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기쁨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2021.11.4.목요일 성 가롤로 보로메오 주교(1538-1584) 기념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Nov 04,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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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4.목요일 성 가롤로 보로메오 주교(1538-1584) 기념일 

로마14,7-12 루카15,1-10

 

 

 

하느님의 기쁨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주님은 나의 빛, 나의 구원, 나 누구를 두려워하랴? 

 주님은 내 생명의 요새, 나 누구를 무서워하랴?”(시편27,1)

 

어제 강론의 주제는 춘풍추상春風秋霜이었고, 조선시대 최고의 성리학자이자 38세, 무고誣告로 죽임을 당한 만고의 충신, 조광조를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참으로 춘풍추상의 삶으로 당시 만인의 사랑을 받았던 조광조였기에 사후 많은 사람이 슬퍼했습니다. 일부 내용을 그대로 인용합니다.

 

-‘조광조의 벗들만이 슬픔으로 통곡했던 것이 아니다. 세상의 인심은 때론 정말로 정확해서 궁중 깊은 곳에서 정해졌을 운명에 대해서 함께 울어주기도 했으니, 선생에게 사사의 영이 내리자 아우 승조가 울면서 분주히 가는데 길가에 한 노파가 슬피 울며 와서 묻기를 “나으리는 무슨 일로 곡을 하십니까?”하였다. 답하기를 “나는 형이 죽어서 곡을 하는데 그대는 어째서 곡을 하는고?”하니, “나라에서 조광조를 죽였다 하니 어진 사람이 죽으면 백성은 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였다. 조광조는 불쌍한 백성들에게 희망을 주던 단 하나의 이름이 아니었던가!’-

 

과연 한 개인의 죽음에 대해 이렇게 만인이 슬퍼했던 경우는 전무후무前無後無했던 듯 싶습니다. 빛나는 희망의 별이 떨어진 아픔에 대한 슬픔이었을 것입니다. 참으로 춘풍추상의 선비이자 만인의 사랑을 받았던 절세絶世의 충신忠臣 조광조임을 깨닫습니다.

 

오늘 복음은 어제와 판이합니다. 어제가 예수님과 제자들의 추상秋霜같은 내적 모습이었다면, 오늘 복음은 ‘되찾은 양의 비유’와 ‘되찾은 은전의 비유’로 예수님의 자비하신 춘풍春風같은 외적 모습입니다. 되찾은 양의 비유에서 어떤 목자는 그대로 예수님이자 하느님을, 되찾은 은전의 비유 역시 어떤 부인은 그대로 예수님이자 하느님을 상징합니다.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내 양을 찾았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같이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되찾은 은전의 비유 역시 대동소이합니다. 하느님의 기쁨은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이며, 회개하는 사람 하나하나가 하느님께는 큰 기쁨이 된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하나하나 인간이 하느님께 기쁨이 되는 존재들인지, 여기 구원에서 제외될, 쓸모없다 버릴 사람은 하나도 없음을 깨닫습니다.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은전을 되찾았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하느님의 천사들이 기뻐한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기뻐하는 하느님의 기쁨에 모두 동참해 달라는 주님의 권고입니다. 그대로 춘풍추상같은 예수님의 모습이자 하느님의 모습입니다.

 

오늘 우리는 성 가롤로 보로메오 주교 기념미사를 봉헌합니다. 성인 역시 주님을 닮아 춘풍추상의 사람이었습니다. 만46세로 세상을 떠났지만 참으로 눈부신 업적에 치열한 삶이었습니다. 새삼 죽어야 비로소 휴식인 성인들의 삶임을 깨닫습니다. 성인이 밀라노 주교로 있을 당시 선종 몇 년 전 행적도 감동적입니다.

 

‘1576년 밀라노에 흑사병이 창궐하여 귀족들이 모두 도망쳤을 때에도 성인은 위험에 아랑곳하지 않고 끝까지 밀라노에 남아, 흑사병이 유행중에도 병자들을 일일이 찾아가 위로하며 병자성사를 주었고, 식량을 나눠주었으며, 예방법을 주지시키는 활약을 하였다. 성인은 오랜 극기와 과로로 점차 체력이 소모되어 1584년 11월3일 밀라노에서 46세로 선종하였다.’

 

가롤로 보로메오 성인의 선종전 마지막 임종어는 “주님, 저는 여기 대령했나이다.”였고, 성인의 성덕은 즉시 인정되어 사후 26년후 1610년 11월, 교황 바오로 5세에 의해 시성됩니다. 

 

어제 신비로운 공동체 체험을 잊지 못합니다. 주방장과 몇 형제들의 휴가로 빈자리에 봉사자의 도움으로 조촐한 식탁과 식탁에 앉은 가난한 수도형제들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새삼 수도가정공동체의 신비가 깊이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정말 다 다른 사람들이 주님과 한 몸을 이루어 주님의 한가족 공동체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신비로웠습니다. 형제 하나하나가 소중한 하느님의 선물처럼 느껴졌고, 주님 안에 하나되어 살아가는 가난한 수도공동체보다 더 적절한 하느님 증거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수도형제와 나눈 덕담도 잊지 못합니다.

 

-“천사님이 복사를 선줄 알았습니다!”

아침미사후 예쁘게 복사를 선 수도형제에게 선물한 덕담인데 실제 천사처럼 보였습니다.

 

“수사님은 ‘A+(에이 프라스)’이고 나는 ‘B+(비 프라스)’입니다.”

저녁식사후 함께 세기한 형제와 임시 주방장 형제에게 선물한 덕담입니다.-

 

엊그제 60대 초반의 자매가 89세 노모를 모시고 면담고백성사차 들린 일도 잊지 못합니다. 순수한 마음을 반영하듯 89세 노모의 얼굴도 맑고 환했고 고백내용도 진솔하고 또렷했습니다.

 

“보속은 기도하며 기쁘고 감사하게 행복하게 사시는 것입니다.”라는 제 말에 “어차피 살 바에야 그렇게 살아야죠!” 89세 노모의 화답이었습니다. ‘어차피’라는 우리 말마디가 새롭게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이어지는 자매의 말도 잊지 못합니다. “저는 자녀들이 잘 살기가 아닌, 올바로 살기를 가르쳤고 그렇게 살기를 바랍니다.” 잘 살기가 아닌 올바로 살기! 얼마나 귀한 가르침인지요. 면담고백성사를 드리며 89세 자매로부터 배워 깨달은 진리입니다.

 

믿는 이들은 모두 다 그리스도 예수님의 한몸의 지체임을 깨닫습니다. 바로 한몸 교회공동체의 신비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오늘 복음을 읽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몸중 한 지체가 떨어져 길을 잃고 헤매는데 주님이 맘 편할리가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 하나하나가 그리스도 예수님의 한 지체이자 예수님의 현존인 것입니다. 바로 우리 하나하나가 예수님인 것입니다. 참으로 존재감 충만한 삶이 되기 위해서는 한 몸 예수님의 공동체와 날로 깊이 결속되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그러니 교회공동체와 유리된 혼자의 고립단절의 삶은 얼마나 위태롭게 느껴지는 지요! 살아도 살아있는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바로 이런 한몸 공동체의 신비를 그대로 반영하는 제1독서 바오로 사도의 감동적인 말씀입니다. 사실 이런 자각에 투철하다면 형제를 도저히 심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형제를 심판하지 마라’는 주제에 이어지는 다음 감동적인 말씀입니다.

 

“우리는 살아도 주님을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님을 위하여 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든지 죽든지 주님의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셨다가 살아나신 것은, 바로 죽은 이들과 산 이들의 주님이 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그대는 왜 그대의 형제를 심판합니까? 그대는 왜 그대의 형제를 업신여깁니까?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저마다 자기가 한 일을 하느님께 사실대로 아뢰게 될 것입니다.”

 

우리 하나하나가 모두 ‘그리스도의 한 몸’의 지체들이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진리입니다. 바로 이런 진리를 속속들이 깨닫게 해 주는 미사은총입니다. 미사경문중 다음 은혜로운 대목을 기억할 것입니다. “간절히 청하오니, 저희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어 성령으로 모두 한 몸을 이루게 하소서.”

 

우리 하나하나가 회개하여 우리 삶의 제자리, 주님께 돌아와 당신과 한 몸 공동체를 이루어 살 때 ‘참으로 사는 것’이며 바로 이것이 하느님의 기쁨임을 깨닫습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날로 당신과의 일치를 깊이해 주십니다.

 

“주님께 청하는 오직 한 가지, 나 그것을 얻고자 하니, 내 한평생, 주님의 집에 살며, 주님의 아름다움 바라보고, 그분의 성전 우러러보는 것이라네.”(시편27,4).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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