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 여정 -주님과 사랑과 신뢰의 관계-2022.1.18.연중 제2주간 화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Jan 18,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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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8.연중 제2주간 화요일                                                            1사무16,1-13 마르2,23-28

 

 

자유의 여정

-주님과 사랑과 신뢰의 관계-

 

 

예전 간혹 수도원 피정자들과 나눈 대화가 생각납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환경의 수도원에서 사니 얼마나 행복하겠는가, 바로 여기가 천국이라는 피정 신자분들에 대한 제 답변입니다.

 

“환경이 좋아서 천국이 아니라 관계가 좋아야 천국입니다. 환경과 관계는 반드시 함께 가지 않습니다. 환경이 좋아도 관계가 나쁘면 지옥일 수 있고, 관계가 좋으면 천국일수도 있습니다. 주님과의 관계, 형제들과의 관계, 주변환경과의 관계등, 사랑과 신뢰의 관계가 답입니다. 주님과의 관계, 형제들과의 관계 역시 함께 오래 살아도 서로 무관無關한 남남의 관계일 수도 있습니다.”

 

말하면 대부분 공감합니다. 사실 관계가 좋아야 천국의 행복입니다. 고립단절된 ‘나 혼자만’의 관계라면 바로 거기가 지옥입니다. 저절로의 좋은 관계는 없습니다. 역시 관계를 위한 한결같은 섬세한 분투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새삼 사랑과 신뢰의 관계 역시 훈련임을 깨닫습니다. 관계의 훈련과 더불어 관계의 성장과 성숙입니다. 참 자주 인용했던 평이하나 공감이 가는 예화 둘이 생각납니다.

 

“아무리 사랑하는 좋은 관계도 만나지 않으면 점차 멀어진다, 주님과의 관계도 그렇다. 기도를 통해 자주 만나지 않으면 점차 주님과의 관계도 소원해진다. 그래서 한결같은 끊임없는 항구하고 간절한 기도를 통한 주님과의 만남이 필수이다. 또 하나 영혼은 모종한 채소와 같다. 물주지 않으면 시들어 죽듯이 영혼도 그렇다. 그러니 자주 채소에 물주듯 자주 영혼에 물주는 기도가 역시 절대적이다.”

 

이런 요지의 예화입니다. 사실 제 집무실에는 오래전 지인으로부터 선물받은 스파티필름이라는 식물이 있는데 시들어 죽어가다가도 물만 주면 잠시후 싱싱하게 살아나는 모습을 보면서 기도에 관한 평범하면서도 진실한 예화에 늘 공감하곤 합니다.

 

영혼에 물주기와도 같은 끊임없는 한결같은 기도가 얼마나 주님과의 관계에 절대적인지는 우리가 매일 평생 끊임없이 규칙적으로 바치는 시편 성무일도와 미사 공동전례기도가 이를 입증합니다. 말그대로 주님과는 물론 공동체 형제들과 사랑과 신뢰의 ‘관계의 훈련’ 시간과도 같습니다. 

 

좋은 관계의 손님은 빈손으로 와도 반갑지만, 좋지 않은 관계의 손님은 많은 선물을 갖고 와도 그리 반갑지 않습니다. 좋은 사람 자체가 최고의 선물입니다. 예전 빈손으로 와서 미안하다는 분에게 “형제님 자체가 최고의 선물”이라 답했던 진실했던 고백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언젠가 꽃 한송이를 선물하면서 미안해 하는 자매에게 드린 시 한구도 생각납니다. 

 

“꽃이 꽃을 가져오다니요. 

그냥 오세요.

당신은 꽃보다 더 예뻐요.”

 

간혹 미사예물이 부족해서 미안하다는 분에게도 ‘자매님 자체가 참 좋은 미사예물’이라 격려했던 일도 새롭게 떠오릅니다.

 

주님과의 관계도 똑같습니다. 어차피 죽어 주님의 집에 귀가할 때는 빈손일수 뿐이 없습니다.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인생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우리가 갖고 갈 무형의 자산은 주님과의 관계 하나뿐입니다. 과연 살아갈수록 깊어지는 주님과의 관계인지 묻게 됩니다. 신망애와 관계, 진선미의 관계입니다.

 

존재는 관계입니다. 내가 아무리 누군가 물어도 답은 나오지 않습니다. 주님과의 관계, 형제들과의 관계, 주변과의 갖가지 관계를 통해 내가 누군지 알게 됩니다. 주님 중심의 형제들의 공동체라는 거울은 바로 내가 누구인가 비춰주는 거울입니다. 참으로 공동생활이 괴물이나 폐인이 되는 것을 막아주며 교만에 대한 최고의 치유제가 되기도 합니다. 공동생활의 폐단보다는 은혜가 백배는 많습니다. 공동생활 자체가 평생 수련이요 사람을 겸손하게 만듭니다.

 

“저에게 가장 큰 스승은 여기 수도공동체입니다.”

 

집무실 게시판에 2021.8.20.일에 써붙여 놓은 잠언성 고백의 말마디입니다. 그러니 사랑과 신뢰의 관계가 답입니다. 참 장황하게 관계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참 귀한 깨달음의 진리가 관계와 자유의 관계입니다. 날로 깊어지는 사랑과 신뢰의 관계와 더불어 자유로워지는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어찌보면 우리의 영적 여정은 ‘자유의 여정’이라 할 수 있고, 이를 위해 ‘주님과 사랑과 신뢰의 관계’가 전제된다는 것입니다. 바로 오늘 강론 제목이기도 합니다. 오늘 1.18일부터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인 1.25일까지는 타 그리스도인들과 일치를 촉진하는 일치주간입니다. 바로 모두가 주님과 사랑과 신뢰의 관계를 추구할 때 성취되는 참으로 자유롭게 하는 다양성의 일치임을 깨닫습니다. 이런 관계의 관점에서 보면 오늘 복음과 독서의 이해도 확연해 집니다. 오늘 복음을 관계의 렌즈로 드려다 보겠습니다.

 

‘제자들이 밀이삭을 뜯는’ 장면을 소재로 벌어지는 일입니다. 여기서 바리사이와 예수님을 비교할 것이 아니라 다윗과 예수님을 비교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다윗일행이 배가 고팠을 때 다윗의 자유로운 처신이 참 좋은 묵상감입니다.

 

“예브야타르 대사제 때에 다윗 그가 하느님의 집에 들어가서, 사제가 아니면 먹어서는 안 되는 이들에게도 주지 않았느냐?”

 

바로 이런 다윗같은, 아니 그 이상의 존재가 예수님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다윗의 파격의 자유로움은 어디서 기인할까요? 주님과의 깊은 사랑과 신뢰의 관계입니다. 하느님을 지극 정성 사랑하고 또 하느님의 자기를 향한 사랑과 신뢰를 알기에, 하느님의 사랑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이렇게 하느님의 마음을 알아서 자유롭게 처신할 수 있었던 다윗입니다. 

 

이런면에서 아브라함, 모세, 무수한 예언자들이나 성인들의 경우가 흡사합니다. 참으로 주님의 사랑과 신뢰를 받고 있을 때 주님의 마음에 정통할 수 있고 자유로울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실제적 인간 관계들에서도 입증됩니다. 참으로 사람은 자기를 믿고 사랑하는 이들은 본능적으로 알며 그 앞에서는 저절로 활짝 피어나 자유로움을 느끼기 마련입니다. 참으로 하느님과 이웃들에게 사랑과 신뢰를 받고 있음을 느낄 때 비로소 눈치보지 않고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그대로 적용되는 다윗에 이어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의 이런 율법주의에서 절대적 자유로움은 아버지께 사랑과 신뢰를 받고 있다는 확신이 결정적 이유입니다. 누구보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마음에 정통해 있기에 그대로 하느님의 마음을 전달합니다. 바리사이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도 없거니와 이런 경지는 언감생심 절대 꿈꿀수 없습니다. 이들이야 말로 주님을 섬긴다 하면서 내용은 남남의 관계처럼 생각됩니다. 참으로 오늘 복음의 절정이자 자유로운 예수님의 진면목이 확연히 드러나는 다음 대목입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말 그대로 자유의 선언입니다. 판단의 잣대는 안식일법의 율법이 아니라 사랑이자 사람임을 깨닫게 됩니다. 아니 사람의 아들 예수님 자체가 판단의 구체적 잣대가 됩니다. 하느님 사랑의 화신인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처신했을까 묵상하면 답은 곧장 나옵니다. 

 

이런 관계의 관점에서 보면 제1독서 사무엘상권의 사울과 다시 부름받게된 다윗에 대한 이해도 확연해 집니다. 사울은 불행하게도 자기를 불러주신 주님과의 관계를 소홀히 했습니다. 주님과의 관계인 성소도 부지런히 돌보고 가꾸었어야 하는데 이를 놓친 어리석고 태만한 사울입니다. 마침내 주님과 사랑과 신뢰의 관계가 무너졌을 때 내침을 당하고 주님은 다윗을 선택합니다. 

 

과연 누구를 탓할 수 있겠는지요. 주님과의 사랑과 신뢰의 관계를 소홀히 함으로 성소를 잃게 되었으니 말그대로 자업자득이요 스스로 초래한 심판입니다. 주님과 사울 사이에서 사무엘의 처지가 참으로 난감했을 것입니다만 자신의 책임을 다하는 사무엘의 모습도 인상적입니다. 

 

오늘 제1독서 큰 주제는 사울의 다윗의 성공과 사울의 몰락입니다. 주님과 다윗의 좋은 관계를 예견케 하는 다음 대목의 말마디가 마음에 깊은 울림을 줍니다. 

 

“겉모습이나 키 큰 것만 보아서는 안된다. 사람들은 눈에 들어오는 대로 보지만 주님은 마음을 본다.”

 

외모가 아닌 그 순수와 열정의 마음을, 신망애의 마음을, 진선미의 마음을 보신다는 말씀입니다. 마침내 이사이의 아들 일곱을 제친 후 마지막 참으로 작아 보이는 다윗이 주님의 부름을 받습니다.

 

“바로 이 아이다. 일어나 이 아이에게 기름을 부어라.”

 

주님의 영이 다윗에게 줄곧 머무르니 이제 주님과 다윗의 사랑과 신뢰의 관계가 시작되었음을 봅니다. 사울과 다윗의 비교가 우리에게는 참으로 깊은 가르침이자 깨우침이 되어 우리의 성소를, 주님과의 관계를 살펴보게 합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당신과는 물론 형제들간의 사랑과 신뢰의 관계도 날로 깊이해 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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