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변하여 포도주로!” -주님 영광으로 빛나는 표징의 삶-2022.1.16.연중 제2주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Jan 16,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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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6.연중 제2주일                                                    이사62,1-5 1코린12,4-11 요한2,1-11

 

 

 

“물이 변하여 포도주로!”

-주님 영광으로 빛나는 표징의 삶-

 

 

 

“물이 변하여 포도주로!” 참 마음에 드는, 재미있는 오늘 강론제목입니다. 오늘 새벽 바람은 봄바람처럼 훈훈했습니다. 겨울속의 봄, 겨울이 변하여 봄인가 싶었습니다. 폭풍이 변하여 미풍으로, 벽이 변하여 문으로, 겨울이 변하여 봄으로, 물이 변하여 포도주로, 바로 파스카의 주님이, 주님과 일치된 성령의 사람이 일으키는 주님 영광의 표징, 기적의 표징입니다.

 

2022년 새해 들어 자주 인용했던, “오소서, 주 예수님! 당신이 되게 하소서”로 시작되는 ‘2022년 새해 소원’의 제 장시 기도문 역시 한마디로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게 해달라는 존재론적 변화를 소망하는 기도임을 깨닫습니다. 문득 영국의 바이런 시인에 대한 일화도 생각납니다.

 

그가 케임브리지 대학시절 3학년때 기말고사 신학 시험에서, “카나 혼인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바꾸신 예수님의 기적에 대해서 논하라”는 문제가 나왔을 때 일입니다. 시험 시간 내내 쓰지 않던 바이런이 마지막에 쓴 답안은 “Water saw its Creator and blushed”(물이 그의 창조주를 만나니 얼굴이 붉어지더라)였고, 이 답안은 교수님께 만점을 받았다는 실화입니다.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잊지 못하는 여러 차례 인용한 말마디가 생각납니다. “나이 30에 죽어 70에 묻힌다”는 말마디입니다. 나이 30까지 살고 나머지 40년은 살았는지 죽었는지 구별이 안되는 존재감 없는 삶을 풍자하는 말마디입니다. 정말 참으로 살았다면 나이 70에 죽어 70에 묻혀야 할 것입니다. 살아있는 그날까지 참으로 하루하루 존재감 충만한 삶을 살아야 함을 배웁니다. 바로 오늘 연중 제2주일 말씀이 이에 대한 답을 줍니다.

 

“물이 변하여 포도주로!”

오늘 복음이 주는 답입니다. 하루하루 이렇게 사는 것입니다. 넘어지는 것이 죄가 아니라 일어나지 않는 것이 죄입니다. 제가 자주 사용하는 말마디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넘어지면 곧장 일어나 다시 새롭게 포도주 같은 기쁨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래야 탄력 좋은 기쁨의 삶입니다.  

 

“물이 변하여 포도주로!”

참으로 무미건조한 물같은 삶에서 기쁨 넘치는 포도주같은 신바람나는 삶으로의 전환을 뜻합니다. 물이 변하여 포도주로, 바꿔 말해 슬픔을 기쁨으로, 불안을 평화로, 절망을 희망으로, 어둠을 빛으로, 죽음을 생명으로, 불평불만의 삶을 찬미감사의 삶으로 끝없이 이어집니다. 한마디로 끊임없는 회개를 통해 부정적 소극적 비관적 삶에서 긍정적 적극적 낙관적 삶으로의 부단한 전환을 뜻합니다. 방금 우리는 흥겹게 화답송 후렴을 노래했습니다.

 

“당신의 기적을 만 백성에게 두루 알리라.”

 

우리 몸소 주님 영광으로 빛나는 표징의 삶을 통해, 주님의 기적을 모든 사람들에게 두루 알리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깊이 잘 들여다 보면 우리 하나하나의 삶이 주님의 기적이자 영광의 표징입니다. 바로 언젠가의 그날이 아니라 오늘 지금 여기서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표징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바로 제1독서 이사야서가 제시하는 새 예루살렘의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이사야 예언자의 새 예루살렘 비전은 얼마나 고무적인지요! 그대로 오늘 우리 모두를 향한 말씀입니다.

 

“민족들이 너의 의로움을, 임금들이 너의 영광을 보리라. 너는 주님께서 친히 지어 주신 새로운 이름으로 불리리라. 너는 주님의 손에 있는 화려한 관이 되고, 너의 하느님 손바닥에 놓여 있는 왕관이 되리라.”

 

이 거룩한 미사중 주님과 하나된 우리를 통해 실현되는 새 예루살렘입니다. 새 예루살렘이 상징하는 바, 파스카 예수님이자 주님과 하나된 우리들입니다. 바야흐로 주님과 함께 물이 포도주로 변한 영광의 표징을 살아가는 새 예루살렘인 우리들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살아갈 수 있겠는지요!

 

첫째, “물이 변하여 포도주로!”, 믿음과 순종의 삶을 통해서입니다.

오늘 카나의 혼인잔치에서 우리는 믿음과 순종을 배웁니다. 카나 혼인잔치가 상징하는 바, 바로 오늘 우리 삶의 현장입니다. 바로 예수님이 계시고 그분 곁에는 늘 성모님이 계십니다. 우리의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시는 예수님의 어머니이자 우리의 어머니이신 성모 마리아입니다. 포도주가 바닥 난 곤경의 사정을 아신 어머니는 아드님께 알립니다.

 

“포도주가 없구나.”

 

우리를 대신한 얼마나 위로가 되는 성모님의 말씀인지요! 이처럼 성모님은 우리를 위해 아드님 곁에서 아드님께 전구하고 계십니다. 아드님의 반응이 뜻밖입니다.

 

“여인이시여, 저에게 무엇을 바라십니까?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

 

수수께께 같은 반응이지만, 이심전심, 성모님은 때가 되었음을 직감하셨고, 그대로 아드님의 말씀에 순종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바로 오늘 복음의 핵심 말마디로,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성모님의 믿음이 함축된 말씀이요, 우리 모두 철석같은 믿음으로 묵묵히 한결같이 주님께 순종할 것을 당부하십니다. 바야흐로 예수님께서 개입하기 시작하셨고 순종의 기적이 발생합니다.

 

“물독에 물을 채워라.”

일꾼들이 순종하여 물을 채우자,

“이제는 그것을 퍼서 과방장에게 날라다 주어라.”

하시자 일꾼들은 곧 그것을 옮겨 갔고, 포도주가 된 물을 맛본 과방장은 신랑을 불러 말합니다.

“누구든지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놓고, 손님들이 취하면 그보다 못한 것을 내놓는데,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남겨 두셨군요.”

 

모두가 과방장과 같았을 것입니다. 도저히 표징의 기적을 알아챌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단지 믿음의 어머니 마리아와 순종했던 일꾼들만이 그 영광의 표징의 비밀을 알았습니다. 

 

참으로 중요한 진리를 배웁니다. 믿음으로 묵묵히 순종의 삶을 살 때 물같은 무미건조한 삶에서 포도주같은 흥겨운 삶으로의 기적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과방장처럼 믿음의 눈이 없으면 일상에서 펼쳐지는 표징의 기적을 도저히 알아챌 수가 없습니다. 

 

일련의 기적의 과정을 체험하지 못한 과방장이나 손님들은 이런 표징의 비밀을 알아채지 못했음이 분명합니다. ‘믿음의 눈’에만 보이는 표징의 기적들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제자들은 달랐으니 바로 주님께서 드러내신 표징의 영광을 보았고 믿었습니다. 다음 복음 말씀 그대로입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카나에서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셨고, 그리하여 제자들은 믿게 되었다.’

 

참으로 한결같은 믿음과 순종의 삶 역시 주님 영광의 빛나는 표징이 됨을 깨닫습니다.

 

둘째, “물이 변하여 포도주로!”. 각자 받은 성령의 은사에 충실할 때 공동체란 항아리의 물같은 평범하고 무미건조한 분위기는 활력 넘치는 기쁨의 포도주가 가득 담긴 분위기로 바뀌니 이 또한 그대로 주님 영광의 표징이 됩니다. 바오로 사도가 이를 명백히 밝힙니다. 말그대로 성령에 의한 영광의 기적이자 표징입니다.

 

“하느님께서 각 사람에게 공동선을 위하여 성령을 드러내 보여 주십니다. 그리하여 어떤 이에게는 성령을 통하여 지혜의 말씀이,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에 따라 지식의 말씀이 주어집니다.”

 

이어지는 모든 은사가 성령의 선물임을 드러냅니다. 믿음의 은사, 병을 고치는 은사, 기적의 은사, 예언의 은사, 영들을 식별하는 은사, 신령한 언어를 말하는 은사, 신령한 언어를 해석하는 은사등 도대체 은사가 아닌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참으로 우리가 받은 갖가지 재능들 모두가 성령의 은사임을 알 때 참으로 겸손한 삶이요 자랑할 것은 성령이신 주님뿐임을 깨달을 것입니다. 

 

이 모든 은사들은 모두가 한 분이신 같은 성령께서 일으키시는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각자에게 그것들을 따로따로 나누어 주시는 것입니다. 참 재미있고 신비롭고 고마운 진리를 깨닫습니다. 전에 가끔 인용했던 부패인생과 발효인생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엄청난 차이입니다. 부패할시에는 악취가 나지만 발효시에는 향기가 납니다. 바로 성령의 효소가 물같은 인생을 포도주같은 기쁘고 흥겨운 인생으로 변화시킨다는 것입니다. 

 

그 무슨 식물의 잎이나 열매나 뿌리든 효소만 넣으면 참 신비롭게도 모두를 발효시켜 술로 변하게 하는 이치와 똑같은 역할의 영적 효소가 성령입니다. 주님 성령의 효소가 들어가지 않을 때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도 변질되어 십중팔구 부패인생되기 십중팔구입니다. 

 

과연 성령의 효소로 각자 받은 은사에 충실한, 잘 익어가고 있는 향기로운 발효인생인지 살펴보게 합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노년인생은 ‘잘 늙어가는’ 인생이기 보다는 성령의 효소로 ‘잘 익어가는’ 발효인생이라 함이 맞습니다. 세상에 성령의 영적 효소가 없어 부패인생으로 변질되어 가는 이들은 얼마나 많겠는지요! 우리를 믿게 하는 것도, 회개를 부추기는 것도 성령의 은혜입니다. 그러니 성령에 따른 삶 역시 주님 영광 빛나는 표징의 삶입니다.

 

셋째, “물이 변하여 포도주로!” 바로 찬미와 감사의 공동전례 은총입니다. 이 또한 성령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바로 매일 평생 끊임없이 규칙적으로 계속되는 찬미와 감사의 시편성무일도와 미사 공동전례 은총이 우리의 물같은 무미건조한 분위기를 포도주 같은 기쁨과 평화 넘치는 분위기로 바꿔줍니다. 부단히 부패인생을 향기 은은한 아름다운 발효인생으로 바꿔줍니다. 간혹 예전 신자분들과 주고 받은 문답의 내용이 생각납니다.

 

“수사님, 하루 이틀도 아닌 평생을 이 무미건조한 물같은 분위기 수도원에서 무슨 맛으로, 무슨 재미로, 무슨 기쁨으로 살아갑니까?”

“하느님 찬미의 맛으로, 찬미의 재미로, 찬미의 기쁨으로 살아갑니다. 물맛이 아니라 기쁨의 포도주맛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하느님 맛으로, 하느님 재미로, 하느님 기쁨으로 살아갑니다.”

 

일언지하에 대답하고 만족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하느님 찬미의 영적 효소가 우리 물같은 마음을 기쁨 은은한 포도주 마음의 영적 분위기로 바꿔줍니다. 새삼 한결같은 찬미와 감사의 삶 역시 주님 영광으로 빛나는 표징의 기적임을 깨닫습니다. 바로 오늘 시편 화답송이 우리를 고무시킵니다, 우리 갈망에 불을 붙이고 물같은 무미건조한 마음을 기쁨 은은한 포도주맛 같은 분위기로 바꿔줍니다. 

 

“주님께 노래하여라, 새로운 노래. 주님께 노래하여라, 

온 세상아, 주님께 노래하여라, 그 이름 찬미하여라.

나날이 선포하여라, 그분의 구원을. 

전하여라, 겨레들에게 그분의 영광을, 모든 민족들에게 그분의 기적을.”

 

이사야의 입을 빌어 주님은 또 새 예루살렘인 우리 하나하나를 격려하시며 찬미의 기쁨을 살도록 우리를 부추깁니다.

 

“정녕 총각이 처녀와 결혼하듯, 너를 지으신 분께서 너와 혼인하고, 신랑이 신부로 말미암아 기뻐하듯, 너의 하느님께서는 너로 말미암아 기뻐하시리라.”

 

그대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로 말미암아 기뻐하시니 미사를 통해 그대로 실현되는 종말론적 기쁨의 삶입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성체성혈 미사은총이 우리의 부패인생을 부단히 향기 은은한 발효인생으로 바꿔 주시고, 물같이 재미없고 맛없는 삶을 포도주 같은 새롭고 재미있고 맛있는 기쁨의 삶으로 바꿔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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