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나라 -어린이와 같이 되십시오.-2022.2.26.연중 제7주간 토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Feb 26,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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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2.26.연중 제7주간 토요일                                                        야고5,13-20 마르10,13-16

 

 

하느님의 나라

-어린이와 같이 되십시오-

 

 

“주님!

사랑합니다

찬미합니다

감사합니다

기뻐합니다

차고 넘치는 행복이옵니다

이 행복으로 살아갑니다

 

주님!

눈이 열리니

온통 당신의 선물이옵니다

당신을 찾아 어디로 가겠나이까

새삼 무엇을 청하겠나이까

바로 오늘 지금 여기가 하느님의 나라 천국이옵니다.”-2018.1.16

 

언제나 즐겨 외우는 자작 애송시를 쓴 지 4년째 이지만, 외울 때 마다 늘 새롭습니다. 참으로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할 때 바로 거기가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언젠가 어디엔가 있는 하느님의 나라가 아니라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 살아가야할 하느님 나라의 기쁨과 행복입니다. 주님은 진리 이전에 이미 기쁨으로 늘 우리 곁에 있습니다.

 

예수님의 영원한 화두이자 꿈이 하느님의 나라였습니다. 꿈이, 희망이, 비전이 있어야 삽니다. 살아있는 사람이 꿈꾸며 꿈꾸는 사람이 참으로 살아 있다 할 수 있습니다. 꿈중의 참꿈이, 희망중의 참희망이 바로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바로 예수님이 하느님 나라 꿈의 실현인 하느님 나라입니다. 

 

우리 역시 예수님을 닮을수록 어린이처럼 하느님 나라를 살 수 있으며 우리 영적 삶의 궁극 목표입니다. 전혀 나이에 상관없습니다. 나이 들어 세월 흘러 몸은 노쇠해도 마음은 여전히 동심의 어린이되어 하느님 나라를 살 수 있습니다. 

 

산책때 마다 나이 칠십을 넘어 부르는 동요童謠가 요즘처럼 깊이 마음에 와닿기는 처음입니다. 얼마전 유투브 동영상에서 서울 대교구 5분의 주교님들이 “꽃밭에서” 동요를 부르던 천진한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새삼 젊음은 나이에 있는 게 아니라 마음의 순수에 있음을 깨닫습니다.

 

어린이들을 사랑하시는 예수님을 통해 어린이의 동심을 그대로 지녔던 참 단순히 아버지를 신뢰하고 사랑했던 예수님임을 깨닫습니다. 성가 435장 2절은 그대로 예수님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 합니다.

 

“아버지 믿는 어린이처럼, 어디를 가든 두려움 없이

눈비가 내린 궂은 날에도, 기쁨속에 살리라

하느님 보소서 천진한 어린이처럼

티없이 기쁘게 주님께 왔나이다.”

 

바로 오늘 복음에서 어린이들을 반겨 사랑하시는 예수님 모습은 그대로 사랑이신 하느님 아버지 모습을 반영합니다. 어린이가 상징하는바 하느님의 자녀인 우리들 모두입니다. 하느님 아버지 앞에서는 영원한 순수의 어린이들인 우리들입니다. 바로 이런 어린이와 같은 자세로 미사에 참석하는 우리들입니다. 참으로 미사은총이 우리의 동심을 회복하여 순응과 순종, 신뢰와 사랑의 어린이같은 사람으로 만들어 줍니다.

 

“어린이들이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말고 그냥 놓아두어라. 사실 하느님의 나라는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어린이와 같이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하느님의 나라요 오늘 지금 여기서 하느님의 나라를 사는 것은 순전히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마음 활짝 열고 어린이와 같은 순수한 마음으로 우리 곁에 계신 하느님의 나라 예수님을 받아 모시고 사는 것입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의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마음 깨끗한 순수의 사람들이 하느님을 만나 하느님의 나라를 살 수 있습니다. 아니 마음 깨끗한 이들이 바로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어떻게 늘 마음 깨끗한 신뢰와 사랑의 어린이처럼 하느님의 나라를 살 수 있을까요? 그 방법을 소개해 드립니다.

 

사랑과 기도입니다. 사랑과 기도는 함께 갑니다. 기도는 테크닉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주님과 사랑과 생명의 소통이 바로 기도입니다. 영혼의 숨쉬기 호흡과 같은 사랑의 기도입니다. 그러니 사랑하면 기도할 수 뿐이 없습니다. 기도는 영혼의 본능입니다. 기도해야 영혼이 살 수 있습니다. 

 

“그 무엇도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보다 앞세우지 마라.”

“그 무엇도 하느님의 일보다 앞세우지 마라.”

 

바로 베네딕도 규칙도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과 하느님의 일인 성무일도 기도를 특히 강조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가 오늘로써 끝나는데 야고보 사도 역시 오늘 제1독서에서 특히 기도를 강조합니다. 

 

“여러분 가운데에 고통을 겪는 사람이 있습니까? 기도하십시오. 즐거운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찬양노래를 부르십시오. 앓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를 위하여 기도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십시오. 서로 죄를 고백하고 서로 남을 위하여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병이 나을 것입니다. 의인의 간절한 기도는 큰 힘을 냅니다.”

 

사랑할 때 기도합니다. 저절로 터져 나오는 찬양과 감사의 노래 기도입니다. 그러니 기도가 답입니다. 기도할 때 어린이와 같은 순수한 마음의 회복입니다. 참으로 간절히 한결같이 기도할 때 저절로 회개가 뒤따르고 마음은 더욱 순수해져 주님을 신뢰하고 사랑하게 됩니다. 끊임없은 기도에, 끊임없는 회개와 더불어 어린이와 같은 마음의 순수입니다.

 

이래서 비단 수도자뿐 아니라 믿는 이들 누구나 평생 매일 끊임없이 바치면 좋을 영적 주식主食과도 같은 찬미와 감사의 시편 성무일도와 미사 공동전례기도입니다. 가정공동체든 수도공동체든 끊임없이 기도를 바칠 때, 저절로 뒤따르는 끊임없는 회개요 어린이같은 마음의 순수입니다. 

 

우리 구원의 여정은 혼자가 아닌 더불어의 여정입니다. 혼자의 구원이 아닌 더불어의 구원입니다. 천국입장은 개인입장이 아니라 단체입장이라 합니다. 그러니 혼자기도와 반드시 병행해야할 더불어의 공동기도입니다. 베네딕도 규칙중 이상적인 형제적 공동체를 위한 헌장과 같은 72장 마지막 대목도 이와 일맥상통합니다.

 

“그리스도보다 아무것도 더 낫게 여기지 말 것이니, 그분은 우리를 다 함께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할 것이다.”(베규72,11-12)

 

바로 ‘우리를 다 함께’에 강조점이 있습니다. 천국입장은 단체입장임을 입증하는 구절입니다. 우리의 영원한 꿈이자 비전은 예수님처럼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언젠가 어디서 살아야 할 하느님의 나라가 아니라 바로 오늘 지금 여기서 예수님처럼 하느님의 나라를 살아야 합니다.

 

그러니 하느님 나라의 꿈의 실현된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바로 끊임없는 사랑의 기도와 회개가 순수한 어린이와 같이 되어 하느님 나라를 살게 합니다. 바로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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