여왕을 반면교사로 삼아 회개할 것을 촉구하는 주님이십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오늘 지금 우리와 함께 하시는 영원한 회개의 표징인 파스카의 예수님을 직시하라는 것입니다. 무지에 대한 답은 회개뿐이요 영원한 회개의 표징인 파스카의 예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보라,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보라,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바로 예언자 요나보다, 현자 솔로몬 보다 더 큰 분이자 영원한 회개의 표징이신 파스카 예수님을 모시는 이 거룩한 미사시간입니다. 그러니 부단한 회개를 통해 무지의 어둠에서 벗어나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겸손과 지혜의 삶을 살도록 합시다.
“하느님 곁에 있는 것이 내게는 행복, 이 몸 둘 곳 주님 나는 좋으니
하신 일들 낱낱이 이야기하오리다.”(시편73,28).
“오늘 너희는 주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너희 마음을 무디게 하지 마라.”(시편95,7.8).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