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과의 우정, 형제들과의 우정 -날마다 ‘내 삶의 성경책’을 ‘렉시오 디비나’ 합시다-

by 프란치스코 posted Aug 13, 2021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2021.8.13.연중 제19주간 금요일                                                              여호24,1-13 마태19,3-12

 

 

 

주님과의 우정, 형제들과의 우정

-날마다 ‘내 삶의 성경책’을 ‘렉시오 디비나’ 합시다-

 

 

 

“온누리 반기어 주님께 소리쳐라,

 기쁨으로 주님 섬겨드려라, 

 춤추며 당신 앞에 나아가라.“(시편100,1-2)

 

사람은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닙니다. 여전히 향기로운 여운으로 살아 있는 성인聖人같은 분들도 많습니다. 어제 고백성사차 방문한 아랫집 서 마리 레몽 수녀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입니다. 참으로 많은 고위 성직자들과 좋은 관계를 지녔던 무수한 일화를 간직하고 있는 분입니다. 이미 2007년에 작고하신 부산 교구 정명조 주교님에 관한 증언입니다.

 

“정명조 주교님은 김수환 추기경님을 참으로 사랑하고 존경하며 섬겼습니다. 참으로 추기경님을 존경하여 한결같이 충실하셨고 추기경님도 정주교님을 무척 사랑하셨습니다. 정명조 주교님이 선종하셨을 때도 한 팔이 떨어져 나간 것 같다고 애통해 하셨습니다. 부산에서 서울에 오시면 꼭 추기경님을 찾아 뵙고 명동에 나가 삼계탕을 대접하셨습니다. 언젠가 정 주교님이 추기경님과 대화중 심히 기침을 하시길래 즉시 바오로병원에 가서 진료받으시라 말씀드렸고 병원에 가신 후 얼마 안 있다가 전화가 왔습니다.

 

‘허허, 수녀님, 암이랍니다.’

 

소탈하게 웃으며 전화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몇달후 상황이 심각하다 부산에서 연락이 왔고 추기경님은 저와 함께 비행기로 급히 문병했습니다. 그러니까 돌아가시기 일주 전쯤일 것입니다. 

 

‘주교님,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까?’

‘허허, 두렵긴 뭐가 두렵습니까? 아버지 집에 가는 데요. 수녀님, 나 세상 떠난 후에 힘든 일이 있으면 나한테 연락하세요. 도와 드릴테니까요.’

 

너무나 넉넉하고 편안한 자연스런 말씀과 유머에 저는 큰 위로와 평화를 받았습니다. 참 좋은 선물이었습니다. 이어 추기경님과 주교님은 제의를 입고 영대를 하신후 예수성심대축일 미사를 병상에서 봉헌했고 조용히 추기경님께 고백성사를 보셨습니다. 그러니까 정 주교님이 2007년 선종하시기 약 일주일전 쯤 되고, 추기경님은 2년후 2009년에 선종하셨습니다.”

 

요지의 말씀에 감동했습니다. 뭣보다 정 주교님의 주님과는 물론 추기경님과 한결같이 깊은 우정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참으로 주님과의 우정과 형제와의 우정은 함께 감을 다시 확인했고 배웠습니다. 영원한 도반이신 주님과의 깊어가는 우정과 더불어 보이는 현실에서의 도반 형제와의 우정도 깊어간다는 진리입니다. 마침 인터넷 검색후 선종 얼마전 주교님의 유언같은 글에서 추기경님에 관한 내용도 읽었습니다.

 

“글을 정리하면서 제일 먼저 기억한 분은 김수환 추기경님입니다. 교회의 큰 어른으로서 평소에 늘 존경하는 마음을 지니고 그분의 글을 많이 읽었기 때문에 이 책 속에 그분의 흔적이 여기저기 많이 묻어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군종신부 시절부터 30년 이상을 식복사로 봉사한 자매님의 증언도 주교님의 훌륭한 인품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무척이나 속정이 깊으신 분이시죠. 대하기 어려워 보여도 한 번 사귀면 끝까지 정을 나누는 변함없는 분이시랍니다. 전화 메모지도 이면지를 사용하시고 밤에 계단을 오를 때도 불을 켜지 않을 정도로 알뜰함이 몸에 배었어요. 근검절약을 몸소 실천하는 분이시죠.”

 

경천애인敬天愛人입니다.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분리할 수 없습니다. 주님과의 우정은 형제와의 우정을 통해 표현되기 마련입니다. 성서와 교회의 모든 영적우정을 나눴던 분들은 김 추기경님과 정 주교님처럼 예외없이 형제들과의 우정에 앞서 주님과 깊은 우정을 나눴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오늘 말씀의 이해도 확연해 집니다.

 

제가 여기에서 새삼 추천 권고하고 싶은 것이 ‘내 삶의 성경의 렉시오 디비나’를 통한 깊은 성찰입니다. 오늘 독서는 스켐 전례 집회시 여호수아의 이스라엘 공동체 역사에 대한 렉시오 디비나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님과는 물론 서로간의 우정을 상기시킵니다.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곧장 이어 하느님이 주어主語가 되어 펼치신 이스라엘 공동체 역사에 대한 문장들의 강론입니다. 내가 주어가 아니라 주님이 주어가 되어 펼치신 내 삶 역사의 성경책을 렉시오 디비나 하자는 것입니다. 당시는 몰랐지만 후에 내 삶의 뒤안길을 돌아 보면 모두가 우연이 아니라 하느님 섭리의 발자취 선명한 살아있는 성경책으로서의 내 삶임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오늘 제1독서 여호수아는 독서에는 생략됐지만 스켐 전례 집회시 여호수아의 긴 강론 앞에는 여호수아의 유언遺言이 있고, 강론 후에는 여호수아의 죽음은 내일 독서에서 다음처럼 묘사되고 있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유종有終의 미美’인 죽음인지요!

 

‘이런 일들이 있은 뒤에 주님의 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죽었다. 그의 나이는 백열 살이었다.’(여호24,29)

 

예외없이 모두가 늙고 죽습니다. 그러니 마지막 유언도 염두에 두고, 날마다 죽음을 눈앞에 환히 두고, 날마다 내 미완의 성경책을 렉시오 디비나 하며 살아야 함을 봅니다. 제게는 유언대신 ‘하루하루 살았습니다’라는 좌우명 시가 있고, 선종후 장례미사때는 강론 대신 이 시를 읽어달라 할 것이며 제 무덤 앞에도 이 시비詩碑를 세워 달라 할 것입니다.

 

오늘 복음도 이런 관점에서 보면 답이 나옵니다. 오늘 복음의 주제는 ‘혼인과 이혼’ 그리고 혼인과 독신입니다. 세상에 부부관계보다 힘든 것은 없을 것입니다. 며칠 전 고백성사를 본 자매들의 고백내용도 남편이 ‘참 꼴도 보기 싫다’했는데 대부분 보편적 현상일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쩔 수 없이 타협하는 듯 하지만 예수님의 부부관계의 원칙은 다음 창세기 성서 말씀 그대로입니다.

 

“그러므로 남자와 여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될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하느님이 갈라 놓아서는 안된다.”

 

요즘 졸혼卒婚이라 말마디도 있고 빈번한 이혼으로 인한 가정공동체의 붕괴와 더불어 결손 아이들은 얼마나 많은지요! 요즘 군부대의 젊은 병사들의 많은 문제도 바로 여기서 기인한다 합니다. 여기서 필히 강조하고 싶은 바 십계명중 아홉 번째 “남의 아내를 탐내지 마라”는 말씀입니다. 부부일치의 신뢰와 사랑을 깨는 일체의 불륜不倫이 얼마나 큰 중죄인지 마음 깊이 새기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평생 이렇게 성서 말씀대로 살 수 있겠는지요. 내 삶의 성경책을 날마다 렉시오 디비나 하며 주님과의 우정과 더불어 부부와의 우정을 깊이하는 것, 하나뿐입니다. 남편은 가정 수도원의 원장, 아내는 부원장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연정戀情과 애정愛情의 부부애도 형제애의 우정友情으로 승화昇化시키는 것입니다. 재미난 예화도 생각납니다.

 

“십대 부부는 꿈속에서 살고

이십대 부부는 신나게 살고

삼십대 부부는 사랑하며 살고

사십대 부부는 싸우며 살고

오십대 부부는 미워하며 살고

육십대 부부는 불쌍해서 살고

칠십대 부부는 고마워서 산다“

 

지금은 늦은 나이의 만혼晩婚이 많아 적용하기가 곤란하지만 의미심장합니다. 부부애도 우정으로 익어가는 여정을 보여줍니다. 불쌍해서, 고마워서 사는 것은 우정의 성숙한 단계입니다. 혼인과 독신 중 셋째, ‘하늘 나라 때문에 스스로 고자가 된 이들도 있다. 받아 들일 수 있는 사람은 받아 들여라.’라는 대목도 우리 수도자들은 물론 주님 사랑 때문에 독신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깊은 묵상감입니다.

 

부부생활의 원리와 똑같습니다. 새삼 날마다 각자 삶의 성경 렉시오 디비나 역시 필수입니다. 말 그대로 하루하루 날마다 영원한 도반이자 주님이신 예수님과 사랑과 신뢰의 우정을 깊이하면서 보이는 도반인 이웃 형제들과의 우정을 깊이하는 것입니다. 하여 우리 독신의 수도공동체 형제들에게 주님과 형제들과의 우정을 위해 공동전례기도와 공동식사는 필수입니다. 그리하여 성당聖堂과 식당食堂은 수도공동체의 가시적 두 중심이 됩니다. 

 

요즘 10가구중 6가구가 1-2인 가족이라 합니다. 이처럼 공동생활의 결여가 심각할수록 교회공동체의 역할이, 교회공동체 형제자매들과의 연대와 우정, 환대의 영성이 얼마나 절대적인지 깨닫게 됩니다. 새삼 계속되는 코로나 사태에 직면하여 세상 광야에서 은수자처럼 외롭고 고독하게 살아가는 이들의 영적건강을 위해 교회공동체와의 연대와 연결은 생존에 필수 조건임을 깨닫게 됩니다.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주님과는 물론 이웃 형제들과의 우정을 날로 깊이하여 주십니다.

 

“주님 좋으시다, 영원하신 그 사랑,

 당신의 진실하심, 세세에 미치리라.“(시편100,5). 아멘.

 


Articles

44 45 46 47 48 49 50 51 52 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