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탄력靈的彈力 -항구恒久하고 간절懇切한 기도-2021.10.7.목요일 묵주 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Oct 07,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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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7.목요일 묵주 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말라키3,13-20ㄴ 루카11,5-13

 

 

 

영적탄력靈的彈力

-항구恒久하고 간절懇切한 기도-

 

 

 

어제에 이어 루카복음의 주제 역시 ‘기도’입니다. 오늘 강론 제목은 제가 아주 예전부터 즐겨 자주 사용했던 ‘영적탄력靈的彈力’입니다. 항구하고 간절한 기도를 통해 날로 신망애信望愛의 삶으로 나아갈 때 영적탄력 좋은 삶이라는 것입니다. 비록 육신의 탄력은 노화와 더불어 떨어지더라도 영혼의 탄력, 영적탄력은 날로 좋아졌으면 좋겠습니다.

 

10월 교황님의 기도지향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모든 신자들이 선교하는 제자들이 되게 하소서’입니다. 선교하는 제자들이 되기 위해서도 항구하고 간절한 기도는 필수전제조건입니다. 오늘 10월7일은 ‘묵주 기도의 동정 마리아 기념일’입니다. 오늘 기념일의 유래가 참 중요하여 길이 기억할만 합니다.

 

1571년 10월7일은 10월 첫 주일이었고 전 유럽의 명운命運이 달린 날이었습니다. 1453년 콘스탄니폴을 함락시킨 오스만 투르크 제국은 시리아, 이집트, 북아프리카에 이어 발칸반도와 동유럽을 점령하면서 서서히 유럽을 향해 서진하다, 유럽의 11개국의 신성동맹 연합군과 격돌하니 바로 레판토 해전이요, 기원전 31년의 악티움 해전이래 가장 결정적인 해전으로 여깁니다. 후에 유명한 소설 <돈키호테>를 썼던 당시 스페인의 보병 연대장 세르반테스는 이 전투에서 싸우던 중 한쪽 팔을 잃었습니다.

 

바로 10월은 첫 주일 오늘, 유럽의 연합군과 오스만 투르크 제국군과의 격전은 오전부터 시작하여 오후 4시에 끝났으며, 교황 비오 5세는 기독교 연합 함대의 승리를 위해 유럽 전역에 묵주기도를 바칠 것을 호소했고 교황 친히 베드로 광장에서 묵주기도 대열에 동참했습니다. 결과는 신성동맹의 대승으로 끝났고 오스만 군은 궤멸적 피해를 입어 더 이상의 서진은 좌절되었고 기독교의 영원한 적으로 간주되던 투르크 족의 몰락이라는 염원이 이뤄진 것입니다. 

 

만약 레판토 해전에서 유럽 연합군이 졌더라면 로마를 비롯한 남유럽 많은 나라가 오스만 제국에 점령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교황 비오 5세는 승리의 성모님에게 감사를 표하기 위해 승리의 성모 축일을 제정하였고, 1716년 교황 클레멘스 11세는 로마 보편 전례력에 삽입하여 10월 첫 주일을 축일로 지내다가, 1913년 교황 비오 10세는 다시 축일 날짜를 10월7일로 되돌렸고, 1960년 교황 성 요한 23세는 축일의 명칭을 ‘묵주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로 변경하여 오늘에 이르게 됩니다.

 

새삼 묵주기도의 위력과 중요성을 깨닫게 되는 10월 묵주기도 성월에 맞이하는 오늘 ‘묵주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입니다. 묵주는 천국에 가는 패스 포드라합니다. 감각이 있는 한 마지막까지 할 수 있는 가장 단순한 기도가 묵주기도입니다. 어떤 형태든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 복음도 기도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요즘 ‘죽어서 만난다’는 신비로운 사실에 감사했습니다. 노자 강의중 ‘상우尙友’라는 말마디를 잊지 못합니다. 현재 마땅한 친구가 없으면 옛 성인들을 친구로 삼으라는 뜻이라 합니다. 베네딕도 16세 교황님의 멘토는 성 아우구스티노와 성 보나벤투라라고 합니다. ‘주님 안에서, 기도 안에서 만나는 경우가 이러하겠구나, 죽어서 만난다는 것이 이런 뜻이겠구나’ 깨달음과 더불어 내적으로 참 풍요로워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얼마전 선종한 황인국 마태오 신부님의 회고록을 읽으면서, 또 치열한 암투병생활중 선종 전 50일간 오로지 기도로 살았던 연데레사 수녀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 살았을 때 보다 더 잘 알게 되니 ‘죽어서 만난다’는 진리를 새삼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황 인국 몬시뇰 신부의 회고록 맨 끝에 2001년 김수환 추기경께서 손수 번역하신 ‘어느 독일 노인의 시’가 감동적이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최상의 일은 무엇일까?

기쁜 마음으로 나이를 먹고

일하고 싶지만 쉬고

말하고 싶지만 침묵하고

실망스러워질 때 희망을 지니며

공손히 마음 편히 내 십자가를 지자.

 

젊은이가 힘차게 하느님의 길을 가는 것을 보아도 시기하지 않고

남을 위해 일하기보다는

겸손되이 다른 이의 도움을 받으며

쇠약하여 이제 남에게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어도

온유하고 친절한 마음을 잃지 않는 것.

 

늙음의 무거운 짐은 하느님의 선물

오랜 세월 때 묻은 마음을 이로써 마지막으로 닦는다.

참된 고향으로 가기 위해

자기를 이승에 잡아 두는 끈을 하나씩 풀어 가는 것

참으로 훌륭한 일이다.

 

이리하여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면

그것을 겸손되이 받아들이자.

하느님은 마지막으로 제일 좋은 일을 남겨 두신다.

그것은 기도이다.

손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어도 합장만은 끝까지 할 수 있다.

사랑하는 모든 사람 위해 하느님이 은총을 베푸시도록 빌기 위해.

 

모든 것이 다 끝나는

임종의 머리맡에 하느님의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오너라, 나의 벗아. 나 너를 결코 잊지 않으리라.”-

 

그 엄혹한 70년대 김추기경님은 불면증으로 밤시간 내내 침실안에서 서성였다 합니다. 아마도 노년의 추기경님의 소망이 고스란히 담긴 시같습니다. 더불어 23년전 써놨던 두 편의 시도 생각납니다. 마인라도 수사님을 생각하여 썼던 ‘노수사님’이란 시와 ‘죽음’이란 기도와 같은 시입니다.

 

-“깊어가는 가을

낙엽쓰는 노수사님

묵묵히 삶의 뒤안길에서

낙엽과 함께 집착의 쓰레기들

말끔히 쓸어내는 마인라도 노수사님

그대로 무념無念, 무욕無慾, 무심無心의 

가을이었다, 자연이었다”-1998.11.9.

 

-“땅위를 덮고 있는 고운 단풍잎들

두려워하지 마라.

죽음은 해후다, 귀환이다, 화해다, 구원이다.

‘수고하였다, 내 안에서 편히 쉬어라.’

들려오는 자비로운 아버지의 음성”-1998.11.10.

 

기도는 영혼의 호흡입니다. 삶은 기도입니다. 하느님을 향한 삶자체가 기도입니다. 기도는 항구하고 간절해야 합니다. 죽어야 제대인 영원한 현역의 주님의 전사들인 우리를 늘 깨어 살게 하는 기도입니다. 백절불굴, 칠전팔기, 넘어지면 곧장 일어나 늘 새롭게 시작하는 파스카의 삶을, 영적탄력 좋은 삶을 살게 하는 기도입니다. 주님은 항구히, 간절히 지칠줄 모르는 기도와 삶을 권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사람이 벗이라는 이유 때문에 일어나서 빵을 주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그가 줄곧 졸라대면 마침내 일어나서 그에게 필요한 만큼 줄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받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얼마나 더 잘 주시겠느냐?”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주님은 우리 모두에게 최상, 최고의 참 좋은 선물인 성령을 주십니다. 기도하지 않을 때 무지와 허무의 포로가 되고, 원망과 절망, 실망도 안개처럼 피어나 시야를 가립니다. 다음 제1독서 말라키 예언서에 나오는 바와 같이 하느님께 심히 무례한 말을 뇌까립니다.

 

“하느님을 섬기는 것은 헛된 일이다. 만군의 주님의 명령을 지킨다고, 그분 앞에서 슬프게 걷는 다고 무슨 이득이 있느냐? 오히려 이제 우리는 거만한 자들이 번성하고, 하느님을 시험하고도 화를 입지 않는다.”

 

그러나 주님을 경외하는 이들은 “주님이 주의를 기울여 들었다. 당신을 경외하며 그의 이름을 존중하는 이들이 주님 앞에서 비망록에 쓰였다.” 고백합니다. 주님은 당신을 경외하고 신뢰하는 이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부모가 자가들을 섬기는 자식을 아끼듯, 나도 그들을 아끼리라. 보라, 화덕처럼 불붙는 날이 온다. 거만한 자들과 악을 저지르는 자들은 모두 검불이 되리라. 그러나 나의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움의 태양이 날개에 치유를 싣고 떠오리라.”

 

참으로 항구히, 간절히 기도할수록 영적탄력 좋은 삶이요, 하느님께 대한 경외심과 신뢰심도 나날이 깊어집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날마다의 미사은총이 참으로 우리 모두 영적탄력 좋은 삶을 살게 합니다.

 

“행복하여라, 주님을 신뢰하는 사람!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같아, 제때에 열매 맺고, 잎이 아니 시들어, 하는 일마다 모두 잘되리라.”(시편40,5ㄱㄴ. 시편1,3).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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