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2.2.수요일 주님 봉헌 축일(축성 생활의 날) 말라3,1-4 루카2,22-40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봉헌 삶의 축복-
오늘은 주님 봉헌 축일이자 특별히 자신을 봉헌한 수도자들을 위한 축성생활의 날입니다. 또 주님 봉헌을 기리며 우리의 봉헌의 삶에 대해 깊이 성찰해 보는 날입니다. 믿는 이들 모두가 봉헌의 삶에로 불림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에 대한 믿는 이들의 답은 너무나 자명합니다. 바로 봉헌 삶의 축복을 살아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영원하신 그분께 대한 봉헌의 열망을 지니고 있습니다.
-“당신이
꽃을 좋아하면
당신의 꽃이
당신이
별을 좋아하면
당신의 별이
당신이
하늘을 좋아하면
당신의 하늘이
되고 싶다
늘
당신의 무엇이 되고 싶다”-1998.12.25
수차례 인용했던 아주 예전에 써놨던 “늘 당신의 무엇이 되고 싶다” 라는 자작시입니다. 바로 봉헌의 열망을 표현한 글입니다. 우리 베네딕도회 수도자들의 정주서원 역시 봉헌 열망의 표현입니다. 언제나 거기 그 자리에서 한결같이 주님께 봉헌된 삶을 사는 정주 수도자들입니다.
세상에 봉헌이란 말마디보다 아름다운 말마디도 없을 것입니다. 믿는 이들의 삶의 의미가 바로 봉헌입니다. 무지와 허무에 대한 답도 봉헌뿐입니다. 하느님 중심의 자발적 삶의 표현이 봉헌입니다. 그러니 참 기쁨은 봉헌의 기쁨이요 참 행복은 봉헌의 행복임을 깨닫습니다. 참으로 고귀한 축복의 삶이 봉헌의 삶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봉헌 삶의 모범을 봅니다. 예수님의 부모가 봉헌 삶의 모범입니다. 모세의 율법에 따라 정결례를 거행할 날이 되자 예수님의 부모는 예수 아기를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올라가 주님께 바칩니다. 율법에 따라 산비둘기 한 쌍과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도 제물로 바칩니다. 이런 율법 준수의 삶을 통해 얼마나 하느님 중심의 봉헌의 삶에 충실한 예수님의 부모인지 깨닫습니다.
이어지는 예루살렘의 시메온과 한나가 봉헌 삶의 모범을 보여줍니다. 둘다 주님께 희망과 신뢰를 두고 살았던 성서의 가난한 사람들인 아나뷤의 전형입니다. 평생 의롭고 독실하게 살며 이스라엘이 위로받을 때를 기다리던 시메온이었습니다. 이런 봉헌의 삶에 한결같이 충실하던 시메온 위에는 늘 성령께서 머물러 계셨다니 그대로 봉헌 삶의 축복을 상징합니다.
성령께서는 그에게 그리스도를 뵙기 전에는 죽지 않으리라고 알려 주셨고 마침내 성령에 이끌려 성전에 들어갔고, 오매불망 그리던 주님을 만납니다. 참으로 봉헌의 삶에 충실하던 시메온이 봉헌되신 주님을 성전에서 만난 것입니다.
그대로 “너희가 찾던 주님, 그가 홀연히 자기 성전으로 오리라.”라는 말라기 예언의 실현입니다. 성전에서 구원자 아기 예수님을 만나 두 팔에 받아 안고 감격에 벅차 구원의 기쁨을 노래하는 시메온의 모습이 참 아름답고 감동적입니다.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이는 당신께서 모든 민족들 앞에서 마련하신 것으로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며, 당신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
그대로 봉헌 삶의 축복을 보여줍니다. 우리 수도자들이 잠자리 들기전 시메온과 함께 끝기도때 마다 주님을 만난 기쁨을 노래하며 바치는 기도입니다. 참으로 봉헌의 삶에 충실하던 시메온이 봉헌되신 주님을 만난 것입니다.
참으로 한결같은 봉헌의 삶이 아름다운 노년을 보장합니다. 수도자, 사제는 물론 주님을 믿는 모든 분들에게 해당되는 진리입니다.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답은 단 하나, 각자 주어진 봉헌의 삶에 한결같이 충실하는 것입니다. 이래야 거룩하고 아름다운 삶입니다. 시메온에 이어 한나라는 예언자도 봉헌 삶의 모범을 보여 줍니다. 우리의 봉헌의 삶을 비춰주는 거울같은 시메온과 한나의 모습이 우리를 마냥 부끄럽게 합니다.
‘한나는 여든 네 살이 되도록 과부로 지냈다. 그리고 성전을 떠나는 일 없이 단식하고 기도하며 밤낮으로 하느님을 섬겼다.’
한결같이 봉헌의 삶에 충실했던 한나는 정주 영성의 모범을 보여 줍니다. 마침내 아기 예수님을 만난 한나도 예루살렘의 속량을 기다리는 모든 이에게 그 아기에 대해 전해 줍니다.
참 좋은 모범이 아름다운 봉헌의 삶입니다. 봉헌의 삶도 보고 배웁니다. 수도자들의 봉헌 삶의 모범이 신자분들에게 얼마나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지 깨닫습니다. 예수님은 분명 그의 부모인 요셉 마리아의 봉헌의 삶을 그대로 보고 배웠음이 분명합니다. 부모의 모범과 더불어 하느님의 총애가 늘 함께 했음을 봅니다. 다음 묘사가 이를 입증합니다.
“아기는 자라면서 튼튼해지고 지혜가 충만해졌으며,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아기 예수님뿐 아니라 봉헌 삶에 충실한 이들에게 주어지는 주님의 축복을 상징합니다. 이런 봉헌 축복을 깨닫는 다면 찬미와 감사의 응답은 너무나 자명합니다. 참으로 하느님의 총애寵愛를 받을 때 이웃 형제들을 두루 사랑할 수 있는 겸애兼愛가 자연스럽게 뒤따름을 봅니다. 예수님의 전생애가 이를 입증합니다. 겸애兼愛야 말로 총애寵愛의 진정성을 보여주는 거울입니다.
봉헌의 사랑, 봉헌의 기쁨, 봉헌의 축복, 봉헌의 생명, 봉헌의 향기, 봉헌의 빛, 봉헌의 아름다움, 봉헌의 지혜, 봉헌의 자유, 봉헌의 충만, 봉헌의 총애 등 끝이 없습니다. 봉헌의 삶자체가 우리 삶의 모두이자 의미요 축복임을 깨닫습니다. 참으로 인간 품위를 지켜주는 봉헌의 삶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에 대한 답은 저절로 나옵니다. 한결같이 봉헌의 삶에 충실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한결같이 봉헌의 삶에 충실하도록 도와 주십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