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26.연중 제34주간 금요일 다니7,2ㄴ-14 루카21,29-33
바라봄의 관상
-하느님 나라의 표징을 읽고 삽시다-
어제에 이어 시편 화답송 후렴이 똑같습니다. “영원히 찬송하고 찬양하여라”, 참으로 관상적 삶을 위해 어느 때보다 하느님 찬송과 찬양이 절박한 시절입니다.
“온 세상 사람들아, 주님을 찬양하여라.
주님 사랑 우리 위에 꿋꿋하셔라
주님의 진실하심 영원하셔라.”(시편117.1-2)
영성체송 시편도 은혜롭습니다. 코로나와 기후위기의 시대, 영적 관상의 깊이의 삶이 날로 절실해 지는 시대입니다. 20세기 베네딕도회 영성을 대표하는 세 분의 관상가를 연대기순으로 소개하고 싶습니다. 장 레크레르끄(1911-2000), 토마스 머튼(1915-1968) 그리고 드 브궤(1926-2011) 신부입니다. 아마도 베네딕도 규칙에 대한 연구에서 고 이형우 시몬 베드로 아빠스의 논문 지도 교수였던 드 브궤 신부님을 능가할 분은 아무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이 장 레크레르끄와 토마스 머튼이, 토마스 머튼이 1968년 선종하기까지 1950년부터 무려 18년간 나눈 서신들입니다. 양극단의 관상가가 얼마나 서로 잘 보완하고 이해하고 있는 지 놀랍습니다. 장 레크레르끄 신부는 707이라는 여객기 번호 별명이 붙을 정도로 세상 곳곳 수도원을 방문했던 외향적인 분이었고, 토마스 머튼은 세상 곳곳의 사람들이 그분이 머문 게세마니 트라피스트 수도원을 찾았던 큰산같은 아주 내향적인 분이었습니다.
세 관상 영성 대가의 공통점은 하느님께 대한 갈망과 배움에 대한 사랑, 그리고 수도승 삶에 대한 열렬한 사랑입니다. 오늘 ‘바라봄의 관상’이란 강론 주제에 문득 떠오른 일화의 소개였습니다. 이기락 신부의 ‘아남네시스(기억, 추억, 회고라는 뜻의 그리스말로 성체성사를 뜻함)’라는 서품 25주년을 맞이하여 출간한 책(82-83쪽)에 나오는 저에 관한 내용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세례를 축하하며 이수철 신부의 ‘바라봄(觀)’이라는 시를 선물로 드립니다.
-‘전체를 보는 것이다/삶은 흐른다.
애정어린 시선으로 보는 것이다/기다리는 것이다
아버지의 뜻을 헤아리는 것이다.
가을의 황홀함과 겨울의 적요/빛과 어둠
아름다움과 추함/강함과 약함
함께 받아들이는 것이다/사랑하는 것이다’-1998.11.4.
이수철 신부의 시에서처럼 우리의 바라봄도 예수님처럼 전체를 보고, 애정 어린 눈길로 바라보고,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며 기다릴 줄 알게 되었으면 합니다.”-2001.2.11. 청담동 성당 연중 제6주일 강론중-
바로 이런 바라봄의 관상적 시선으로 제1독서 다니엘서를 묵상합니다. 모든 것은 지납니다. 모든 것은 강물 흐르듯이 흐릅니다. 그 영원할 것 같던 대 제국 바빌론이, 메디아가. 페르시아가, 그리스가 마침내는 로마제국이 무너져 사라졌습니다. 바로 첫 번째 사자같은 짐승은 바빌론을, 두 번째 곰같은 짐승은 메디아를, 세 번째 표범같은 짐승은 페르시아를, 네 번째 커다란 쇠이빨을 가진 짐승은 그리스 제국을 상징합니다.
이 네 제국이 명멸한 후 주님의 영원한 나라를 환시중에 바라보는 관상가 다니엘입니다. 바로 다니엘은 우리가 이 거룩한 미사중에 모시게 될 사람의 아들, 파스카의 예수님을 미리 보여줍니다. 다니엘서 마지막 부분이 고무적이라 그대로 인용합니다.
“내가 이렇게 밤의 환시 속에서 앞을 내다보고 있는데, 사람의 아들같은 이가, 하늘의 구름을 타고 나타나, 연로하신 분께 가자, 그분 앞으로 인도되었다. 그에게 통치권과 영광과 나라가 주어져, 모든 민족들과 나라들, 언어가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를 섬기게 되었다. 그의 통치는 영원한 통치로서 사라지지 않고,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않는다.”
그대로 오늘 복음을 통해, 또 2000년 유구한 역사의 가톨릭교회를 통해 서서히 실현되고 있는 다니엘의 예언입니다. 다니엘처럼 오늘 복음의 예수님 역시 바라봄의 관상의 대가임이 분명합니다. 무화과 나무의 비유를 통해 오늘 지금 여기 곳곳에서 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알리는 하느님 나라의 표징을 알아채라 하십니다.
끊임없이 변화하고 흐르는 세상 속에서도 하느님 나라의 표징을 통해 영원한 말씀이신 그분을 깨달아 알아 모시고 살라는 것입니다. 바로 우리의 정주영성도 우리 모두 관상가가 되어 이런 영원하신 주님을 바라보고 사는 데 궁극의 목적이 있음을 봅니다.
“이와같이 너희도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온 줄 알아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가 지나기 전에 모든 일이 일어날 것이다.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시공을 초월하여 대림을 앞둔 연중 마지막 34주간, 오늘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참으로 깨어 바라봄의 관상가가 되어 오늘 지금 여기 도래하는 하느님 나라의 표징을 알아 채어 읽고 살라는 말씀입니다. 코로나와 기후위기로 혼돈의 어둠 중에 있는 오늘날 우리에게 주시는 시의적절한 주님의 복음 말씀입니다. 더불어 생각나는 행복기도시 한 연입니다.
“주님,
눈이 열리니 온통
하느님 나라의 표징들이옵니다.
당신의 선물들이옵니다.
당신을 찾아 어디로 가겠나이까
새삼 무엇을 청하겠나이까
오늘 지금 여기가 지상천국地上天國, 하느님 나라이옵니다.”
호랑이 한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했습니다. 코로나의 기승으로 인해 참으로 예측불가능한 어둡고 무겁고 암울한 세상일수록 하느님 사랑 안에 깊이 머물러 사는 관상가의 삶이 참으로 절실한 시절입니다. 어제 수도원에서 피정하고 떠나면서 이런 딱한 현실에 보름동안 미사를 청한 어느 자매의 지향을 소개합니다.
-“1.코로나로 고통받고 있는 모든 분을 위하여
2.모든 의료진들과 봉사자들 관련된 모든 분들 위하여
3.육체적 정신적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모든 분들 위하여
+신부님, 하루에 100명 이상이 자살을 한다고 하네요. 그중 청소년들이 많대요.
4.청소년들과 젊은이들을 위하여
5.하느님을 믿지 않는 이들을 위하여”-
세상을 향한 연민의 사랑이 넘치는 자매입니다. 자살자, 사고사, 병사로 소리없이 죽어가는 불쌍한 이들이 참 많은 흡사 내전內戰 상태를 방불케 하는 현실입니다. 정치가들의 각성과 회개를 촉구합니다. 참으로 깨어 하느님께 희망을 두고 주님 안에서 힘껏 하루하루 관상적 깊이의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이렇게 살도록 도와 주십니다. 오늘 복음 환호송의 권고가 적절합니다.
“너희는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루카21,36).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