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목자 영성 -자비와 지혜-2022.2.5.토요일 성녀 아가타 동정 순교자(231-250) 기념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Feb 05,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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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2.5.토요일 성녀 아가타 동정 순교자(231-250) 기념일  

1열왕3,4-13 마르6,30-34

 

 

착한 목자 영성

-자비와 지혜-

 

 

“입춘대길立春大吉”

늦게서야 자매가 보내준 카톡 메시지를 보고 어제가 입춘임을 알고 반가웠습니다.

“아, 오늘이 입춘이었네요! 입춘 소식 주신 자매님이 입춘이네요! 입춘처럼 사세요!”

즉시 답신을 보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위속에서도 훈훈한 봄처럼 사는 입춘의 사람, 파스카의 사람이 성인입니다. 

 

누구나의 소명이 참사람이, 훌륭한 사람이, 참나가, 하느님의 자녀가, 성인이 되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 누구나의 궁극의 평생 목표이자 평생 공부입니다. 이런 원대한 꿈은, 청정욕은 언제나 좋습니다. 무죄합니다.

 

오늘은 3세기 초엽, 살다가 로마 황제 데케우스 박해 기간에 순교한 이탈리아 시칠리아의 카타니아 출신 성녀 아가타 동정 순교자 기념일입니다. 루치아, 아녜스, 체칠리아와 더불어 네 동정녀 순교자입니다. 그녀의 이름은 ‘선하다’라는 뜻의 그리스어 ‘아가테agate’에서 유래합니다. 참으로 온전히 주님 사랑에 헌신함으로 짧은 나이에 참나를 살았던 성녀입니다. 성무일도시 전설적 내용의 즈카르야 후렴과 마리아의 노래 후렴이 은혜롭습니다.

 

“아가타는 마치 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사람처럼 즐겁고 자랑스럽게 감옥에 갔으며, 자기 고통을 기도로 주님께 봉헌하였도다.”

 

“착한 스승이신 주 예수여, 당신은 내가 박해자의 고통을 이기게 하셨으니 감사하나이다. 주여, 내가 당신 불멸의 영광에 도달하게 하소서.”

 

그대로 성녀의 주님 향한 열렬한 사랑이 감지되는 고백입니다. 성인성녀들은 물론 믿는 이들의 영원한 롤모델이 자비하신 하느님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는 우리의 영원하신 착한 목자 주 예수님입니다. 그래서 오늘 강론 제목은 “착한 목자의 영성-자비와 지혜-”으로 정했습니다.

 

오늘 복음을 통해 자비하신 착한 목자 예수님의 모습이 잘 드러납니다. 복음 선포의 사명을 수행한 제자들의 보고를 들은 후 제자들에 대한 주님의 배려에서 자비심이 잘 드러납니다. 

 

“너희는 외딴곳으로 가서 쉬어라.”

 

일과 쉼, 활동과 관상은 영적 삶의 리듬입니다. 몰았다가 한꺼번의 쉼이 아니라 날마나 일정시간 나만의 외딴곳에서 주님안에서 쉬는 관상적 휴식이 절대적입니다. 20세기의 영성 대가, 토마스 머튼은 활동주의를 현대판 이단이라 못박았고, 고독은 현대인들에게 사치품이 아니라 필수품이라 갈파했습니다. 참으로 활동과 관상의 리듬에 충실한 삶이 지혜로운 삶입니다.

 

그러니 모든 판단의 잣대는 사랑입니다. 사랑에서 분별의 지혜도 나옵니다. 그러니 자비와 지혜는 둘이 아닙니다. 한 실재의 양면입니다. 자비로운 이가 지혜롭고 지혜로운 이가 자비롭습니다. 이점은 불교와 일치합니다. 하느님은 자비하시고 지혜로우시며 우리 예수님이, 불가의 부처님이 바로 그러하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착한 목자 예수님의 진면목이 잘 드러납니다. 외딴곳에 제자들과 함께 휴식차 왔을 때 미리 도착한 영육으로 지치고 굶주린 민초民草들의 군중을 보신후 예수님의 즉각적 반응이 이에 대한 생생한 증거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배에서 내리시어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없는 양들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기 시작하셨다.’

 

가엾이 여기는 마음, 측은히 여기는 마음,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바로 자비와 연민의 하느님 사랑입니다. 참으로 이런 연민과 자비의 사랑이 있어 비로소 주님을 닮은 참사람의 성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육신의 양식에 앞서 영혼의 양식인 진리 말씀을 가르쳐 주시는 주님입니다. 

 

참으로 말씀 공부와 실천이 얼마나 참사람의 성인이 되는데 본질적 평생공부인지 깨닫습니다. 불교의 혜암 대선사는 제자들에게 “공부하다 죽어라!”는 평생 화두같은 말씀을 주셨다 합니다. 오늘 복음에 이어 오천명을 먹이신 기적이 나옵니다. 흡사 말씀전례에 이어 성찬전례의 미사 구조를 연상케 합니다. 수도원의 일과표도 상징하는 바 일맥상통합니다. 아침미사후 아침식사, 낮기도후 점심식사, 저녁기도후 저녁식사가 배치되어 있어 영혼의 양식인 기도와 하느님 말씀이 우선되고 있음을 봅니다.

 

자비와 한 쌍을 이루는 지혜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솔로몬의 선택이 참 지혜롭습니다. 하느님께서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하고 물으셨을 때 다음 솔로몬의 답변입니다. 과연 여러분에게 하느님께서 똑같은 질문을 하신다면 무엇이라 답변하겠습니다. 

 

솔로몬이 하느님께 아뢰는 말씀이 진정성이 가득해 보입니다. 부왕인 다윗에게 큰 자애를 베푸신 하느님께 감사드린후 다윗의 뒤를 잇게 된 자신의 절박한 처지를 깨달은 솔로몬이 결정적 소원을 아룁니다.

 

“당신 종은 당신께서 뽑으신 백성, 그 수가 너무 많아 셀 수도 헤아릴 수도 없는 당신 종에게 듣는 마음을 주시어 당신 백성을 통치하고 선과 악을 분별할수 있게 해주십시오.”

 

귀기울여 공경하는 마음으로 듣는 경청에 이어 분별력의 지혜를 청하는 참으로 지혜로운 솔로몬입니다. 경청과 분별력의 지혜가 하나로 직결됨에 주목해야 합니다. 정말 귀기울여 잘 들을 때 지혜로운 분별임을 깨닫습니다. 솔로몬의 대답에 만족하신 하느님의 답변입니다.

 

“네가 자신을 위하여 장수를, 부를, 원수들의 목숨을 청하지 않고, 옳은 것을 가려내는 분별력을 청하였으니, 내가 네 말대로 해 주겠다. 또한 나는 네가 청하지 않은 것, 곧 부와 명예도 너에게 준다.”

 

지혜를 청하므로 부와 명예등 부수적인 것들 까지 선물로 받은 솔로몬입니다. 한가지 부와 명예는 선물하지 않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강합니다. 부와 명예 앞에는 지혜도 빛을 잃을 가능성이 농후하겠으며 사실 솔로몬은 그렇게 됐습니다. 사람을 부패하게 하는 탐욕이요, 교만하게 하는 명예욕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 탓이 아니라 솔로몬 자신의 탓입니다. 그가 참으로 하느님만을 사랑하여 다윗처럼, 예수님처럼 깨어 자비와 지혜의 착한 목자 임금으로 시종여일 최선을 다했다면 부패하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에게 결정적으로 부족했던 점은 회개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부단한 회개의 효소가 있어야 발효인생이지 회개를 결할 때 십중팔구 부패인생이 될것이며 솔로몬이 바로 그러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과제가 참 엄중합니다. 과연 착한 목자 예수님처럼, 자비와 지혜의 삶인가 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주님을 사랑하여 날로 닮아갈 때, 즉 예닮의 여정, 배움의 여정에 항구하고 충실할 때 선물처럼 주어지는 자비와 지혜의 삶이겠습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날로 우리를 자비와 지혜의 사람으로 변모시켜 주십니다.

 

“우리가 어떻게 제 길을 깨끗이 가리이까? 오로지 당신 말씀 지키는 것이옵니다. 제 마음 다하여 당신을 찾나이다. 주님, 당신은 찬미받으소서. 저에게 당신 규범 가르치소서.”(시편119;9.10.12 참조).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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