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 닮기 -주님 세례 축일-2022.1.9.주일 주님 세례 축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Jan 09,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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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9.주일 주님 세례 축일 

이사42,1-4.6-7 사도10,34-38 루카3,15-16,21-22

 

 

예수님 닮기

-주님 세례 축일-

 

 

오늘은 주님 세례 축일입니다. 우리에 앞서 죄없으신 주님께서 세례를 받으심으로써 우리 죄인들과 연대의 겸손한 사랑을 보여주신 주님이십니다. 이제 오늘로서 성탄시기가 끝나면 내일부터는 연중시기가 시작됩니다. 원래 동방박사 방문, 주님의 세례, 가나안의 혼인잔치시 물이 포도주로 변한 일화 셋은 주님 공현 대축일에 포함된 것입니다. 오늘 아침 성무일도 후렴은 주님 공현에 관한 세 아름다운 일화를 흥겹게 노래했습니다.

 

“오늘 그리스도께서 요르당강에서 죄를 씻어 주시니, 교회는 천상 신랑과 결합하였도다. 박사들이 예물을 가지고 임금님의 혼인잔치에 달려오고, 물이 술로 변하여 잔치 손님들이 기뻐하였도다.”

 

교회의 전례는 참 단순하고 의미깊고 아름답습니다. 교회 전례의 아름다움은 그대로 하느님 사랑의 아름다움을 반영합니다. 어제 저녁 성무일도 후렴은 또 얼마나 흥겨웠는지요!

 

“묵은 사람을 세례의 물을 통해서 새롭게 하시고, 우리에게 불멸의 옷을 입혀주신 우리 구원자께서 오늘은 요르단강에 오시어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으셨도다.”

 

코로나로 2년동안 못불렀던 방금 부른 미사시 화답송은 또 얼마나 흥겨웠는지요! 성탄시기 축일 미사들 화답송 모두가 흥겹고 아름다워 신바람이 납니다. 

 

“하느님이 당신 백성에게 평화의 복을 주시리라.”

 

바로 시편 29장 11절 말씀에 근거한 화답송 후렴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우리 모두에게 평화의 복을 주십니다. 오늘 주님은 우리를 위해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우리 모두 세례성사를 통해 당신과 일치되어 당신을 닮은 참 사람이 되어 살게 하시고자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오늘은 예수님의 세례를 통해 우리의 세례를 새롭게 하면서 예수님 닮기의 구체적 방법에 대해 나누고 싶습니다. 

 

한번의 세례로 예수님 닮기가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 닮기를 위한 우리의 세례성사는 은총의 선물이자 평생 과제입니다. 예수님 닮기의 구체적 실천 방안은 무엇입니까? 네가지 사랑의 평생 훈련입니다. 요즘 제가 새롭게 깨달은 것이 영성훈련의 중요성입니다. 기도도, 희망도, 사랑도, 겸손도, 침묵등 모든 수행이 사랑의 훈련이라는 것입니다.

 

첫째 겸손한 사랑의 훈련입니다.

겸손은 모든 덕의 어머니요 영성의 잣대입니다. 내적 아름다움과 매력적인 삶의 원천이 겸손한 사랑입니다. 겸자무적입니다. 겸손한 이에게는 적이 없습니다. 바로 겸손의 모범이 세례자 요한이요 요한에게 세례를 받은 예수님입니다. 참으로 자기를 아는 지혜로운 자가 겸손한 사람이요 무지한 사람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러나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 오신다.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다.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과 물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

 

참으로 세례자 요한처럼 예수님께 가까워질수록 겸손과 온유, 사랑과 지혜의 참 사람이 됨을 깨닫습니다. 과연 날로 예수님을 닮아 겸손과 온유, 사랑과 지혜의 사람이,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가고 있는지 성찰하게 합니다. 

 

예수님은 겸손히 자신을 낮추어 세례를 받으신후 겸손히 기도하였고, 하느님 아버지의 응답이 뒤따릅니다. 그대로 오늘 제1독서 이사야서 주님의 종의 첫째 노래의 실현입니다. 바로 유일무이한 하느님의 외아드님 예수님의 신원일 뿐 아니라 이미 세례성사를 통해 예수님과 하나된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은혜로운 말씀입니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딸), 내 마음에 드는 아들(딸)이다.”

 

참으로 예수님처럼 겸손과 온유의 삶을 살아갈 때 예수님을 닮아 하느님의 자녀다운 삶이겠습니다.

 

둘째, 차별없는 사랑의 훈련입니다.

하느님의 차별없는 사랑을 반영하는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의인에게나 죄인에게나, 선인에게나 악인에게나 똑같이 비와 햇빛을 내려 주시는 공평무사하신 하느님의 차별없는 사랑입니다. 참으로 사람에게 아픈 상처를 주는 대죄가 바로 차별과 무시일 것입니다. 제2독서 사도행전에서 베드로의 고백입니다.

 

“나는 이제 참으로 깨달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시고, 어떤 민족에서건 당신을 경외하며 의로운 일을 하는 사람은 다 받아 주십니다.”

 

분명 파스카의 예수님을 통해 차별없는 하느님 사랑을 깨달은 베드도임이 분명합니다. 사람마다 바꿀수 없는 타고난 것이 다 다릅니다. 하느님은 절대로 타고난 것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지 않습니다. 참으로 살 줄 아는 지혜로운 사람은 타고난 것들에 좌절하거나 절망하는 부정적 비관적 사람이 아니라, 올바른 선택의 실천에 전념하는 긍정적 낙관적 사람입니다. 

 

하느님을 경외하며 의로운 일을 선택하여 실천할 때 구원의 삶입니다. 날마다 선택하여 훈련할 수 있는 것도 무궁무진입니다. 행복도, 감사도, 사랑도, 희망도, 겸손도, 기쁨도, 기도도, 공평도, 정의도 선택이자 훈련입니다. 참으로 깨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기 위해 기도의 힘은 절대적입니다.

 

셋째 자비로운 사랑의 훈련입니다.

하느님이 자비하신 것처럼 우리도 자비로워야 한다고 주님은 가르치셨습니다. 제1독서 이사야서 주님의 종의 자비로운 모습은 그대로 예수님의 모습이자 우리가 닮아야 할 모습입니다.

 

“그는 외치지도 않고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으며, 그 소리가 거리에서 들리게 하지도 않으리라. 그는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라. 그는 성실하게 공정을 펴리라. 그는 지치지 않고 기가 꺾이는 일 없이, 세상에 공정을 세우리라.”

 

미풍을 태풍으로 바꾸지 않는, 또 태풍을 미풍으로 바꾸는 자비로운 사랑, 겸손한 사랑입니다. 언젠가 형제에게 보속으로 써 준 세 충고, ‘1,화내지 않기, 2.큰 소리 치지 않기, 3.싸우지 않기’란 말마디도 생각이 납니다. 다음 말씀 역시 예수님은 물론 우리 모두를 향한 말씀처럼 들립니다.

 

“주님은 내가 의로움으로 너를 부르고, 네 손을 붙잡아 주고, 빛이 되게 하였으니, 1.보지 못하는 눈을 뜨게 하고, 2.갇힌 이들을 감옥에서, 3.어둠 속에 앉아 있는 이들을 감방에서 풀어 주기 위함이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탐욕의 무지에 눈멀어 보지 못하고, 무지의 감옥에 갇혀, 무지의 감방의 수인이 되어 살아가는 지요! 주님의 자비로운 사랑만이 무지에 대한 궁극의 답임을 깨닫습니다.

 

넷째 주님과 함께 하는 사랑의 훈련입니다.

우리의 영원한 평생 주님이자 도반인 예수님께서 늘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하느님께서 예수님과 늘 함께 해 주셨듯이 하느님은 예수님을 통해 늘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오늘 사도행전의 베드로의 예수님께 대한 고백이 그대로 우리에게도 해당됩니다.

 

“하느님께서 나자렛 출신 예수님께 성령과 힘을 부어 주신 일도 알고 있습니다. 이 예수님께서 두루 다니시며, 좋은 일을 하시고 악마에게 짓눌리는 이들을 모두 고쳐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분과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늘 함께 해주신 예수님의 자비행이 얼마나 아름다운지요! 똑같은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에 우리 역시 오늘 지금 여기서 용기를 내어 자비행의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 말씀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28,20ㄴ).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늘 우리와 함께 계시기에 살만한 세상입니다. 주님 세례 축일인 오늘 주님은 우리의 세례를 새롭게 하시며 우리 모두 당신을 닮을 것을 간절히 바라십니다. 겸손한 사랑, 차별없는 사랑, 자비로운 사랑, 주님이신 당신과 함께 하는 사랑입니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이렇게 살도록 도와 주십니다. 끝으로 주님께 대한 사랑의 고백으로 강론을 마칩니다.

 

“주님, 당신은 저희 전부이옵니다.

저희 사랑, 저희 생명, 저희 기쁨, 저희 행복이옵니다.

하루하루가 감사와 감동이요 감탄이옵니다.

날마다 주님이신 당신과 함께 새롭게 시작하는 아름다운 하루이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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