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8.20.성 베르나르도 아빠스 학자(1090-1153) 기념일
룻기1,1.3-6.14ㄴ-16,22 마태22,34-40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
-사랑해서 사람이다-
“천상의 보석이신 베르나르도, 당신께 찬미노래 드리옵니다.
구원의 큰기쁨과 넘치는 은총, 그모두 우리에게 부어주소서.
당신은 주님향한 사랑으로써, 깊고도 깊은상처 입으심으로,
주님은 당신에게 정배인교회, 그방패 기둥등불 되게하셨네.”
오늘 성 베르나르도 축일, 성무일도시 계속 이어지는 아름다운 찬미가가 성인의 거룩한 삶과 풍요로운 영성을 요약합니다. 단테의 신곡중 천국편에 등장하는 성인입니다. 오늘은 우리 가톨릭 교회의 참 자랑스런 성인인 베르나르도 아빠스 학자 기념일입니다. 만 63세! 한평생 한결같이 참 치열한 사랑의 삶을 삶을 사셨던, 스콜라 학파 이전 신학자로 마지막 교부라 불리는 다방면에 능통했던 불가사의의 성인입니다. 그 다사다망했던 삶과 병약한 상태중에도 아빠스 재임중 2/3의 사목여행에 왕성한 저술가로도 유명했습니다.
성인이 남긴 영성 고전은 지금도 여전히 많은 수도자들에게 읽히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저술과 설교에서 성서를 광범위하게 인용하면서 그 이유를 “말씀을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이 박아주기 위함”이라고 말합니다. 22세에 4명의 형제들과 30명의 친척, 친구들과 시토회에 입회한 성인은 이어 클레르보(뜻;빛나는 계곡) 수도원의 아빠스가 되었고, 38년 아빠스로 재임중 유럽 전역에 300개의 수도원을 세웠고 그중 65개 수도원은 성인의 책임하에 있었다 합니다.
수많은 영성 저술로 “꿀처럼 단 박사(Doctor Melliflus)”칭호를 얻었던 성인은 늘 “너는 무엇 때문에 여기 있느냐(Ad quid venisti)”고 자문하며 스스로를 격려하며 깨어 있는 삶을 살았다 합니다. 바로 이 질문은 우리가 언제나 물어야 할 것입니다. 제2차 십자군 전쟁의 실패로 마음 아파하던 성인은 1153년 8월20일 오늘 선종하셨고, 1170년 사후 17년 만에 교황 알렉산데로 3세에 의해 시성되었으며, 1830년 교황 비오 8세에 의해 교회학자로 선포됩니다. 오늘 미사중 본기도가 성인의 삶을 요약합니다.
“하느님, 복된 베르나르도 아빠스가 하느님 집을 향한 열정으로 타올라, 교회에 빛을 비추게 하셨으니, 그의 전구를 들으시고, 저희도 불타는 열정으로 언제나 빛의 자녀답게 살게 하소서.”
성인을 닮아 빛의 자녀답게 성인이 되어 살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기념, 기억하라고만 있는 성인이 아니라 믿는 우리 모두가 보고 배워 성인이 되라 선물로 주어진 성인들입니다. 우리의 유일한 삶의 목표 하나가 바로 본연의 참나의 성인이 되는 것입니다. ‘빛나는 계곡’이란 클레르보 수도원의 이름 뜻대로 불암산 계곡에 자리한 요셉수도원도 사랑으로 ‘빛나는 계곡’의 수도원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랑으로 빛납니다. 사랑할수록 순수하고 아름답습니다. 성덕의 잣대는 열렬하고 항구한 사랑입니다. 사랑이 많아 성인이요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록 자존감 높고 정체성 또렷한 참 나의 성인이 됩니다. 무지와 허무에 대한 궁극의 답도, 삶의 궁극의 의미도 사랑뿐입니다. 바로 가톨릭 교회의 살아 있는 보물들같은 무수한 성인들도 끊임없는 전구를 통해 우리 모두 성인이 되라고 격려합니다.
‘사랑’의 ‘삶’을 살아서 ‘사람’입니다. 사람의 본질은 사랑입니다. 그러니 사랑은 만병통치약이요 만병의 근원은 사랑 결핍에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사랑의 학교’에 재학중인 평생학인이요, 아무리 공부해도 사랑에는 영원한 초보자일뿐이겠습니다. 1코린 13장을 참조한 ‘사랑의 송가’(46장) 성가가 생각납니다. 코로나로 인해 미사중 성가를 못 부른지도 2년째가 됩니다.
-“천사의 말을 하는 사람도 사랑 없으면 소용이 없고
심오한 진리 깨달은 자도 울리는 징과 같네
하느님 말씀 전한다 해도 그 무슨 소용있나
사랑이 없이는 소용이 없고 아무것도 아닙니다.”-
정말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무지와 허무의 늪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습니다. 무지와 허무의 어둠을 환히 밝히는 사랑의 빛, 하느님의 빛, 말씀의 빛입니다. 이런 사랑은 이기적 감정적 사랑이 아니라 무사한 사랑, 이탈의 사랑, 생명을 주는 사랑, 자유롭게 하는 아가페 사랑입니다. 예수님이 오늘 복음에서 구약을 근거로 이 사랑에 대해 명쾌하게 정리해 주십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신명6,5).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레위19,18) 는 것이다.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
한자로 하면 경천애인敬天愛人, 사랑의 이중계명입니다. 613개 율법 조항의 요약이자 성경 전체의 요약입니다. 사랑의 우선순위를 구별할 수 있을 지언정 분리할 수 없는 사랑의 이중계명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면서 이웃을 미워할 수 없고, 이웃을 사랑하면서 하느님을 미워할 수는 없습니다. 이웃사랑에 사람뿐만 아니라 피조물인 자연 사랑도 덧붙여야 할 절박한 시대입니다. 기후재난으로 인해 하나뿐이 공동의 집인 지구와 더불어 인류의 생존이 위태한 지경에 이르렀기에 참으로 구체적 생태적 회개의 실천이 참으로 절실한 작금의 현실입니다.
평생 공부가 성인이 되는 공부인 사랑 공부입니다. 하루하루 날마다 늘 새롭게 시작하는 사랑의 수행입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며 모든 수행을 통해서 표현되어야 하는 하느님께 대한 사랑입니다. 사랑할수록 마음의 순수요 자유롭습니다. 그리고 이웃을 내 자신처럼 사랑하는 분투의 노력입니다.
날마다 새롭게 노력하는 분투의 주님의 ‘사랑의 전사’로서 사는 것입니다. 바로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빛나는 모범이 나오미의 이방인 며느리 룻이며, 예수님 족보에도 다말과 라합, 바세바와 나란히 등장합니다. 정말 신의 한 수 같은 룻의 모습이 감동적입니다. 바로 다음 룻의 아름다운 고백이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일치의 절정을 보여줍니다.
“어머님을 두고 돌아가라고 저를 다그치지 마십시오. 어머님 머무시는 곳에 저도 머물렵니다. 어머님의 겨레가 제 겨레요. 어머님의 하느님이 제 하느님이십니다.”
룻의 이웃 사랑을 통해 찬연히 빛나는 하느님 사랑입니다. 말그대로 하느님의 성사요, 하늘 나라 꿈의 실현입니다. 더불어 생각나는 얼마전 수도원을 방문했던, 20년 이상 일상의 삶에 충실하면서 하루 3시간 이상 개인기도를 바치는 제 종부宗婦입니다. 70대 할머니 나이에 시부모 댁에 들어가 8년을 90대 노老 시부모를 모신 룻 이상의 며느리였습니다. 8년간 구박하는 90대 시어머니의 대소변을 받아내고 목욕을 시켜드리며 온갖 사랑의 정성을 다한 며느리 였고, 마지막으로 “고맙다!”란 임종어를 남기고 97세로 선종한 시어머니요 저에게 큰 댁 큰 형수님이 되시는 분입니다.
눈 만 열리면 곳곳에서 이런 경천애인의 모범이 되는 살아있는 성인들을 발견합니다. 저에게는 함께 살아가는 수도형제들이 때로 이런 성인들처럼 생각될 때가 많습니다. 어제 수도원 본관에서 예초작업을 하던 원장 수사를 사진에 담았고 사진과 더불어 보낸 메시지입니다. 이런 육체 노동 또한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표현입니다.
“멋집니다! 주님의 전사! 예초 작업후의 싱그러운 풀내음!
수도승의 순수한 마음의 향기!”
모두가 성인이 되라 불림 받은 신의 한 수와 같은 귀한 존재들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에게 성덕을 더해 주시어 성인이 되어 살게 하십니다.
“행복하여라, 하느님을 구원자로 모시고, 주 하느님께 희망을 두는 이!”(시편146,5).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