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穩全한 사람 -주님을 중심中心에 모시고 사는 성인聖人-2022.1.31.월요일 성 요한 보스코 사제(1815-1888) 기념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Jan 31,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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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31.월요일 성 요한 보스코 사제(1815-1888) 기념일 

2사무15,13-14.30;16,5-13ㄱ 마르5,1-20

 

 

온전穩全한 사람

-주님을 중심中心에 모시고 사는 성인聖人-

 

 

누가 온전한 사람입니까? 주님을 중심에 모시고 사는 성인입니다. 성인은 일부 영적 엘리트가 아니라 믿는 이들의 보편적 성소입니다. 누구나 온전한 성인으로 불림받고 있습니다. 참 기쁨과 참 행복도 온전한 성인의 삶에서 나옵니다. 누가 온전한 사람입니까?

 

진실하고 성실하고 절실한 3실의 사람입니다.

감사와 감동과 감탄의 3감의 사람입니다.

하느님 믿음, 건강, 돈을 우선순위로 하는 사람입니다.

기쁨과 감사, 인내와 절제, 그리고 신망애信望愛의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이런 이들이 영적으로 건강한 성인들입니다. 참 온전한, 건강한 사람은 이렇게 영혼이 튼튼한 사람입니다. 영혼이 튼튼할 때 육신도 뒤를 잇습니다.

한마디로 주님을 중심에 모시고 사는 사람이 성인이 그러합니다.

 

요즘 자주 가톡 전송중 수도원 십자로의 예수님 성심상 사진과 더불어 전하는 메시지가 생각납니다. “예수님 축복인사 받으시고 오늘도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우리의 영원한 롤모델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을 삶의 중심에 모시고 살 때 참으로 온전한 삶이겠습니다. 

 

바로 오늘 축일을 지내는 19세기 북부 이탈리아 토리노 출신으로 ‘젊은이들의 사도’라 칭하는 살레시오 수도회 창립자 성 요한 보스코 사제가 그러합니다. 만72세, 당시로 보면 천수를 누린 성인입니다. 성인에 대한 일화도 참 풍부합니다. 

 

“청소년은 젊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랑받기에 충분합니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들이 사랑받고 있음을 알도록 사랑하십시오.”

 

성인의 어록에 나오는 유명한 말씀입니다. 산업화라는 격변기 속에서 빈곤하고 버림받은 청소년들에 대한 교육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몸소 실천한 교육자이자 영성가이며 뛰어난 저술가였던 성인의 유언도 감동적입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선을 행하고 아무에게도 악을 행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나의 아이들에게 천국에서 기다리겠다고 전해 주십시오.”

 

마침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오늘 성 요한 보스코 축일을 맞이하여 살레시오 수도자들을 축하하며 드린 말씀도 좋았습니다.

 

“우리는 젊은이들의 아버지이며 스승인 이 위대한 성인을 생각한다. 그분은 자신을 경당敬堂에 가두지도 않았고, 자신의 것들에 갇히지도 않았다. 그분은 자신의 특징적인 창조성을 지니고, 젊은이들을 찾아 거리로 뛰쳐나갔다.”

 

성 요한 보스코의 후예이자 ‘수단의 돈 보스코’라 일컫던 살레시오 수도회의 이태석 세례자 요한 신부의 삶도 감동 그 자체입니다. 암투병중 임종직전에 성 요한 보스코를 꿈에서 보았고, 간병하던 살레시오 수도회 수도자들에게 “Everything is Good!(모든 것이 좋다!)”라는 유언을 남기고 선종했습니다.

 

성 요한 보스코, 이태석 세례자 요한 수도사제 두 분 모두 예수님을 닮은 참 사람, 온전한 사람의 전형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오늘 말씀에 접근합니다. 복음에서 게라사의 더러운 영에 들린 미친 사람과 제1독서의 다윗의 처지가 흡사합니다. 완전히 소외되고 버림받은 처지입니다. 주석일부를 소개합니다.

 

“압살롬 아들의 반역으로 어둠속에 떨어진 다윗이다. 그는 울면서 머리는 산발한채 맨발로 올리브 산을 울면서 걸어갔다. 시므이는 그를 저주하며 돌을 던진다. 여기서 다윗은 게라사의 미친 사람과 큰 차이가 없다. 다윗 역시 그의 아들, 신하들, 그의 왕직으로부터 비극적으로 철저히 소외되어있다.”

 

외관상 비슷하지만 내용은 천지차이입니다. 다윗의 대죄에 대한 보속의 수련이 참 엄혹합니다. 이런 회개에 따른 보속의 시련을 통해 참으로 비워지고 겸손해진 다윗이었을 것입니다. 삶의 중심에 주님을 모시고 꾿꾿이 한결같이 견뎌내는 다윗의 인내와 겸손이 놀랍습니다. 바로 주님은 다윗의 이점을 주목하셨을 것입니다.

 

이래서 대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성 다윗이라 불리는 것입니다. 이 또한 하느님이 다윗을 교육하는 과정입니다. 이런 주님이 그의 삶의 중심에 자리하지 않았다면 다윗은 진짜 더러운 영에 들려 미쳤을 것입니다. 마지막 다윗의 말마디가 그의 하느님 믿음을 입증합니다.

 

“내 배 속에서 나온 자식도 내 목숨을 노리는데, 하물며 이 벤야민 사람이야 오죽하겠소? 주님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것이니 저주하게 내버려 두시오. 행여 주님께서 나의 불행을 보시고, 오늘 내리시는 저주를 선으로 갚아 주실지 누가 알겠소.” 

 

말한후 부하들과 계속 고난의 피난길에 오릅니다. 반면 복음의 게라사의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은 중심 부재의 사람들 모두의 가능성입니다. 마음의 중심 자리에 주님이 자리하지 않을 때 악령이 자리잡게 되고 공동체에서 소외된, 버림받은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위태하고 약한 인간들인지요! 미치거나 자살 둘 중 하나입니다. 그래서 생존경쟁 치열한 세상에서 살아가자니 병도 많고 폐인이나 괴물도 많고, 자살자도 많습니다. 참으로 온전한 사람으로 살기 힘든 세상이며 참사람 찾아 보기 힘든 시절입니다. 이 모든 궁극의 원인은 중심에 주님을 모시지 못한, 중심 부재의 결과입니다.

 

“더러운 영아,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마침내 빛이신 주님을 만남으로 더러운 어둠의 영들은 축출되고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은 구원되어 온전한 사람이 됩니다. 오히려 주님의 일꾼이, 복음 선포자가 됩니다. 이제 주님을 삶의 중심에 모신 온전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주님은 당신과 함께 해달라는 청을 거절하신후 제 삶의 자리로 복귀시킵니다.

 

“집으로 가족들에게 돌아가, 주님께서 너에게 해 주신 일과 자비를 베풀어 주신 일을 모두 알려라.”

 

그러나 유비무환의 지혜가, 치유보다는 예방이 백배 낫습니다. 더러운 영이 들리기 전, 내 삶의 중심에 마음의 중심에 살아 계신 주님을 모시고 주님과 일치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수도자들은 평생 매일 끊임없이 규칙적으로 이 거룩한 성전에서 시편성무일도와 미사 공동전례기도를 바칩니다. 사실 이런 영성훈련보다 영육의 건강에 좋은 처방도 없습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안에 내재한 온갖 어둠의 더러운 영들을 말끔히 쫓아내시고 당신의 생명과 빛, 영으로 가득 채워 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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