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9.28.연중 제26주간 화요일 즈카8,20-23 루카9,51-56
파스카의 여정
-고난, 죽음, 부활-
오늘 루카복음은 예수님의 예루살렘을 향한 대장정大長程의 여정이 시작됨을 보여줍니다. 복음 서두가 비장한 느낌마져 듭니다. 목적지는 파스카 신비가 이루어지는 예루살렘입니다. 십자가의 고난의 여정은 예루살렘 종착지에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승천을 통해, 결정적 탈출인 엑스도스를 통해 완성됩니다. 바로 이점을 복음 서두가 분명히 합니다.
‘하늘에 올라가실 때가 차자,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시려고 마음을 굳히셨다.’(루카9,51-56)
바야흐로 파스카의 여정이 시작됨을 알립니다. 바로 여기서 착안한 오늘 강론 제목 ‘파스카의 여정-고난, 죽음, 부활-’입니다. 우리 모두 영적으로 예수님과 함께 우리 삶의 영원한 목적지를 상징하는 예루살렘 여정중에 있음을 깨닫습니다. 흡사 예수님의 결연한 자세가 파스카의 여정을 앞둔 파스카의 전사처럼 느껴집니다.
그렇습니다. 영원한 목적지 예루살렘을 향해 예수님과 함께 파스카의 여정중에 있는 파스카의 전사인 우리 믿는 이들이요 예수님은 우리의 영원한 평생 도반이자 스승이 됩니다. 삶은 여정입니다. 우리 믿는 이들의 삶은 목적지 없는 막연한 여정이 아니라 영원한 하늘나라의 목적지를 상징하는 예루살렘을 향한 파스카의 여정, 엑소도스 탈출의 여정입니다.
2014년 산티아고 순례 여정후 참 많이 사용했던 강론 주제가 삶의 여정입니다. 제 영적 삶의 결정적 계기가 됐던 산티아고 순례 여정입니다. 산티아고 순례 여정은 그대로 죽는 날까지 계속될 우리의 평생 순례 여정을 상징합니다. 여기서 결정적인 요소로 부각됐고 참 많이도 강조했던 목표, 이정표, 도반, 기도의 네 요소입니다.
평생 불암산 기슭 요셉 수도원에서 정주하다보면 정말 삶은 여정임을 실감합니다. 하루하루 날마다 반복되는 여정이요, 봄-여름-가을-겨울 해마다 반복되는 여정중에 세월은 흘러 많은 이들이 늙었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머리카락 검었던 젊었던 수도형제들은 흰 머리카락의 노년이 되었고 머지 않아 세상을 떠날 것입니다. 하루하루 삶이 얼마나 절실하고 소중한지 깨닫습니다. 바로 이런 자각에서 태어난 제 자작 좌우명시 ‘하루하루 살았습니다’입니다.
산티아고를 향한 800km 2000리 순례여정은 30일 전후로 끝나지만 영원한 도반이자 스승인 주 예수님과의 예루살렘을 향한 평생 여정은 죽어야 끝납니다. 이런 여정의 절박함을 실감케 하는 것이 일일일생 하루로 내 삶의 여정을 압축해 보는 일이며, 일년사계 봄-여름-가을-겨울로 내 삶의 여정을 압축해 보는 일입니다. 어느 시점에, 어느 지점에 위치해 있는지 확인할 때 마다 두 라틴어 잠언, ‘죽음을 기억하라’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깨어 ‘지금 여기를 살라’는 ‘카르페 디엠carpe diem’이 생각납니다.
영원한 목적지를 상징하는 예루살렘을 향한 평생 여정중인 우리들은 결코 혼자가 아닌 더불어의 여정입니다. 파스카 여정중에 눈에 보이는 영적도반인 형제들과 더불어, 특히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와 언제나 함께 현존하는 영원한 도반인 예수님과 더불어의 우정이 얼마나 결정적인지 깨닫습니다.
참으로 누구보다 소중하고 고마운 분들이 평생 도반인 예수님과 오늘 지금 여기서 함께하는 도반 형제자매들입니다. 첩첩산중疊疊山中의 순례여정, 날마다 산山을 넘듯이 온힘을 다해 강론을 씁니다. 우리는 참 많은 산을 넘었고 장애물을 통과해 왔으며 또 앞으로도 많은 산을 넘고 장애물을 통과해야 할 것입니다. 흡사 매일이 장애물 경기와도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참 고마운 것은 주님이 늘 함께 한다는 것입니다.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28,20ㄴ).
바로 오늘 복음은 예루살렘 여정중 첫 장애물 통과 과정을 보여줍니다. 사마리아를 통과해야 하는데 이들이 예수님 일행을 맞아들이지 않자 열화熱火와 같이 분노하는 특권의식에 사로잡힌 무지無知한 제자이자 도반인 야고보와 요한에게 올바른 분별의 지혜를 제시하는 주 예수님이십니다.
“주님, 저희가 하늘에서 불을 불러 내려 저들을 불살라 버리기를 원하십니까?” 무지의 분노에 눈이 가린 두 제자를 제지하며 분별의 지혜를 발휘하는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그들을 꾸짖으셨고, 그리하여 그들은 다른 마을로 갔으니 첫 장애물을 지혜롭게 통과한 것입니다. 불필요한 충돌로 인해 얻는 것에 비하며 잃는 것이 너무나 큽니다.
분별력은 모든 덕의 어머니입니다. 참으로 필요한 것은 무수한 잡학雜學의 지식들이 아니라 삶의 지혜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지혜이십니다. 바로 파스카의 여정, 파스카의 신비, 파스카의 기쁨, 파스카의 지혜 중심에 자리하고 계신 파스카의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과의 관상적 일치의 대화와 우정이, 분별의 지혜가 얼마나 결정적인지 깨닫습니다.
날마다 끊임없는 기도와 회개를 통해 주님께로부터 보고 배워야 할 삶의 지혜, 분별의 지혜입니다. 아마 오늘 복음의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로부터 배운 지혜는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니 파스카의 여정은 그대로 예닮의 여정이자 깨달음의 여정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과의 우정이 깊어가면서 깨달음의 지혜도 날로 더해갈 것입니다.
외관상 고난의 여정같지만 주님과 함께 하는 여정이기에 기쁨과 평화, 찬미와 감사도 함께 합니다. 고난중의 기쁨은 바로 파스카의 기쁨입니다. 바로 우리 수도공동체는 물론 믿는 이들의 교회공동체가 그 빛나는 모범입니다. 십자가의 여정, 파스카의 여정중에도 끊임없이 평생, 날마다 바치는 찬미와 감사의 공동전례기도가 바로 주님과의 우정을 깊이 하면서 기쁨과 평화를 선사합니다.
파스카의 기쁨을, 부활의 기쁨을 앞당겨 사는 오늘 지금 여기가 바로 영적 예루살렘입니다. 하느님 안에 살면서도 하느님을 그리워하듯 날마다 예루살렘에 살면서도 예루살렘을 그리워하며 순례 여정중인 역설적 존재들인 우리들입니다. 즈카르야 예언은 그대로 오늘의 우리 영적 유다인을 통해 실현됨을 봅니다. 그때는 바로 오늘 여기 지금입니다.
‘만군의 주님이 이렇게 말한다. 그때에 저마다 말이 다른 민족 열사람이 유다 사람 하나의 옷자락을 붙잡고, “우리도 여러분과 함께 가게 해주십시오. 우리는 하느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계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하고 말할 것이다.’(즈카8,23)
말이 다른 열사람이 상징하는바 바로 우리의 이웃들이고 유다 사람 하나가 상징하는 바 예수님과 함께 파스카의 순례 여정중인 우리 하나하나입니다. 주님과 함께하는 우리들을 보고 우리의 파스카 여정에 함께 하고 싶어하는 이들을 도와 주는 것, 바로 이보다 더 좋은 복음 선포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한결같은 형제들의 파스카의 여정 자체가 빛나는 공동체적 복음 선포가 됩니다.
다음 성 베네딕도의 말씀에서 새삼 영원한 도반이자 주님이신 그리스도 예수님과의 우정이 얼마나 결정적인지 깨닫습니다.
“그리스도보다 아무것도 더 낫게 여기지 말 것이니, 그분은 우리를 다 함께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실 것이다.”(성규72,11-12)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파스카의 여정에, 십자가의 길에 항구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십니다. 끝으로 성공적 파스카의 여정을 간원懇願하는 제 좌우명 고백 기도로 강론을 마치겠습니다.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날마다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일일일생一日一生
하루를 처음처럼, 마지막처럼, 평생처럼 살았습니다.
저희에겐 하루하루가 영원이었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이렇게 살았고
내일도 이렇게 살 것입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받으소서.”-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