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행복은 선택입니다. -하느님 중심의 삶-2022.2.13.연중 제6주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Feb 13,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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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2.13.연중 제6주일                                            예레17,5-8 1코린15,12.16-20 루카6,17.20-26

 

 

 

우리의 행복은 선택입니다.

-하느님 중심의 삶-

 

 

 

누구나의 보편적 소망이 행복입니다. 그러니 행복하게 살아야 합니다. 나만의 행복이 아니라 이웃도 행복해야 합니다. 더불어의 행복이요 더불어의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행복은 선택입니다. 하루하루 날마다 행복을 선택해서 살아야 합니다. 한 번뿐이 없는 유일회적 인생, 행복하게 사는 것은 우리의 마땅한 권리요 의무요 책임입니다.

 

과연 행복하십니까? 과연 행복하다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요? 하느님의 우리에 대한 소원도 우리 모두가 행복하게 사는 것입니다. 우리의 행복은 하느님의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앞에 갔을 때, 하느님은 단 하나 물으실 것입니다. “너는 행복하게 살았는가?”  

 

바로 하느님이 참 행복임을 말해 줍니다. 궁극의 행복은 하느님께 있습니다. 연초에 써놓은 “평생 소원”이란 기도문 역시 참행복에 대한 소망의 표현입니다. 

 

“나

하느님이 되고 싶다

모세처럼

하느님과 마주하여 대화 나누고 싶다

 

오소서

주 하느님!

당신이 되게 하소서

 

당신의 믿음이

당신의 희망이

당신의 사랑이

당신의 신망애信望愛가 되게 하소서

 

당신의 진리가

당신의 선이

당신의 아름다움이

당신의 진선미眞善美가 되게 하소서”

 

감히 참행복의 하느님이 되게 해달라는 소원의 기도입니다. 이 또한 참행복하고 싶은 영혼의 갈망을 표현한 겁니다. 다음 시편의 고백과 동정녀 축일 때 낮기도 후렴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주님께 아뢰옵니다. ‘당신은 저의 주님, 저의 행복 당신밖에 없습니다.”(시편16,2)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주님, 저의 힘이시여!”(시편18,2)

“주님, 당신 곁에 있는 것이 내게는 행복, 이 몸 둘곳 나의 희망 주 하느님이시니이다.”(동정녀 축일 낮기도 후렴)

 

바로 행복은 선택임을 입증합니다. 하루하루 날마다 참행복의 원천인 주님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선택함과 동시에 믿음을, 희망을, 사랑을, 생명을, 빛을 선택하는 것이니 저절로 행복을 선택하는 것이 됩니다. 진짜 이런 주님 보물을 모신 이가 내적 부자요, 행복한 사람이요 자유로운 사람입니다. 

 

세상 행복이 채워줄 수 없는 영혼의 갈망인 행복이요, 바로 영원하신 하느님 만이, 하느님의 사랑만이 비로소 영혼의 행복에 대한 갈망을 해갈解渴시킬 수 있습니다. 이래서 우리는 참행복의 원천인 주님을 모시고자 이 은혜로운 미사에 참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모실 주님의 성체는 그대로 주님의 평화, 주님의 사랑, 주님의 행복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오늘 루카복음의 주님의 평지 설교중 참행복 선언도 궁극의 행복은 하느님께 있음을 선포합니다. 하느님을 사랑하여 선택할 때 이런 행복의 선물입니다.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의 것이다.

행복하여라, 지금 굶주리는 사람들! 너희는 배부르게 될 것이다.

행복하여라, 지금 우는 사람들! 너희는 웃게 될 것이다.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면, 그리고 사람의 아들 때문에 너희를 쫓아내고 모욕하고 중상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기뻐하고 뛰놀아라. 보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참으로 역설적인 행복입니다. 세상이 결코 이해할 수 없는 행복입니다. 바로 참행복의 하느님을 모시기에, 이런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런 하느님께 궁극의 신뢰와 희망을 두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한 것입니다. 참으로 세상 누구도 탐내지 않은, 앗아갈 수 없는 주님께서 주시는 참행복입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씀처럼 이런 행복한 사람은 ‘그 뿌리를 하늘에 두고 땅을 향해 거꾸로 자라는 나무와 같은 사람’입니다. 예수님 말씀에 화답처럼 들리는 제1독서 예레미야 예언자를 통한 주님의 말씀이 참 통쾌하고 명쾌합니다. 

 

“그러나 주님을 신뢰하고, 그의 신뢰를 주님께 두는 이는 복되다. 그는 물가에 심은 나무와 같아, 제 뿌리를 시냇가에 뻗어, 무더위가 닥쳐와도 두려움 없이, 그 잎이 푸르고, 가문 해에도 걱정없이, 줄곧 열매를 맺는다.”

 

여러분의 영혼은 어디에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까? 세상입니까 혹은 하느님입니까? 새삼 우리 베네딕도회 수도자들의 정주서원은 참행복의 원천인 하느님 중심 자리에 깊이 깊이 뿌리를 내리는 일임을 깨닫습니다. 

 

이래서 여기 수도자들은 하루하루, 날마다, 평생, 시편과 미사의 공동전례기도를 통해 하느님께 깊이 영혼의 뿌리를 내리는 영성훈련에 전념합니다. 비단 수도자뿐 아니라 믿는 이들 누구나 하느님께 영혼의 뿌리를 깊이 내릴수록 참행복한 삶입니다. 오늘 화답송 후렴, “행복하여라, 주님을 신뢰하는 사람!” 한마디가 참 행복을 요약합니다.

 

반면 참행복과 첨예한 대조를 이루는 불행선언입니다. 새삼 우리의 행복의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습니다. 우리 자신의 행복을 점검해 보게 합니다. 안개처럼 사라질 덧없는 피상적, 물질적, 일시적, 거짓 행복을 참행복으로 착각하고 살고 있지는 않은지 말입니다.

 

“그러나 불행하여라. 너희 부유한 사람들! 너희는 이미 위로를 받았다.

불행하여라. 지금 웃는 사람들! 너희는 슬퍼하며 울게 될 것이다.

불행하여라, 너희 배부른 사람들! 너희는 굶주리게 될 것이다.

모든 사람이 너희를 좋게 말하면, 너희는 불행하다! 사실 그들의 조상들도 거짓 예언자들을 그렇게 대하였다.“

 

생각없이, 영혼없이, 참으로 천박하게 하느님이 아닌 세상에, 사람들에게 신뢰의 뿌리를 내릴 때 자초한 불행입니다. 이 불행선언은 저주도 아니고 형벌의 선고도 아닌 탄식이며 경고입니다. 하느님은 누구도 불행하길 원하지 않으시고 모두가 구원받아 행복하길 원하십니다. 

 

그러니 이런 불행선언은 그대로 회개의 촉구입니다. 부족한 이웃과 사랑을 나누고 가난하고 힘든 이들과 사랑의 연대를 이뤄 살라는 실천적 회개의 촉구입니다. 네가지 행복선언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네가지 불행선언입니다. 이들 불행한 이들에 대한 예레미야 예언자의 주석이 참 적절합니다.

 

“사람에게 의지하는 자와, 스러질 몸을 제 힘인 양,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 그의 마음이 주님에게서 떠나 있다. 그는 사막의 덤불과 같아, 좋은 일이 찾아드는 것도 보지 못하리라. 그는 광야에 메마른 곳에서, 인적 없는 소금 땅에서 살리라.”

 

세상 광야에서 하느님을 잊고 이런 황량한 영혼으로 살아가는 이들도 꽤 많을 것입니다. 이렇게 황폐한 영혼으로 살아갈 때 세상 것들에 중독되어 괴물도, 폐인도 되는 것입니다. 오늘 화답송 시편은 이런 불행한 이를 한마디로 요약합니다. 

 

“악인은 그렇지 않으니, 바람에 흩날리는 검불 같아라. 의인의 길은 주님은 아시고, 악인의 길은 멸망에 이르리라.”

 

이 모두가 스스로 자초한 자업자득의 심판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 이런 불행이 아닌 참행복의 하느님을 선택하여 하느님께 하루하루 날마다 깊이 정주의 뿌리를 내리고 사는 일이 얼마나 결정적으로 중요한지 깨닫습니다. 또 하나 참 행복에 결정적 요소가 그리스도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믿음과 희망입니다. 바오로의 열화熱火와 같은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확신에 넘치는 고백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되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여러분의 믿음은 덧없고 여러분 자신도 죄 안에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현세만을 위하여 그리스도께 희망을 걸고 있다면, 우리는 모든 인간 가운데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 나셨습니다. 죽은 이들의 맏물이 되셨습니다.”

 

부활하시어 우리와 함께 계신 그리스도 예수님은 얼마나 고맙고 좋은 분이신지요! 파스카의 주님은 끊임없이 성령을 통해 우리의 믿음, 희망, 사랑을 북돋아 주시어 당신과 함께 참행복한 삶을 살게 하시며 더욱 하느님께 신망애信望愛의 뿌리를 내리게 합니다. 얼마전 교황님의 “부활의 믿음만이 두려움 없이 죽음을 직면하도록 우리를 도와준다.”란 말씀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죽음이 아닌 부활이 마지막 답이기 때문입니다.

 

행복하게 살아야 합니다. 언젠가의 행복이 아니라 오늘 지금 여기서 행복하게 살아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의무이자 권리이자 책임입니다. 참행복은 선택이자 은총의 선물입니다. 살 줄 몰라 불행이요 살 줄 알면 행복입니다. 참으로 일편단심 참행복의 원천인 주님을 선택하여 오롯이 신뢰하고 사랑하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참 좋은 은총의 선물이 참행복입니다. 그대로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입니다. 제 자작 행복기도중 한 대목으로 강론을 마칩니다.

 

“주님, 당신은 저희의 전부이옵니다.

저희 사랑, 저희 생명, 저희 기쁨, 저희 행복이옵니다.

하루하루가 감사와 감동이요 감탄이옵니다.

날마다 새롭게 시작하는 아름답고 행복한 하루이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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