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8.23.연중 제21주간 월요일 1테살1,1-5.8ㄴ-10 마태23,13-22
파스카의 꽃
-그리스도 예수님 중심의 삶-
오늘 강론 제목은 '파스카의 꽃-그리스도 예수님 중심의 삶-' 입니다. 수도생활 초창기부터 강론시 참 많이 사용했던 제목이 '삶의 중심'입니다. 삶의 중심을 잊었을 때, 잃었을 때 삶은 복잡 혼란해 지고 방황이 뒤따릅니다. 삶의 중심인 그리스도 예수님야 말로 인간 무지와 허무에 대한 궁극의 답임을 깨닫습니다. 삶의 중심인 그리스도께서 무지의 어둠을 밝히고 허무주의의 늪에서 우리를 구원합니다.
아주 예전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피정집 ‘자캐오의 집’에서 단체피정자들을 위한 미사때 제의방에서 입당전 인사하려 할 때 예수님의 십자가 고상이 없어 순간 당황했던 기억입니다. 방이나 성당에 걸려 있는 예수님의 십자가는 그대로 삶의 중심을 상징적으로 보여 줍니다.
엊그제 자비의 집 본관의 휴게실에서 조각가 형제가 선물한 예수님의 십자가 축복식 장면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투박하고 단단한 대추나무 자연목 십자가에 부활하신 예수님 십자가가 참 잘 어울렸습니다. 이전의 이콘 십자가보다 중량감있게 자연스럽게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새삼 삶의 중심은 그리스도 예수님이심을 확인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마침 어제 나눴던 ‘파스카의 꽃’이란 시를 다시 나누고 싶습니다. 참으로 그리스도 예수님 중심의 삶을 살 때 저절로 ‘파스카의 꽃’같은 삶이요, 믿는 이들 누구나의 간절한 소망일 것입니다.
-“사람은
꽃이다
살아 있는
죽는 그날까지
하루하루
날마다 새롭게 폈다지는
꽃이다
주님 파스카의 꽃이다”-
그리스도 예수님을 삶의 중심으로 모시고 살아갈 때 늘 새롭게 폈다지는, 새롭게 시작하는 새하늘과 새땅의 은퇴가 없는 영원한 현역의 파스카의 꽃같은 아름다운 삶입니다. 새벽 교황님의 홈페이지를 여는 순간 어제 삼종기도후 알현시 교황님의 짧은 강론 주제가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강생의 육화는 우리에게 타인들 안에 계신 예수님을 인정할 것을 요구한다.”
사람이 되신 그리스도 예수님은 모든 형제들 하나하나 안에 현존하신다는 것이며 이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하나의 형제가 예수님의 현존이니 그대로 존엄한 품위의 인간임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 말씀도 우리에게 그리스도 중심의 삶을 확고히 해 줍니다.
오늘 마태복음 23장에서 예수님은 율사들과 바리사이들에게 일곱 차례 불행을 선언하시며 오늘은 세차례 불행이 선언되고 있습니다. 산상설교중 행복선언과는 너무 대조적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의 지탄을 받는 율사와 바리사이는 별종의 인간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님 중심의 삶에서 벗어날 때 우리 모두의 가능성입니다. 사실 복음 사가가 의도하는 바는 교회내의 이런 율사와 바리사이들 같은 교회 지도자들의 회개를 촉구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는 사람들 앞에서 하늘 나라의 문을 잠가 버리고, 자기들도 들어가지 않을 뿐만 아니라, 들어가려는 이들마저 들어가게 놓아두지 않는다.”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는 개종자 한 사람이라도 생기면, 너희보다 갑절이나 못된 지옥의 자식으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불행하여라, 너희 눈먼 인도자들아!
눈먼 자들아! 무엇이 더 중요하냐? 예물이냐, 아니면 예물을 거룩하게 하는 제단이냐?”-
“불행하여라”, 저주의 선언이 아니라 주님의 아픔이 배어 있는 회개를 촉구하는 선언으로 읽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 중심의 삶을 떠날 때 무지에 눈멀어 왜곡된 심성에 분별력의 상실이 뒤따릅니다. 진실과 겸손의 자리에는 위선과 교만이 자리잡게 되고 사람은 소리없이 내적으로 무너지고 망가지게 됩니다.
정말 심각한 것은 자기도 모르는 무지의 병입니다. 모르는 무지의 사람은 알려 줘도 모릅니다. 그리하여 가장 쉬운 것이 남판단하는 것이며 가장 힘든 일이 자기를 아는 일이라 합니다. 참으로 자기를 아는 것이 겸손이요 지혜임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 복음의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들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제1독서의 그리스도 예수님 중심의 삶의 모범인 바오로 사도와 테살로니카 교회의 신도들입니다. 테살로니카 1서의 아름다운 서두 인사말을 통해 사도는 신도들에게 그리스도 중심의 삶을 새롭게 각인시킵니다.
“하느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는 테살로니카 교회에 인사합니다.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내리기를 빕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에 여러분을 모두 기억하며 늘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스도 중심의 삶을 살 때 저절로 은총과 평화의 삶이요 겸손과 감사의 삶임을 깨닫게 됩니다. 더불어 신망애信望愛의 풍요한 삶임을 다음 아름다운 대목이 입증합니다. 믿는 이들 공동체의 소망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하느님 앞에서 여러분의 믿음의 행위와 사랑의 노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희망의 인내를 기억합니다.”
참으로 그리스도 예수님 중심의 삶에 충실할 때 ‘믿음의 행위’, ‘사랑의 노고’, ‘희망의 인내’, 즉 신망애의 아름답고 품위있는 삶이겠습니다. 은총과 평화, 감사와 겸손, 신망애의 삶에 기쁨의 삶이 추가됩니다.
“여러분은 큰 환난 속에서도 성령께서 주시는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들여, 우리와 주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가 아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와 평화와 기쁨의 삶은 그리스도 중심의 삶의 은총이자 모든 성인들의 공통적 특징이기도 합니다. 이런 그리스도 중심의 삶에 필히 전제되는 바 끊임없는 회개임을 테살로니카 교우들이 가르쳐 줍니다. 이어 소개되는 회개의 3단계입니다.
-‘1.우상들을 버리고 하느님께 돌아옴, 2.살아 계신 하느님을 섬김, 3.오실 예수님을 기다림’-
여전히 오늘 우리에게도 유효한 3단계 회개의 원리요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그대로 실현됩니다. 참으로 세상 우상들을 버리고 주님께 돌아와 기다리던 주님을 환대하며 섬기는 이 거룩한 미사시간입니다. 무엇보다 날마다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그리스도 예수님 중심의 삶’과 더불어 ‘주님과의 우정’을 날로 깊이해 주십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