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중심의 삶 -하느님이냐, 돈이냐?-2021.11.6.연중 제31주간 토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Nov 06,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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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6.연중 제31주간 토요일                                           로마16,3-9.16.22-27 루카16,9ㄴ-15

 

 

 

하느님 중심의 삶

-하느님이냐, 돈이냐?-

 

 

 

하느님 중심의 삶을 살 때, 안정과 평화, 단순소박한 본질적 깊이의 참 삶입니다. 견금여석見金如石, ‘황금을 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고려말 충신 최영장군의 삶을 요약한 말마디처럼 살 수 있습니다. ‘하느님 중심의 삶’을 살라고, 요셉 수도원 중앙 십자로 한복판에 자리잡은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하느님 중심의 삶-하느님이냐 돈이냐?-'

오늘 강론 제목입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강론중 아마 가장 많이 사용했던 제목 같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이 ‘삶의 중심’이요 ‘하느님 중심의 삶’입니다. 참으로 하느님을 사랑하는 영혼은 나이에 상관없이, 젊음과 늙음에 관계없이 아름답고 매력적입니다. 참으로 영혼을 아름답게 하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하느님 중심의 삶입니다. 언젠가 어느 자매와 주고 받은 대화입니다. 

 

-“빈손으로 와서 미안합니다.”

“아닙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자매님 자체가 최고의 선물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빈손으로 와도 반갑고 기쁩니다.”-

 

꽃 한송이를 선물로 가져온 분에겐 다음 같은 시도 선물한 적이 있습니다.

 

“꽃이 꽃을 가져오다니요/그냥 오세요/당신은 꽃보다 더 예뻐요!-

 

정말 남녀 불문하고 하느님을 사랑하는 영혼은 꽃보다 더 아름답습니다. 제가 무엇을 좋아하느냐 묻는 수녀님에게 저는 지체없이 대답한 적이 있습니다. 분명 먹을 것을 생각하며 물은 질문입니다.

 

“하느님을 좋아합니다.”

 

대답하며 폭소를 터뜨린 적이 있습니다. 하느님과 돈이 대결하는, 돈이 하느님이 된 자본주의 시대입니다. ‘하느님 맛’보다 ‘돈맛’을 좋아하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는 세상입니다. 과연 여러분은 ‘무슨 맛’으로 살아갑니까? 어려서부터 돈맛보다 하느님 맛 교육의 중요성을 깨닫습니다. 사람을 눈밝아 지혜롭게 하는 하느님 사랑이요, 사람을 눈멀어 어리석게 하는 돈 사랑입니다. 어제 받은 카톡 메시지도 반가웠습니다.

 

“신부님 강론을 매일 아침 가까운 지인들에게 전하는 데 감사의 톡이 왔어요. 한 지인은 독실한 불교신자인데 매일 아침 신부님 강론이 기다려지며 강론을 읽고 하루를 시작한다네요! 깊은 영성은 종교에 관계없이 울림을 주고 감동을 주며 삶을 되돌아보게 하나봐요!”

 

하느님의 모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이기에 마음 깊이에는 누구나 숨겨져 있는 보물같은 마음이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마침 애국가가 생각나 4절까지 출력하여 오늘은 시간나면 불러 보려 합니다. 1절을 보니 하느님 중심을 노래한 성가처럼 느껴지는 애국가였습니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만세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그래서 세계 가톨릭 국가중 성인 숫자 4위의 대한민국이요 전국 곳곳에 산재한 성지들입니다. 대한민국 땅 자체가 성지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대한민국의 줄임말, ‘한국’이란 이름 또한 기막힌 이름이란 생각이 듭니다. 또 해방후 많이 불렸던, 제가 산책중 좋아 자주 부르는 옛 대중가요 ‘일터로 가자’ 4절도 생각납니다.

 

“낙원이 어데냐고 묻지 말게나/심으며 웃는 얼굴 어화 낙원이로구나

내 가슴엔 비가 개어 하늘 푸르고/내가슴엔 언제나 봄바람 분다.”

 

흡사 하느님 중심의 삶의 기쁨을 신명나게 노래한 시처럼, 성가처럼 느껴지는 가사에 곡입니다. 수도원 일과표의 시스템도 순전히 하느님 중심의 삶을 강화하기 위한 것임을 깨닫습니다. 기도로 시작해서 기도로 끝나는, 하느님으로 시작해서 하느님으로 끝나는, 기도와 성독과 일이 균형잡힌 일과표가 끊임없이 하느님 사랑의 불을 붙여주며, 날로 하느님 중심의 삶을 깊이해 줍니다.

 

사실 가톨릭 신자들에게는 누구나 마음 깊이 순교영성의, 성인의 ‘디엔에이DNA’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하느님을 믿는 이들 누구나의 근원적 소망은 성인이 되고 싶은 마음일 것입니다. 그리하여 제가 가장 많이 권하는 권고는 “성인이 되십시오” 라는 말마디입니다. 비상한 성인이 아니라 하느님을 깊이 사랑하는 평범한 성인입니다. 또 제가 단골로 자주 인용하는 말마디 둘이 있습니다.

 

“노년의 품위 유지를 위해서는 세 필수 요소가 있다. 1.하느님 믿음, 2.건강, 3.돈이다. 절대로 이 우선순위가 바뀌어선 안된다. 특히 하느님 믿음이 빠져선 안된다. 하느님 믿음이 빠지면 건강이나 돈이 삶의 중심에 자리잡게 되어 우상이 되어 버리면 사람은 부패하여 변질되기 마련이다.”

 

“물보다 진한게 피이고 피보다 진한게 돈이고 돈보다 진한게 하느님 믿음이다. 하느님 믿음이 없을 때 돈앞에 속절없이 무너져 급기야 원수가 되는 혈연의 부모와 자식관계, 형제관계는 얼마나 많은가?”

 

이래서 재물을, 돈을 신비한 마성을 지닌 맘몬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롯도 당첨된 사이좋던 부부도 십중팔구 이혼한다 합니다. 바로 오늘 복음의 주제도 하느님과 재물, 돈에 관한 것입니다. 재물을 올바르게 사용하라는 것이며 불의한 재물로 친구들을 만들라 합니다. 바로 재물을, 돈을 많이 아낌없이 자선에 쓰라는 것입니다. 불의한 재물, 돈이라 합니다. 부정적 마성을 지닌 재물에, 돈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오늘 복음입니다.

 

“그러니 너희가 불의한 재물을 다루는 데에 성실하지 못하면, 누가 너희에게 참된 것을 맡기겠느냐?”

 

하느님 중심의 삶에 항구하고 충실할 때 비로소 돈의 주인이 되어 불의한 재물을 잘 유익하게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은 분명히 못박듯이 말씀하십니다.

 

“어떠한 종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마몬)을 함께 섬길수 없다.”

 

하느님이냐 돈이냐, 양자택일하라는 것입니다. 돈이나 재물(마몬)이 아닌 하느님 한 주인만 섬기고 재물이나 돈을 종처럼 부리며 참으로 자유로운 참사람으로, 하느님의 자녀로 살라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돈을 좋아하는 바리사이들의 참모습을 보여주며 따끔한 일침을 가하십니다.

 

“너희는 사람들 앞에서 스스로 의롭다 하는 자들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너희 마음을 아신다. 사실 사람들에게 높이 평가되는 것이 하느님 앞에는 혐오스러운 것이다.”

 

누구나 하느님 중심의 삶에서 떠날 때, 이런 돈을 좋아하는 바리사이들처럼 하느님 보시기에 혐오스런 자기 중심의 눈먼 교만한 삶이 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이런 바이사이들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왕년의 바리사이 제1독서 로마서의 바오로 사도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무수한 교우들에 대한 안부인사를 통해 그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 중심의 삶을 통해 얼마나 많은 교우들과 풍부한 우정관계를 맺고 있는지 참으로 놀랍습니다. 로마서 마지막 구절의 고백을 통해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 중심의 삶에 항구했던 바오로 사도임을 깨닫게 됩니다.

 

“홀로 지혜로우신 하느님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원토록 영광이 있기를 빕니다. 아멘.”

 

우리 역시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바오로 사도처럼, 삼위일체 하느님 중심의 삶을 장엄하게 고백합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하나 되어

전능하신 천주 성부 

모든 영예와 영광을 영원히 받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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