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훈련 -“오소서, 주 하느님, 당신이 되게 하소서”-2021.12.16.대림 제3주간 목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Dec 16,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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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16.대림 제3주간 목요일                                                            이사54,1-10 루카7,24-30

 

 

사랑의 훈련

-“오소서, 주 하느님, 당신이 되게 하소서”-

 

 

요즘 영성생활에 새삼스러이 공감하는 단어가 훈련입니다. 영성 역시 훈련이라는 것입니다. 제 아무리 천재라도 평생 한결같이 훈련에 힘쓰는 이들을 당해낼 수 없습니다. 얼마전 강론에 인용했던 기쁨의 훈련, 희망의 훈련, 꿈의 훈련이란 말마디를 기억할 것입니다.

 

묵상해보니 우리의 수행생활에 훈련 아닌 것이 없고, 우리 수도자들은 물론 믿는 이들은 평생 훈련병임을 깨닫습니다. 그러니까 무엇보다 기도도 훈련이고 사랑도 훈련인 것입니다. 훈련은 반복이니 반복 훈련입니다. 우리가 평생 매일 끊임없이 바치는 시편성무일도와 미사의 공동전례는 얼마나 기막히게 좋은 영성훈련인지 깨닫습니다. 기쁨의 훈련, 희망의 훈련, 믿음의 훈련, 사랑의 훈련, 마음 순수의 훈련, 진실의 훈련, 진리의 훈련, 기도의 훈련등 모든 훈련이 망라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강론 제목은 두말할 것 없이 “사랑의 훈련-‘오소서, 주 하느님, 당신이 되게 하소서-’”로 정했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느님 닮기에 사랑의 훈련보다 더 적절한 평생 훈련은 없을 것입니다.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한 것이 사랑입니다. 평생훈련이자 평생공부가 사랑입니다. 영성훈련중의 훈련이 ‘사랑의 훈련’이요, 영적 힘중의 힘이 ‘사랑의 힘’입니다.

 

그러나 사랑공부, 사랑훈련에는 영원한 초보자임을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평생 배워야하고 평생 훈련해야할 사랑입니다. 허무와 무지에 대한 답도 사랑뿐입니다. 인간의 본질은 허무나 무지가 아니라 사랑인 것입니다. 그러니 사랑밖에 답이, 길이 없습니다. 만병은 사랑 결핍에서 기인하고 만병통치약은 사랑뿐임을 깨닫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사랑의 훈련에 지칠줄 모르는 한결같은 열정이 소중합니다. 날마다 늘 새롭게 시작하는 사랑의 훈련병으로 살아야 합니다.

 

한달전 토마스 머튼의 삶과 영성을 주제로 연피정시 모토는 ‘사랑이 되기’였습니다. 영어로 하며 더욱 분명히 감지됩니다. 완성이 없는 영원한 현재 진행형의 “Becoming Love” 사랑이 되기는 바로 사랑이신 하느님을 닮아가는 존재론적 변화를 뜻합니다. 그대로 믿는 이들의 삶의 여정을 압축한 말입니다. 여기서 착안한 기도문을 다시 나누고 싶습니다. 인터넷 강론에는 이미 두 번 올렸지만 수도형제들 앞에서 강론하기는 처음입니다.

 

대림시기에 맞이하는 12월8일 ‘원죄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에 하느님께 드린 헌시獻詩’입니다. “오소서, 주 예수님” 대림시기에 적절한 마라나타 아람어 대신 “오소서, 주 하느님”으로 시작되는 긴 기도문입니다. “하루하루 살았습니다”와 “행복기도”에 이어 세 번째 제 대표 기도문으로 꼽고 싶습니다. 감히 하느님이 되게 해달라니, 도대체 이보다 더 큰 영적 욕심도 없을 것이나, 청정욕(淸淨慾)이기에 하느님도 이해하여 주실 것입니다.

 

“오소서, 

주 하느님! 

당신이 되게 하소서

 

당신의 믿음이

당신의 희망이

당신의 사랑이

당신의 신망애信望愛가 되게 하소서

 

당신의 진리가

당신의 선이

당신의 아름다움이

당신의 진선미眞善美가 되게 하소서

 

당신의 말씀이

당신의 빛이

당신의 영이

당신의 품이

당신의 생명이 되게 하소서

 

당신의 침묵이

당신의 경청이

당신의 순종이

당신의 겸손이

당신의 섬김이

 

당신의 친절이

당신의 연민이

당신의 치유가

당신의 지혜가

당신의 인내가

 

당신의 자유가

당신의 기쁨이

당신의 평화가

당신의 정의가

당신의 위로가

 

당신의 행복이

당신의 찬미가

당신의 감사가

당신의 천국이

당신의 모두가 되게 하소서

 

그리고 

마침내 당신이 되게 하소서

당신만 남고

나는 온전히 사라지게 하소서

그리하여

하느님이, 당신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이

마리아 성모님이

바로 그러하셨나이다

 

내가

하느님이 될 때

전인적 치유가

온전한 참나의 구원이 이뤄지겠나이다

 

내 소망

이것 하나뿐이옵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를 받으시옵소서”-2021.12.8.

 

기도는 이렇게 던져 놓고 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던져 놓고 간절히, 항구히 기도하다보면 순수한 기도는 반드시, 서서히 응답되기 마련입니다. 얼마전 강론 내용중 공동체 생활중 미풍을 태풍으로 만들지 않는 것도 사랑의 은총이요, 태풍을 미풍으로 만들 수 있는 것도 사랑의 은총임을 깨닫게 됩니다. 이런 사랑의 관점에서 보면 오늘 말씀의 이해도 확연해 집니다. 이사야 예언자야 말로 하느님 사랑에 정통한 ‘사랑의 대가大家’, ‘사랑의 달인達人’입니다. 얼마나 하느님 사랑의 훈련에 올인한 예언자의 삶인지 깨닫습니다. 예루살렘에 대한 주님의 사랑은 바로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내가 잠시 너를 버렸지만, 크나큰 자비로 너를 다시 거두어들인다. 분노가 북받쳐, 내 얼굴을 잠시 너에게서 감추었지만, 영원한 자애로 너를 가엾이 여긴다. 네 구원자이신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산들이 밀려나고, 언덕들이 흔들린다 하여도, 나의 자애는 너에게서 밀려나지 않고, 내 평화의 계약은 흔들리지 아니하리라. 너를 가엾이 여기는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노아를 물로 심판할 때처럼 우리에게 결코 분노를 터뜨리지도 우리를 꾸짖지도 않으시겠다고 맹세盟誓하시는 하느님의 결연決然한 사랑이 감동적입니다. 사랑할 때 진상眞相을 압니다. 하느님 사랑의 화신化身과도 같은 예수님이시기에 세례자 요한의 진상을 꿰뚫어 직시하십니다. 흡사 얼마전 써놓은 시, 겨울 동안거冬安居중의 겨울나무 같은 세례자 요한입니다.

 

“일체의

부수적인

것들은

 

다 떠나 보내고

사랑의 

본질로 남아

 

동안거冬安居

광야같은

배밭 깊은 고요중에

 

사랑의

봄꿈을 꾸는

겨울 배나무들

 

바로

겨울 세상은

이렇게 사는 거다”-2021.12.12

 

예수님은 광야의 요한은 시류時流냐 유행에 중심없이 흔들리는 갈대도 아니며 화려한 옷을 입고 호화롭게 사는 얼빠진 허영의 사람도 아니라 본질로 꽉찬 예언자보다 더 중요한 인물이라 극찬하십니다. 그러면서 사랑의 눈으로 요한의 신원을 정확히 알려 주십니다. 

 

“그는 성경에 이렇게 기록된 사람이다. ‘보라, 네 앞에 나의 사자를 보낸다. 그가 네 앞에서 너의 길을 닦아 놓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없다.”

 

여기에 결정적인 사랑의 말씀이 뒤따릅니다. 바로 사랑하는 우리에 대한 언급입니다. 이미 세례성사와 성체성사로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 하느님의 나라를 살아가는 우리를 세례자 요한보다 높게 평가하시며 우리를 격려하시는 주님의 사랑이 또한 감동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이라도 그보다 더 크다.”

 

바로 이것이 하느님의 자녀로서 이미 하느님의 나라를 살아가는 우리의 복된 신원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사랑의 훈련에 지칠줄 모르는 열정과 힘을 선물하시어 날로 당신을 닮아가게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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