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2.3.연중 제4주간 목요일 1열왕2,1-4.10-12 마르6,7-13
하루하루 한결같이 최선을 다하는 삶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날마다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일일일생 하루를 처음처럼, 마지막처럼, 평생처럼
살았습니다.
저에겐 하루하루가 영원이었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이렇게 살았고 내일도 이렇게 살 것입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받으소서.”
“오소서,
주 하느님!
당신이 되게 하소서
당신의 믿음이
당신의 희망이
당신의 사랑이
당신의 신망애가 되게 하소서
당신의 진리가
당신의 선이
당신의 아름다움이
당신의 진선미가 되게 하소서.”
날마다 즐겨 바치는 제 평생 소원 둘을 요약한 윗 두 기도문입니다. 성인들이 이렇게 하루하루 한결같이 최선을 다해 진인사대천명의 삶을 살았습니다. 오늘 제1독서 열왕기 상권의 주인공 다윗이 그러하고 복음의 주인공 예수님이 그러했습니다. 제1독서는 사무엘 상하권이 끝나고 오늘부터는 열왕기 상권의 시작입니다.
파란만장했더 다윗의 삶이 죽음으로 끝납니다. 참으로 치열했던 다윗의 진인사대천명의 삶과 죽음이 감동적입니다.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했지만 그의 영향력은 영원합니다. 누구나 예외없이 언젠가 맞이할 자명한 현실의 죽음입니다. 새삼 베네딕도 성인의 “날마다 죽음을 눈 앞에 환히 두고 살라”는 말씀을 되새기게 됩니다. 이래야 하루하루 환상이 걷힌 본질적 깊이의 투명한 삶을 살 수 있겠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하루하루 삶이 참 좋은 죽음의 준비가 됩니다.
“나는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이 가는 길을 간다. 너는 사나이답게 힘을 내어라. 주 네 하느님의 명령을 지켜 그분의 길을 걸으며, 또 모세 법에 기록된 대로 하느님의 규정과 계명, 법규와 증언을 지켜라. 그러면 네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성공할 것이다.”
임종을 앞둔 다윗이 솔로몬 아들에게 준 유언이자 임종어입니다. 이 말마디 안에 다윗의 평생 삶이 모두 닮겨 있습니다. 비록 대죄를 지었지만 처절한 회개와 보속은 물론 최선을 다해 철저히 하느님을 섬긴 하느님 중심의 삶을 살았던 하느님의 충실한 종 다윗입니다.
다윗은 자기 조상들과 함께 잠들어 다윗성에 묻혔고, 솔로몬은 자기 아버지 다윗의 왕좌에 앉자 그의 왕권이 튼튼해졌으니, 이 모두가 하느님의 은총과 더불어 다윗이 왕권을 튼튼해 해 준 덕분입니다. 저 또한 나름대로 자치 수도원의 기반을 마련한 후 훌륭한 후임자에게 위임한 셈이니 참으로 하느님께 감사하게 되고 홀가분한 마음입니다. 원장직의 책임은 떠났어도 무한 책임감을 느껴 퇴임후의 삶에 각별히 유의하게 됩니다.
이제 숙제는 솔로몬에게 주어졌고 모든 책임은 그에게 달렸으나 불행히도 솔로몬은 다윗의 유언을 한결같이 끝까지 수행하지 못했고 그 인생은 실패로 끝났음을 봅니다. 아마도 솔로몬은 아버지 다윗 왕의 삶과 죽음의 교훈을 충분히 보고 배우지 못했음이 분명합니다. 둘을 일컬어 프란치스코 교황은 ‘회개한 성인은 있어도’(다윗) ‘부패한 성인은 없다’(솔로몬)고 갈파했습니다.
다윗이 솔로몬에게 신신당부하듯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의 파견에 앞서 삶의 필수 지침을 주시며 명령하십니다. 시공을 초월하여 예수님을 따르는 오늘 우리들에게도 그대로 해당되는 본질적 삶의 핵심 원리들입니다. 이 또한 예수님 삶의 반영입니다. 다윗의 유언이 다윗 삶의 반영이었듯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준 삶의 지침은 당신 삶의 반영임을 봅니다. 참으로 얼마나 잘 보고 배워 실천에 옮겼는지는 제자들마다 다 달랐을 것입니다.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고, 둘씩 짝지어 파견하기 시작하셨다. 그러면서 길을 떠날 때에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빵도 여행 보따리도 전대에 돈도 가져가지 말라고 명령하시고, 신발을 신되 옷도 두 벌은 껴입지 말라고 이르셨다.’
혼자가 아닌 도반과 함께 철저히 최소한의 단순하고 홀가분한 차림으로 살라는 말씀입니다. 참으로 무집착의 이탈의 삶으로 온전히 주님을 드러내면서, 주님의 능력으로 소유가 아닌 존재의 삶을 살라는 말씀입니다. 하느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면서 사람들의 환대에 의존하되 민폐는 최소화 하면서 사명 수행에 전념하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무소유의 삶이 가능했던 것은 곳곳에서 착한 사람들의 환대가 받쳐 주었기에 가능했음을 봅니다.
좌우간 우리가 본받아야 할 점은 주님께 파견 받은 존재로서 이런 주님의 무소유, 무집착의 ‘존재의 삶’, 자유롭고 홀가분한 ‘초연한 삶’이겠습니다. 이래야 복음 선포의 본질적 삶에 충실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최소한의 의식주에 만족하며 회개의 선포와 마귀의 축출, 병자의 치유라는 본질적 사명에 충실했던 제자들의 치열한 삶이 우리를 참으로 부끄럽게 합니다.
참으로 안팎으로 끊임없이 비워 하루하루 최소한의 소유에 만족하면서 복음 선포의 본질적 삶에 전념하고 있는지 성찰하게 됩니다. 주님을 환히 드러내는 삶 자체가 존재론적 복음 선포의 삶입니다. 회개의 선포에 앞서 우리 자신이 하루하루 회개의 여정에 참으로 충실해야 함을 깨닫습니다. 회개의 선포에 자연스럽게 뒤 따르는 구마기적과 치유기적으로 오늘 지금 여기서 실현되는 하느님 나라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회개한 우리 안에 내재하는 온갖 어둠의 마귀 세력들을 일소하시고, 영육의 병을 치유하시며, 당신의 힘으로 충전시킨후 각자 삶의 자리로 파견하십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