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닮의 여정 -마음정화, 자기인식, 예수사랑-2022.2.27.연중 제8주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Feb 27,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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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2.27.연중 제8주일                                                집회27,4-7 1코린15,54-58 루카6,39-45

 

 

예닮의 여정

-마음정화, 자기인식, 예수사랑-

 

 

“좋으니이다. 지존하신 님이여,

주님을 기려 높임이, 

그 이름 노래함이 좋으니이다.

 

아침에는 당신의 사랑,

밤이면 당신의 진실을 알림이 좋으니이다.”(시편92,2-3)

 

미사중 화답송 시편이 참 좋습니다. 이런 하느님 찬미의 은총과 더불어 순조롭게 전개는 예닮의 여정입니다. 예닮의 여정에 결정적 도움을 주는 매일의 찬미와 감사의 시편 성무일도 공동전례 기도입니다.

 

“합리적 소통, 결정에 움직이는 사회, 예언이 아닌 주술은 ‘죄’다.”

 

어제 한겨레 신문 <토요기획> 10면, 단테 서거 700주기 기사중 머릿 말이 생각납니다. 이어지는 내용도 의미심장합니다. 

 

‘단테의 신곡을 구성하는 지옥과 연옥과 천국의 끝구절은 모두 “별(stella)”이라는 단어를 품고 있다. 지옥에서는 별을 그리며, 연옥에서는 별을 올려다보며, 천국에서는 별과 함께 단테는 길을 만들어갔다.’

 

새삼 지옥과 연옥, 천국은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 시작됨을 봅니다. 별이신 그리스도 없이 지내는 곳이 지옥이고, 별이신 그리스도를 올려다 보며 지내는 곳이 연옥이고, 별이신 그리스도와 함께 길을 내며 살아가는 지금 여기가 천국이라는 것입니다. 새삼 지옥, 연옥, 천국도 선택임을 깨닫습니다. 하느님이 계신 곳을 찾지 말고 하느님을 찾으라는 사막 교부의 말씀도 생각납니다.

 

부부간의 익어가는 관계를 “열정熱情, 애정愛情, 우정友情, 동정同情”의 과정으로 정의한 대목이 깊은 공감을 주었습니다. 명시적 하느님 믿음 없이도 양심 따라 나름대로 바르게 살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과 더불어 참 다양한 고유의 소중한 인생임을 깨닫게 한 “책(최민희:아버지)”이었습니다. 책 후반에 나오는 인상적인 일부 내용을 그대로 인용합니다.

 

“’최민희 의원’을 처음 본 그날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나를 처음 본 순간 그는 내게 ‘어머! 눈이 참 맑다’라고 했다. 그날로 채용이 되었다. 생전 처음 들어본 ‘눈이 맑다’라는 말도 놀라웠지만 내가 채용되었다는 사실이 더 놀라웠다. 그리고 6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최민희 의원과 함께 하고 있다.”

 

눈은 목소리와 더불어 마음을 비춰주는 거울과 같습니다. 눈빛이나 눈길을, 음성을 들으면 그가 누구인지 직감적으로 압니다. 이어지는 에필로그 끝부분 내용입니다.

 

“정말 비싼 수업료를 치르고 새옹지마의 가르침과 인지상정의 냉혹함을 배웠다. 지치지 말기, 포기하지 말기, 끝까지 함께 하기, 그리고 애정하며 버티기, 나는 우리 아버지의 딸이다.”

 

마음의 눈만 열리면 곳곳에서 배웁니다. 어제는 33년 만에(1989년 방문) 수도원을 찾아 피정 온 자매의 면담성사가 있었습니다. 제가 많이 변했지만 그래도 예전보다 더 좋은 그대로의 모습이라며 반가워했습니다. 33년 동안 참 고단하게 살아왔고 큰 수술을 앞둔 자매였습니다. 대부분 힘겹게 살아가는 많은 분들을 보면 저절로 연민의 마음 가득해 집니다.

 

“삶은 이제부터입니다. 하느님은 회개한 이의 과거를 묻지 않습니다. 과거는 불문에 붙입니다. 하느님은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 사는 것을 보십니다. 그러니 하루하루 늘 새롭게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런 요지의 말씀과 더불어 이사야서 말씀도 자주 보속 처방전으로 드리곤 합니다.

 

“지나간 일을 생각하지 마라. 흘러간 일에 마음을 묶어두지 마라. 보아라, 내가 이제 새 일을 시작하였다.”(이사43,18-19ㄱ)

 

그렇습니다. 우리 믿는 이들은 참 행복합니다. 주님과 함께 목표 뚜렷한 “예닮의 여정”의 인생을 살고 있으니까요. 참으로 회개의 깨달음과 시작하면 언제든 늦지 않습니다.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 새롭게 예닮의 여정에 오르는 것입니다. 세 주제별로 나눔을 갖고자 합니다.

 

첫째, 마음의 정화입니다.

마음이, 사람이 먼저입니다. 마음이, 사람이 좋아야 생각도 말도 글도 행동도 좋습니다. 이들은 그대로 마음을 정직하게 반영합니다. 오늘 복음의 열매를 보면 나무를 아는 이치와 똑같습니다. 절대로 좋은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으며, 나쁜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가시 나무에서 무화과를, 가시덤불에서 포도를 거두지 못합니다.

 

결론하여 선한 사람은 마음의 선한 곳간에서 선한 것을 내놓고, 악한 자는 악한 곳간에서 악한 것을 내놓습니다. 마음에서 넘치는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입니다. 오늘 1독서 집회서 내용도 대동소이합니다. 마음의 표현인 “말”이 얼마나 결정적 영향을 주는지 설파합니다.

 

“사람의 허물은 그의 말에서 드러난다. 옹기장이의 그릇이 불가마에서 단련되듯이, 사람은 대화에서 수련된다. 나무의 열매가 재배 과정을 드러내듯이, 사람의 말은 마음속 생각을 드러낸다. 말을 듣기 전에는 사람을 칭찬하지 마라. 사람은 말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말조심에 앞서 맘조심이 우선입니다. 맘의 표현이 말과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마음의 정화와 성화가 우선입니다. 좋은 마음에서 좋은 말과 좋은 행동이듯이, 반대로 좋은 수행의 습관화에서 좋은 마음이 형성됩니다. 타고난 순수의 선인도 타고난 불순의 악인도 없습니다. 부단한 사랑의 수행이 마음을 정화할 때 선인입니다. 끊임없는 한결같은 수행의 훈련과 노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습니다. 

 

둘째, 자기 인식認識입니다.

너 자신을 알라는 것입니다. 참으로 자기를 모르는 무지의 인간입니다. 무지의 죄, 무지의 악, 무지의 병입니다. 결국 믿는 이들의 삶의 여정은 하느님과 자기를 알아가는 앎의 여정입니다. 그러니 하느님을 알아가고 나를 알아가는 평생공부보다 더 중요한 공부는 없습니다. 

 

하느님 공부와 참나의 공부는 함께 갑니다. 이런 평생공부에 항구할 때 비로소 하느님을, 나를 알게 되어 무지의 어둠에서 서서히 벗어납니다. 몰라서 무지해서 남 판단하지 참으로 나를 안다면 절대로 남을 판단하거나 단죄하거나 심판하지 않습니다. 무지한 이웃을 이해하고 기다리며 받아들이고 용서할 것입니다. 사랑의 눈으로 분별할 뿐입니다. 주제 넘게도 자기도 모르는 주제에 이웃을 교정하려는 자들을 향한 주님의 천둥같은 말씀입니다.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어떻게 형제에게 ‘아우야! 가만,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내 주겠다.’ 하고 말할 수 있느냐?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형제의 눈에 있는 티를 뚜렷이 보고 빼낼 수 있을 것이다.”

 

한 마디로 정의하면 “너 자신을 알라”는 회개를 촉구하는 말씀입니다. “너가 무엇인데, 너나 잘 하라!”는 것입니다. 이래서 나를 비춰주는 공동체 형제들의 거울이 필요합니다. 공동체 형제들의 거울에 환히 드러나는 내 마음의 얼굴입니다. 때로 자신의 부족함을 깨달아 부끄럽게도 하지만 때로 자신의 부족함을 보완해 주는 공동체 형제들이 고맙게 여겨지기도 합니다. 

 

이래서 저는 “저에게 가장 큰 스승은 여기 수도공동체입니다.” 라고 기꺼이 고백합니다. 그러니 공동체 삶의 여정은 서로 겸손히 배워 깨달아 알아가는 ‘배움의 여정’, “깨달음의 여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참으로 겸손히 배움의 여정에, 깨달음의 여정에 항구할 때 눈속의 티는, 들보는 점차 사라져 맑고 밝은 심안心眼으로 있는 그대로의 실상을 직시할 것입니다.

 

셋째, 예수님 사랑입니다.

유일한 스승이자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님을 우리 삶의 중심에 모시고 사는 것입니다. 

공동체 형제들은 한몸의 지체들로 하나하나가 예수님의 얼굴을 반영합니다. 공동체 형제들을 통해 드러나는 예수님의 얼굴입니다. 그러니 바로 공동체 중심에 살아 계신 예수님을 영원한 스승이자 주님으로 모시고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이야말로 우리의 참모습을 비춰주는 거울입니다. 

 

“제자는 스승보다 높지 않다. 그러나 누구든지 다 배우고 나면 스승처럼 될 것이다.”

 

스승 예수님을 배워 닮으라는 것입니다. 스승 예수님을 목표로, 롤모델로 삼아 예닮의 여정에 항구하라는 것입니다. 이래서 살아 있는 그날까지 평생 끊임없고 한결같은 말씀공부와 기도와 회개의 수행이 필수입니다. 복음 환호송의 가르침이 적절합니다.

 

“이 세상에서 별처럼 빛나도록 너희는 생명의 말씀을 굳게 지녀라.”(필리2,15-16) 

 

저절로가 아닌 이런 생명의 말씀을 굳게 지니기 위한 분투의 수행 노력과 더불어 예수님을 닮아가는 여정입니다. 그러니 끊임없고 한결같은 말씀공부와 기도, 회개의 수행과 더불어 마음의 정화와 자기를 아는 겸손과 지혜임을 깨닫습니다. 

 

주님은 날마다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예닮의 여정’에 항구하고 충실하게 하시며, 우리 마음을 깨끗하고 거룩하게 하시어 무지에서 벗어나 참 나를 아는 겸손과 지혜에 이르게 하십니다. 바오로 사도를 통한 주님의 말씀으로 강론을 마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느님께 감사드립시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굳게 서서 흔들리지 않고 언제나 주님의 일을 많이 하십시오. 주님 안에서 여러분의 노고가 헛되지 않음을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다.”(1코린15,57-58)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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