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참 좋은 최고의 선물 -성체성사의 가르침-2022.2.12.연중 제5주간 토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Feb 12,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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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2.12.연중 제5주간 토요일                                                1열왕12,26-32;13,33-34 마르8,1-10

 

 

 

하느님의 참 좋은 최고의 선물

-성체성사의 가르침-

 

 

 

“그리스도교 생활 전체의 원천이며 정점이다. 교회의 모든 교역이나 사도적 활동과 마찬가지로 다른 여러 성사들은 성찬례와 연결되어 있고 성찬례를 지향하고 있다. 실제로 지극히 거룩한 성체성사 안에 교회의 모든 영적 선이 내포되어 있다. 곧 우리의 파스카이신 그리스도께서 그 안에 계신다.”(교리서1324)

 

성체성사를 요약한 위 가톨릭 교회 교리서의 말씀에 가톨릭 교회의 모든 사제들은 전적으로 공감할 것입니다. 제가 33년 수도사제로서 봉직해오는 동안 미사시 강론 때는 늘 성체성사의 은총으로 결론지었음이 생각납니다. 강론을 할 때 마다 얼마나 미사전례가 결정적 도움이 되는지 깨달았습니다. 앞으로도 그러할 것입니다.

 

제 영성생활의 0순위는 성체성사, 미사전례입니다. 하루가 시작되는 한밤중 우선 일어나 전날부터 준비했던 일이 강론준비입니다. 저에게 강론 준비는 그대로 미사준비가 됩니다. 참으로 헤아릴수 없이 많은 분들의 애환과 소망을 듣다보면 미사는 간절한 기도가 됩니다. 

 

정말 하느님을, 그리스도 예수님을, 교회를 사랑하는 이들은 미사를 사랑합니다. 제가 늘 강조하는 바 하느님의 참 좋은 선물 셋은 성서, 예수님, 미사입니다. 교회의 미사중 살아 계신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하느님을 만나기 때문입니다. 주님과의 살아 있는 만남을 통한 치유의 구원을 이뤄주는 미사은총입니다.

 

예전 두 사제의 고백이 생각납니다. 

“노인들에게 낙이라곤 미사 하나뿐이데, 내가 이 양노원의 노인들을 두고 어찌 휴가갈 수 있겠는가?”

“아침 미사 안하면 수녀님들 아침도 안 먹기에 미사 안할 수가 없습니다.”

세월 흘러 나이 들어갈수록 믿는 이들의 미사에 대한 애착은 더해 가는 것 같습니다. 

 

바로 오늘 복음을 통해 성체성사의 은혜가 얼마나 우리의 인생 광야 순례 여정중 결정적인지 새삼 크게 배웁니다. “사천명을 먹이시다”(마르8,1-10) 오늘 복음과, “오천명을 먹이시다”(마르6,30-44)가 참 좋은 대조를 이루며 상호보완합니다. 오늘 복음은 그리스계 교회의 성체성사를, 앞서 복음은 유다계 교회의 성체성사를 반영합니다. 오늘 복음에서의 성체성사는 유대계 교회를 넘어 온 인류의 성체성사로 향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두 복음이 외딴곳의 광야를 배경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광야 인생 순례 여정중의 신자들 삶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하느님의 참 좋은 선물인 사막의 오아시스, 사막의 쉼터이자 샘터요, 배움터 역할의 미사임을 깨닫습니다. 바로 오늘 복음에서 미사를 통해 참으로 중요한 가르침을 배웁니다.

 

오늘 제1독서 열왕기상권의 예로보암의 우상 숭배의 악행을 보면서 순간 악순환의 역사를 생각했습니다. 참으로 벗어나기 힘든 우상 숭배의 악순환입니다. 이런 우상숭배의 악순환과는 결을 달리 하지만 조선시대 500년 당쟁사를 통해 또 지금까지 반복되는 유사한 악순환의 현실을 보면서 아프게 깨닫는 진리입니다. 20권으로 된 조선시대 실록의 만화를 보면서도 한권이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끊임없는 악순환의 반복같은 역사였고 오늘까지 계속되고 있는 참 답답한 현실입니다. 

 

통합보다는 분열을 조장하는 혐오, 차별, 배제가 주류를 이루는 현실입니다. 바로 이에 대한 통합의 모범을 보여줘야 할 가톨릭 교회요, 이에 결정적 역할이 미사은혜입니다. 바로 오늘 제1독서 반복되는 우상숭배의 악순환을 "단斷"! 끊을 수 있는 결정적 답이 오늘 복음을 통해 배우는 성체성사의 은총뿐임을 깨닫습니다.

 

‘예로보암은 그의 악한 길에서 돌아서지 않고, 또 다시 일반 백성 가운데에서 산당의 사제들을 임명하였다. 그는 원하는 사람은 누구에게나 직무를 맡겨 산당의 사제가 될 수 있게 하였다. 예로보암 집안은 이런 일로 죄를 지어, 마침내 멸망하여 땅에서 사라지게 되었다.’(1열왕13,33-34)

 

하느님에게서 떠난 우상숭배에 따른 자업자득의 업보입니다. 참으로 이런 우상숭배의 유혹에서 벗어나 바른 삶을 위해 성체성사의 생활화가 성체성사적 삶이 얼마나 우리 삶에 결정적 도움을 주는 지 깨닫습니다. 

 

첫째, 예수님의 측은지심惻隱之心의 마음을 배웁니다. 

예수님을 통해 대자대비大慈大悲의 하느님 마음을, 연민의 사랑을 배웁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 가엾이 여기는 마음, 측은히 여기는 마음, 바로 이런 한없이 깊은 연민의 사랑을 배워야 합니다. 문득 한암 대종사에 관한 책 서문에서 도올 김용옥의 고백이 생각납니다. 

 

“나는 ‘각覺’자 앞에 ‘비悲’자를 하나 더 써주었다. 모든 깨달음은 슬픈 것이다. 각하고 나면 보이는 것이 다 슬픈 것이다. 나 혼자 욕망을 벗어던질수는 있다해도, 중생의 욕망은 무슨 수로 다스리랴!”

 

이래서 깊디 깊은 “자비慈悲”의 사랑입니다. 슬플 비는 바로 가엾이 여기는 마음이요 오늘 광야의 굶주린 중생을 바라보는 예수님이 그러하며 우리는 이런 가엾이 여기는 비의 마음을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역설적으로 참 “기쁨 (喜)”도 이런 하느님 “비(悲)”의 마음을 체험할 때 솟아나는 것입니다. 

 

“저 군중이 가엾구나, 벌써 사흘 동안이나 내 곁에 머물렀는데 먹을 것이 없으니 말이다. 내가 저들을 굶겨서 집으로 보내면 길에서 쓰러질 것이다.”

 

둘째, 예수님의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의 삶과 믿음을 배웁니다.

사랑의 기적이요, ‘진인사 대천명’ 믿음의 삶에 따른 기적입니다. 참으로 예수님의 하느님께 대한 철석같은 신뢰의 믿음이 상상을 초월합니다. 바로 다음 대목이 이를 입증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군중에게 땅에 앉으라고 분부하셨다. 그리고 빵 일곱 개를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리는 다음, 떼어서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하시니, 그들이 군중에 나누어 주었다.’

 

그대로 광야에서 온갖 정성을 다해 진인사대천명의 절실한 자세로 미사를 봉헌하시는 예수님이십니다. 바로 이런 삶과 믿음의 자세를 배우자는 것이며 이런 절실한 자세로 미사에 참례하자는 것입니다.

 

셋째, 예수님의 미사로부터 감동과 나눔을 배웁니다.

하느님을 감동시킴과 동시에 군중을 감동시킨 예수님 자비의 사랑이요 진인사대천명의 삶과 믿음입니다. 감동이 빠진 우리의 삶은 아닌지 반성해야 합니다. 정말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은 감동입니다. 감동을 통한 마음의 정화요 성화입니다. 참으로 감사, 감동, 감탄의 삼감의 순수한 마음이 절실한 시대입니다. 

 

‘사람들은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남은 조각을 모았더니 일곱 바구니나 되었다. 사람들은 사천명 가량 되었다.’

 

예수님의 사랑과 믿음에 회개한, 감동한 군중들이 갖고 있던 것을 다 나누니 이런 풍부한 기적입니다. 극심한 빈부의 격차로, 정의와 공정의 결핍으로 굶주림입니다. 정말 가진 자들이 이웃과 가진 것을 나눈다면 차고 넘치도록 풍부한, 온 세상이 번영하여 화평하게 되는 “대동大同” 세상일 것입니다. 참으로 예수님의 미사로부터 배울 바는 이런 감동과 나눔입니다.

 

넷째, 예수님의 홀가분한 떠남의 마음을 배웁니다.

예수님의 미련없는 떠남이 참 멋지고 매력적입니다. 애당초 군중들이 광신이나 인기에 휩싸일 소지를 없앱니다. 참으로 홀가분한 집착없는 이탈의 초연한 떠남입니다. 노자의 “공성이불거(功成而弗居)”란 말씀처럼 공을 이루면 거기 머물지 않고 곧 떠나는 그런 삶의 모범을 보여줍니다, 참으로 지혜롭고 겸손한, 정말 자기를 완전히 비운 그런 사랑입니다. 다음 대목이 이를 입증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돌려보내시고 나서, 곧바로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올라 달마누터 지방으로 가셨다.’

 

예수님의 지체없는 떠남은 얼마나 멋진지요! 진짜 불가 스님 이상으로 진짜 “사랑의 운수행각雲水行脚”의 여정에 오른 예수님과 제자들 일행같습니다. 사랑의 기적이요 기적은 끝이 아니라, 떠남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임을 깨닫습니다. 늘 새로운 시작의 삶을 살게 하는 미사은총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참으로 오늘 복음의 예수님 미사로부터 참 귀한 가르침을 배웠습니다. 인류가 존속하는 한 영원히 계속될 “늘 옛스러우면서도 늘 새로운(ever old, ever new)”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광야 인생 순례 여정을 성공리에 마치도록 도와 주실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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