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서 보시오.” -늘 새로운 주님과의 만남, 형제들과의 만남-2021.8.24.화요일 성 바르톨로메오 사도 축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Aug 24,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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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8.24.화요일 성 바르톨로메오 사도 축일                                            묵시21,9ㄴ-14 요한1,45-51

 

 

 

“와서 보시오.”

-늘 새로운 주님과의 만남, 형제들과의 만남-

 

 

 

"의인에게는 빛이 솟아 오르고, 

 마음 바른 이에게는 기쁨이 솟나이다."(시편97,11)

 

새벽에야 어제 받은 친필 편지를 개봉했습니다. 이렇게 친필 편지를 받기는 올해 들어 처음입니다. 반가운 자매님을, 주님을 새롭게 만나는 감동이었습니다. 소박한 글씨체에 내용도 참 짧고 아름답고 담백했습니다. 당분간 게시판에 붙여 놓고 감상하려 합니다.

 

-“찬미 예수님.

신부님의 강론집을 읽으니

마음이 맑아지는 느낌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언제 어느때 오셔도

신부님은 “예”하고 준비되어 있는 것 같아요.

하나의 망설임 없이---

신부님, 저를 위해서도 기도해 주셔요.

고맙습니다.-

         (예수의 병란 젬마 작은 자매 올림. 2021.8.17.)

 

꼭 그렇게 됐으면 소원이겠습니다. 편지를 통해 자매님을, 주님을 새롭게 만나는 감동이었습니다. 어제는 병원에 다녀오다가 내내 망설이던 중, 며칠전 선종하신 다섯째 댁 '그리스도' 사촌 큰형님이 계신 장례식장에 조문을 다녀왔습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조심스럽고 상황이 불편하여 주저했습니다만 마음이 편치 않아 즉시 결행했습니다. 사촌이 너무 많고 곳곳에 흩어져 살기에 아마 아주 오래 전 평생 한 번 만났을 사촌 형님이요, 마지막 형님을 만나는 마음으로 조문했습니다.

 

새삼 같은 형제들과 매일 만나는 수도공동생활이 얼마나 특별한 주님의 배려인지 깨닫게 됩니다. 문제는 어떻게 언제나 ‘늘 새로운 만남’이 되게 하느냐에 있습니다. 아주 오래 전 써놨던 시도 생각납니다. 매해 거기 그 자리에 어김없이 폈다지는 야생화 꽃들을 보며 쓴 시입니다.

 

-“꽃같은 만남보다

더 좋은 만남이 있으랴

꼬박 일년 기다려 피어난 꽃들이다

꼭 일 년만의 만남이구나

메꽃, 달맞이꽃, 달개비꽃---

모든 꽃이 그렇다

꽃같은 반가운 만남이 되려면

일 년은 기다려야 하는구나!”-2001.8

 

그러고 보니 성인들과의 만남이 그러합니다. 오늘 8월24일은 성 바르톨로메오 사도 축일입니다. 바로 오늘 복음에서 필립보에 의해 주님께 인도된 나타나엘과 동일 인물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아르메니아에서 순교했고 성 유대 다태오와 함께 아르메니아 교회의 수호성인으로 공경받고 있는 사도입니다. 전승에 의하면 성령강림후 동쪽으로 메소포타미아, 이란을 거쳐 인도까지 복음을 전했다 합니다. 

 

열두 사도중 필립보와 늘 함께 언급되는 사도가 바르톨로메오입니다. 일년 만에 오늘 미사전례를 통해 바로톨로메오 사도를 만나는 우리들입니다. 오늘 복음의 주인공 나타나엘과 주님과의 만남이 늘 새로운 영감을 줍니다. 나타나엘의 이름 뜻은 ‘하느님의 선물’이라하니 우리 또한 하느님의 선물인 나타나엘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나타나엘을 주님께 인도하는 필립보 또한 우연이 아닌 하느님께서 안배하신 섭리의 인물임을 깨닫습니다. 우리의 성소 역시 우연이 아닌 하느님 섭리의 배려로 오늘 지금 여기 이 자리에 와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대화 모두가 상징적 의미가 참 깊습니다. 나타나엘은 필립보의 영적 도반이었던 듯 싶습니다. 

 

-“우리는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고 예언자들도 기록한 분을 만났소. 나자렛 출신으로 요셉의 아들 예수라는 분이시오.”

 

분명 신선한 충격적 만남이었던 듯 싶습니다. 이런 주님과의 아름다운 만남을 나누고 싶음은 누구나의 영적 본능입니다. 필립보의 소개에도 불구하고 나타나엘은 여전히 편견의 무지에 눈이 가린 모습이요 이 또한 우리의 보편적 모습입니다.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

 

나자렛 이웃 마을 갈릴래아 카나 출신 나타나엘이기에 당연한 대답일 것입니다. 이어지는 필립보의 널리 회자되는 말마디입니다.

 

“와서 보시오.”

 

백문이 불여일견입니다. 보고 배우는 효과 이상인 것은 없습니다. 눈으로 보고 배우며 살고자 참 스승을 찾았던 무수한 구도자들입니다. 우리 역시 주님의 “와서 보시오.”라는 주님의 무언의 침묵의 초대에 응답하여 미사에 참석하고 있습니다.

 

만남중의 만남이 주님과의 만남입니다. 주님을 참으로 만날 때 정화와 성화요, 위로와 치유요, 기쁨과 평화라는 구원의 선물입니다. 그대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입니다. 이런 살아 계신 주님과의 새롭고 놀라운 기쁨과 축복의 만남이 없다면 이 삭막한 광야인생 얼마나 고단하고 고달프겠는지요. 주님을 만나지 못해 세상 것들에 중독이 되어 자기를 잃고 괴물이 되고 폐인이 되어 사는 이들도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연한 만남은 없습니다. 간절히, 항구히 주님을 찾을 때 주님을 만납니다. 필시 나타나엘은 끊임없이 내적으로 주님과의 만남을 갈망하며 공부했을 것입니다. 주님과 나타나엘의 만남은 늘 새로운 감동입니다.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

 

세상에 이보다 더 좋은 찬사도 없을 것입니다. 바로 주님을 통해 참 나를 만난 나타나엘입니다. 주님과의 만남이 참 나를 발견하는 구원임을 깨닫습니다. 거짓이 없는 진실과 순수의 참 이스라엘 사람인 나타나엘은 바로 우리 수도자는 물론 신자들의 롤모델입니다. 

 

이미 전부터 한결같은 진리의 수행자 나타나엘을 눈여겨 보신 주님이심이 분명합니다. 누구보다 우리를 잘 아시는 주님이십니다. 전광석화, 편견의 무지에 눈이 가렸던 나타나엘은 마음의 눈이 활짝 열려 예수님의 정체를 알아보니 이 또한 주님의 은총입니다.

 

“스승님,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십니다.”

 

말그대로 참사람과 참사람, 마음과 마음의 만남입니다. 예수님을 만날 때 내가 누구인지 압니다. 예수님을 알아가면서 참 나를 알아가니 예수님 탐구와 참나의 탐구는 함께 갑니다. 그러니 주님과의 만남은 한 두 번의 만남이 아니라 평생 만남의 여정임을 깨닫습니다. 

 

주님과 늘 새롭게 만나야 형제들과도 늘 새롭게 만날 수 있습니다. 이래야 웅덩이에 고인 썩은 물의 안주가 아닌 끊임없이 맑게 흐르는 내적 여정의 정주생활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매일 바치는 공동전례의 궁극 목적도 주님은 물론 형제들과의 새로운 살아 있는 만남에 있음을 봅니다. 

 

영성생활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부익부 빈익빈의 진리입니다. 주님은 한결같은 진리의 탐구자 나타나엘에게 놀라운 축복을 약속하십니다. 다음 말씀은 역시 나타나엘뿐 아니라 항구히 주님을 찾는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축복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볼 것이다.”

 

바로 예수님 자신이 우리 모두의 유일한 하늘문이자 하늘길이요 하늘에 이르는 사다리라는 고백입니다.  바로 이런 살아 계신 주님을 만나는 이 거룩한 미사시간입니다. 아마 세상 어디에도 이런 전례은총을 능가할 수 있는 것은 없을 것입니다. 문제는 내 안에 있고 답도 내안에 있습니다. 참으로 답은 하늘문이자 하늘길이신 주님을 향한 끊임없는 자아초월自我超越, 즉 역설적으로 ‘내려감으로 올라가는’ 겸손에 있음을 깨닫습니다.

 

제1독서 요한 묵시록 역시 주님과 요한의 살아 있는 만남을 보여줍니다. 주님과 살아 있는 만남을 통해 영의 눈이 활짝 열려 하늘로부터 하느님에게서 내려 오는, 하느님의 영광으로 빛나는 거룩한 도성, 새 예루살렘을 체험하는 사도 요한입니다. 천상 예루살렘을 향해 순례 여정중에 있는 우리 교회의 심오한 비밀을 보여줍니다. 

 

바로 주님의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새 예루살렘을 앞당겨 살게 합니다. 하루하루 날마다 주님과의 만남, 형제들과의 만남을 통해 주님과의 우정, 형제들과의 우정을 날로 새롭게, 깊게 해주시는 성체성사의 주님이십니다.

 

"의인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거룩하신 그 이름을 찬양들 하라."(시편97,12).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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