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定住의 영성 -모든 시간은 하느님 손 안에 있다-2021.11.23.연중 제34주간 화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Nov 23,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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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23.연중 제34주간 화요일                                                      다니2,31-45 루카21,5-11

 

 

정주定住의 영성

-모든 시간은 하느님 손 안에 있다-

 

 

어제는 얼음이 얼고 첫눈이 내린다는 소설이었고, 오늘은 완연한 초겨울 날씨입니다. 지금은 연중 ‘끝’주간이고 다음 주는 교회 전례력으로 새해의 대림시기가 ‘시작’됩니다. 마지막 주간답게 다니엘서나 루카 복음의 말씀 배치도 종말에 관한 내용들입니다. 종말의 끝은 늘 새로운 시작이자 새로운 희망이요 절망은 없다는 것입니다. 하느님 사전에 없는 말이 절망입니다. 마침 오랜만에 거름을 주고자 판, 배밭의 구덩이와 배나무 마다 가지런히 놓여 있는 비료부대를 보는 순간 오래 전 시가 생각났습니다.

 

-‘살수록 힘들다/하루하루 산다

다시 시작된 배농사/가지런히 파진 흙구덩이/든든하다

끝은 시작이다/삶은 엄숙하다

묵묵히 생명의 품되어/흙으로 산다/마지막이 고와야 한다

소나무를 줄기차게 타고 오르던

하늘 향한 담쟁이/장엄한 단풍 사랑으로/소나무를 장식하며

은혜 갚고 있다/이래야 끝은 아름다운 시작일 수 있다”-1998.11.

 

끝은 희망의 시작입니다. 다니엘서나 묵시사상의 주제는 단 하나 ‘희망’입니다. 위협이나 공포가 아닌 하느님께 희망을 두라는 것입니다. 하느님 안에 정주하라는 것입니다. 세상이 불안하고 민심이 흉흉할수록 빛을 발하는 정주의 영성입니다. 정주의 중심, 정주의 평화, 정주의 기쁨, 정주의 희망, 정주의 지혜 등 정주 영성의 장점을 이야기하면 끝이 없습니다. 우리 베네딕도회 수도승들의 으뜸 서원이 바로 정주 서원입니다.

 

정주의 빛나는 표상이 수천년 전통의 수도원이나 성전들이고 여기 언제나 거기 그 자리에 자리 잡고 있는 수도원 성전, 그리고 수도원 배경의 불암산입니다. 이 모든 정주의 현실이 궁극적으로 상징하는 바 하느님 안에, 교회 안에 정주하는 것입니다. 지난 주일 삼종 기도후 세계 젊은이의 날에 젊은이들에게 하신 교황님 강론도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교황님은 젊은이들이 교회 안에서 집처럼 편히 머물며 주인공들이 되라고 격려하셨습니다. 고향의 가정집 같은 교회 안에서 정주하며 활력을 회복하라는 말씀은 비단 젊은이들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해당됩니다. 가정 상실의 시대, 교회가 만인의 치유와 위로, 환대의 가정집이 되어야 하는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많은 영혼들이 편안한 고향집을 찾듯이 끊임없이 주님의 집, 수도자들이 수도가정을 이뤄 사는 정주의 요셉 수도원을 찾습니다.

 

모든 것이 변합니다. 모든 것이 지납니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영원한 것은 하느님 한 분 뿐입니다. 모든 시간은 하느님 손 안에 있습니다. 참으로 영원하신 하느님 안에 정주할 때, 온갖 불안과 두려움, 환상은 말끔히 걷힙니다. 부화뇌동, 경거망동하지 않고, 현실을 직시하며, 세상 우상들이나 사탄에 속지 않고, 제자리에서 제정신으로 제대로 살 수 있습니다. 더불어 생각나는 아빌라의 데레사의 ‘아무것도 너를’ 이란 기도시입니다. 

 

-“아무것도 너를 슬프게 하지 말며/아무 것도 너를 혼란케 하지 말지니

모든 것은 다 지나가는 것/다 지나가는 것

오 하느님은 불변하시니/인내함이 다 이기느니라

하느님을 소유한 사람은/모든 것을 소유한 것이니/하느님만으로 만족하도다

 

네 소원이 무엇이뇨/네 두려움은 무엇이뇨

네 찾는 평화는 주님께만 있으리/주님 안에 숨은 영혼이/무얼 더 원하리오

사랑하고 사랑하여/주님께 모든 사랑 드리리

주님만을 바라는 사람은/모든 것을 차지할 것이니

하느님만으로 만족하도다/하느님만으로 만족하도다”-

 

그대로 정주 영성을 노래한 기도시입니다. 하느님만으로 만족한, 하느님만으로 행복한 정주의 영성가입니다. 알고 보니 아빌라의 데레사 정주영성의 대가입니다. ‘아무 것도 너를’ 이란 성가를 제 장례미사 퇴장성가로 부탁하고 싶습니다. 오늘 다니엘서의 주인공 다니엘 역시 정주영성의 대가입니다. 

 

꿈과 환시의 해몽을 청하며 불안과 두려움에 떠는 바빌론 대 제국의 임금 네부카드네자르와는 너무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바빌론에 유배중이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정주의 예언자, 다니엘은 희망과 구원의 표징이 되고 있음을 봅니다. 오늘 꿈의 해몽에 앞서 다니엘의 하느님 찬미가를 보면 그가 얼마나 하느님 안에 깊이 정주한 정주 영성의 대가인지 담박 드러납니다.

 

“지혜와 힘이 하느님의 것이니

하느님의 이름은/영원에서 영원까지 찬미받으소서

그분은 시간과 절기를 바꾸시는 분

임금들을 내치기도 하시고/임금들을 세우기도 하시며

현인들에게 지혜를 주시고/예지를 아는 이들에게 지식을 주시는 분이시다

그분은 심오한 것과 감추어진 것을 드러내시고

어둠속에 있는 것을 알고 계시며/빛이 함께 머무르시는 분이시다.

저희 조상들의 하느님

제가 당신께 감사드리며 당신을 찬양합니다.

당신께서는 저에게 힘을 주셨습니다.”(다니2,20-23)

 

정주 영성에 끊임없이 하느님께 바치는 찬미와 감사의 공동전례기도가 얼마나 결정적 도움이 되는지 깨닫습니다. 하느님의 지혜와 힘을 고스란히 우리의 것으로 만드는 정주 영성이요 그 빛나는 모범이 다니엘입니다. 다니엘의 꿈 해몽은 세상 제국들이 덧없이 무너져 내림을 보여줍니다. 마지막 해몽의 결정적 풀이입니다.

 

“이 임금들의 시대에 하늘의 하느님께서 하 나라를 세우실 터인데, 그 나라는 영원히 멸망하지 않고, 그 왕권이 다른 민족에게도 넘어가지 않을 것입니다. 그 나라는 앞의 모든 나라를 부수어 멸망시키고 영원히 서 있을 것입니다. 이는 아무도 돌을 떠내지 않았는데, 돌 하나가 산에서 떨어져 나와, 쇠와 청동과 은과 금을 부수는 것을 임금님께서 보신 것과 같습니다.”

 

참으로 통쾌, 상쾌, 유쾌한 삼쾌의 꿈해몽입니다. 바로 이 영원한 하느님 나라, 예수님의 나라는 자랑스럽게도 2000년 전통의 가톨릭 교회를 통해 실현되고 있지 않습니까! 모든 제국들이 수없이 명멸明滅했지만 가톨릭 교회는 영원한 현재 진행형입니다. 제1대 베드로 사도 교황으로 시작되어 현재 제266대 프란치스코 교황이니 이 얼마나 놀라운 기적입니까!

 

정주영성의 대가 다니엘입니다. 다니엘의 깊고 풍부한 지혜와 지식, 해몽과 예언을 통해 정주 영성의 은총이 얼마나 놀랍고 풍성한지 깨닫습니다. 다니엘을 능가하는 정주영성의 대가, 바로 우리 구원자 파스카의 예수님이십니다. 어제 월요일 9시경 찬미가 1절의 고백이 참 은혜로웠습니다.

 

“성인들 생명이요 길이며 희망/구원의 주님이신/성자 그리스도님

당신은 정의 평화 베푸시오니/기쁨의 찬미가를 부르나이다.”

 

우리의 생명이요 길이며 희망이신 주 예수님께서 오늘 복음에서 강조하시는 바 역시 정주영성입니다. 그대로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너희는 속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내가 그리스도다.’ 또 ‘때가 가까웠다.’하고 말할 것이다. 그들 뒤를 따라가지 말라.”

 

영적 사기꾼에 속지 말고 정신 바짝 차려 오늘 지금 여기 내 삶의 자리 하느님 안에 정주하라는 것입니다. 경거망동, 부화뇌동 흔들리지 말고, 뿌리 없이 표류하며 방황하지말고, 하느님 중심에 깊이 정주의 믿음의 뿌리를 내리고, 요지부동 내 삶의 제자리에서 깨어 맑은 제정신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내일 세상 종말이 오더라도 오늘 사과나무를 심는 자세로 살라는 것입니다. 참으로 세상이 어둡고 어지럽고 혼란할수록 빛을 발하는 정주 영성입니다. 부단히 내 삶의 자리 초월적 거점에서 하느님의 시야를 지니고 넓고 깊게 살게 하는 정주 영성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날로 깊은 정주 영성을 살게 해 주십니다. 다시 늘 고백해도 새롭고 좋은, 정주의 중심인 파스카의 주 예수님께 대한 사랑의 고백기도로 강론을 마칩니다.

 

“주 예수님!

눈이 열리니 

온통 당신의 선물이옵니다.

당신은 생명과 빛, 진리와 사랑이옵니다.

당신을 찾아 어디로 가겠나이까

새삼 무엇을 청하겠나이까

오늘 지금 여기가 당신의 하늘 나라 천국이옵니다.

 

주 예수님!

당신은 저희의 전부이옵니다.

저희 사랑, 저희 생명, 저희 기쁨, 저희 희망, 저희 평화, 저희 행복이옵니다.

하루하루가 감사와 감동이요 감탄이옵니다.

날마다 새롭게 시작하는 파스카의 새날, 아름다운 하루이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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