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다, 두려워하지 마라."(요한6,20) -믿음의 전사-2021.10.15.금요일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1515-1582) 기념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Oct 15,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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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15.금요일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1515-1582) 기념일

로마4,1-8 루카12,1-7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요한6,20)

-믿음의 전사-

 

 

 

“사슴이 시냇물을 그리워하듯, 

하느님, 제 영혼이 당신을 그리나이다.

제 영혼이 하느님을, 생명의 하느님을 목말라 하나이다.”(시편42,2-3)

 

입당송 시편처럼, 주님의 믿음의 전사들인 성인들의 영혼이 늘 그러했습니다. 오늘은 16세기 스페인 출신 가르멜 수도회의 개혁자이자 제 2창립자로 일컫는 일명 ‘아빌라의 데레사’, ‘대데레사’라 칭하는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학자 기념일입니다. 생몰연대를 보니 만67세, 수도회의 개혁을 위해 시종일관 치열한, 가열찬 삶을 살았던 참으로 멋지고 매력이 넘치는 믿음의 여전사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였습니다. 성녀를 생각하면 즉시 떠오르는 ‘아무 것도 너를’이란 성가입니다.

 

-“아무것도 너를 슬프게 하지 말며

아무것도 너를 혼란케 하지 말지니

모든 것은 다 지나가는 것

다 지나가는 것

오 하느님은 불변하시니 인내함이 다 이기느니라

하느님을 소유한 사람은 모든 것을 소유한 것이니

하느님만으로 만족하도다.”-

 

 

참고로 원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Nada te turbe
아무것도 너를 흔들지 못하리라
Nada te espante
아무것도 너를 놀라게 하지 않으리라
Todo se pasa
모든 것은 지나가는 것
Dios no se muda
하느님은 변치 않으시니
la paciencia
인내가
todo lo alcanza
모든 것을 얻게 하리니
quien a Dios tiene
하느님을 소유하는 이는
nada le falta
아무런 부족함 없고
sólo Dios basta
하느님만으로 충분하다”-

 

성녀가 죽은 뒤 성녀의 성무일도에서 발견된 이 시를 바탕해 작사한 감동적인 ‘아무것도 너를’ 이란 성가입니다. 제 죽어 장례미사때에 입당성가는 위의 데레사 성녀의 ‘아무것도 너를’ 성가를, 퇴장성가는 성 프란치스코의 ‘태양의 찬가’를 부탁하고 싶습니다. 시간되면 이 두 성가를 감상해 보세요. 정말 좋습니다. 성녀에 대한 다음 글도 인상적입니다.

 

-데레사는 이상주의자idealist일뿐 아니라 ‘아주 땅에 밀착된 현실주의자a very down to earth realist’였다. 성녀는 일에나 모든 활동에서나 상식과 지혜, 하느님 섭리에 대한 신뢰가 결합된 엄청난 능력으로 성녀가 직면한 온갖 장애물을 극복했다. 도전적인 삶의 수도생활의 입회자를 선발하는 데 성녀는 지성과 좋은 판단력을 강조했다. 

 

“하느님은 우리를 아둔한 수녀들로부터 지켜주소서!”, 성녀의 진심이 담긴 유머다. 성녀는 “슬기로운 사람들은 자기의 잘못을 잘 알아 동시에 안내의 필요를 안다. 그러나 이렇지 못한 편협하고 어리석은 사람들은 변화를 위한 필요를 알지 못한다.”라고 말한다.’ 

 

성녀는 1582년 9월2일 여행을 하던 도중 돌연히 중병에 걸려 병석에 눕게 되었으며, 10월4일 밤중에 임종의 때가 가까웠음을 알자 하느님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기뻐하며, “주여, 저는 성교회의 딸입니다.”라고 고백하면서 67살의 나이에 숨을 거둡니다. 참으로 거룩한 성녀의 생애였습니다. 그대로 한권의 살아있는 성경책 같은 삶이었고 성녀의 기도문과 임종어가 성녀의 삶을 요약합니다.

 

얼마나 하느님을 사랑한 하느님 중심의 믿음의 전사로 일관한 성녀의 삶이었는지요! 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믿음의 전사들인 우리 모두에게 세상 그 누구도 두려워하지 말고 참으로 하느님만을 두려워 할 것을 강력히 권합니다. 공포의 두려움이 아니라 경외의 두려움입니다. “나의 벗인 너희에게 말한다.” 서두의 말씀도 고맙습니다. 주님은 당신 믿음의 전사들인 우리 모두를 당신의 벗이라 부르십니다.

 

“육신은 죽여도 그 이상 아무것도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육신을 죽인 다음 지옥에 던지는 권한을 가지신 분을 두려워하여라.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바로 그분을 두려워하여라.”

 

수도원 십자로 중앙 예수님 부활상 아래 바위판에 새겨진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역설적으로 하느님을 두려워할 때 세상 그 누구도, 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참으로 우리가 경계해야 할 자는 그리스도를 또 그리스도가 뜻하는 모든 것을 부정하게 하는 이들이나, 부정의 상태로 죽게하는 이들입니다. 그밖에 우리를 위협하는 그 누구든, 그 무엇이든 두려워할 것은 없습니다. 

 

여기서 잠시 언급하고 싶은 것이 현대인들이 잊고 지내는 ‘두려움’과 ‘부끄러움’의 감정입니다. 두려움과 부끄러움의 감정을 잃어버린 적반하장, 인면수심의 뻔뻔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건강한 믿음에 하느님을 두려워하고 하느님 앞에서 부끄러워할 줄 아는 감정은 너무 중요합니다. 인간의 무질서한 폭력적 내적 욕망을 제어할 수 있는 하느님을 두려워하고 하느님 앞에서 부끄러워할 줄 아는 감정을 지녀야 온전한 믿음이겠습니다. 

 

사실 우리는 우리에 앞서 평화중에 주저함없이 죽음을 맞이한 많은 모범의 순교성인들을 모시고 있습니다. 그들은 ‘죽음이냐 진리냐’의 둘외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음을 알았습니다. 진리이신 주님을 택함으로 영원히 사는 길을 택한 순교성인 선배들입니다. 이어 주님은 결정적 말씀으로 우리의 믿음을 북돋우십니다.

 

“참새 다섯 마리가 두 닢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그 가운데 한 마리도 하느님께서 잊지 않으신다. 더구나 하느님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

 

문제는 믿음입니다. 일어나는 것이 모두 하느님의 뜻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 무엇도 하느님 허락없이 일어나는 일은 없습니다. 참으로 진짜 죽음은 육신의 죽음이 아니라, 하느님을 떠난 영혼의 죽음이 진짜 죽음임을 믿고 알아야 합니다. 주님 사랑 안에서 사는 영혼에게는 죽음이 없다는 것, 바로 이것이 우리의 철석같은 믿음입니다. 

 

그러니 모든 것이 하느님 수중 안에 있다는 믿음의 아브라함처럼,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처럼 우리의 믿음을 끊임없이 업그레이드시켜 새롭게 해야 합니다. 정말 주님께 청할 것은 믿음의 은총뿐입니다. 탓할 것은 하느님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 부족입니다.

 

아브라함이 행위로 의롭게 되었더라면 자랑할 만도 합니다. 그러나 하느님 앞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느님을 믿으니, 하느님께서 믿음을 의로움으로 인정해 주셨습니다. 다윗도 하느님께서 행위와는 상관없이 의로움을 인정해 주시는 사람의 행복을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바로 오늘 화답송 시편입니다.

 

“행복하여라, 죄를 용서 받고, 잘못을 씻은 이!

행복하여라, 주님이 허물을 헤아리지 않으시고, 그 영에 거짓이 없는 사람!“(시편32,1-2)

 

그러니 진짜 믿음의 전사는 죄책감에 마음 아파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열렬히 온힘을 다해 하느님을 믿고 사랑합니다. 참으로 하느님을 믿고 사랑할 때 죄의 용서와 더불어 삶도 점차 변화되어 주님을 닮아가게 됩니다. 그리하여 믿음의 여정은 주님을 닮아가는 ‘주닮의 여정’이 됩니다. 해바라기꽃처럼 주바라기꽃의 아름답고 멋진 삶이 펼쳐집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 삶의 궁극 목표이자 보람이요 행복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믿음을 북돋아 주시어 한결같은 믿음의 전사로 영적 승리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주님의 자애를 영원히 노래하오리다. 제 입은 당신의 진실을 대대로 전하오리다.”(시편89,2).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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