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성가정 교회 공동체 -사랑의 형제, 사랑의 학인, 사랑의 전사-2021.12.26.주일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가정 성화 주간)

by 프란치스코 posted Dec 26, 2021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2021.12.26.주일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가정 성화 주간)

집회3,2-6.12-14 콜로3,12-21 루카2,41-52

 

 

 

주님의 성가정 교회 공동체

-사랑의 형제, 사랑의 학인, 사랑의 전사-

 

 

 

“주님의 집에 사는 자 얼마나 행복되리!”

 

오랜만에 성가정 축일 미사시 화답송 후렴 흥겹게 노래하니 살 것 같습니다. 오늘 하루 성가정 교회 공동체에 속해 있음에 감사하며 화살기도 노래로 바치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이자 가정 성화 주간의 첫날이 됩니다. 또 오늘은 성 스테파노 첫 순교자 축일이기도 합니다. 어제 저녁식사시 우리 수도원은 영명축일을 맞는 스테파노 수사에게 공동체 형제들이 축가를 부르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식사가 끝난후 서로 포옹하며 축하해주는 시간은 주님 안에서 형제애를 새롭게 확인하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혈연만의 가정 공동체로만은 부족합니다. 또 작금의 사회 현실은 가정 혈연 공동체가 해체되어가는 시대이자 파괴되어 가는 시대입니다. 이제 1인 가구가 대세가 되어가는 참 외롭고 고독하게 지내는 이들이 참 많은 시대입니다. 얼마전에는 홀로 고독사한 어머니를 사후 하루만에야 발견했다는 자녀분의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공동체의 기초는 가정입니다. 모든 교육의 시작은 가정에서 시작합니다. 가정 교육에서 어머니의 역할이 얼마나 지대한지 누구나 공감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예전같은 가정과 어머니상은 기대하기 힘들게 되었고, 이제 주님을 믿는 자들에게는 자기가 몸담고 살아 가는 공동체를 주님 중심의 성가정 교회 공동체로 만들어 가야하는 일이 참으로 중요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물보다 진한게 피이고 피보다 진한게 돈이고 돈보다 진한게 하느님 믿음이다.”

 

투박한 표현이지만 혈연 공동체의 한계를 지적한 제가 피정지도시 자주 언급한 말이지만 대다수 공감합니다. 혈연의 형제애도 부모의 유산관계의 나눔이 불투명했을 때 속절없이 허망하게 무너져 내리는 일은 얼마나 많은지요! 그러니 신자 부모가 자녀에게 물려줄 가장 좋은 유산은 하느님 믿음뿐입니다. 새삼 주님 안에서 성가정 공동체를 이뤄 사는 것이 해결의 지름길임을 깨닫습니다. 

 

바로 우리 공동체의 원형은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공동체입니다. 주님 안에서 주님을 중심으로 모인 사랑의 형제 공동체입니다. 그러니 혈연血緣공동체도 이런 신연神緣공동체 안에 자리 잡을 때 비로소 온전한 성가정 공동체가 됩니다. 하느님을 아버지로, 마리아 성모님을 어머니로, 예수님을 맏형님으로 모신 성가정 교회 공동체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수도공동체의 공동전례기도처럼 새삼 혈연가정공동체의 공동가정기도가 얼마나 절대적인지 깨닫습니다.

 

지난 성탄 밤미사시 교황님의 강론도 성가정 교회 공동체 건설에 좋은 가르침이 되었습니다. 하느님의 위대함은 작음안에서 드러나며, 하느님은 우리 모두 온유한 사랑과 내적 작음을 요청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서로 신뢰하고 열린 마음을 지니라는 것입니다. 또 모든 것은 중심이신 예수님과 일치되어 있으니 우리 모두 우리의 영적 뿌리이자 기원인 베들레헴 성가정으로 돌아가자는 주옥같은 가르침과 깨우침이 되는 내용이었습니다.

 

가만히 베들레헴의 성가정 공동체를 드려다 보십시오. 바로 아기 예수님이 그 사랑의 성가정 공동체의 중심이 되고 있음을 봅니다.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님이, 하느님이 공동체의 중심이 될 때 비로소 온전한 성가정 교회 공동체가 이뤄집니다. 그러나 온전한, 완전한 성가정 공동체는 없습니다. 완성을 향해가는 영원한 현재 진행형의 미완성의 사랑의 공동체만이 현존할 뿐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성가정 교회 공동체의 중심인 주님입니다. 오늘 복음을 보십시오. 해마다 파스카 축제 때면 예루살렘으로 향한 예수님 부모를 통해 철저히 하느님 중심의 성가정 공동체임을 깨닫게 됩니다. 성전에서 잃었던 예수님을 찾았을 때 예수님의 답변을 통해 우리 삶의 중심은 하느님 아버지임을 새롭게 확인하게 됩니다.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

 

예수님은 요셉, 마리아의 부모를 통해 주님 향한 신망애信望愛의 삶도 배웠겠지만 예수님의 부모 역시 예수님의 답변을 통해 성가정의 중심은 아버지임을 깊이 깨달았을 것입니다. 참으로 하느님 아버지의 너그럽고 깊은 사랑을 닮은 신심깊은 마리아 성모님은 이 모든 일을 마음 속 깊이 간직했다 합니다. 성가정 공동체가 예수님께 미친 영향은 얼마나 지대했는지 다음 대목에서 잘 드러납니다.

 

‘예수님은 지혜와 키가 자랐고, 하느님과 사람들의 총애도 더하여 갔다.’

 

한 아이를 키우는데는 한 마을이 필요하다 합니다. 성가정 교회 공동체가, 성가정 마을 공동체가 참으로 절실한 시대입니다. 혈연 가정이 해체되어 가는 1인 가구 시대에는 더욱 그러합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아버지의 집인 수도원을 찾습니다. 이제 아버지의 집인 수도원은 넓은 의미로 명실공히 믿는 이들의 성가정 교회 공동체라는 하느님의 넓고 깊은 사랑의 품 공동체가 되어 가고 있음을 봅니다. 성가정 공동체의 원형을 살아가야 할 우리 수도공동체입니다. 바로 제 자작시가 성가정 교회 공동체의 필수 구성 원리를 보여줍니다. 물론 주님 중심의 사랑의 공동체를 전제하고 있습니다.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아버지의 집인 수도원에서

주님의 형제로, 주님의 학인으로, 주님의 전사로 살았습니다.

끊임없이 수도가정에서 주님의 형제로

끊임없이 말씀을 배우고 실천하는 주님의 학인으로

끊임없이 이기적인 나와 싸우는 주님의 전사로 살았습니다.”

 

저절로 주님의 형제가, 주님의 학인이, 주님의 전사가 되는 것이 아니라 부단한 사랑 공부와 사랑실천이, 영성훈련이 필요합니다. 바로 오늘 두 독서가 사랑의 성가정 교회 공동체 건설을 위한 그 구체적 지침을 줍니다. 평생 공부하고 배우고 훈련해야 할 형제애, 학우애, 전우애임을 깨닫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콜로새서 말씀은 사랑의 성가정 교회 공동체를 위한 대헌장이라 해도 손색이 없습니다.

 

“형제 여러분, 하느님께 선택된 사람, 거룩한 사람, 사랑받는 사람답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동정과 호의와 겸손과 온유와 인내를 입으십시오. 누가 누구에게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참아주고 서로 용서해 주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입으십시오. 사랑은 완전하게 묶어주는 끈입니다.”

 

이런 용서의 사랑의 성가정 공동체를 이뤄 살라는 것입니다. 참으로 사랑의 주님을 중심으로 주님과 깊이 일치될수록 가능하겠고 이래서 주님 중심의 일치의 구체적 영적 훈련이 필수입니다. 참으로 주님의 사랑의 전사답게 평화의 훈련, 말씀의 훈련, 기도의 훈련, 감사의 훈련, 순종의 훈련, 사랑의 훈련에 전념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을 다스리게 하십시오. 감사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리스도의 말씀이 여러분 가운데 풍성히 머무르게 하십시오.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느님께 시편과 찬미가와 영가를 불러 드리십시오.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하고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십시오. 자녀는 부모에게 순종하고 부모는 자녀를 들볶아 기를 꺾는 일이 없게 하십시오.”

 

성가정 교회 공동생활이 얼마나 힘든 분투와 노고의 사랑의 훈련인지 깨닫습니다.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은 결코 온실 속의 순탄대로의 공동체가 아니었습니다. 오늘날로 하면 예수님은 문제아였습니다. 

 

바로 적절한 긴장과 깨어 있음의 영적 훈련장 같은 성가정 교회 공동체가 참으로 건강한 온전한 공동체입니다. 정신 질환 예방과 치매 예방에 참 좋은 사랑의 훈련장 성가정 교회 공동체입니다. 이런 공동체 생활의 결핍이 사람을 영적 기형의 괴물로, 폐인으로 만듭니다. 

 

노령화 시대입니다. 노인에 대한 배려 역시 공동체의 질을 입증합니다. 정말 거룩하고 좋은 사랑의 공동체는 약자와 노인에 대한 배려에서 잘 드러납니다. 오늘 집회서 저자는 비단 노부모뿐 아니라 넓은 의미로 성가정 교회 공동체에 속한 모든 노인들에 대해 실천해야할 지침을 줍니다.

 

“아버지를 공경하는 이는 죄를 용서받고, 어머니를 영광스럽게 하는 이는 보물을 쌓는 이와 같다. 아버지를 공경하는 이는 자녀들에게 기쁨을 얻고, 그가 기도하는 날, 받아들여진다. 부모가 나이 들었을 때 잘 살 보살피고 그가 살아 있는 동안 슬프게 하지 마라, 그가 지각을 잃더라도 인내심을 가지고 그를 업신여기지 않도록 힘을 다하여라. 부모에 대한 효행은 잊히지 않으니, 네 죄를 상쇄할 여지를 마련해 준다.”

 

노령화 시대에 정말 적절한 가르침입니다. 노부모에게 잘했던 형제자매들 중에 자녀들 때문에 속썩는 이들을 하나도 본적이 없습니다. 노부모나 노인들에게 잘하는 이들의 자녀는 그대로 부모를 보고 배우기 때문입니다. 혼자의 구원은 없고 더불어의 구원입니다. 노아의 방주와도 같은 성가정 교회 공동체에 몸담고 있음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니 성가정 교회 공동체에서 주님의 사랑의 형제兄弟로, 사랑의 학인學人으로, 사랑의 전사戰士로 온갖 분투奮鬪와 노고勞苦의 영적 훈련訓練을 게을리 해선 안됩니다. 죽는 그날, 살아 있는 그날까지 깨어 영적 수행의 사랑의 훈련병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바로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이렇게 살도록 도와 주십니다. 

 

“하느님, 성가정을 통하여 참된 삶의 모범을 보여 주시니, 저희가 성가정의 성덕과 사랑을 본받아, 하느님의 집에서 끝없는 기쁨과 행복을 누리게 하소서.” 아멘.

 

 

 

 

 

 

 

 

 

 


Articles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