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와 섬김의 삶 -들어라, 섬겨라, 나아가라-2021.10.17.연중 제29주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Oct 17,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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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17.연중 제29주일                                              이사53,10-11 히브4,14-16 마르10,35-45

 

 

 

기도와 섬김의 삶

-들어라, 섬겨라, 나아가라-

 

 

 

“주님, 당신 눈동자처럼 저를 보호하소서. 당신 날개 그늘에 저를 숨겨 주소서.”(시편17,8)

 

오늘 입당송 시편이 은혜롭습니다. 시편 기도 그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어제 집안에서 최고 어른인 100세의 요한 사촌 형님댁에 들려 병환중인 99세 사촌 엘리사벳 형수님 병자성사를 드리고 왔습니다. 병중이시지만 평생 기도와 믿음으로 사신 분이기에 여전히 잘 들으시고 의식도 또렸했습니다. 떠날 때, 함께 있는 분들에게 “하루하루 사십시오!” 덕담을 드렸습니다. 100세 형님과 바오로 조카와도 잠시 식사를 나눴고 귀원할 때는 지금까지 42년동안 사촌 형님과 함께 해 온 기사 분이 운전해 주었습니다.

 

“회장님은 한결같으시고 사모님같으신 분도 없으십니다. 회장님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매일 1시간은 걸으십니다. 눈이 오든 비가 오든, 비가 올 때는 우산을 쓰고, 병원에 가면 그 연세에 휠체어를 안타는 분은 회장님밖에 없습니다.”

 

“기사님도 29세부터 지금까지 무려 42년 동안 함께 하셨다니 참 한결같으십니다. 성공하셨습니다.”

 

기사분과 덕담도 나눴습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걸어야 합니다. 걷는 것 자체가 삶이고 기도여야 합니다. 살기위해 기도하듯 살기위해 걸어야 합니다. 저도 매일 강론 쓰기가 끝나면 30분동안 수도원 경내를 묵주기도 20단을 바치며 걷습니다. 10월은 묵주기도 성월입니다. 묵주는 천국에 들어가는 패스포드입니다. 끊임없이 묵주 관상기도를 바치며 파스카의 예수님과 더불어 마리아 성모님과 우정의 사랑을 깊이 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하루하루 날마다 한결같이 그렇게 합니다. 하루하루 바다향해 흐르는 강처럼 그분을 향해 그분과 함께 기도하며 걷는 것입니다.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끊임없이, 한결같이

바다를 향해 흐르는 강이 되어 살았습니다.

때로는 좁은 폭으로 또 넓은 폭으로

때로는 완만하게 또 격류로 흐르기도 하면서

결코 끊어지지 않고 계속 흐르는

‘하느님 사랑의 강’이 되어 살았습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받으소서.”

 

하루하루 이렇게 바다향해 끊임없이 맑게 흐르는 강처럼 기도하며 걸으며 사는 것입니다. 요즘 옛 동요를 발견하고 기뻐서 매일 산책때 마다 즐겨 부르는 ‘바다’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저에게는 시편이 기도가 되듯 동요도 기도가 됩니다.

 

“아침바다 갈매기는 금빛을 싣고

고기잡이 배들은 노래를 싣고

희망에 찬 아침바다 노저어 가요

희망에 찬 아침바다 노저어 가요

 

저녁바다 갈매기는 행복을 싣고

고기잡이 배들은 고기를 싣고

넓고 넓은 바다를 노저어 와요

넓고 넓은 바다를 노저어 와요”

 

흡사 행복한 평생을 하루로 요약한듯한 참 정겨운 동요입니다. 하루하루 이렇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한 번 불러 보시기 바랍니다. 그대로 기도가 되는 노래입니다. 기도와 삶은 함께 갑니다. 사랑밖엔 길이 없듯, 기도밖엔 길이 없습니다. 삶과 죽음에는 사랑밖엔, 기도밖엔 답이 없습니다. 결국은 하느님밖엔 답이 없다는 것입니다. 무지와 허무의 어둠의 늪에서 벗어나는 길도 기도와 사랑뿐이 없습니다. 

 

기도와 사랑은 하나입니다. 기도는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면 저절로 사랑이신 하느님께 기도하기 마련입니다. 기도는 호흡입니다. 호흡하듯 기도해야 합니다. 날마다 순간순간 하느님을, 그리스도 예수님을 호흡하는 것입니다. 이래야 영육의 치유요 건강입니다. 기도와 삶이, 사랑이 하나된 삶을 사는 이는 다음처럼 살아갑니다. 세 삶의 지침을 오늘 말씀을 근거로 소개합니다.

 

첫째, “들어라!”입니다.

그리스도교는 들음의 종교, 귀의 종교입니다. 성인聖人의 한자뜻도 잘 듣는 사람입니다. 마음의 귀로 귀기울여 듣는 경청傾聽이요 공경하며 듣는 경청敬聽입니다. 이렇게 경청이 습관화되면 저절로 내적침묵에 고요와 평화도 이뤄집니다. 환대와 경청은 필히 함께 갑니다. 분도 규칙의 맨 첫 말마디도 “아들아, 들어라!”입니다. 구약의 예언자들도 대부분 “들어라!”로 시작합니다. 제 식탁에 식탁보에는 붓글씨 체로 “들어라!” 글자가 쓰여 있습니다.

 

잘 들음은 겸손입니다. 잘 들어야 잘 배울수 있고 순종할 수 있습니다. 누구말을 듣습니까? 오늘 복음의 제자들처럼 무엇보다 주님 말씀을 귀기울여, 공경하는 마음으로 듣고 응답하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필시 다음 주님 말씀을 깊이 경청했을 것입니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도 마시고, 내가 받은 세례를 너희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내 오른쪽에 앉는 것은 내가 허락할 일이 아니라, 정해진 이들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진인사대천명의 자세로 살라는 것입니다. 최선을 다하되 결과는 온전히 하느님 처분에 맡기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하루하루 순교적 삶에 최선을 다하는 것뿐입니다. 하느님께 절대적 희망과 신뢰를 두고 하루하루 처음이자 마지막처럼 온힘을 다해 살라는 것입니다. 참으로 마음의 귀로 깊이 경청하며 사는 이들은 이렇게 살아갑니다. 필시 늘 주님과 대화하며 깊이 경청하며 배우며 순종하며 살았을 당대의 제자들이 우리 들음의 롤모델입니다.

 

둘째, “섬겨라!”입니다.

참으로 마음의 귀로 경청할 때 저절로 뒤따르는 섬김의 삶입니다. 들어라, 섬겨라, 순 우리말 맛도 좋습니다. 봉사라는 한자 말마디보다 훨씬 정겨운 섬김이란 말마디입니다. 주님을 닮은 우리의 영성은 종과 섬김의 영성뿐입니다. 섬김의 권위, 섬김의 직무, 섬김의 리더쉽입니다. 

 

복음적 가치를 요약하는 섬김입니다. 참으로 주님을, 형제들을 잘 섬기는 것이 장상의 우선적 자질입니다. 교회의 장상은 한마디로 정의하면 주님의 심부름꾼입니다. 베네딕도 성인도 당신 제자들의 공동체를 주님을 섬기는 배움터로 정의합니다. 

 

참으로 영성의 진위를 가리는 시금석이 섬김의 삶입니다. 참으로 믿는 섬김의 사람들은 군림하거나 세도를 부리지 않습니다. 지위에 관계없이 겸손과 섬김의 자세로 임합니다. 이런 이들이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바로 오늘 복음의 핵심입니다.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된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

 

바로 여기 근거하는 섬김과 종의 영성입니다. 교만과 정 반대에 있는 겸손한 섬김의 종입니다. 섬김의 삶과 저절로 함께 가는 비움의 삶, 겸손의 삶입니다. 종중의 종이 교황님이라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요즘은 ‘교황’보다는 권위적이지 않는 ‘교종’이란 어휘를 많이들 사용합니다. 우리 믿는 이들의 삶은 섬김의 배움터입니다. 평생 섬김을 배워야 하는 섬김의 여정중에 있는 섬김의 학인들인 우리들입니다.

 

오늘 제1독서 이사야서의 주님의 종의 넷째 노래는 바로 예수님을 예표합니다.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의 종, 파스카의 그리스도 예수님의 섬김의 삶을 통해 그대로 실현됨을 봅니다.

 

“그를 으스러뜨리고자 하신 것은 주님의 뜻이었고, 그분께서 그를 병고에 시달리게 하셨다. 그는 제 고난의 끝에 빛을 보고, 자기의 예지로 흡족해하리라. 의로운 나의 종은 많은 이들을 의롭게 하고, 그들의 죄악을 짊어지리라.”

 

그대로 예수님을 통해 실현된 모습입니다. 바로 우리 섬김의 영원한 롤모델이 우리의 위로와 치유의 원천이신 구원자 파스카의 예수님이십니다. 

 

셋째, “나아가라!입니다. 

바라보며 나아가는 것입니다. 바로 우리의 희망이자 비전이자 꿈인, 우리 여정의 궁극 목표인 주님을 바라보며 주님을 향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래야 혼란과 방황에서 벗어납니다. 삶에서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주님을 향한 제대로의 방향입니다. 

 

궁극의 희망이자 꿈, 비전이자 목표인 주님을 잊어버려, 잃어버려, 주님께 삶의 닻을 내리지 못해, 뿌리 없이 부평초처럼 표류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많습니까! 바로 제2독서의 히브리서 저자는 우리 모두 하늘 위로 올라가신 위대한 대사제,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을 고백하며 신앙을 굳게 지켜나갈 것을 촉구합니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는 대사제가 아니라. 모든 면에서 우리 똑같이 유혹을 받으신, 그러나 죄는 짓지 않으신 대사제가 계십니다. 그러므로 확신을 가지고, 은총의 어죄로 나아갑시다. 그리하여 자비를 얻고 은총을 받아 필요할 때에 도움이 되게 합시다.”

 

얼마나 고무적이고 위로와 힘이 되는 은혜로운 말씀인지요! 그러니 날로 주님계신 은총의 어좌로 가까워지는 우리 섬김의 여정임을 깨닫습니다. 그리하여 주님의 자비를 얻고 은총을 받아 필요할 때에 도움이 되니 얼마나 좋습니까! 그대로 일상에서 체험하는 복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만한 세상입니다. 살줄 몰라 불행이요 살줄 알면 행복입니다. 삶은, 행복은 선택입니다. 그러니 끊임없이, 한결같이 사랑과 섬김의 주님을 선택하여 집중적으로 기도하고 사랑하고 섬기며 따르며 주님을 알아 닮아가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경청과 섬김, 당신 추종의 삶에 항구하고 충실하도록 도와 주십니다.

 

“보라, 주님의 눈은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당신 자애를 바라는 이들에게 머무르신다.”(시편33,18).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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