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 있어라 -희망의 빛, 희망의 약-2021.10.19.연중 제29주간 화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Oct 19,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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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19.연중 제29주간 화요일 

로마5,12.15ㄴ.17-19.20ㄴ-21 루카12,35-38

 

 

깨어 있어라

-희망의 빛, 희망의 약-

 

 

어제 하루의 기쁨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여기엔 사연이 있습니다. 집무실에 들어온 큰 지네를 살려 보냈기 때문입니다. 잊지 못할 기억이 될 것입니다. 정확히 지난 9월27일 끝기도후 집무실에 들어 와 불은 켜는 순간 큰 지네가 발가락을 물고 쏜살같이 필사적으로 달아나 숨었고 도저히 잡을 수 없었습니다.

 

따끔하는 아픔과 더불어 정신이 번쩍 들었고 순간 ‘깨어 살라’는 깨우침으로 받아 들였습니다. 그러니까 20여일 만에 완전히 사라진줄 알았던 검붉은 빛을 띤 큰 지네가 엊그제 10월17일 저녁 끝기도후 집무실에 들어 왔더니 나와서 쉬고 있었습니다. 만 20일만에 나타난 것입니다. 즉시 놀라서 입은 스카풀라 수도복으로 힘껏 때렸습니다만 놓쳤습니다. 수십분 동안 수색했지만 종적이 묘연했습니다.

 

후에 이 이야기를 했더니 수도형제들이 웃었습니다. 책같은 것으로 두드려 잡아야지 옷으로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아마 본능적으로 살생殺生을 피하고 싶었던 탓이었던 듯 싶습니다. 그래서 사다 놓은 에프킬러를 집무실 속속들이 뿌리고 갔다가 다음 10월18일 새벽 나와 불을 켜보니 집무실 그 자리에 죽은 듯이 큰 지네가 누워 있었습니다. 건드려 보니 움직였고 종이에 담아 집무실 밖에 던진후 잠시 문열고 보니 사라진 것입니다. 살아 도망간 것이지요. 

 

이렇게 지네를 살려 보낸 것이 정말 잘했다 싶어 온종일 마음이 편했던 것입니다. 필사적必死的으로 살려고 달아나는 불쌍한 미물微物 지네를 살려 보냈으면 그저 평범히 잊으면 될 것을 무슨 큰 전과戰果라도 올린듯이 만물의 영장靈長이라는 사람인 내가 무용담武勇談을 자랑하듯 호들갑스럽게 형제들에게 이야기 했던 자신의 경박輕薄함이 내심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좌우간 새벽부터 살생하지 않고 살려 보냈다는 사실이 기뻤고 새삼 깨어 살아야 겠다는 자각도 새로이 했습니다.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한 것이 깨어 있음입니다. 오늘 말씀의 핵심도 우리 모두 ‘깨어 있어라’입니다. 과연 하루중 깨어 있는 경우는 얼마나 될까요? 깨어 있을 때 참으로 살아 있다 할 수 있습니다. 영성생활이나 끊임없는 기도의 궁극 목표 역시 깨어 있음에 있습니다. 많은 사고나 일, 유혹도 깨어 있지 않을 때 발생합니다.

 

수도원 성전 뒷면 양쪽에는 올빼미 눈의 사진이 있고, 제의방과 제 집무실에도 제 조카가 선물한 핀란드 영롱한 눈의 흰 올빼미 도자기가 있습니다. 바로 영롱한 눈의 흰 올빼미는 “깨어 있어라”, 무언의 가르침을 줍니다. 깨어 있음을, 살아 있음을 상징하는 영롱하게 반짝이는 깨어 있는 눈입니다.

 

참으로 쏜살같이, 강물같이 흐르는 세월입니다. 10월 초인가 했더니 벌써 10월 종반에 접어듭니다. 엊그제와 어제는 섭씨 2도의 추운 겨울날씨를 연상케 했습니다. 처음으로 겨울 외투를 입고 새벽 산책을 했습니다. 지금 내리는 늦가을 비가 내리면 다시 추워질듯합니다. 얼마 지나면 11월 위령성월이 될 것입니다.

 

이런 흐르는 세월에 대한 절실한 자각이 저절로 하루하루 깨어 오늘 지금 여기를 살게 합니다. 항상 오늘 지금 여기에 초점을 두게 합니다.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제 좌우명 자작시를 매일 읽어보며 삶을 새롭게 추스르게 됩니다. 일일일생, 일년사계로 내 삶의 여정을 압축해, 내 현 지점을 확인하다보면 죽음도 얼마 남지 않았다 싶어 저절로 깨어 살게 됩니다. 주변에서 갑작스런 사고나 뜻밖의 질병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이들 역시 깨어 살라는 가르침을 줍니다. 

 

‘죽음을 날마다 눈앞에 환히 두라’는 성 베네딕도의 말씀과 더불어 메멘토 모리, 카르페 디엠, 라틴어 격언도 우리 모두 깨어 살 것을 촉구합니다. 참으로 죽음을 눈앞에 환히 둘 때 삶의 환상이나 거품은 사라지고 오늘 지금 여기서 본질적 투명한 깨어 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깨어 있을 때 참 맑은 기쁨에 행복한 삶입니다. 깨어 있을 때 저절로 내적 침묵에 텅빈 충만의 행복한 관상적 삶입니다. 끊임없이 바치는 비움기도, 명상기도, 향심기도 역시 주님 중심의 삶을 살기 위한 일종의 깨어 있음의 훈련입니다. 참으로 깨어 있을 때, 깨끗한 마음에 깨달음의 은총입니다.

 

“주님을 삶의 중심에 두고 주님을 열렬히 항구히 사랑하십시오. 또 궁극의 희망을, 꿈을 주님께 두십시오. 희망의 빛, 희망의 약입니다. 이런 주님 향한 사랑이, 희망이 우리를 깨어 있게 하고 인내하며 기다리게 합니다.”

 

어제 수도원을 방문한 병고病苦 중인 자매에게 드린 말입니다. 사실 희망보다 영혼에 더 좋은 명약名藥도 없습니다. 또 주님 주신 희망의 빛이 무지의 어둠, 허무의 어둠을 몰아 냅니다. 궁극의 희망과 꿈은 주님입니다. 이런 희망과 꿈이 없는 곳이 지옥입니다. 살아있다 하나 실상 죽은 삶입니다. 그러니 이런 주님 향한 사랑이, 희망이 우리를 깨어 아름답게 빛나는 내적평화의 삶을 살게 합니다. 

 

오늘 제1독서 로마서는 ‘아담과 그리스도’를 주제로 한 말씀입니다. 아담과 그리스도는 바로 우리 인간 존재를 상징합니다. 빛과 어둠, 은총과 죄, 선과 악, 희망과 절망, 생명과 죽음, 영적 삶과 육적 삶이 하나로 어울러진 인간 실존實存을 상징합니다. 새삼 우리의 전관심사를 그리스도께 뒤야 함을 깨닫습니다. 

 

그러니 그리스도를 선택하여 날로 그리스도 중심의 삶을, 그리스도와 사랑의 우정을 깊이하는 것입니다. 사랑과 죄는 양립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사랑할수록 깨어 살게 되고, 은총의 빛에 죄의 어둠은 저절로 사라집니다. 다음 고백 그대로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님,

당신은 저희의 전부이옵니다.

저희 사랑, 저희 생명, 저희 희망, 저희 기쁨, 저희 평화, 저희 행복이옵니다

하루하루가 감사와 감동이요 감탄이옵니다

날마다 새롭게 시작하는 아름다운 하루, 은총의 선물이옵니다.”

 

바로 이런 주님과 함께 주님을 기다리며 사는 것입니다. 바로 주님께서 우리 모두 기쁨으로 인내로이 당신을 기다리며 깨어 살게 합니다. 주님의 평생 전사, 주님의 평생 학인의 빛나는 덕이 바로 깨어 있음입니다. 참으로 이런 주님께 궁극의 신뢰와 사랑과 희망을 둘 때 저절로 하루하루 주님을 기다리며 깨어 기쁘게 오늘 지금 여기를 살 수 있습니다. 복음의 주인은 주님으로 바꿔 읽어도 무방합니다.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

행복하여라, 주님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주님은 띠를 매고 그들을 식탁에 앉게 한 다음, 그들 곁으로 가서 시중을 들 것이다. 주님이 밤중에 오든 새벽에 오든 종들의 그러한 모습을 보게 되면, 그 종들은 행복하다.“

 

이런 깨어 있는 주님의 종으로 살 때 참 기쁨에, 참 행복입니다. 유비무환입니다. 하루하루 이렇게 깨어 살면 내일은 걱정안해도 됩니다. 바로 내일은 내일이 저절로 잘 해결해 줄 것입니다. 우울이나 치매도 들어 올 수 없습니다. 복된 선종의 죽음도 은총의 선물처럼 주어질 것입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깨어 행복한 삶을 살게 합니다. 늘 읽어도 늘 새로운 제 좌우명 고백기도로 강론을 끝맺습니다.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날마다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일일일생, 하루를 처음처럼, 마지막처럼, 평생처럼 살았습니다.

저에게 하루하루가 영원이었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이렇게 살았고 내일도 이렇게 살 것입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받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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