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가歸家의 여정 -“어떻게 살아야 하나?”-2021.10.25. 윤 여임 엘리사벳 성녀(1923.7.2.-2021.10.22) 장례미사

by 프란치스코 posted Oct 25,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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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25. 윤 여임 엘리사벳 성녀(1923.7.2.-2021.10.22) 장례미사

이사25,6ㄱㄴㄷㅂ.7-9 마태11,25-30 

장소 및 일시: 청담동 성당 오전6시

 

 

 

귀가歸家의 여정

-“어떻게 살아야 하나?”-

 

 

 

어제는 참 전형적인 아름다운 가을 날씨였습니다. 지상의 풍경이 이렇듯 아름다우면 천상의 아버지 나라는 얼마나 아름답겠나 생각이들었습니다. 지상 세계가 아무리 아름답다해도 천상 세계의 아름다움에 비하며 희미한 그림자에 불과할 뿐이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윤여임 엘리사벳 자매를 위한 장례미사를 봉헌하기 위해 아버지의 집인 성전에 모였습니다. 문득 강론 서두를 쓰다가 성녀란 호칭을 붙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감히 ‘2021.10.25. 윤여임 엘리사벳 성녀 장례미사’라 썼습니다. 정말 1923.7.2일에 태어나 1944년 결혼 하신후 부부가 77년동안 함께 해로偕老하다가 2021,10.22일 선종하기 까지 만 98세 천수天壽를 누리다 아버지의 집에 귀가한 엘리사벳 자매입니다.

 

지지난 주 10.16일 토요일 병자성사를 드렸고 저는 매일 선종善終을 위한 생미사를 봉헌하였습니다. 그러다 지난 주 토요일 새벽 소천하셨다는 부음을 들은 다음, 생미사를 연미사로 바꿔 계속 미사봉헌하고 있으니 한결같이 성녀처럼 ‘지상의 삶’을 살다가 ‘천상의 삶’으로 옮아가셨음을 깨닫게 되니 얼마나 은혜롭고 감사한지요!

 

믿는 이들에게 죽음은 허무虛無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매불망寤寐不忘 꿈에 그리던 아버지의 집으로의 귀가임을 깨닫습니다. 문득 예전에 써놨던 죽음이란 자작시도 생각납니다. 흡사 엘리사벳 자매를 향한 주님 말씀처럼 들립니다.

 

-“땅위를 덮고 있는 고운 단풍잎들

  두려워하지 마라

  죽음은 귀가다, 해후다, 화해다, 구원이다

  “수고 하였다, 충실하고 슬기로웠던 종아! 내 안에서 편히 쉬어라”

  들려오는 자비하신 아버지의 음성”-1998.11.10

 

그러니 믿는 이들의 죽음은 아버지의 집으로의 귀가이자 천상탄일이 되고, 장례미사 역시 슬픔의 미사가 아니라 천상 집으로의 귀가인 기쁨의 축제가 됩니다. 다음 미사시 아름다운 감사송도 이를 입증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복된 부활의 희망을 주셨기에

저희는 죽어야 할 운명을 슬퍼하면서도

다가오는 영생의 약속으로 위로를 받나이다.

주님, 믿는 이들에게는 죽음은 죽음이 아니요

새로운 삶으로 옮겨감이오니

세상에서 깃들이던 이 집이 허물어지면

하늘에 영원한 거처가 마련되나이다.”-

 

사실 지지난주 병자성사를 드리러 갔을 때도 웬지 모를 평화롭고 안정된 분위기였었고, 부음을 들은 순간도 ‘아, 선종이구나!’하는 깨달음과 더불어 잔잔한 평화를 느꼈습니다. 엘리사벳 자매의 활짝 웃는 꽃같은 영정 사진을 보는 순간 직감적으로, ‘아, 엘리사벳 자매는 주님과 함께 부활하였구나!’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제 살아있는 우리 모두에게 과제가 주어졌습니다. 선물이자 과제인 이 한 번뿐인 소중한 인생을, 아버지의 집으로의 ‘귀가의 여정’을 ‘어떻게 잘 사느냐?’하는 과제가 부과된 것입니다. ‘어떻게 죽어야 하나?’는 물음은 ‘어떻게 살아야 하나?’는 문제로 직결됨을 봅니다.

 

“날마다 죽음을 눈앞에 환히 두고 살라”

 

바로 베네딕도 성인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좌우명으로 삼아 살아갈 때 바로 오늘 지금 여기서 환상이 걷힌 본질적 삶을 살게 됩니다. 또 하나 우리 귀가의 여정을 일일일생一日一生 하루로, 일년사계一年四季로 압축해 보며 내가 어느 지점에 위치해 있는가 확인 점검해볼 것을 권합니다. 깨어 남은 인생을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의 자세로 살게 될 것입니다. 제 경우는 하루로 압축해 보니 대략 오후 4시쯤, 일년사계로 압축해보니 초겨울쯤 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 삶은 여정입니다. 아버지 집으로의 귀가의 여정입니다. 남은 인생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삶은 선택입니다. 행복도 선택입니다. 선택의 은총입니다. 바꿀수 없는 선택의 여지없이 주어지는 것도 많지만, 하루하루 날마다 선택할 수 있는 것도 무궁무진無窮無盡입니다. 무엇을 선택합니까?

 

첫째, 꿈과 희망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절망이나 원망이 아닌 꿈과 희망의 선택입니다. 제1독서 이사야서의 꿈과 희망이, 하늘 나라의 비전이 참 아름답고 황홀합니다.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은연중 감지하는 현실입니다. 

 

“그분께서는 죽음을 영원히 없애 버리시리라.

주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얼굴에서 눈물을 닦아 내시고

당신 백성의 수치를 온 세상에서 치워 주시리라.

그 날에 이렇게들 말하리라.

보라, 이분은 우리의 하느님이시다. 

우리는 이분께 희망을 걸었고 이분께서는 우리를 구원해 주셨다

이분이야말로 우리가 희망을 걸었던 주님이시다.

이분의 구원으로 우리 기뻐하고 즐거워하자.”

 

바로 이런 궁극의 하느님 꿈, 하느님 희망을 선택해 살 때 아름답고 행복한 삶이겠습니다.

 

둘째, 찬미와 감사의 삶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불평이나 불만이 아닌 찬미와 감사의 선택입니다. 우리 영혼이 찬미와 감사의 양兩 날개를 달고 하느님 창공을 날며 사는 것입니다. ‘알렐루야’ 찬미의 삶을 살다가, ‘아멘’ 감사로 죽음을 맞이하는 것입니다. 바로 오늘 복음 전반부의 예수님의 찬미감사기도가 예수님 삶을 요약합니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져 엘리사벳 자매의 선종의 죽음이니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립니다.

 

셋째, 온유의 겸손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분노와 교만이 아닌 온유와 겸손의 선택입니다. 예수성심의 사랑이 바로 온유와 겸손입니다. 온유와 겸손의 평생 수행을 통해 예수님을 닮아가는 우리들입니다. 주님은 우리 모두 당신의 안식처에 초대하여 온유와 겸손을 배우기를 바라십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온유와 겸손, 얼마나 좋습니까! 참 사람의 덕목이자 참 영성의 잣대가 온유와 겸손입니다. 삶은 선택입니다. 행복은 선택입니다. 주님도 선택입니다. 이런 선택 역시 은총입니다. 그러니 잘 선택할 수 있도록 간절히 항구히 기도하십시오. 선택은 습관이 되고 성격이 되고 운명이 됩니다. 좋은 선택의 습관화가 얼마나 중요한지요! 

 

그러니 무엇보다 꿈과 희망을, 찬미와 감사를, 온유와 겸손을 선택하여 아름답고 행복한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이렇게 살도록 도와 주십니다. 

 

끝으로 믿는 이들의 삶을 기막히게 요약한 요즘 제가 즐겨부르는 ‘바다’라는 동요를 나눕니다. 흡사 갈매기는 아름다운 영혼을, 고기잡이 배들은 튼튼한 육신을 상징한다 싶습니다. 출항出港 했다가 귀항歸港 하는 참으로 믿는 이들의 행복한 하루를, 일생을 요약한다 싶은 동요입니다. 곡을 붙여 노래하면 그대로 흥겨운 찬미가가 됩니다.

 

-“아침바다 갈매기는 금빛을 싣고, 고기잡이 배들은 노래를 싣고

  희망에 찬 아침바다 노저어 가요, 희망에 찬 아침바다 노저어 가요.

 

  저녁바다 갈매기는 행복을 싣고, 고기잡이 배들은 고기를 싣고

  넓고 넓은 바다를 노저어 와요, 넓고 넓은 바다를 노저어 와요.”-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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