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고초려一顧草廬 -주님의 간절하고 겸손한 사랑-2021.12.20.월요일 12월20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Dec 20,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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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20.월요일 12월20일                                                이사24,1-2.3-4ㄱㄴ.5-6 루카1,26-38

 

 

일고초려一顧草廬

-주님의 간절하고 겸손한 사랑-

 

 

삼고초려三顧草廬, 옛 중국 삼국시대에 유비가 제갈량의 초려草廬를 세 번이나 방문하여 마침내 그를 군사軍師로 삼았다는 데서 유래한, 인재를 맞아들이기 위해 참을성있게 노력한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느껴지는 감정은 유비의 간절하고 겸손한 마음입니다. 이처럼 제갈량이 유비의 삼고초려의 간절한 마음에 감동하여 응답하여 나섰음이 분명합니다.

 

간절한 자가 승리합니다. 간절할 때 감동을 줍니다. 간절할 때 참으로 살아 있다 할 수 있습니다. 날마다의 제 강론도 간절함의 표현입니다. 얼마전 대선을 앞두고 여당과 야당의 러브콜을 받고 갈등하던 모 방송인이 모당 대표가 집밖에서 추위를 무릅쓰고 어둔 밤 한시간 이상 기다리고 있었다는 말을 듣고 그 간절한 마음에 감동하여 입당을 결행했다는 일화도 생각납니다. 이 또한 일고초려一顧草廬의 적절한 예입니다.

 

요즘 계속되는 저녁 성무일도 마리아의 노래, “오” 후렴에서도 교회의 구세주 탄생을 기다리는 간절한 염원念願이 그대로 전달됩니다. 

 

“오 다윗의 열쇠여, 이스라엘 집안의 홀이시여, 주께서 여시면 아무도 닫지 못하고 닫으시면 아무도 열지 못하오니, 오시어 죽음의 땅과 어둠속에 앉아있는 우리를 결박에서 풀어주소서.”

 

매 연마다 “하루하루 살았습니다”로 시작하여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받으소서”로 끝나는, 일곱 연으로 이뤄진 제 자작 좌우명 기도시도 제 간절한 염원의 표출입니다. 늘 읽으며 간절한 염원을 새로이 하게 됩니다. 약한 몸으로 800km 2000리 산티아고 순례 여정을 잘 마친 이들의 공통적인 이구동성의 결론 역시 '간절함'이었습니다.

 

제1독서에서 아하즈를 향한 예언자 이사야의 말씀이 참으로 간절합니다. 하느님의 마음을 그대로 담아 전달하는 이사야입니다. 하느님의 간절한 마음을 그대로 전달하는 이사야의 간절한 말씀입니다.

 

“다윗 왕실은 잘 들으십시오! 여러분은 사람들을 성가시게 하는 것으로는 부족하여 나의 하느님까지 성가시게 하려 합니까? 그러므로 주님께서 몸소 여러분에게 표징을 주실 것입니다. 보십시오,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입니다.”

 

하느님은 간절한 자에게 그 마음을 여십니다. 제 삶의 자리에서 간절한 마음으로 한결같이 충실히 살고 있던 무명無名의 시골 처녀 마리아를 찾아 나선 간절하고 겸손하신, 눈밝은 주님이십니다. 마침내 이사야를 통해 예언된 하느님의 간절한 소망이 오늘 마리아를 통해 이뤄집니다.

 

여기서 깨닫는 바 남이, 하느님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 보아주지 않는다 추호도 걱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비밀은 없습니다. 발없는 말이 천리간다는 속담도 있습니다. 하느님은 물론 보시고 알고 계시며 결국은 이웃도 알게 됩니다. 때가 되면 주님께서 응답해 주십니다. 마리아의 간절한 삶이 하늘에 닿아 아득히 높은 하늘에서 이렇게 궁벽한 나자렛 고을의 마리아를 찾은 주님의 천사입니다.

 

여기서 착안한 강론 제목이 하느님의 일고초려一顧草廬입니다. 어찌 일고초려뿐입니까! 필요하다 싶을 때는 언제든 간절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무수히 친히 당신 천사를 통해 우리를 방문하시는 하느님이십니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이미 간절한 이들과 함께 계신 주님이심을 깨닫습니다. 간절한 주님이 함께 계시기에 간절함의 은총입니다. 간절할 때 주어지는 주님 기쁨의 선물임을 깨닫습니다. 그러니 마음이 간절하다는 것, 바로 주님이 함께 하신다는 표지입니다. 이 인사말이 무슨 뜻인가 곰곰이 생각하는 경청敬聽의 사람, 마리아에게서 그의 충격과 놀라움이 능히 짐작이 됩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그분께서는 큰 인물이 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이라 불리실 것이다.”

 

이 또한 마리아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태몽胎夢입니다. 곧 이어 마리아를 격려하시는 주님의 천사입니다. 하느님께 불가능한 일은 없습니다. 바로 하느님의 간절함이 모든 일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 천사를 통해 하느님의 간절하고 겸손한 마음에, 사랑에 감동한 마리아의 지체없는 순종의 믿음입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러자 천사는 마리아에게서 떠나갑니다. 하느님께서는 마리아의 순종의 믿음에 감동하셨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간절하고 겸손한 마음과 마리아의 간절하고 겸손한 마음이 만난 것입니다. 참으로 간절하고 겸손할 때 마음의 순수요 여기서 샘솟는 열정과 지혜입니다. 하느님 사랑의 간절함의 절정이 바로 아드님의 성탄이자 아드님의 부활임을 깨닫습니다. 어제 읽은 실화를 그대로 인용합니다. 바로 700살에 싹티워 꽃을 피어낸 연꽃이 간절함의 염원을 잘 상징한다 싶습니다.

 

-‘2000년 5월 경남 함안군 성산산성, 고려시대 유적지에서 연꽃 씨앗이 발견되었고, 나이를 측정해 보니 무려 700살! 땅속 깊이 묻혀 있던 씨앗들 열 개로 싹트기를 시도했다. 마침내 두 개에서 싹이 트고 꽃이 피니 벌이 날아왔다. 지금은 ’아라홍련’이라는 이름으로 넓은 연못을 가득 채울 정도로 번성했다. 씨앗은 장장 700년 동안 자신이 싹트기에 꼭 맞는 조건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끝까지 희망을 거두지 않고 기다렸던 씨앗의 간절한 염원이 경탄스럽스럽다.’-(빛두레 2021.12.19. 대림 제4주일 4쪽)

 

바로 간절함은 이런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매일 평생 끊임없이, 한결같이 바치는 공동전례기도인 성무일도 시편과 미사는 거의 모두가 참으로 간절한 찬미와 감사, 신망애信望愛의 표현임을 깨닫습니다. 이런 간절함이 하느님을, 이웃을 감동케 합니다. 주님께서 함께 하실 때 이런 간절하고 겸손한 염원이요 사랑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 은총으로 우리 모두 간절하고 겸손한 사랑을 북돋아 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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