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8.2.연중 제18주간 월요일 민수11,4ㄴ-15 마태14,13-21
광야 여정
-목표, 이정표, 도반, 기도-
연일 계속되는 폭염의 불볕 더위입니다. 이 또한 기후위기의 뚜렷한 징후입니다. 새삼 누구나 광야 여정의 고단하고 힘든 삶을 실감하는 요즈음입니다. 얼마전 이열치열이란 말마디와 더불어 떠오른 능소화꽃이란 시가 생각납니다.
-“이열치열
폭염의 불볕 더위에
참 좋은 처방은
언제나 하늘임 향한
순수와 열정의 치열한 사랑
능소화꽃처럼!”-
그렇습니다. 불볕더위에 위축될 것이 아니라 이열치열以熱治熱, 순수와 열정의 치열熾熱한 분투의 노력으로 통과해나가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영원한 도반이신 주님께서 도와 주십니다. 어제 교황님의 삼종기도후 한 눈에 들어 온 강론 주제와 더불어 이어지는 내용도 은혜로웠습니다.
“생명의 빵이신 예수님을 환영하자.
그분과의 우정으로부터 시작하여 서로 사랑하는 것을 배우자. 하느님과 더불어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이야기를 사신 복된 마리아의 모범을 바라보면서! 자유롭고 풍성하게! 성모님은 우리가 이런 은총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 주신다. 하느님의 일은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님, 그분을 환영하는 것이다.
그 열쇠는 우리 삶 안에 예수님을 환영하면서, 그분과 사랑의 이야기를 살아내는 것이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믿음을 정화하실 수 있고 그분과 사랑의 우정관계를 강화하실 수 있다. 우리가 받은 또 행해야 할 모든 것 앞에, 거기 사랑해야할 그분이 계신다.”
새삼 우리의 광야 여정에서 영원한 도반이신 예수님과의 날로 깊어가는 우정관계가 얼마나 결정적인지 깨닫습니다. 민수기의 히브리 제목도 '광야 안에서(in the Wilderness)'입니다. 역시 삶은 반복입니다. 오늘 복음과 민수기를 묵상하는 순간, 떠오른 것이 2014년 산티아고 광야 여정의 체험이었습니다. 오늘 복음과 독서가 상징하는 바 그대로 광야 여정입니다. 너나 할 것 없이 믿는 이들은 모두 광야 여정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새롭게 반복하는 광야 여정의 네 필수 요소입니다.
첫째, 목표입니다.
30일 전후의 산티아고 여정의 목표가 산티아고 대성전이었고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자손들의 광야 여정의 목표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이었듯이 우리의 평생 광야 여정의 목표는 이미 여기서 시작한 하늘 나라입니다. 목표가 분명해야 방황하지 않습니다. 영원한 꿈이자 비전, 희망이자 목표인 하늘 나라를, 하느님을 잊는 순간 무지로 인한 방황에 무수한 유혹을 겪기 마련입니다. 바로 민수기의 꿈을 잃고 불평중에 울부짖으며 과거 이집트 시절을 그리워하는 이스라엘 자손들처럼 될 수 있습니다. 바로 광야여정중 목표와 길을 잃은 사람들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둘째, 이정표입니다.
산티아고 여정중 목표에 이르기 까지 곳곳에 계속된 이정표이듯 매일의 미사가 우리의 광야 여정중 참 좋은 최고의 이정표가 됩니다. 광야의 이정표처럼 민수기의 백성들에게도 매일 만나를 내려 주셨지만 이들의 불평불만은 계속됩니다. 바로 다음 대목이 주님의 은혜로운 이정표 만나를 상징합니다. ‘밤에 이슬이 진영 위로 내리면, 만나도 함께 내리곤 하였다.’(민수11,9).
오늘 복음에서 민수기의 만나의 기적을 연상케 하는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외딴곳 광야에서 오천명을 먹이신 빵의 기적이 빛나는 이정표를 상징합니다. 참으로 고단하고 힘든 광야여정중 이정표이자 활력의 샘이 되었을 광야에서의 빵의 기적입니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의 예표가 되는 5천명을 먹이신 기적이야기입니다.
똑같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광야 여정중 날마다 빵의 기적을 베푸시는 이 거룩한 미사시간입니다. 참으로 광야 여정중 매일의 미사보다 더 좋은 이정표도 없습니다. 이 미사의 이정표 따라 살아야 길을 잃지 않습니다. 하루하루의 중심과 질서를 잡아주는 미사은총입니다. 미사의 이정표에서 잠시 쉬면서 하늘에서 내려 온 생명의 빵, 천사의 양식인 주님의 성체로 심신의 활력을 회복하는 우리들입니다. 이정표이자 쉼터와 샘터, 배움터가 되는 미사전례시간입니다.
셋째, 도반입니다.
광야 여정은 혼자의 여정이 아니라 영원한 도반이신 주님과 그리고 형제들과의 더불어의 광야 여정임을 깨닫습니다. 저역시 산티아고 광야 여정중 영원한 도반이신 주님과 더불어 두분의 도반 형제들이 동행했습니다. 민수기의 이스라엘 자손들은 서로가 도반이지만 참 허술하기 그지 없고, 이들의 중심 자리의 지도자 모세가 진정 참 도반입니다. 영원한 도반이신 하느님을 망각하고 또 눈에 보이는 참 도반인 모세에게 온갖 불평 불만을 토해 내는 참 무지한 이스라엘 자손들입니다.
하느님과 백성들 사이에서 온갖 어려움을 겪어내며 도반 역할에 충실한 모세입니다. 하느님과 깊은 우정의 모세였기에 이처럼 백성들의 훌륭한 도반 역할을 했음을 봅니다. 우리의 영원한 도반은 예수님이십니다. 민수기의 모세와 복음의 예수님의 역할이 비슷합니다만 비교가 안됩니다. 가엾은 마음이 동인이 되어 기적을 행하신 예수님은 그대로 자비하신 하느님의 현현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 예수님의 진면목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 찬미를 드리신 다음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니, 제자들이 그것을 군중에게 나누어 주셨다.’
지성이면 감천의 기적임을 입증합니다. 하느님을 감동시켰고 이어 군중들을 감동시켰음이 분명합니다. 두가지 기적의 해석이 다 가능합니다. 하나는 예수님의 지극정성의 사랑에 감동하신 하느님께서 친히 베푸신 기적일 수도 있고, 예수님을 통한 하느님 사랑에 감동한 군중들이 각자 지니고 있던 것을 모두 나눔으로 인해 모두 배불이 먹었다는 기적일 수 있습니다.
근원적인 문제는 빈부의 격차요 독점보다 큰 죄도 없습니다. 사실 가진 이들이 모두 자발적 사랑으로 최대한 나눈다면 오늘 복음에서처럼 모두 배불리 먹고도 남을 것입니다. 바로 이런 사랑의 나눔이 미사의 근본정신이요, 오늘 복음 장면은 그대로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의 표징이 됩니다. 생명의 빵인 성체의 나눔은 일상생활의 나눔과 섬김의 사랑으로 파급 확산될 때 비로소 미사의 완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매일 미사를 통해 영원한 도반이신 예수님과는 물론 현재 함께하는 도반인 형제들과의 우정도 날로 깊어지는 우리들입니다.
넷째, 기도입니다.
간절하고 항구한 기도가 절대적입니다. 이런 기도의 열매가 인내의 믿음, 인내의 사랑, 인내의 겸손입니다. 민수기의 광야 여정중 이스라엘 백성은 이면에서 실격입니다.산티아고 도보 여정중 새삼 삶은 걷는 것이요 걷는 것은 기도임을 깨달았습니다. 하느님과 사랑과 생명의 소통이자 대화인 기도없이 성공적 광야 여정은 불가능합니다. 그리하여 영적 주식과도 같은 매일, 평생, 끊임없이 함께 바치는 시편성무일도와 미사전례의 기도는 필수이고 묵주기도나 묵상등 개인기도 역시 필수입니다.
보십시오. 예수님 친히, 모세 친히 기도의 모범을 보여 주십니다. 외딴곳에서 밤마다 기도하신 예수님은 오늘 외딴곳 광야에서 당신 도반 형제들 오천명과 더불어 미사를 봉헌하십니다. 오늘 민수기의 모세의 기도는 얼마나 인간적이고 솔직하고 적나라 합니까! 하느님은 이런 솔직하고 정직한 푸념이자 스트레스 한풀이 같은 기도 역시 좋아하십니다.
“어찌하여 당신의 이 종을 괴롭히십니까? 어찌하여 이 온 백성을 저에게 짐으로 지우십니까? 제가 이 온 백성을 배기라도 하였습니까? 제가 그들을 낳기라도 하였습니까? 어째서 당신은 유모가 젖먹이를 안고 가듯, 그들을 제 품에 안고 가라하십니까? 저 혼자서는 이 온 백성을 안고 갈 수 없습니다. 저에게는 너무나 무겁습니다. 저에게 이렇게 하셔야겠다면, 제발 저를 죽여 주십시오. 제가 당신 눈에 든다면, 이 불행을 보지 않게 해 주십시오.”
너무 공감이 가고 실감이 나는 모세의 기도가 무거운 인생 짐을 지고 광야 여정중인 분들에게는 큰 위로와 힘이 될 것입니다. 죽어야 끝나는 광야 여정, 주님은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하루하루 광야 여정에 항구하고 충실할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시편 화답송 후렴을 통한 주님의 말씀입니다.
“환호하여라, 우리의 힘 하느님께! 파이팅!”(시편81,2ㄱ).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