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자녀다운 품위있는 삶 -믿음, 인내, 겸손, 지혜-2022.2.14.월요일 성 치릴로 수도자(827-869)와 성 메토디오 주교(815-885) 기념일-제주도 성지 순례 여정 피정1일차- 야고1,1-11 마르8,11-13

by 프란치스코 posted Feb 14,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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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2.14.월요일                         

성 치릴로 수도자(827-869)와 성 메토디오 주교(815-885) 기념일

    -제주도 성지 순례 여정 피정1일차-

야고1,1-11 마르8,11-13

 

 

주님의 자녀다운 품위있는 삶

-믿음, 인내, 겸손, 지혜-

 

 

 

오늘은 제주도 성지 순례 여정의 첫날입니다, 이렇게 수도형제와 함께 여행길에 오르기는 수도원 입회후 40년만에 처음입니다. 감개무량합니다. 흡사 산티아고 순례 여정의 연장처럼 느껴집니다. 미사준비등 만반의 준비에 수도형제와 함께 하니 미니 이동 수도원이 된 듯합니다. 원래는 휴가중 여행이지만 여행의 성격을 격상시켜 “제주도 성지 순례 여정”이라 명명했습니다. 보람찬 순례 여정이 될 수 있도록 형제자매님들의 기도의 도움을 청합니다.

 

잘 들여다 보면 전국 곳곳에 순교 성지들이 산재해 있어 전국토가 성지처럼 생각되었고 제주도 역시 예외가 아닙니다. 제주도 순례 여정중 방문할 곳을 일별하던중 저절로 나온 찬탄을 잊지 못합니다. “아, 제주도는 보물섬이구나!” 정말 없는 것이 없다할 정도로 골고루 갖춘 아름다운 섬임을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두 차례의 피정지도에 이어 제 생애 세 번째 방문이지만 늘 새로운 느낌이 드는 보물섬, 제주도입니다. 

 

바로 제주도 보물섬처럼 가톨릭 교회의 참 자랑스런 보물이 성인들입니다. 참 다양한 아름다운 품위의 보물같은 성인들이요 끊임없이 우리 삶의 좌표가, 희망의 표징, 회개의 표징, 구원의 표징이 되는 참 좋은 보물같은 성인들입니다. 오늘은 9세기 그리스의 테살로니카 출신의 성 치릴로 수도자와 성 메테디오 주교 두 형제 기념일입니다. 오늘 아침 성무일도 즈카르야 후렴의 담백한 표현이 두 성인의 삶을 요약합니다.

 

“그들은 한평생 거룩하고 올바르게 살면서 주님을 섬겼도다.”

 

얼마전 코로나로 인해 3년만에 피정을 다녀간 어느 자매의 진정성 넘치는 고백을 들으며 공감했던 말입니다. “꼭 엊그제 다녀간 느낌인데 벌써 3년입니다.” 성인들은 물론이고 오래 살든 적게 살든 인생 마지막 무렵 삶의 뒤안길을 돌아다 보면 엊그제 같이 참 덧없는 느낌일 거란 생각이 듭니다. 초로草露와 같은 짧은 인생 참으로 보람있게 살다간 성인들입니다.

 

성 메테디오는 성 치릴로보다 12세 위의 형이며, 동생 성 치릴로 가 42세까지 사신 반면, 형 성 메테디오는 70세까지 사셨습니다. 두 형제 성인들 모두 간단히 요약할 수 없는 주님 사랑에 참으로 복잡 다단한, 치열하고 가열찬 백절불굴의 삶에 빛나는 업적은 그대로 살아 있는 순교적 삶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입니다.

 

‘슬라브의 사도들’로 불리는 두 형제 성인들은 모라비아, 보헤미아, 불가리아를 복음화했고,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슬라브의 사도들’이라는 회칙을 통해 성 베네딕도와 함께 두 형제 성인을 유럽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했습니다. 이어 교황은 이분들이 이룬 복음의 성공적 토착화와 더불어 동서방 간의 교회일치를 위한 노력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두 형제 성인들의 한결같은 파란만장한 시련과 인내의 삶의 역사를 대하면서 오늘 제1독서 야고보서 다음 말씀이 연상되었습니다.

 

“형제 여러분, 갖가지 시련에 빠지게 되면 그것을 다시없는 기쁨으로 여기십시오. 여러분의 믿음이 시험을 받으면 인내가 생겨납니다. 그 인내가 완전한 효력을 내도록 하십시오. 그리하면 모든 면에서 모자람 없이 완전하고 온전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새삼 오늘 기념하는 두 형제 성인뿐 아니라 모든 성인들이 이런 시련과 인내의 대가들임을 깨닫습니다. 참으로 이런 시련과 믿음의 인내를 통해 완전하고 온전한 성인의 삶이요, 주님의 자녀다운 품위의 삶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대로 우리의 정주 영성이 목표하는 바, ‘시련-기쁨-믿음-인내’ 입니다. 사실 정주 영성에 항구한 베네딕도회 수도승들은 이런 면에서 모두 성인들입니다. 인내와 더불어 겸손과 지혜를 겸비한 성인들입니다. 인간 무지에 대한 답도 겸손과 지혜뿐임을 깨닫습니다.

 

오늘 복음의 무지에 눈먼 바리사이들과 겸손과 지혜를 겸비한 예수님이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정말 주님을 닮은 성인들은 한결같이 인내의 사람이자 참으로 자기를 알았던 겸손하고 지혜로운 분들이었습니다. 하늘의 표징을 요구하는 바리사이들의 무지에 주님은 깊이 탄식하시며 말씀하십니다. 새삼 시공을 초월한 무지한 이 세대를 향한 말씀처럼 들립니다.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눈만 열리면 하늘의 표징들로 가득한 세상인데, 예수님 자신이 빛나는 하늘의 표징인데, 또 이 거룩한 미사보다 더 좋은 하늘의 표징도 없는데 새삼 무슨 표징이 필요하겠는지요! 무지에 눈먼 바리사이들과 같은 이들의 회개가 절실한 오늘의 현실입니다. 참으로 ‘마음의 병’중 하나가 하느님을 모르는 무지에 기인한 완고한 마음임을 깨닫습니다. 복음의 마지막 대목에서 예수님의 지혜로운 분별력과 단호한 처신이 인상적입니다.

 

‘그러고 나서 그들을 버려두신 채 다시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가셨다.’

 

아니다 싶으면 집착하지 않고 시간과 정력을 낭비함이 없이 지체없이 결단하여 홀연히, 홀가분하게 떠나는 예수님의 모습이 참 지혜롭고 멋집니다. 참으로 주님은 빛나는 분별력의 모범입니다. 참으로 우리가 청할 바 이런 분별력의 지혜라는 선물이요, 야고보 사도는 항구히 지혜의 은총을 청하라 하십니다. 무지에 대한 궁극의 답도 하느님께서 주시는 지혜뿐임을 깨닫습니다.

 

“누구든지 지혜가 모자라면 하느님께 청하십시오. 그러면 받을 것입니다. 하느님은 모든 사람에게 너그럽게 베푸시고 나무라지 않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결코 의심하는 일 없이 믿음을 가지고 청해야 합니다. 의심하는 사람은 바람에 밀려 출렁이는 바다 물결과 같습니다. 그러한 사람은 주님에게서 아무것도 받을 생각을 말아야 합니다.”

 

야고보 사도의 참 적절한 유익한 조언입니다. 한결같은 인내의 믿음으로 지혜를 청하라는 사도의 말씀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인내의 믿음과 겸손과 분별력의 지혜를 선사하시어 우리 모두 주님의 자녀다운 품위있는 삶을 살게 하십니다. 

 

“주님, 당신의 자비가 저에게 이르게 하소서. 

그러면 제가 살리이다. 

당신의 가르침이 저의 즐거움이기 때문입니다.”(시편119,77).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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