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19.연중 제33주간 금요일 1마카4,36-37.52-59 루카19,45-48
우리가 하느님의 성전聖殿입니다
-전례와 성전정화-
“여러분이 하느님의 성전이고 하느님의 영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다는 사실을 모르십니까? 누구든지 하느님의 성전을 파괴하면 하느님께서도 그자를 파멸시킬 것입니다. 하느님의 성전은 거룩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바로 하느님의 성전입니다.”(1코린3,16-17)
'우리가 하느님의 성전입니다.' 번쩍 떠오른 생각에 감사했습니다. 아무리 자연환경이 좋고 보이는 건물 성전이 좋아도 그 안에 믿는 사람들이 없으면 얼마나 쓸쓸하고 허전하겠는지요. 멀리 갈 것 없습니다. 바로 여기 불암산 기슭 요셉 수도원이 그 참 좋은 증거입니다. 수도원 설립 초창기부터 34년째 살아오면서 실감하는 수도원의 세 특징이 자랑스럽습니다.
‘1.불암산을 배경한 천혜의 아름다운 자연경관, 2.수도권은 물론 대한민국 어디서나 편리한 교통 환경, 3,수도형제공동체’, 참 좋은 세 조건을 갖춘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입니다. 초창기부터 얼마나 많은 분들이 끊임없이 고향집을 찾듯 수도원을 방문하는지 모릅니다. 참 많은 영혼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수도원입니다. 여기서 나온 제 자작시 좌우명 한 연이 생각납니다.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활짝 열린 앞문, 뒷문이 되어 살았습니다.
앞문은 세상에 활짝 열려 있어
찾아오는 모든 손님들을 그리스도처럼 환대하여
영혼의 쉼터가 되었고
뒷문은 사막의 고요에 활짝 열려 있어
하느님과 깊은 친교를 누리며 살았습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받으소서.”
얼마나 좋은 하느님의 집, 기도의 집, 수도원인지요! 바로 이런 수도원도 가장 결정적인 요소인 수도형제공동체가 없다면 머지 않아 폐사지廢寺址처럼 전락할 것입니다. 정말 결정적인 보물은 자연환경도, 편리한 교통도 아닌, 하느님의 참 좋은 선물인 수도형제공동체인 것입니다.
아무리 거금을 주고도 스카웃 할 수 없는 하느님의 보내주신 참 좋은 선물인 수도공동체 형제들입니다. 이런 수도원 성전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공동체 성전이 오염되어 있다면, 예수님이 오셔도 오늘의 복음처럼 분노하실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일 것입니다.
“‘나의 집은 기도의 집이 될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너희는 이곳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
세상의 마지막 영적 보루이자 세상의 영적 중심지인, 세상을 성화해야할 수도원 성전이 세상에 속화되어 간다면 이보다 더 큰 영적 불행은 없을 것입니다. 외관상 성전정화가 궁극으로 지향하는 바는 내적 성전인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공동체입니다.
이래서 보이는 성전에서 평생, 매일, 규칙적으로 끊임없이 거행되는 찬미와 감사의 시편성무일도와 미사의 공동체 전례입니다. 공동체 전례가 바로 내외의 성전을, 특히 내적 형제공동체 성전을 끊임없이 정화하고 성화합니다. 만일 공동체 전례가 사라진다면 교회나 수도원의 거룩한 성전도 곧 강도들의 소굴로 전락해 버릴 것입니다.
보십시오. 오늘 제1독서 마카베오기 4장의 성전정화와 봉헌이 그 생생한 증거입니다. 유다와 그 형제들은 적을 무찌른후 백성들과 즉시 성전을 정화하고 공동체 전례를 봉헌합니다. 말그대로 내외적 성전의 정화요 성화입니다. 공동체 전례와 내외적 성전정화가 얼마나 긴밀히 하나로 연결되었는지 깨닫습니다.
‘그들은 새로 만든 번제 제단 위에서 율법에 따라 희생 제물을 바치고 그 제단을 다시 봉헌하였다. 온 백성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자기들을 성공의 길로 이끌어 주신 하늘을 찬양하였다. 그들은 여드레 동안 제단 봉헌을 경축하였는데, 기쁜 마음으로 번제물을 바치고 친교 제물과 감사제물을 드렸다.---백성은 크게 기뻐하였다.’
여드레 동안의 축제가 흡사 주님 성탄 8부 축제를, 주님 부활 8부 축제를 연상케 합니다. 새삼 내적 성전인 공동체의 정화와 일치에 공동전례가 얼마나 결정적 역할을 하는지 깨닫게 됩니다. 오늘 복음의 예수님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날마다 성전에서 말씀을 가르치셨고, 온 백성은 그분의 말씀을 듣느라고 곁을 떠나지 않았기에, 적대자들은 예수님을 없앨 방법을 찾았지만 찾지 못합니다.
똑같은 예수님께서 날마다 공동전례를 통해 우리를 가르치시고 정화하기에 세상에 속화되지 않고 세상을 정화하고 성화할 수 있음을 깨닫습니다. 공동 전례 은총이 우리들 하나하나 끊임없이 정화하여 죽는 그날까지 깨어 주님의 평생 학인으로, 주님의 평생 전사로, 주님의 평생 형제로 살 수 있게 합니다. 다음 대목의 고백 그대로입니다.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주님의 집인 수도원에서
주님의 전사로, 주님의 학인으로, 주님의 형제로 살았습니다.
끊임없이 이기적인 나와 싸우는 주님의 전사로
끊임없이 말씀을 배우고 실천하는 주님의 학인으로
끊임없이 수도가정에서 주님의 형제로 살았습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받으소서.”
끊임없이 바치는 열렬한 하느님 사랑의 표현인 공동 전례 은총이 공동체를 정화하고 성화하여 주님 전우애의 공동체로, 주님 학우애의 공동체로, 주님 형제애의 공동체로 만들어 준다는 것입니다. 이런 진리는 비단 수도공동체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코로나 사태로 인해 교회공동체 성원 모두에게 해당되는 진리가 되었습니다.
이제 가정 교회와 전 신자가 모인 교회가 공존하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이럴수록 서로 모두가 깨어 언제 어디서나 주님의 전사로서 전우애를, 주님의 학인으로서 학우애를, 주님의 형제로서 형제애를 더욱 북돋우며, 깨끗하고 거룩한 공동체 성전으로 살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주님은 날마다 당신 성전에서 거행하는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성전인 우리는 물론 세상을 정화하고 성화해 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