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聖召에 충실한 삶 -성소는 은총의 선물膳物이자 평생 과제課題이다-2022.1.15.토요일 사부 성 베네딕도의 제자들 성 마오로와 성 쁠라치도 기념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Jan 15,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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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5.토요일 

사부 성 베네딕도의 제자들 성 마오로와 성 쁠라치도 기념일

1사무9,1-4.17-19;10,1 마르2,13-17

 

 

성소聖召에 충실한 삶

-성소는 은총의 선물膳物이자 평생 과제課題이다-

 

 

오늘 우리는 사부 성 베네딕도의 제자들인 성 마오로와 성 쁠라치도 기념미사를 봉헌합니다. 그러나 두 수도성인 모두가 왜관 수도원의 주보성인으로 왜관수도원은 오늘 대축일 미사를 봉헌하며 미사중에는 종신서원식이 있습니다. 우리 요셉 수도원에서도 오늘 다섯분의 수도형제가 참석합니다.

 

성 마오로와 성 쁠라치도는 전설적 인물이지만, 타고난 순종의 수도자였습니다. 정말 성소에 충실했던 순종의 사람이었음이 그레고리오 대 교황의 <베네딕도 전기> 제7장 일화에서 잘 드러납니다. 물에 빠져 익사직전의 쁠라치도를 베네딕도의 말씀에 순명한 마오로가 물위를 걸어가 구해낸 기적 이야기입니다.

 

-“마오로 형제여, 빨리 달려가 보시오. 물을 길으로 갔던 그 아이가 호수에 빠졌습니다. 물살이 벌써 그를 멀리 휘감아 갔습니다.”

 

마오르는 강복을 받고 장상의 명령대로 전속력으로 달렸는데 땅위를 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물위를 달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 이래 한 번도 없던 기이한 일이 일어났다고 그레고리오 대 교황은 기술합니다. 마오로는 쁠라치도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는 재빨리 끌어내어 살려냈는데, 정신이 들고 보니 물위를 달려 왔다는 사실에 놀라 전율합니다. 

 

마오로가 장상에게 자초지종을 알리자 베네딕도 성인은 이 일을 자기 공덕으로 돌리지 않고 마오로의 순명의 공덕으로 돌리자 마오로는 정반대로 장상의 명령에 돌립니다. 이에 구출된 쁠라치도는 이 아름다운 우호적인 겸손의 경쟁에 심판으로 나서 증언합니다.

 

“제가 물에서 끌려나올 때 제 머리 위에서 아빠스님의 모피 자락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빠스님이 친히 저를 물에서 끌어내신 줄로만 생각했었습니다.”-

 

실감나게 전달되는 ‘사랑의 기적’이야기입니다. 베네딕도 성인의 믿음과 제자인 마오로의 순종이 하느님을 감동시켜 일어난 기적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일화입니다. 베네딕도 성인과 두 애제자 마오로와 쁠라치도 역시 타고난 성소자임을 깨닫습니다.

 

비단 성 베네딕도의 두 제자인 성 마오로와 쁠라치도뿐 아니라 우리 수도자들은 물론 믿는 이들 하나하나가 주님께 불림받은 유일무이한 성소자들입니다. 참으로 주님께 불림 받음으로 참으로 존재감 충만한 삶을 살게 된 우리들입니다. 참으로 평생 소중히 돌보고 가꿔야할 각자의 성소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아무리 물어도 하느님 없이는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우리가 물음이라면 하느님은 답입니다. 하느님이 불러 주셨기에 비로소 존재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성소는 은총의 선물이자 평생 과제임을 깨닫습니다. 은총으로 불러 주셨다고 당장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니라, 꾸준하고 한결같은 사랑의 수행으로 주님을 닮아갈 때 참나의 성소의 실현이요 완성이라는 것입니다. 

 

과연 날로 주님을 닮아감으로 참내가 되어가는 성소의 여정인지 자문하게 됩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의 존재이유입니다. 사실 이보다 더 중요한 평생과제도 없습니다. 부질없는 물음이지만 주님께 불림 받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런지요. 새삼 여기 이렇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 살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놀라운 섭리의 기적인지 깨닫습니다.

 

주님께 불림받은 성소는 순전히 은총의 선물입니다. 그러나 성소의 완성은 우리에게 평생과제로 주어졌습니다. 참으로 살아있는 그날까지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의 자세로 하루하루 분투奮鬪의 노력을 다하는 수행을 요구합니다. 똑같은 은총의 선물로 출발했지만 자기 실현의 결과는 노력여하에 따라 다 다를 것입니다. 똑같은 하루를 선물로 받지만 그 결과가 천양지차天壤之差이듯 말입니다.

 

그러니 죽는 그날까지, 살아 있는 그날까지 방심하지 말고 하루하루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바로 이점에서 제1독서의 사울은 실패했습니다. 하느님은 사무엘을 통해 사울을 부르십니다. 

 

“주님께서 당신에게 기름을 부으시어, 그분의 소유인 이스라엘의 영도자로 세우셨소. 이제 당신은 주님의 백성을 다스리고, 그 원수들의 손에서 그들을 구원할 것이오.”

 

성소의 출발은 좋았습니다만, 앞으로 알게 될 것이지만 사울은 성소에 충실하지 못했고 결국 실패 인생으로 끝나게 됩니다. 참으로 성소의 여정에 충실하고 있는 우리 삶인지 뒤돌아 보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세관에 앉아 있던 알패오의 아들 세관원 레위가 주님의 부르심을 받습니다.

 

“나를 따라라.”

 

그러자 레위는 일어나 예수님을 따라 나섭니다. 이어 레위의 집에서 예수님께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잡수시는 것을 바리사이파 율법학자들이 문제삼았을 때 예수님의 답변이 오늘 우리에게도 좋은 가르침이자 깨우침이 됩니다.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우리가 잘 나서 구원의 성소가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으로 구원의 성소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세상에 병자 아닌 사람은 하나도 없고 죄인 아닌 사람 역시 하나도 없습니다. 하느님이 사랑하시는 사람은 죄없다 생각하는 교만한 의인이 아니라 회개한 겸손한 죄인입니다. 

 

역설적으로 우리의 병이, 또 죄인이라는 자각이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을 찾게 되니 병이나 죄도 전화위복轉禍爲福의 은총임을 깨닫습니다. 새삼 예수님 이름을 부르는 자비송 기도가 참으로 적절한 겸손의 기도, 비움의 기도임을 깨닫습니다.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주 예수 그리스도님, 죄인인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성소의 여정입니다. “나를 따라라”, 단번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하루하루 주어지는 과제입니다. 말 그대로 성소의 여정은 따름의 여정이자 회개의 여정이요, 날로 예수님을 닮아 참내가 되어가는 예닮의 여정임을 깨닫게 됩니다. 

 

제 “2022년 새해 소원” 기도문에 다섯의 소원이 추가 되었습니다. “당신의 복(福)이 되게 하소서”, “당신의 성체(聖體)가 되게 하소서”, “당신의 승리가 되게 하소서”, “당신의 비움이 되게 하소서”, “당신의 충만이 되게 하소서”, 이 말마디들 또한 성소의 여정중 주님과 일치의 갈망을, 참내(眞我)가 되고 싶은 갈망을 표현합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살아 있는 그날까지 하루하루 꾸준히 한결같이 성소의 여정에 충실하도록 도와 주십니다. 끝으로 제 좌우명 기도문 마지막 연으로 강론을 마칩니다. 수없이 나눴지만 늘 읽을 때 마다 심기일전(心機一轉), 초심(初心)의 각오를 새로이 하게 됩니다. 이보다 더 좋은 선종(善終)을 위한 준비 기도도 없을 것입니다.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날마다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일일일생, 하루를 처음처럼, 마지막처럼, 평생처럼 살았습니다.

저에겐 하루하루가 영원이었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이렇게 살았고 내일도 이렇게 살 것입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를 받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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