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참 고향집 -주님의 집-2022.2.7.연중 제5주간 월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Feb 07,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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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2.7.연중 제5주간 월요일                                                        1열왕8,1-7.9-13 마르6.53-56

 

 

 

영원한 참 고향집

-주님의 집-

 

 

 

누구나 옛 고향집에 대한 그리움이 있을 것입니다. 어렸을 적 고향집과 마을의 개천이나 들과 산들을 뛰어 다니며 놀 때의 추억을 생각하면 마음이 참 따뜻해 집니다. 자연의 산을 배경한 다 그만의 모습을 지닌 고유한 장소에 고유의 집이라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등 사계절에 따른 놀이도 스토리도 참 풍부했습니다. 돈 없어도 가난한 줄 몰랐고 좀 춥고 배고파도 따뜻한 인정이 있었고 대부분 무공해의 사람들이었기에 행복했습니다. 

 

중학교 시절 중간고사나 학기말 고사 때면 시험 1주전 계획을 세워 하교후 뒷동산에 올라가 공부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중고교 6년 20여리 길 걸을 때도 동무들과 함께 했기에 힘든 줄 몰랐습니다. 진달래꽃 흐드러지게 핀 산을 끼고 봄길을 걸을 때에 마음 시리도록 그리움에 젖었든 추억도 선명합니다. 집에 귀가하면 맨 먼저 찾는 어머니였고 어머니는 대부분 집안일이나 주변 밭일을 하며 집을 지켰습니다. 

 

참으로 이야기 거리들 가득했던 50-60년대 시골의 산들 배경한 농촌이었습니다. 이 때의 고향집과 마을은 하나의 커다란 ‘가정의 품’ 같았고 아이들은 정신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건강했습니다. 자살도 거의 없었습니다. 이런면에서 오늘날 젊은이들은 불행합니다. 너무나 단조로운 환경에 자연을 배경한 특색있는 고향집이기보다는 천편일률적인 성냥갑같은 아파트 집들과 아파트 단지들이기 때문입니다. 얼마전 피정을 마치고 떠난 한 자매의 메시지가 반가와 소개합니다.

 

“정말 마땅히 갈곳을 찾지 못했습니다. 설 정초에 정말 갈곳에 없다고 생각했는데 하느님은 무거운 마음의 짐을 내려 놓을 수 있는 스물네시간 활짝 열려 있는 주님의 집인 이 수도원으로 나를 초대해 주셨습니다. 행복하게 살다가 갑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 아름다운 피정의 집에 또 올 것을 생각해 두었습니다. 남은 내 생애가 그리 외롭지 않을 것 같아요. 기쁘게 내 삶의 자리로 갑니다. 감사합니다. 수사님들 모두 무탈을 기도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22.2.3. 김까리타스”

 

우리가 한 생애 끝나고 귀가할 영원한 참 고향집이 상징하는 바, 바로 주님의 집인 수도원이요 교회입니다. 참으로 언제나 활짝 열려 있는 주님의 집 수도원에는 많은 이들이 고향집을 찾듯이 끊임없이 찾습니다. 잃어버린 고향집을 대신하는 영원한 참 고향집 주님의 집인 여기 요셉수도원입니다. 

 

‘고향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는(homesick at home)’ 역설적 존재가 우리 인간입니다. 우리가 영원히 몸담을 영원한 참 고향집인 본향을 그리워하는 우리들이요, 이를 어느정도 앞당겨 충족시켜 주는 수도원이요 교회의 성전입니다. 성가정 축일 미사시 즐겨 부르는 화답송 시편 성구와 ‘좋기도 좋을시고’라는 성가 416장도 생각납니다.

 

“주님의 집에 사는자 얼마나 행복되리.”-화답송 후렴

 

“좋기도 좋을시고 아기자기 한지고, 

형제들 오순도순 한데 모여 사는 것

오직 하나 하느님께 빌어 얻고자 하는 것, 

한평생 주님의 집에 산다는 그것”-성가416장 

 

믿는 이들 누구나 꿈꾸는 이런 주님의 집입니다. 생래적으로 주님을 믿는 이들 마음 안에는 이런 주님의 집을 찾는 갈망이, 주님의 집에 대한 사랑이 늘 깊이 잠재해 있습니다. 보이는 고향집들은 사라졌어도 주님의 집 수도원이, 교회 본당 성전이 참 고향집이 되어 고향을 상실한 영혼들의 외로움과 쓸쓸함을 어느 정도 달래 주고 있습니다. 

 

사실 저는 34년 동안 여기 불암산 기슭에 수도원에 정주하면서 늘 참 고향집에 머물 듯 참 편안함을 느꼈기에 찾아가고 싶은 곳도 없어 휴가 반납한지가 수십년이 지났습니다. 아마 이렇게 살다가 죽으면 영원한 참 고향집인 아버지의 집에 귀가할 것입니다. 읽을 때마다 반갑고 새롭지만 오늘 말씀에 대한 영문 주석을 읽으면서 새삼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반갑고 새로웠습니다.

 

“마르코 복음의 의미는 여기 ‘치유되었다’ 라는 그리스어 동사안에서 참으로 완전히 밝혀진다. 그리스어 ‘에소존토(esozonto)’는 단지 ‘육체적 치유(physival healing)’ 이상을 함축한다. 초기 교회에서 이 어휘안에서 이 말은 구원의 온전한 체험을 뜻한다. 그것은 단지 ‘복지(wellness)’가 아니라 ‘온전함(wholeness)’이니 다른 말로 하면 ‘귀향(coming home)’이다.”

 

이미 우리말처럼 회자되고 있는 영어 ‘힐링’과 ‘컴밍홈’이라는 말마디가 반가웠습니다. 참으로 영육의 힐링에 주님의 집만큼 좋은 곳도 없고, 시편성무일도와 미사의 공동전례 수행보다 더좋은 힐링의 수행도 없습니다. 그러니 컴잉홈, 주님의 집을 찾는 이들의 궁극의 바램도 이런 힐링에 있음을 봅니다. 주님의 집이야 말로 힐링센터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오늘 말씀의 이해도 확연해 집니다. 

 

선왕 다윗에 이어 솔로몬의 주님의 집 성전에 대한 사랑도 놀랍습니다. 참으로 하느님 사랑은 주님의 집 성전 사랑으로 표현되기 마련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은 하느님의 아름다움을 반영하는 성전을, 미사전례를 사랑합니다. 영원한 참 고향집을 상징하는 성전을 완공한후 주님의 궤를 모시고 기뻐하는 솔로몬의 모습을 통해 그가 얼마나 하느님을 사랑하는지 감지됩니다.

 

“주님께서는 짙은 구름 속에 계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제가 당신을 위하여 웅장한 집을 지었습니다. 당신께서 영원히 머무르실 곳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이 그대로 영원한 참 고향집을 상징합니다. 참 고향집을 찾듯이 영육이 지치고 병든 이들이 주님을 찾아 온전히 회복됩니다. 참으로 영육의 치유와 건강에 주 예수님보다, 주님의 집보다 더 좋은 곳은 없습니다. 다음 복음 묘사가 그대로 예수님이 치유의 참 고향집임을 입증합니다.

 

‘그리하여 마을이든 고을이든 촌락이든 예수님께서 들어가기만 하시면. 장터에 병자들을 데려다 놓고 그 옷자락 술에 그들이 손이라도 대게 해 주십사고 청하였다. 과연 그것에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

 

참 죄도 많고 병도 많은 세상입니다. 고향 상실의 업보입니다. 어머니들이 가정을 보금자리 주님의 품같은 집으로 가꾸고 돌보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닫습니다. 무엇보다 영원한 참 고향집인 예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러니 보이는 성전과 더불어 그리스도의 몸인 공동체 성전의 중요성이 너무나 큽니다. 바로 섬김의 배움터이자 치유의 쉼터와 샘터가 되는 그리스도의 몸인 공동체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오늘 지금 여기서 영원한 참 고향집을 앞당겨 만들어 살게 하시며 영육의 온전한 치유와 구원을 선물하십니다. 미사보다 더 좋은 주님의 선물도 없고, 미사보다 영육의 힐링에 더 좋은 수행은 없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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