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중심인 예수님의 십자가 -성 십자가 예찬-2021.9.14.화요일 성 십자가 현양 축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Sep 14,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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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9.14.화요일 성 십자가 현양 축일                                                   민수21,4ㄴ-9 요한3,13-17

 

 

 

삶의 중심인 예수님의 십자가

-성 십자가 예찬-

 

 

 

“주여, 우리는 당신의 십자가를 경배하며,

당신의 거룩한 부활을 찬미하고 현양하나이다.

나무로 말미암아 온 세상에 기쁨이 왔나이다."(즈카리아 노래 후렴)

 

"하느님의 업적을 잊지 마라."

오늘 화답송 후렴은 바로 하느님의 위대한 업적인 예수님의 십자가를 잊지 마라는 것입니다. 아침성무일도 독서시 십자가의 사도 바오로의 고백도 새삼스런 감동이었습니다.

 

"나에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밖에는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빅히심으로써 세상은 나에 대해서 죽었고, 나는 세상에 대해서 죽었습니다."(갈라6,14). 새삼 우리가 자랑할 분은, 사랑할 분은 오직 십자가의 예수님뿐임을 깨닫습니다.

 

오늘 9월14일은 ‘성 십자가 현양 축일’이고, 내일 9월15일은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입니다. 9월 순교자 성월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는 두분의 축일이 우리의 믿음을 새롭게 합니다. 오늘 성 십자가 현양 축일은 전 세계의 가톨릭 교회는 물론 동방정교회, 성공회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의 죄를 속죄하시려고 지신 십자가를 묵상하여 우러러 경축하는 날입니다.

 

오늘 축일은 4세기 경부터 예루살렘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니 무려 1700년 역사를 지닌 참 자랑스런 축일임을 깨닫게 됩니다. 전승에 의하면 335년 9월13일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예수님의 무덤 위에 기념 성당을 지어 봉헌하였고, 그 다음 날인 14일 바로 오늘 그의 모친 헬레나 성녀가 발견한 것으로 전해지는 ‘성 십자가’를 무덤 성당 안에 걸어 놓고 신자들에게 경배하도록 한데서 오늘 축일이 유래되었다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무덤 안에 계시지 않고 부활하여 하늘에 오르셨기에 무덤 성당은 부활 성당이 됩니다. 후에 페르시아의 침입으로 성 십자가는 약탈당하게 되며, 628년 동로마제국의 황제 헤라클리우스가 이를 다시 찾아와 본래의 자리에 안치한 것을 기념하는 의미도 추가됩니다. 그후 교황 세르지우스 1세(687-701)에 이르러 이 축일은 교회 전체가 기념하는 축일로 자리 잡게 됩니다. 

 

모든 종교가 그 종교를 대표하는 상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아마 가톨릭 교회의 십자가보다 더 좋은 상징은 없을 것입니다. 특히 십자성호를 그으며 삼위일체 하느님을 고백하는 성호경 보다 더 짧고 본질적인 기도는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입니다. 십자성호를 그으며 전존재에 주님을 각인하며 삶의 목표와 방향, 삶의 중심과 의미를 새롭게 확인하는 우리들입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미사시 맨먼저 삼위일체 하느님을 고백하며 바치는 성호경은 가톨릭 기도서 맨처음에 나옵니다. 지난 주일에 인용했던 이미 타계한 유명한 사회운동가 무위당 장일순 요한 선생이 실제 고백했던 일화도 생각납니다. 그가 6.25 사변시 국군에 사로잡혀 인민군으로 오인되어 총살 직전에 조용히 눈감고 마지막으로 성호경을 긋자 즉시 총살이 중지되고 구사일생 살아났다는 일화입니다. 바로 사형집행을 명령했던 국군장교는 천주교 신자였고, 십자 성호를 그으며 기도하는 그가 공산주의자가 아님을 순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성호경의 십자가 기도가 그를 살린 기적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 삶의 중심이자 영원한 회개의 표지, 희망의 표지, 구원의 표지가 됩니다. 그래서 성당이나 방마다 벽 중앙에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달려 있는 십자가입니다. 이렇게 눈으로 바라볼 삶의 중심인 십자가가 없다면 삶은 얼마나 공허하고 허전할까요. 예수님의 십자가가 아닌 그 무엇을 삶의 중심 자리에 놓을 수 있을런지요. 새삼 믿는 우리들에게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상징하는 십자가는 삶의 무지와 허무, 무의미에 대한 궁극의 답임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 제1독서 민수기는 이집트를 탈출하여 가나안족을 무찌르며 계속 진군중에 있었던 일화를 소개합니다. 계속되는 고단하고 힘든 광야여정중 이스라엘 백성은 마음이 조급해져 하느님과 모세에게 불평하며 격렬히 항의합니다. 그대로 곤경중에 처한 인간들의 보편적 반응을 상징합니다.

 

“당신들은 어쩌자고 우리를 이집트에서 올라오게 하여, 이 광야에서 죽게 하시오? 양식도 없고 물도 없소. 이 보잘 것 없는 양식은 이제 진저리가 나오.”

 

광야여정중인 우리 믿는 이들을 상징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믿음 부족을 반영합니다. 믿음이 사라진 곳에 어김없이 스며드는 유혹이 원망, 절망, 실망에 따른 불평입니다. 사부 베네딕도 성인이 가장 혐오하는 것도 매사 투덜거리는 불평입니다. 불평도 하다보면 부정적 습관이 됩니다. 참으로 믿는 이들이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와 찬미일 것입니다. 이들 이스라엘 백성은 현재의 고난에 하느님의 구원 체험을, 무엇보다 늘 바라봐야 할 궁극의 하느님을 망각함으로 배은망덕背恩忘德의 죄를 지었습니다.

 

민수기의 모세는 바로 예수님의 예표입니다. 하느님과 백성간의 중재자인 모세는 불평의 죄를 뉘우치는 백성들을 대신해 하느님께 기도드렸고, 불뱀에 물려 죽어가던 백성들에게 구원의 길이 열립니다.

 

“너는 불뱀을 만들어 기둥 위에 달아 놓아라. 물린 자는 누구든지 그것을 보면 살 것이다.”

 

모세는 구리뱀을 만들어 기둥 위에 달아 놓았고 뱀이 물린 사람은 구리뱀을 쳐다보면 살아납니다. 기둥위에 달린 구리뱀이 상징하는 바, 바로 예수님의 십자나무입니다. 바로 오늘 복음은 민수기의 구리뱀의 신비가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환히 드러납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이, 곧 사람의 아들 말고는 하늘로 올라간 이가 없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상징하는 파스카의 십자가는 그대로 우리의 영원한 구원의 표지임을 깨닫습니다.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한 하느님 사랑의 절정을 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 압축된 하느님의 사랑임을 다음 복음이 입증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 주시어, 그들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믿는 누구에게나 활짝 열린 구원의 하늘길이자 하늘문이신 십자가의 예수님, 파스카의 예수님, 영원한 생명의 예수님이십니다. 참으로 우리가 영원히 바라봐야 할 회개의 표지, 희망의 표지, 구원의 표지는 예수님의 십자나무뿐입니다. 아침 성무일도시 찬미가도 예수님 십자나무의 희망과 기쁨, 구원을 노래합니다.

 

“세상의 영광이며 우리의 희망, 참다운 기쁨주는 십자나무여.

위험중 보호하는 구원의 표식, 생명을 모든이에 가져오셨네.”

 

오늘 축일미사중, ‘영광스러운 십자가의 승리’를 고백하는 아름답고 장엄한 감사송도 찬미가와 일치합니다.

 

“아버지께서는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십자나무에서 인류구원을 이룩하시어, 죽음이 시작된 거기에서 생명이 솟아나고, 나무에서 패배한 인간을 나무에서 승리하게 하셨나이다.”

 

하느님의 구원 섭리가 참 오묘합니다.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우리가 새롭게 실현된 새 에덴동산 성전 미사를 통해 생명나무의 열매인 주님의 성체를 모시기 때문입니다.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선악과善惡果가 아닌 영원한 생명의 십자나무, 생명나무의 열매인 성체聖體를 모심으로 광야여정중에도 날마다 지상천국地上天國의 하늘나라를 살게 된 우리들입니다. 오늘 하루 예수님의 십자가를 경배하는 마음으로 지내시길 바랍니다.

 

“오, 십자가의 승리와 십자가의 기묘한 표시여, 우리를 하늘 나라로 개선케 하소서." (마리아의 노래 후렴).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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