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주님이자 스승이신 하느님 -겸손, 경청, 배움, 순종-2021.12.10.대림 제2주간 금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Dec 10,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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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10.대림 제2주간 금요일                                                        이사48,17-19 마태11,16-19

 

 

영원한 주님이자 스승이신 하느님

-겸손, 경청, 배움, 순종-

 

 

인자요산仁者樂山 지자요수知者樂水, 어진 이는 산을 좋아하고 슬기로운 이는 물을 좋아한다는 말입니다. 한 밤중 잠깨어 숙소 문을 열고 나서는 순간 본능적으로 바라보는 하늘과 산입니다. 바다가 그리울 때는 바다를 바라보듯 하늘을 바라봅니다. 어느 자매와 주고 받은 메시지도 생각납니다.

 

“신부님은 산속에 살기에 바다를 감상하라고 파도 소리 바다를 보내드려요.” 

“산이 그리울 때는 산이 되고, 바다가 그리울 때는 바다가 되지요.”

“아!”

 

33년 동안 날마다 참 많이 바라본 하늘과 산이며 써놓은 시도 참 많습니다. 문득 생각난 두 편의 시를 소개합니다. 지금도 생각나는 당시 작시作詩할 때의 느낌입니다.

 

“산처럼

머물러 살면

 

푸른 하늘

흰구름

빛나는 별들

 

아름다운 하느님

배경이 되어 주신다”-1997.8.11.

 

“당신이

그리울 때

당신이

보고 싶을 때

 

눈을 들어

하늘을 본다

 

한눈 가득 들어오는

가슴 가득 안겨오는

 

푸른 하늘

흰 구름

빛나는 별들

 

한눈 가득 들어오는

가슴 가득 안겨오는

그리운 당신

보고 싶은 당신”-1998,11.22

 

물론 여기서 ‘당신’이 지칭하는 대상은 영원한 그리움의 스승이자 주님이신 하느님입니다. 엊그제와 어제 양일간 “오소서, 주 하느님! 당신이 되게 하소서. 당신의 믿음이, 당신의 희망이, 당신의 사랑이, 당신의 신망애信望愛가 되게 하소서.”로 이어지는 긴 헌시獻詩 기도문이 인용된 강론에 대해 소감을 밝힌 카톡 메시지 둘을 나눕니다. 

 

“사랑하는 신부님!!!

어제 성모님 축일 강론 마지막 말씀, 오늘 첫부문, ‘오소서, 주 하느님 당신이 되게 하소서’ 계속 이어지는 깊은 관상에서 나온 주옥같은 말씀으로 이른 새벽부터 저희에게 성령의 힘으로 아버지만 찬미하고 귀한 자녀로 기쁘게 살아가도록 이끌어 주심에 깊이 머리 숙여 감사인사 드립니다.”-헬레나

 

“감사합니다. 신부님!

기도문이 어제도 오늘도 가슴에 깊은 울림을 줍니다.

 

‘당신만 남고 

나는 온전히 사라지게 하소서

그리하여

하느님이, 당신이 되게 하소서’

 

이 구절에 모든 것이 함축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삶의 이유 지향 목표

생명이 지속되는 이유

이 모든 것에 대한 답이라 느껴집니다. 감사합니다.”-아녜스

 

이래서 영원한 스승이자 주님이신 하느님과의 깊은 사랑과 생명의 소통을 위한 숨쉬듯 끊임없는 기도와 회개를 권하는 것입니다. 요 몇년동안 집무실 안에는 ‘스파트 필름’이라는 식물이 있습니다. 꽃말은 ‘세심한 사랑’이요 실내 공기 정화 식물이라 합니다. 참 특이한 것이 며칠마다 반드시 물을 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 시들어 죽어가다가도 물만 주면 곧 싱싱하게 살아나는 것이 꼭 영혼에 대한 기도의 물주기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영혼과 기도의 관계가 그러합니다. 스파트 필름에 자주 물주듯 끊임없이 평생 영혼에 기도는 영혼 생존을 위한 필수 조건입니다. 두루두루 이런 시각에서 보면 오늘 말씀에 대한 이해가 분명해 집니다.

 

오늘 말씀에서 주님을 좌절케 한 인간의 부정적 반응들은 그대로 우리의 모습입니다. 영원한 스승이자 주님이신 하느님께 대한 한결같은 신망애의 결핍을 보여 줍니다. 결정적 원인은 주님과의 깊은 사랑과 신뢰를 위한 기도의 부족입니다. 당시 말씀의 대상자들은 물론 그대로 오늘 나태하고 무기력해진 우리 영혼에 회개와 분발을 촉구하는 주님의 안타까운 마음이 배어있는 말씀입니다.

 

“나는 주 너의 하느님, 너에게 유익하도록 너를 가르치고, 네가 가야 할 길로 너를 인도하는 이다. 아, 네가 내 계명들에 주의를 기울였다면, 너의 평화가 강물처럼, 너의 의로움이 바다 물결처럼 넘실거렸을 것을.”(이사48,17ㄴ-18).

 

이사야를 통한 주님 말씀에 이어지는 오늘 복음의 예수님 말씀입니다. 역시 주님의 우리 인간에 대한 좌절감을 느끼게 합니다.

 

“이 세대를 무엇에 비기랴? 장터에 앉아 서로 부르며 이렇게 말하는 아이들과 같다.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가슴을 치지 않았다.”

 

공감능력을 상실한 무감각한, 참으로 무디어지고 왜곡된 순수를 잃은 심성들을 보여줍니다.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편견의 시각으로 멀쩡한 요한을 ‘마귀 들렸다’ 하고, 지극히 살아있는 감성을 지닌 현자賢者이자 각자覺者이신 예수님을 향해서는 ‘먹보와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라하며 피상적 일방적 왜곡된 시각을 보여줍니다. 

 

지혜가 옳다는 것은 그 지혜가 이룬 일로 드러나는데 바로 하느님의 지혜이신 예수님의 진면목을 보지 못하는 편견의 무지에 눈먼 영적 맹인들의 군중입니다. 바로 오늘 복음 바로 앞에 나오는 말씀이 이들은 물론 우리의 각성과 회개를 촉구합니다. 

 

“귀있는 사람은 들어라.”(마태11,15)

 

요즘 수없이 목격하는 아전인수我田引水, 확증편향確證偏向, 내로남불, 적반하장賊反荷杖, 후안무치厚顔無恥의 사람들! 모두가 무지와 편견에 눈먼, 귀먹은 자기를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마음의 눈으로 “보라”와 더불어 마음의 귀로 “들어라” 촉구하는 주님이십니다.

 

무지에 눈먼이들의 마음의 눈을 열어주는, 귀먹은 이들의 마음의 귀를 열어주는 것은 경청뿐입니다. 귀기울여 듣는 경청傾聽 이요 공경하는 마음으로 듣는 는 경청敬聽입니다. 경청을 위한 침묵과 겸손의 마음 자세요, 평생 배움의 여정에 참으로 결정적 요소가 끊임없는 경청입니다. 하느님과의 끊임없는 소통의 기도에 경청의 영적 삶의 기초가 됩니다. 이런 경청과 배움에 자연스럽게 뒤따르는 순종의 실천입니다.

 

참으로 경청에 이어 수용과 동화의 순종의 실천이 뒤따를 때 정화와 성화의 내적변화겠습니다. 새삼 영원한 스승이자 주님이신 하느님께 대한 우리 영적 삶의 자세는 ‘겸손-경청-배움-순종’이란 일련의 과정으로 표현됨을 봅니다. 그러니 저절로 간절한 영혼의 부르짖음과 같은 기도입니다.

 

“오소서, 주 하느님, 당신이, 당신의 믿음이, 당신의 희망이, 당신의 사랑이, 당신의 신망애가 되게 하소서”

 

주님 친히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당신과 신망애 관계를 날로 깊이해 주십니다. 오늘 요한복음의 화답송 후렴과 알렐루야 복음 환호송이 우리를 위로하고 격려합니다.

 

“주님, 당신을 따르는 이는 생명의 빛을 얻으리이다.”(요한8,12)

“주님이 오시니 마중 나가자. 주님은 평화의 임금이시다.”(복음 환호송).

 

무지에 눈먼 우리 마음의 눈을 열어주시고, 마음의 귀를 열어주시어, 주님 향한 내적 배고픔과 목마름을 일거에 해결해 주시는 주님의 성체성사의 은총과 사랑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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