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제3주, 주님의 가르침 -희망과 기쁨, 감사와 평화, 사랑과 겸손-2021.12.12.대림 제3주일(자선주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Dec 12,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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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12.대림 제3주일(자선주일)                                     스바3,14-18ㄱ 필리4,4-7 루카3,10-18

 

 

대림 제3주, 주님의 가르침

-희망과 기쁨, 감사와 평화, 사랑과 겸손-

 

 

오늘은 희망과 기쁨의 절정과도 같은 대림 3주 “기뻐하라”, 장미주일이자 자선주일입니다. 영롱하게 빛나는 대림 촛불 셋이 우리들에게 희망과 기쁨의 분위기를 고조시킵니다. 마침 교황님의 성탄 구유와 성탄 츄리에 대한 강론 말씀이 은혜로워 그 일부를 나눔으로 강론을 시작합니다.

 

“구유는 구원에의 보편적 부르심이다. 성탄츄리는 재탄생을 뜻한다. 구유와 성탄츄리의 상징은 분명히 우리와 함께 계시며 우리에게 희망을 주는 평화와 기쁨으로 우리 마음을 가득 채우는데 있다. 나무와 구유는 전형적 성탄분위기인 따뜻함, 나눔, 가족적 친밀함으로 인도한다. 

 

거짓되고 상업적인 성탄을 체험하지 않도록 하자! 우리 모두 하느님의 연민, 부드러운 친밀함에, 또 예술, 음악, 노래, 전통들이 우리 마음에 가져오는 성탄 분위기에 에워 싸이도록 하자.

 

성탄은 신뢰와 희망의 축제다.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를 신뢰하시고 우리를 용서하시는데 결코 지칠줄 모르는 그분은 희망의 근거가 되는 분이시다. 그분은 높이 계셔서 지배하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를 섬기고자 작고 가난한 분이 되셨다. 

 

그러므로 그분을 닮고 섬기기위해 더 낮아지자. 성탄! 하느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고자 오셨고, 우리에게 우리 형제자매들, 특히 코로나로 인해 변두리에 버려진 가장 가난한 이들, 가장 약한 이들을 돌보아 주라고 요청하신다.”

 

이렇게 살 수 있도록 오늘 주님은 참 좋은 가르침과 깨우침을 주십니다. 대림 제3주에 앞서 우선 참 보람 가득 했던 어제의 행복했던 개인 체험을 나누고 싶습니다. 제 계획대로가 아닌 하느님 계획대로였습니다. 하느님의 완벽한 계획에 감동했습니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 했습니다. 지체할 수 없다는 예감에 오늘 토요일 오전 시간을 미리 약속드렸고 말기암으로 투병중인 신심 깊은 루시아 80세 사촌 누님을 미사와 병자성사를 드리러 아침 일찍 수도원을 떠났습니다. 급히 불야불야 챙겨 아침 미사후 한 자매의 차량 봉사 도움을 받아 무거운 짐을 들고 화랑대역에 도착했는데 병자성유를 빠트린 것입니다. 참 난감했습니다. 

 

다시 반대편 출구를 나오니 마침 고맙게도 택시가 기다리고 있어 즉시 수도원 제의방 앞까지 간후 병자성유를 호주머니에 넣은 다음 그 택시를 타고 서대문구 아현동 누님 댁까지 직행했습니다. 평생 한 두 번 있을까 말까한 일인데 택시비 3만원 정도는 문제가 아녔습니다.

 

병자성유를 잊었던 것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어, 택시로 목적지까지 직행하니 토요일 아침이라 차도 막히지 않아 오전 8:30분 일찍 도착하여 고백성사, 성체성사중 병자성사를 모두 드리고 충분히 누님과 착한 조카와 이야기를 나누고 잠시 약간의 요기를 나누니 11시였습니다.

 

얼굴도 마음도 매형을 닮아 착하고 성실하고 지혜로운 아들들이 누님에게는 남편인 매형을 보듯 큰 위로와 기쁨이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느님이 우리에게 예수님을 남겨 주었듯이 하느님이, 남편인 매형이 누님께 남겨 주신 참 좋은 선물의 아들들임을 깨달았습니다.

 

마침 중간에 점심 약속이 예상되어 전화하니 도저히 바빠 힘들다는 지인의 연락에 조카차로 수도원에 직행하려 나왔을 때 누님의 서운해 하는 모습이 마음에 걸려 나를 바래다 주는 조카 차로 수도원에 함께 갈 것을 제안하니 너무 반갑고 기뻐하는 표정이었습니다. 오히려 점심 약속이 이뤄지지 않았음이 정말 잘 된 것입니다.

 

하느님을 믿고 사랑하는 이들은 고향집 같은 아버지의 집인 수도원을 그리워함은 기본적 정서입니다. 성지순례하는 마음으로 아들 차에 동승한 누님은 아이처럼 기뻐하였고 수도원 제 집무실에서 따뜻한 분위기에서 인삼차도 들고 함께 주님의 십자가 고상 앞에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누님과 조카는 잠시 성전에 들려 주님께 인사하고 떠났고 나는 9시경 기도후 네분 자매들의 면담성사를 드리니 하루가 다 갔습니다만 정말 마음 뿌듯한 행복감에 하느님께 참 감사했습니다.”

 

사람이 계획해도 이런 완벽한 일정은 불가능합니다. 전혀 생각지 않게 하느님 시간표에 따라 오전 1시 기상하여 강론쓰기로 시작한 하루 일과가 참 순조롭게 완료됐고 하느님께 많이 감사했습니다. 바로 이런 주님께서 대림 제3주일 좋은 깨우침을 주셔서 오늘도 한밤중에 일어나 기쁨 가득한 마음으로 강론을 씁니다. 

 

가톨릭 신문, 말씀 묵상란 “기쁨의 훈련”이란 말마디가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얼마전 썼던 희망의 훈련이란 말마디도 생각났습니다. “기쁨은 미덕이자 훈련입니다.” 예일대 신학부의 “기쁨의 신학과 좋은 삶”이라는 주제를 연구하는 미로슬바브 볼프 교수의 말입니다. 기쁨은 미덕일뿐 아니라 훈련이라는 것입니다. 기쁨을 훈련하라!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평생, 매일, 끊임없이 살아있는 그날까지 기쁨의 훈련병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기쁨은 미덕이자 훈련입니다. 또 선물이자 발견이요 선택이요 영약靈藥입니다. 하느님 주신 최고의 영약이 기쁨입니다. 그러나 기쁨의 훈련에 이어 기쁨의 선물, 기쁨의 발견, 기쁨의 선택, 기쁨의 영약인 것입니다.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기쁨인 것입니다. 스바니야 예언자는 대림 제3주일 우리 모두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전히 기뻐할 것을 권합니다.

 

“환성을 올려라, 크게 소리쳐라, 마음껏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두려워하지 마라. 힘없이 손을 늘어뜨리지 마라. 주 너의 하느님, 승리의 용사께서 네 한가운데에 계신다. 그분께서 너를 두고 기뻐하며 즐거워하신다. 당신 사랑으로 너를 새롭게 해 주시고, 너 때문에 환성을 올리며 기뻐하신다. 축제의 날인양 그렇게 하신다.”

 

그러니 참으로 믿는 이들에게는 매일이 대림 축제의 희망이자 기쁨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기뻐하듯 우리를 기뻐하시는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희망이자 기쁨이듯, 우리 역시 하느님의 희망과 기쁨이 됩니다. 대림의 기쁨의 여정은 그대로 아버지의 집으로의 귀가의 여정을 상징합니다. 죽음의 날이 가까워질수록 아버지를 뵈올 기쁨에 날로 기쁨도 더해갈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어제 방문했을 때 말기암 투병중인 평화로 가득한 사촌 누님의 표정에서 그런 인상을 받았습니다. 바오로 사도 역시 날로 주님과 가까이 가는 대림의 여정이니 기뻐하라고 간곡히 권고합니다. 

 

“주님 안에서 늘 기뻐하십시오. 거듭 말합니다. 기뻐하십시오. 여러분의 너그러운 마음을 모든 사람이 알 수 있게 하십시오. 주님께서 가까이 오셨습니다.”

 

기쁨과 희망만이 아닙니다. 평화도 감사도 사랑도 미덕이자 훈련입니다. 선물이자 발견이요 선택이자 영약입니다. 그러니 희망과 기쁨에 이어 평화, 감사, 사랑도 만병통치약입니다. 바오로의 말씀이 고맙고 고무적입니다.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떠한 경우에든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간구하며 여러분의 소원을 하느님께 아뢰십시오. 그러면 사람의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하느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 안에서 지켜줄 것입니다.”

 

‘감사’와 ‘평화’가 키워드, 열쇠말입니다. 그러니 감사의 훈련, 감사의 선물, 감사의 발견, 감사의 선택, 감사의 영약입니다. 평화의 훈련, 평화의 선물, 평화의 발견, 평화의 선택, 평화의 영약입니다. 그러니 살 줄 몰라 불행이요 살 줄 알면 행복이란 고백이 절로 나옵니다. 

 

이 모두가 회개의 열매, 사랑의 열매입니다. 역시 사랑의 훈련, 사랑의 선물, 사랑의 발견, 사랑의 선택, 사랑의 영약입니다. 사랑은 추상명사가 아니라 구체적 실천동사입니다. 요한이 어떻게 해야 할지 묻는 회개한후 세례를 청하는 이들에 대한 답이 바로 그러합니다. 비상한 사랑 실천이 아니라 본분에 충실한 평범한 사랑의 실천입니다. 자선주일에 주는 참 좋은 지침입니다.

 

군중들에게는 “옷을 두 벌 가진 사람은 못 가진 이에게 나누어 주어라. 먹을 것을 가진 사람도 그렇게 하여라.”

세리들에게는 “정해진 것보다 더 요구하지 마라.”

군사들에게는 “아무도 강탈하거나 갈취하지 말고 너희 봉급으로 만족하여라.”라고 각자의 눈높이에 맞는 지침을 내려주십니다.

 

사람마다 그에 적절한 처방을 제시하는 분별력의 대가, 세례자 요한입니다. 분별의 지혜와 겸손의 덕은 함께 갑니다. 또한 세례자 요한은 겸손의 대가입니다. 다음 복음 말씀이 그 생생한 증거입니다. 주님께 가까워질수록 분별의 지혜와 겸손의 미덕입니다.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러나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 오신다.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없다.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입니다.”

 

주님 생명의 성령, 주님 사랑의 불로 우리의 세례를 새롭게 하는 이 거룩한 미사은총입니다. 그러니 하나 더붙여 겸손의 훈련, 겸손의 선물, 겸손의 발견, 겸손의 선택, 겸손의 영약임을 깨닫습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매일 평생 끊임없이 바치는 시편성무일도와 미사 공동전례가 바로 이런 망과 기쁨, 평화와 감사, 사랑과 겸손의 영적 훈련임을 깨닫습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희망과 기쁨, 평화와 감사, 사랑과 겸손의 영약을 선물하시어 우리 모두 평생 한결같이 이들의 훈련병이, 수행자가 되어 살게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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