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좋으시고 아름다운 주님 -“에파타! 열려라!”-2021.9.5.연중 제23주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Sep 05, 2021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2021.9.5.연중 제23주일                                                       이사35,4-7ㄴ 야고2,1-5 마르7,31-37

 

 

 

참 좋으시고 아름다운 주님

-“에파타! 열려라!”-

 

 

 

어제 3시경의 성경소구와 응송 및 본기도가 참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좋으신 하느님을 닮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의 모든 근원적 불행은 하느님 망각忘却에서 기인합니다. 평생 화두로 삼아 끊임없이 찾고 배우고 닮아야 할 하느님입니다. 사막교부들도 하느님이 계신 곳을 찾지 말고 하느님을 찾으라 했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만물보다 더 교활하여 치유될 가망이 없으니 누가 그 마음을 알리오? 내가 바로 마음을 살피고 속을 떠보는 주님이다. 나는 사람마다 제 길에 따라, 제 행실의 결과에 따라 갚는다.”(예레17,9-10)

 

“주님, 제 모르는 잘못에서 저를 깨끗이 해 주시고, 교만에서 이 종을 지켜 주소서,”

 

“영원한 사랑에 불타는 빛이신 주님, 저희도 당신 사랑으로 불타게 하시어, 모든 것 위에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을 위하여 같은 사랑으로 형제들을 사랑하게 하소서.”-

 

사람이 물음이라면 하느님은 답입니다. 사람이 어둠이라면 하느님은 빛입니다. 사람이 병病이라면 하느님은 약藥입니다. 그래서 말씀과 성체聖體는 영혼의 약藥이 됩니다. 하느님을 모르면 아무리 물어도 사람이 누구인지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하느님이 계시기에 회개와 겸손이요 참 사람입니다. 하느님 모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이기에 참 나를 알기 위해서 믿는 이들에게 평생 하느님 닮기 공부는 필수입니다. 하느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어떻게 하느님을 배워 닮아갈 수 있을까요?

 

첫째. “힘내라!”

‘힘내라!’ 부단히 격려 하시는 하느님입니다. 어제 어느 자매님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했습니다. 동료 교사가 있는데 늘 ‘힘들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는 것입니다. 자매님은 가능한 한 힘들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합니다. 사실 힘들기로 하면 요즘 사람들 나름대로 다 힘듭니다. 저 또한 가능한 ‘힘들다’ ‘어렵다’라는 말은 거의 하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자신은 물론 타인에게도 이런 부정적 말마디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긍정적인 자세로 긍정적인 말마디를 사용하며 심기일전 힘을 내어 다시 시작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이사야를 통해 우리를 격려하십니다.

 

“마음이 불안한 이들에게 말하여라. ‘굳세어져라, 두려워하지 마라. 보라. 너희의 하느님을! 그분께서 오시어 너희를 구원하신다.”

 

하느님을 찾는 사람만 아니라 반대로 사람을 찾는 하느님입니다. 우리를 찾아 오시는 하느님입니다. '임마누엘' 늘 우리와 함께 계신 하느님입니다. 성 아우구스 티노의 언급도 생각납니다.

 

“하느님은 모든 순례자를 처음 불러내 침묵 속에서 샘솟는 기쁨으로 이끈다.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것이 하느님께 있다면, 우리는 왜 우리와 함께 집에 계신 하느님을 찾아 이리저리 헤매는가?”

 

가까이 계신 하느님을 집에 놔두고 외출하여 밖에서 하느님을 찾는 어리석은 사람들이라 질타한 마이스터 엑카르트 신비가의 말도 생각납니다. 하느님의 세 특징중 하나가 ‘임재(closeness)’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니 늘 가까이 함께 계시며 우리를 위로하시고 격려하시는 하느님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공평하라!”

더 구체적으로 말해 “차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모두에게 공평무사한 하느님을 닮으라는 것입니다. 구별이나 분별은 때로 필요하지만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사람 차별은 단호히 반대해야 합니다. 얼마나 마음 다치게 하는 차별, 무시, 편애의 죄인지요! 참으로 마음 아프게 하는 평생 가는 상처가 차별과 무시일 것입니다.

 

거창한 사랑이 아니라 차별하지 않는 사랑, 편애하지 않는 사랑으로 충분합니다. 의인이나 죄인이나, 선인이나 악인이나 똑같이 햇빛과 비를 내려 주시는 대자대비, 공평무사한 하느님을 닮으라는 것입니다. 사랑은 못해도 인간에 대한 기본적 존중과 연민의 마음을 지니자는 것입니다. 야고보 사도의 충고는 직설적이며 구체적입니다.

 

“나의 형제 여러분, 영광스러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 사람을 차별해서는 안됩니다. 여러분이 화려한 옷을 걸친 사람을 쳐다보고서는 ‘선생님은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십시오.’하고, 가난한 사람에게는 ‘당신은 저기 서 있으시오.’하거나 ‘내 발판 밑에 앉으시오.’한다면, 여러분은 차별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느님께서 각별히 사랑하는 이들이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참으로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차별함이 없이 모두를 특히 가난한 이들을 더 배려합니다. 이어지는 사도의 말씀이 깊이 마음에 와닿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들으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세상의 가난한 사람들을 골라 믿음의 부자가 되게 하시고,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약속하신 나라의 상속자가 되게 하지 않습니까?”

 

친히 가난한 이들의 든든한 배경이 되시는 하느님이시니 이런 하느님을 믿는 가난한 이들은 진짜 부자인 믿음 부자로 살 수 있습니다. 그러니 대자대비 하신 연민의 하느님을 배우는 것입니다. ‘연민(compassion)’은 하느님의 두 번째 특징에 속합니다.

 

셋째, “열려라!”

대부분 심신의 병은 불통의 닫힘에서 시작됩니다. 몸의 이치도 똑같습니다. 소화기, 순환기, 호흡기 모두 불통으로 닫힐 때 문제의 병이 생깁니다. 열려야 개방해야 삽니다. 영육의 건강입니다. 마음이, 입이, 귀가, 눈이, 닫혀 무지로 인한 병입니다. 사랑은 열림의 개방입니다. 우리의 끊임없는 간절한 기도를 통해 우리를 부단히 열어 주시고 치유해 주시는 친절하고 온유한 하느님이십니다. ‘온유(tenderness)’는 역시 하느님의 세 특징중 하나에 속합니다. 

 

바로 오늘 복음의 귀먹고 말 더듬는 이는 우리 모든 인간을 상징합니다. 깊이 들여다 보면 정도의 차이일뿐 누구나 불안과 두려움에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영적 귀머거리, 입은 있어도 말 못하는 영적 자폐아가 대부분일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귀먹고 말더듬는 이는 예수님을 만나 완전 치유 구원되어 온전해 집니다. 그대로 이사야 예언의 실현입니다. 

 

“그때에 눈먼 이들은 눈이 열리고, 귀먹은 이들은 귀가 열리리라. 그때에 다리저는 이는 사슴처럼 뛰고, 말못하는 이의 혀는 환성을 터뜨리리라. 광야에서는 물이 터져 나오고, 사막에서는 냇물이 흐르리라. 뜨겁게 타오르는 땅은 늪이 되고 바싹 마른 땅은 샘터가 되리라.”

 

그때는 바로 이때의 지금입니다. 지금 하느님을 만날 때 이런 놀라운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언제 어디에나 계신 똑같은 하느님입니다. 이런 하느님을 지금 만나야 합니다. 

 

바로 이런 하느님을 그대로 닮은 예수님을 통해 귀가 열리고 입이 열린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장애인 치유과정을 통해 하느님의 세특성, 임재(closeness), 연민(compassion), 온유(tenderness)’가 그대로 들어납니다. 

 

‘그러고 나서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내쉬신 다음, 그에게 “에파타!” 곧 “열려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곧바로 그의 귀가 열리고 묶인 혀가 풀려서 말을 제대로 하게 되었다.”

 

시공을 초월하여 우리 모두 예수님의 치유과정을 보고 놀란 군중들의 말에 저절로 호응 공감하는 마음이 됩니다.

 

“예수님이 하신 일은 모두 훌륭하다. 귀먹은 이들은 듣게 하시고, 말못하는 이들은 말하게 하시는 구나.”

 

그대로 주님을 만나는 이 은혜로운 미사은총을 상징합니다. 아람어 “에파타!”, ‘열려라!’는 말마디와 더불어 아람어 “탈리타 쿰!” ‘소녀야, 일어나라!’(마르5,41)는 말마디도 생각납니다. 답답할 때 에파타와 더불어 탈리타 쿰 하며 일어나 마음의 귀를 열고 다시 새롭게 시작하기 바랍니다. 

 

참 좋으시고 아름다운 주님이십니다. 임재와 온유와 연민의 주님이십니다. 한마디로 사랑의 주님이십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마음의 귀를, 마음의 눈을, 마음의 입을 열어 주시어 온전한 삶을 살게 하십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기도로 강론을 마칩니다.

 

“저희가 하느님을 닮아 임재, 온유, 연민의 사람이 되게 하시고, 결코 주변 어디도 아닌 언제나 사람들을 섬기는 자리에 있게 하소서.” 아멘.

 

 


Articles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