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중심의 삶 -성전과 기도-2021.9.24.연중 제25주간 금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Sep 24,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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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9.24.연중 제25주간 금요일                                                            하까1,15ㄴ-2,9 루카9,18-22

 

 

 

하느님 중심의 삶

-성전과 기도-

 

 

 

“주님, 당신이 내리신 빛과 진리가 나를 이끌게 하시고,

당신의 거룩한 산, 그 장막으로 나를 들게 하소서.”(시편43,3)

 

화답송 시편이 우리를 위로하고 격려합니다. 밤1시 전후, 수도원 정원에서 잠시 거닐다 보면 성전문이 환해지고 성전에서 나오는 분들의 모습이 간간히 눈에 띕니다. 1987년 개원이후 늘 열려 있는 수도원 성전이기에 밤기도를 하는 이들도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성전과 기도, 하느님 중심의 삶을 사는 이들에게는 필수적 요소임을 깨닫습니다. 성전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그대로 하느님을 그리워하는 마음입니다.

 

“만군의 주님이여, 

계시는 곳 그 얼마나 사랑하오신고

그 안이 그리워,

내 영혼 애태우다 지치나이다.

이 마음 이 살이 생명이신 하느님 앞에 뛰노나이다.

주여, 당신의 집에 사는 이는 복되오니,

길이길이 당신을 찬미하리이다.”(시편84,2-3.5)

 

참으로 하느님을 찾는 이들은 본능적으로 성전을 찾아 기도하기 마련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성전에 들어서면 고향집에 온 듯 마음의 평화를 느낍니다. 영혼의 집과 같은 성전에서 기도해야 살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어제 써놨던 짧은시 3편, ‘아침’, ‘파스카의 삶’, ‘하늘’이란 시가 생각납니다. 언젠가도 썼던 내용들일 겁니다.

 

-“아침은 늘 새롭다

나도 늘 새롭다”-

 

-“날마다 새롭게 피어나는

꽃같은 삶이다

날마다 새롭게 시작하는

파스카의 삶이다”-

 

-“늘 봐도 

늘 좋은 하늘은

하느님의 얼굴, 하느님의 마음

내얼굴, 내마음

늘 하늘이고 싶다”-

 

참 많이 바라보는 하늘입니다. 늘 기도하며 하느님을 생각하며 마음에 담고 살아가라고 언제 어디서나 눈들면 하늘입니다. 아마 세상에서 저만큼 하늘과 별과 산을 많이 본 행복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눈들면 늘 거기 그 자리 불암산과 그 배경의 하늘과 별이기 때문입니다.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 기도하는 영혼들에게 날마다 열리는 늘 좋고, 새롭고, 놀라운 삶의 현실이요 이 또한 하느님 체험입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기도로 시작됩니다. 제자들과 늘 함께 하는 중에도 날마다  혼자 기도시간을 마련했던 주님이셨습니다. 기도야말로 예수님께서 아버지와 만나는 ‘때와 장소’였습니다. 아버지와의 깊은 관상적 일치의 기도가 예수님의 영감과 활력의 원천이었음을 봅니다. 정말 코로나 시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한 것이 주님과의 깊은 관상적 일치의 기도입니다.

 

이어지는 베드로의 고백과 수난과 부활의 예고 둘도 바로 기도후에 일어난 일들입니다. 분명 기도중에 이런 두 가르침에 대한 계시를 아버지께 받으셨음이 분명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에 대한 신원을 제자들은 물론 시공을 초월하여 후대의 우리들에게 깊이 각인시킵니다. 제자들의 분분한 대답에 주님은 단도직입적으로 제자들의 생각을 묻습니다.

 

“그러면 너희는 나늘 누구라고 하느냐?”

 

문득 어제 복음의 헤로데 임금의 독백같은 ‘이 사람이 누구인가?’라는 물음이 생각납니다. 참으로 끊임없이 묻고 만나야할 예수님입니다. 제자들을 대변한 베드로가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 정확히 답합니다. 그리스도 하니 재미있는 일화가 생각납니다. 9년만에 귀한 외손주를 둔 자매님의 신심깊은 딸과 사위가 그 손주 이름을 ‘이도’로 했다 합니다. ‘그리스도’중 둘째 ‘리’는 ‘이’로 바꿔, ‘이’에 넷째 ‘도’를 합하여 ‘이도’, 즉 그리스도의 준말같은 기막힌 ‘이도’란 작명에 감탄했던 일이 생각납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신원을 정확히 밝히심으로 제자들의 그리스도께 대한 잘못된 환상을 말끔히 정리하십니다. 지금까지 기다려온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할 승리와 영광의 그리스도가 아니라 ‘고난-배척-죽음-부활’의 파스카의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고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였다가 사흘 만에 되살아 나야 한다.”

 

모든 것은 때가 있는 법입니다. 지금 당장은 이해 불능이지만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신후 파스카의 신비를, 파스카의 예수님을 깊이 깨달을 예수님의 제자들입니다. 

 

죽으시고 부활하신 파스카의 주님은 늘 우리를 위로하시고 격려하십니다. 이제 우리는 파스카의 예수님 덕분에, 눈에 보이는 가시적 성전에 이어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성전과 우리 하나하나가 주님의 성전같은 존재가 되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까이 예언자의 예언이 그대로 파스카의 예수님을 통해 실현된 것입니다. 흡사 하까이 예언자의 말씀이 우리를 향한 예수님 말씀처럼 들립니다. 하느님과 깊은 관상적 일치의 결과 이런 희망과 기쁨의 미래를 예언하는 하까이 예언자입니다. 그대로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위로와 격려의 말씀입니다.

 

“용기를 내어라, 용기를 내어라, 용기를 내어라, 내가 너희와 함께 있으니 일을 하여라. 나의 영이 너희 가운데에 머무를 터이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마라. 머지 않아 모든 민족들의 보화가 이리 들어오리라. 그리하여 내가 이 집을 영광으로 가득 채우리라. 이 집의 새 영광이, 이전의 영광보다 더 크리라. 내가 이곳에 평화를 주리라, 만군의 주님의 말씀이다.”

 

그대로 코로나 사태로 침체해 있는 우리 신자들에게 주님 친히 주시는 말씀입니다. “용기를 내어라”, “두려워하지 마라”, 오늘 우리에게 꼭 필요한 주님의 격려 말씀입니다. 우리와 함께 계신 주님이요, 우리에게 평화를 주시는 주님이요, 우리 가운데 머무는 주님의 영입니다. “이 집의 새 영광이, 이전의 영광보다 더 크리라.” 예언자 하까이의 예언은 그대로 실현되어 이 거룩한 성전에서 성체성사를 통해 실현됩니다. 

 

영광은 성전 건물로부터가 아니라 주님의 현존이자 그리스도의 몸인 공동체로부터 옵니다. 우리 모두 성전안에서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로서 성체성사를 거행함으로 성화되는 성전 건물이자 우리들입니다. 바로 성전 건물이, 우리가 거룩해지는 것은 순전히 성체성사 미사덕분인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다음 말씀도 기억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하느님의 성전이며 하느님의 성령께서 자기 안에 살아 계시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만일 누구든지 하느님의 성전을 파괴하면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을 멸망시키실 것입니다. 하느님의 성전은 거룩하며 여러분 자신이 바로 하느님의 성전입니다.”

 

성전이 세 차원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1.가시적 건물인 성전, 2.그리스도의 몸인 공동체 성전, 3.우리 자신의 성전, 이 세 성전을 하나로 아울러 늘 살아있는 성전으로 정화淨化하고 성화聖化하는 것이, 바로 평생, 끊임없이, 날마다 이 거룩한 성전에서 봉헌되는 찬미와 감사의 시편기도와 미사의 ‘공동전례기도’은총임을 깨닫습니다.

 

“하느님의 제단으로 나아가리이다.

내 기쁨, 내 즐거움이신 하느님께 나아가리이다.

하느님, 내 하느님, 고鼓에 맞추어 당신을 찬미하리이다.”(시편43,4).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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