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순례 여정 -목표, 이정표, 도반, 기도-2022.1.2.주일 주님 공현 대축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Jan 02,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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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주일 주님 공현 대축일                                              이사60,1-6 에페3,2.3ㄴ.5-6 마태2,1-12

 

 

인생 순례 여정

-목표, 이정표, 도반, 기도-

 

 

오늘은 주님 공현 대축일입니다. 인류의 빛이신 주 예수님께서 모든 민족들에게 자신을 드러낸 날입니다. 오늘 대축일 주일이기에 기념하지 못하는 동방교회의 4대교부중 절친관계였던 두분인 성 대 바실리오(330-379)와 나지안조의 성 그레고리오 주교 학자(330-390)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주님은 이사야 예언자의 입을 빌어 우리 모두 주님을 반사하는 ‘주님의 반사체反射體’로 ‘주님의 빛’으로 살 것을 촉구합니다. 발광체發光體는 주님뿐이고 우리는 다만 주님의 빛을 반사하는 반사체라는 사실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예루살렘아, 일어나 비추어라. 너의 빛이 왔다. 주님의 영광이 네 위에 떠올랐다.”

 

계속되는 성탄축제입니다. 코로나로 인해 두 해나 불러보지 못한 화답송 후렴을 다시 흥겹게 부르니 마음이 활짝 열리는 느낌입니다. 어제에 이어 오늘 주님 공현 대축일 화답송 후렴도 신바람 나게 만듭니다. 오늘 하루 짧은 기도 노래로 바치시기 바랍니다.

 

“하느님 만 백성이 당신께 조배하리이다.”

 

주님 공현 대축일 화답송뿐 아니라 성탄 낮미사, 성가정 축일 미사, 어제의 성모님 대축일 미사 화답송도 얼마나 흥겨웠던지요! 조배朝拜란 말이 예배禮拜, 경배敬拜, 세배歲拜란 말과 연상되어 새롭게 마음에 와닿습니다. 오늘 복음의 마지막 부분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집에 들어가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를 보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였다. 또 보물 상자를 열고 아기에게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

 

우리 역시 동방박사들과 함께 아기 예수님께 경배드리고자 이 거룩한 대축일 미사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과연 여러분은 무엇을 예물로 바치겠는지요. 황금과 유향과 몰약대신 여러분의 귀한 예물 믿음, 희망, 사랑의 신망애의 예물을 바치라 권하고 싶습니다. 

 

‘절’ 배拜입니다. 불가의 고 성철 큰 스님은 자기를 만나러 온 사람들에게 삼천배三千拜를 명했다 합니다. ‘절(拜)’하라 있는 ‘절(寺)’인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절이 사라져 가는 현상과 신앙 약화가 함께 가는 느낌도 드는 시대에 우리 요셉 수도원 수도자들은 성전에 들어오고 나갈 때 마다 경배하는 마음으로 주님의 제대 앞에 큰 절을 합니다. 참으로 하느님께 대한 흠숭의 표현으로, 또 겸손의 수련에 몸으로 하는 큰 절의 경배보다 더 좋은 수행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 새해 한 살을 더 먹었습니다. 어제 저는 새해 첫날 놀랍고 신선한 체험을 했습니다. 대축일 미사후 수도원의 저와 10-30년 동안 관계를 맺고 있는 50-70대 연세의 형제자매들 9분으로부터 뜻밖에 새해 큰절의 세배를 받았고 저도 머리 깊이 숙여 새해 축하 인사를 드렸습니다. 새삼 큰절의 세배가 얼마나 귀한 미풍 양속인지 깨달으며 제 노년 인생에 대해 깊이 성찰했습니다.

 

오늘은 주님 공현 대축일입니다. 오늘 미사시 독서와 복음은 가나다해 즉 매해 똑같습니다. 늘 똑같은 반복이지만 신기하게 마실 때 마다 새롭게 느껴지는 샘물같은 느낌의 오늘 대축일 말씀입니다. 2014년 안식년때 산티아고 순례후 매해 하는 강론은 오늘 말씀처럼 늘 반복입니다. 반복이지만 저에겐 늘 새로운 반복, 거룩한 반복, 중요한 반복입니다. 

 

오늘 동방박사들이 베들레헴에 탄생하신 예수님을 방문한 일화는 그대로 인생 순례 여정을 상징합니다. 산티아고 순례 여정은 대략 30일 안팎으로 끝나고, 동방박사들의 순례 역시 몇 달로 혹은 몇 년 걸려 끝났으리라 생각되지만, 우리 인생 순례 여정은 평생입니다. 죽어야 끝나는 평생 순례 여정입니다. 제가 여기에서 늘 자문하는 물음이 있습니다.

 

우리 인생 여정을 일일일생 하루로 압축한다면, 또 ‘봄-여름-가을-겨울’의 일년사계로 압축한다면 어느 지점에 와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제 경우는 하루로 압축하면 오후 4시, 일년사계로 압축하면 초겨울, 지금쯤 되는 느낌입니다. 이런 성찰이 죽음을 눈앞에 환히 두고 하루하루 깨어 환상이나 거품이 걷힌 본질적 깊이의 삶을 살게 합니다. 

 

우리 믿는 이들의 인생 순례 여정은 아버지의 집으로의 귀가 여정입니다. 한해 살았다는 것은 한해 죽을 날이 가까웠다는 것을 뜻하지만, 반면 아버지를 뵈올  날이 한해 가까웠음을 뜻하기도 하니 아버지를 만날 기쁨의 남은 한해한해의 인생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철저徹底한 자각이 우리를 남은 생애, 하루하루 소중한 선물인생을 살게 할 것입니다.

 

인생 순례 여정에서 손꼽는 네 요소가 1.목표目標, 2.이정표里程標, 3.도반道伴, 4.기도祈禱입니다. 산티아고 순례 여정의 목표는 산티아고 대성전이었고, 오늘 동방박사들의 순례 여정의 목표는 베들레헴의 아기 예수님을 뵙는 것이었으며, 우리의 경우 평생 순례 여정의 최종 목표는 하느님 아버지가 될 것입니다. 말 그대로 아버지의 집으로의 귀가 여정 중인 우리들입니다. 이런 궁극의 목표 지점인 하느님이 없다면 애당초 순례 여정이란 말도 성립되지 않습니다. 

 

세상에는 이런 궁극의 목표 지점인 하느님이 없어 무지와 허무, 무의미의 어둠 속에 헛되이 유령처럼 방황하며 살다가 인생을 마치는 이들도 참 많을 것입니다. 참으로 우선적인 것이 우리 삶의 여정의 궁극 목표 지점은 하느님 아버지임을 늘 깨어 확인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목표를 가리키는 ‘삶의 이정표’입니다. 삶의 목표 다음에 삶의 이정표 순서입니다. 삶에서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제 방향으로 제대로 가는 것입니다. 산티아고 순례중에 이정표는 아마 수백개는 될 것입니다. 동방박사들의 이정표는 무엇입니까? 시종일관 이들 이방의 박사들을 인도한 것은 ‘주님의 별’이었습니다. 

 

누구에게나 보인 객관적 고정불변의 이정표가 아니라 참으로 진리이신 주님을 찾는 구도자들에게 은총의 선물처럼 발견되는 주님의 별 이정표임을 깨닫습니다. 찾을 때 드러나고 찾지 않으면 사라지는 주님의 별 이정표입니다. 참으로 종파, 인종, 국적을 떠나 당신을 찾는 누구에게나 계시되는, 열려있는 구원의 주님이심을 깨닫습니다. 바오로 사도가 깨달은 구원의 신비도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곧 다른 민족들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복음을 통하여, 공동 상속자가 되고 한 몸의 지체가 되며 약속의 공동 수혜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은혜로운 진리가 어렴풋이 이방의 동방박사들을 통해 계시되고 있습니다. 주님의 별, 이정표는 누구에게나 자명한 것이 아닌 늘 진리에 목말라 깨어 있던 이방의 동방박사들에게 계시되었습니다. 참으로 은총으로 깨어 눈이 열릴 때 곳곳에서 주님의 별을 상징하는 이정표들을 발견할 것입니다. 

 

보십시오. 놀랍지 않습니까! 등잔밑이 어둡다고 지척에 탄생하신 주님을 알아 보지 못한 예루살렘의 사람들을 보십시오. 동방박사들의 출현과 구원자 아기 예수 탄생 소식에 혼비백산 놀라지 않습니까! 도대체 종교인, 신학자, 누구할 것 없이 영적으로 잠들어 있었기에 주님의 별을 발견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주님의 별, 이정표에 이어 세 번째 도반입니다. 혼자가 아닌 세 도반의 동방박사들입니다. 전설처럼 전해오는 발타살, 가스팔, 멜키올 셋입니다. 어느 분은 세아들을 두었는데 이 세 동방박사들 이름의 세례명을 붙였길래 참 기발하다 싶었습니다. 혼자의 여정이 아니라 더불어의 여정이었습니다. 빨리 가려면 혼자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이 있습니다. 

 

산전수전, 그 험한 순례 여정 혼자 였다면 동방박사들은 필시 도중 하차 했을 것입니다. 산티아고 순례 여정 또한 똑같습니다. 혼자인 듯 하지만 앞뒤로 계속 이어지는 순례자들이 바로 더불어의 도반들이기 때문입니다. 이 순례 여정의 진리가 우리 순례 여정중의 수도공동체나 교회공동체에도 그대로 적용됨을 봅니다. 

 

바로 하느님 아버지의 집이라는 목표지점을 향한 평생 순례 여정 중, 날마다 이렇게 수도형제들, 교우들의 도반들과 함께 하는 이 거룩한 미사시간이 참으로 귀하고 고맙습니다. 새삼 함께 순례 여정중인 도반들과의 우정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습니다. 천국입장은 개인입장이 아니라 도반들과의 단체입장이라 합니다. 과연 날로 깊어지는 도반들과의 우정의 형제애인지 묻게 됩니다.

 

동방박사들과 견주었을 때 뚜렷이 부각되는 우리의 자랑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의 영원한 평생 도반이자 주님이신 파스카의 예수님입니다. 보이는 사람 도반들이 다 죽거나 사라져도 우리와 늘 함께 계신 영원한 도반이신 파스카 주님께서 우리의 도반은 물론 주님의 별이라는 이정표 역할을 하고 계시니 얼마나 큰 구원의 축복인지요! 마태복음 마지막 말마디가 이 진리를 입증합니다.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28,20ㄴ).

 

그러니 우리의 평생 순례 여정에 영원한 도반이자 주님이신 예수님과의 우정이 얼마나 결정적인지 깨닫습니다. 참으로 우리의 인생 순례 여정은 아버지의 집으로의 귀가 여정이자 동시에 평생 도반 예수님을 닮아가는 예닮의 여정임을 깨닫게 됩니다.

 

도반에 이은 마지막 결정적 요소가 기도입니다. 이점에서 우리는 이방의 동방박사들 보다 유리합니다. 동방박사들의 간절했던 순례 여정을 보면 분명 이들도 기도했을 것이지만 우리만은 못할 것입니다. 참으로 인생 순례 여정에 항구하고 간절한 끊임없는 기도가 있어야 늘 깨어 목표인 하느님과 이정표들을 발견하고 확인할 수 있겠으며 도반들과의 우정도 날로 깊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저의 산티아고 순례중 배낭에 미사가방을 넣고 800km 2000리를 걸으면서 가장 많이 바친 것이 묵주기도였습니다. 물론 미사도 매일 했고 약식 전례기도서로 성무일도도 꼭 바쳤습니다. 새삼 삶은 기도임을, 걷는 것이 기도임을 깨우쳐준 순례여정의 은총이었습니다.

 

어찌 보면 하루하루가 인생 순례 여정의 압축입니다. 하루를 처음처럼, 마지막처럼, 평생처럼 살아야 함을 배웁니다. 동방박사들이 베들레헴 아기 예수님을 경배하고 예물을 바쳤듯이 우리 또한 매일의 거룩한 미사때 마다 주님께 경배드리고 예물을 바치며 평생 인생 순례 여정에 필요한 은총을 받습니다. 사실 매일 미사보다 평생 순례 여정에 결정적 도움이 되는 수행은 없을 것입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성공적 인생 순례 여정으로 이끌어 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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