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7.24.연중 제16주간 토요일 탈출24,3-8 마태13,24-30
선과 악이 공존하는 영적전장(靈的戰場)
-“심판은 하느님께 맡기고 끝까지 기다리십시오!”-
하늘 나라의 비유들중 오늘은 두 번째, 씨뿌리는 사람의 비유에 이어 가라지의 비유입니다. 가라지로 상징되는 악과 밀로 상징되는 선의 공존 속에 살아내야 할 하늘 나라임을 깨닫습니다. 하늘 나라는 마냥 이상적이고 환상적인 현실이 아니라 선과 악의 치열한 영적전쟁의 현실임을, 참으로 주님의 평화의 전사, 인내의 전사, 자비의 전사, 지혜의 전사로 살아야 하는 현실임을 깨닫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이점을 분명히 통찰하셨을 것이며 가라지의 비유 또한 예수님의 삶의 지혜를 보여줍니다.
악의 신비입니다. 악의 기원을 찾는 것은 부질없는 헛수고입니다. 이미 선과 악이, 밀과 가라지가 공존하는 엄연한 현실입니다. 선과 악의, 밀과 가라지의 공존의 현실을 인정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다음 종들과 집주인의 대화가 이런 현실을 분명히 일깨워 줍니다.
-“주인님,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가라지는 어디서 생겼습니까?”
“원수가 그렇게 하였구나.”
“그러면 저희가 가서 그들을 거두어 낼까요?”
“아니다. 너희가 가라지들을 거두어 내다가 밀까지 함께 뽑을 지도 모른다. 수확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 수확 때에 내가 일꾼들에게, 먼저 가라지를 거두어서 단으로 묶어 태워 버리고 밀은 곳간으로 모아들이라고 하겠다.”
이 대화 안에 삶의 모든 지혜가 다 들어 있습니다. 그대로 하느님의 지혜를, 예수님의 지혜를, 삶의 지혜를 보여줍니다. 선과 악이, 밀과 가라지가 염연히 공존공생하는 현실입니다. 이런 선과 악이 공존공생하는 세상의 축소판이 우리 마음입니다. 100% 순도純度의 순수한 마음은 없다는 것입니다. 선한 밀밭같은 마음안에 끊임없이 솟아나는 가라지들의 현실 역시 우리 누구나 부인할 수 없는 실존적 체험입니다.
악이 없는, 가라지가 없는 유토피아 세상은 환상입니다. 가라지들을 어떻게 대하는 것이 과연 지혜로운 처방일까요. 자비와 지혜는 함께 갑니다. 자비의 마음에서 지혜도 겸손도 나옵니다. 선과 악이 공존하는 나의 내면을 인정하는 것 또한 자비와 지혜요 겸손입니다.
도대체 나는 밀입니까 가라지입니까? 누가, 무엇이 밀이고 가라지입니까? 가라지인 줄 알고 뽑았는데 밀이면 어떻게 합니까? 참된 회개를 통해 변하는 사람입니다. 지금은 가라지 같아도 언젠가 밀이 될 수도 있고, 현재는 밀같아도 악한 생활이 습관화되면 가라지가 될 수도 있습니다. 가라지같은 사람도 실상 만나보면 밀로 드러나는 경우는 얼마나 많은지요!
참으로 진상眞相을 보기 보다는 내 선입견, 편견의 색안경을 쓰고 보기에 가라지인지도 모릅니다. 참으로 착각과 오해로 가라지같은 존재로 단정해 버리는 경우는 얼마나 비일비재한지요. 또 세상에 자기를 가라지같은 존재라 하면 분노하지 않을 자 없을 것입니다. 참으로 분별하기 힘든 것이 선과 악, 밀과 가라지입니다.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으로 이끄시는 하느님께서는 악의 가라지도 당신 섭리의 도구로 쓰실 수도 있습니다.
분명 가라지라 합시다. 가라지를 뽑아 버리는 것이 그리 단순합니까? 발본색원拔本塞源한다 하지만 악을 뿌리 뽑은 적은, 범죄와의 전쟁을 한다 하지만 이긴적인 한번도 없습니다. 무엇보다 악순환惡循環으로 인한 후유증이 너무큽니다. 세상을 보십시오. 온통 가라지밭 같이 보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가라지가, 악이 없는 세상이 바람직한 세상일까요? 그럴리도 없겠지만 만약 그렇게 된다면 사람되기는 불가능합니다. 가라지와, 악과 영적전쟁중에 성장 성숙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가라지가, 악이 없다면 애당초 분투의 수행도 기대할 수 없을 것입니다.
가라지와 함께 가는 밀의 성장이듯 악과의 영적전쟁중에 영적성장입니다. 문제는 조화와 균형입니다. 바로 서양의학과 동양의학의 비교가 좋은 깨우침을 줍니다. 서양의학은 병의 원인을 제거하는데 집중합니다만, 동양의학은 병에 대한 면역력을 키워 병과 건강의 조화와 균형에 중점을 둡니다. 가라지를 없애기 보다는 밀의 세력을 강화시켜 가라지 세력을 서서히 약화시키는 원리와 흡사합니다.
이래서 칭찬과 격려가 백배 효과적입니다. 가라지 단점을 추궁하고 지적하기 보다는 장점을 칭찬 격려하여 단점을 서서히 약화시키는 것입니다. 7의 장점에 3의 단점을 지녔다면 7의 장점을 칭찬, 격려하고 3의 단점은 그대로 놔둬도 점차 시들어 없어질 것입니다. 녹을 지우려다 그릇을 깰 수 있습니다. 참 약한 인간이라 3의 단점을 고치려 하다가 7의 장점도 위축되어 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니 깨달아 알 때 까지 끝까지 기다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끝까지 참고 견디며 기다리는 자비와 지혜, 인내의 사람이 결국은 승리합니다. 참으로 하느님께 무한한 희망을, 신뢰를 둘 때 이런 인내의 기다림이 가능합니다. 참으로 분별하기 힘든 밀과 가라지이니 최종 심판은 하느님께 맡기고 가라지 현실 속에서도 변질, 부패되지 않도록 내 자신을 강화하는 수행이 절대적이라는 것입니다. 분명한 사실은 하느님께 가까워질수록 밀이요 하느님께 멀어질수록 가라지가 된다는 것입니다.
가라지하니 쓰레기가 연상됩니다. 참 인스탄트 시대 쓰레기가 넘치는 세상입니다. 때로는 사람을 비하할 때 쓰레기 같다하여 심지어는 기자들을 기레기라 부르기도 합니다. 그러니 가라지같은 쓰레기 같은 삶이 되지 않도록 주님을 닮은 참 나를 살기위한 분투의 수행이 절실한 시절입니다. 바로 제1독서 탈출기의 시나이 산에서 계약을 맺는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이 거룩한 미사시간 주님 앞에서 다짐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실행하겠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실행하고 따르겠습니다.”
밀과 가라지가, 선과 악이 공존하는 세상입니다. 세상 종말까지 이런 현실은 계속될 것입니다. 말 그대로 영적전쟁의 현실입니다. 최종 심판은 하느님께 맡기고 하루하루 주님의 자비의 전사, 지혜의 전사, 겸손의 전사, 평화의 전사, 인내의 전사가 되어 영원한 현역의 전사로 분투의 수행을 다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를 도와 주십니다. 우리가 모시는 주님의 성체가 우리 내면의, 공동체의 가라지 악의 세력을 약화시켜 주시고 밀의 선 세력을 강화시켜 주십니다. 아니 가라지 악의 세력을 밀의 선 세력으로 변형시켜 주십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