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의 여정 -늘 새로운 시작, 하느님 나라의 삶-2022.1.10.연중 제1주간 월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Jan 10,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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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0.연중 제1주간 월요일                                                           1사무1,1-8 마르1,14-20

 

 

회개의 여정

-늘 새로운 시작, 하느님 나라의 삶-

 

 

어제 점심식사중 나눴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가장 좋은 복福이 뭐냐?’는 질문에 저는 식복食福이라, 인복人福이라, 천복天福이라 했고, 질문했던 수사는 전화위복轉禍爲福이라 했고, ‘아 그렇구나!’ 공감했습니다. 삶은 변화입니다. 더불어 '인간만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사자성어와 관련된 예화도 생각납니다.

 

현재의 지금이 전부가 아니니 상황에 일희일비할 것이 아니라 넓고 길게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나름대로 우리의 앞날을 예비하고 계시니 말입니다. 오늘 제1독서의 한나를 봐도 이해가 됩니다. 프닌나의 무시가 얼마나 마음 아프게 하는지, 남편 엘카나의 위로도 한계가 있는 듯 합니다. 그러나 기도의 사람, 한나는 슬픔을 하느님께 맡기며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합니다.

 

‘그러나 한나에게는 한몫밖에 줄 수 없었다. 엘카나는 한나를 사랑하였지만 주님께서 그의 태를 닫아 놓으셨기 때문이다.’

 

주님은 이런 와중에서 한나에게 사무엘 아들을 예비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끝까지 하느님께 희망을 두고 슬픔중에도 해마다 주님의 집에 올라가는 한나의 한결같은 인내의 믿음을 하느님은 마음 깊이 담아 두셨음이 분명합니다. 전화위복, 인간만사 새옹지마라는 말마디 안에 하느님의 개입을 감지합니다.

 

끝은 시작입니다. 어제로 성탄시기가 끝나고 오늘부터 연중시기의 첫날의 시작입니다. 제의 색깔도 백색에서 초록색으로 바뀌고 성무일도 찾기도 아주 단순하고 쉽습니다. 그렇습니다. 끝은 시작이요, 하루하루가 늘 새로운 시작입니다. 오늘 복음도 연중시기 첫날 답게 참 신선합니다. 예수님의 공생애가 시작되는 복음입니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언제나 현실성을 지닌 오늘 지금 여기서 우리에게도 그대로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하느님께는 언제나 지금의 때가 카이로스의 결정적인 유일한 때입니다. 바로 오늘 지금 여기에 임박한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언젠가 그날의 때가 아닌 오늘 지금이 카이로스의 결정적 하느님의 때, 하느님의 나라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일상적이고 평범해 보이는 시간 낭비가 큰 죄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바야흐로 오늘 지금 여기가 하느님의 나라가 펼쳐지는 장입니다. 그러니 지금 여기서 주님을 만나야 하고 또 행복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결정적인 응답이 바로 우리의 회개요 복음을 믿는 것입니다. 한 두 번의 회개가 아니라 늘 끊임없는 회개요, 그리하여 우리 삶은 회개의 여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끊임없는 회개와 더불어 늘 새로운 시작에 하느님 나라의 실현입니다. 회개의 자리에서 하느님은 당신의 계획을 우리와 함께 펼쳐가십니다. 막연한 회개가 아닌 구체적 실천을 의미합니다.

 

“나를 따라 오너라. 네가 너희를 사람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

 

주님의 은총의 부르심이 바로 구체적 회개를 촉발 시켰고,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라 나서니 그대로 회개의 응답인 것입니다. 말 그대로 ‘구원의 출구出口’인 주님과의 결정적 만남입니다. 우리의 경우 외적 환경은 그대로이지만 내적 삶의 자세가 바뀜으로 이제부터는 하느님을 향한 부단한 자아초월自我超越의 내적 여정이 시작되었음을 의미하니 바로 이것이 정주영성의 핵심입니다. 환경環境이 아닌 관점觀點이, 보는 눈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부르심이 없었다면 평생을 갈릴래아 호수에서 출구없는 무의미한 반복의 어부의 삶을 살다가 허무하게 인생 마쳤을 것인데 주님을 만남으로 운명이 바뀐 것입니다.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주님을 선택함으로 늘 새롭게 시작하는 삶의 여정에 오른 시몬과 안드레아 형제요, 야고보와 요한 형제들입니다. 

 

우리의 경우도 이와 흡사합니다. 부질없는 질문이지만, 우리가 주님을 만나 회개와 더불어 세례를 받고 주님을 따라 나선 삶이 아니였다면 현재 어떤 삶을 살고 있었을지 상상이 안됩니다. 우연이 아닌 필연의 하느님 섭리이자 성소임을 깨닫습니다. 하느님은 알게 모르게 우리를 당신 최선, 최상의 방법으로 오늘 지금 여기까지 이끄셨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저는 철석같이 믿습니다. 

 

날마다 버리고 주님을 따라 나서는 버림의 여정, 따름의 여정은 그대로 회개의 여정이자 부단한 엑소더스exodus, 탈출의 여정입니다. 한 두 번의 버림이, 따름이, 회개가, 탈출이 아니라 늘 새로운 시작의 버림이자 따름이자 회개요 탈출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죽는 그날까지, 살아있는 그날까지 늘 새로운 시작의 버림의 여정, 따름의 여정, 회개의 여정, 탈출의 여정에 한결같이 항구할 때 비로소 하느님 나라의 실현임을 깨닫습니다. 

 

주님은 매일의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이런 삶의 여정에 항구하고 충실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십니다.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제 좌우명 기도시로 강론을 마칩니다.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날마다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일일일생, 

하루를 처음처럼, 마지막처럼, 평생처럼 살았습니다.

저에겐 하루하루가 하느님 나라의 영원이었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이렇게 살았고 내일도 이렇게 살 것입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받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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