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을 ‘참으로(truely)’ 만난 사람들 -엘아자르, 자캐오, 제르투르다, 나-2021.11.16.화요일 성녀 제르투르다 동정(1256-1302) 기념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Nov 16,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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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16.화요일 성녀 제르투르다 동정(1256-1302) 기념일 

2마카7,1.20-31 루카6,27-38

 

 

 

주님을 ‘참으로(truely)’ 만난 사람들

-엘아자르, 자캐오, 제르투르다, 나-

 

 

 

‘참’ “참으로’ 제가 자주 사용하는 참 좋은 우리말입니다. ‘참으로 사는 것’은 초기 사막 수도승의 초미의 관심사였습니다. 참으로 살 때 참으로 죽을 수 있습니다. 참으로 살지 못하기에 참으로 죽음다운 죽음을 맞이하는 못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참으로 살지 못하기에 참으로 기쁨도 감사도 평화도 체험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늘 강론 주제는 주님을 참으로 만난 사람들입니다. 참으로에 강조점이 있습니다. 주님이든 사람이든 참으로 진짜 만나지 못하기에 여전히 외롭고 공허하고 목마른 것입니다. 아무리 오래 많이 살아도 참으로 살지 못하는 이들 많듯이 아무리 오래 만나도 참으로 만나지 못하는 이들도 많을 것입니다. 평생 살아가는 부부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참으로 주님을 만날 때 자연스럽게 회개와 더불어 겸손이 뒤따릅니다. 주님이든 사람이든 참으로 만날 때 참나를 알게되고 감동과 변화, 순수를 체험합니다. 오늘은 주님을 참으로 만난 사람들을 연대기순으로 배치하며 나눕니다. 주님을 참으로 만남으로 참으로 살았던 성인들입니다.

 

첫째, ‘엘아자르’입니다.

오늘 제1독서 마카베오 하권에 나오는 전설적 인물, 영웅이자 순교자인 성인 엘아자르입니다. 초지일관, 시종일관 살다가 하느님을 위해 영예롭게 순교한 엘아자르의 생애가 참 감동적입니다. 참으로 주님을 만났기에 끝까지 변절하지 않고 참 나를 살 수 있었고 주님 안에서 영원히 살 수 있었습니다. 

 

세상에는 변절로 참 자기를 잃고 살아도 참으로 살아있는 삶이 아닌 죽은 삶을 사는 이들도 많을 것입니다. 참으로 살기위해 자발적 순교의 죽음으로 영원한 삶을 살게 된 엘라자르는 참된 순교자의 모범입니다. 참 사랑에서 참 삶이요 참 순교의 죽음임을, 참으로 죽기 위해 참으로 사랑하며 참으로 사는 것이 전제됨을 깨닫습니다. 마지막 유언입니다.

 

“우리 나이에는 그런 가장된 행동이 합당하지 않습니다. 많은 젊은이가 아흔 살이나 된 엘아자르가 이민족들의 종교로 넘어갔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또한 조금이라도 더 살아 보려고 내가 취한 가장된 행동을 보고 그들은 나 때문에 잘못된 길로 빠지고, 이 늙은이에게는 오욕과 치욕만 남을 것입니다.

 

내가 비록 지금은 인간의 벌을 피할 수 있다 하더라도, 살아서나 죽어서나 전능하신 분의 손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 나는 이 삶을 하직하여 늙은 나이에 맞갖은 나 자신을 보여 주려고 합니다.”

 

이렇게 90세 노년에 까지 한결같은 삶을 산 성인들은 참 드물 것입니다. 이렇게 엘아자르는 젊은이들뿐 아니라, 온민족에게 자기의 죽음을 고결함의 모범과 덕의 귀감으로 남기고 죽습니다. 후대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이런 보고 배울 죽음의 선물보다 더 귀하고 좋은 선물은 없을 것입니다.

 

둘째, ‘자캐오’입니다.

어제 주님을 참으로 만나 눈이 열린 눈 먼 사람에 이어 참으로 주님을 만나 마음의 눈이 열린 자캐오의 등장입니다. 앞서 복음의 재산이 많아 주님을 따르는 추종을 거부하고 슬프게 떠난 부자와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부자 세관장 자캐오입니다. 앞서 추종을 거부하고 떠난 부자는 실은 주님을 만났으나 참으로 만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외관상 세관장이자 죄인이자 부자인 자캐오는 내적으로 주님을 갈망했던 순수한 믿음의 사람이었음을 봅니다. 편견을 넘어 이런 자캐오의 진면목을 보신 예수님은 무화과 나무 위에서 자기를 보는 자캐오의 순수한 갈망과 믿음을 한 눈에 알아보셨고 위를 쳐다 보시며 그에게 이르십니다.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

 

자캐오는 얼른 내려와 예수님을 기쁘게 맞아들이니, 예수님과의 결정적 참 만남의 구원입니다. 즉시 자기 재산을 아낌없이 나누는 회개의 실천을 통해 그가 참으로 주님을 만났음을 봅니다. 참으로 주님을 만나 재산을 아낌없이 나눔으로 회개의 진정성과 더불어 부자의 구원도 가능함을 입증한 성인 자캐오입니다.

 

앞서 많은 재산에 슬프게 떠난 부자와는 정반대의 반응입니다. 주님을 참으로 만난 자캐오의 감동과 회개의 결행에 이어 예수님 역시 감동으로 화답합니다. 순수와 순수, 감동과 감동의 참 만남에 참 삶의 체험입니다. 예수님의 자캐오에 대한 감격에 벅찬 구원선언입니다. 참으로 주님을 만날 때 회개의 구원이요 참 삶의 시작임을 깨닫습니다.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아들은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

 

셋째, ‘제르투르다’ 성녀입니다.

오늘 우리 베네딕도 수도회 수도자들은 헬프타의 성 마리아 시토회 수녀원의 수녀인 제르투르다 성녀 기념미사를 봉헌합니다. 교회로부터 정식적인 시성식을 거치지는 않았지만, 성인으로 인정받아 공경을 받았고, 1677년 교황 클레멘스 12세는 모든 교회가 기념일을 지내도록 지시합니다.

 

참으로 예수님을 만났던 중세의 신비가, 제르투르다 성녀는 특히 예수 발현 체험을 통해 심오한 내적상태로 들어간 후 자신을 그리스도의 신부로, 그리스도를 자신의 영적 신랑으로 보고 최초로 예수 성심에 대한 공경을 실천합니다. 

 

1288년 제르투르다는 합병증을 앓아 병상에 눞게 되고 오랜 투병 생활을 하던 중 1302년 11월16일 만46세 나이에, “아! 신랑께서 오신다.” 부르짖으며 선종의 죽음을 맞이합니다. 성녀는 연옥 영혼들에 대해 연민과 동정을 느꼈으며, 이들을 위한 기도를 촉구했습니다.

 

“영원하신 아버지, 연옥에 있는 모든 죄인들과 온 세상 교회에 있는 죄인들과 내 집안과 내 가정 안에 있는 죄인들을 위하여 오늘 온 세상에서 드리는 모든 미사성제와 더불어 당신 성자 예수의 가장 값진 피를 당신께 봉헌하나이다. 아멘.”

 

넷째, ‘나’입니다.

결국 강론의 초점은 오늘 지금 여기 ‘나’로 집중됩니다. 강론을 쓰고 매일 미사를 봉헌하는 저는 물론이고 모든 신자들 하나하나가 주님을 참으로 사랑해야 하고, 주님을 참으로 만나야 하고, 참으로 회개해야 하고 참으로 살아야 합니다. 아무리 오래 살고 많이 만나도 주님을 참으로 만나 참으로 사랑하고 참으로 살지 못하면 여전히 공허하고 외롭고 목마른 삶이요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을 참으로 만나 참으로 사랑하고 참으로 회개하며 참으로 살 때 성인의 삶이겠습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당신을 참으로 만나 참 사랑의 성인이 되어 살게 하십니다.

 

“예수님, 당신은 저의 전부이옵니다.

저의 사랑, 저의 생명, 저의 희망, 저의 기쁨, 저의 행복이옵니다.

하루하루가 감사와 감동이요 감탄이옵니다.

날마다 새롭게 시작하는 아름다운 하루, 파스카의 새날이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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