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3.7.사순 제1주간 월요일 레위19,1-2.11-18 마태25,31-46
사랑이 잣대다
-최후심판-
사랑밖엔 길이 없습니다. 제 졸저의 책명이기도 합니다. 사랑이 답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인생 무지와 허무에 대한 궁극의 답도 사랑뿐입니다. 사랑의 관상, 사랑의 수행, 사랑의 찬미, 사랑의 신비, 사람의 기적, 모든 말마디에 사랑이 붙습니다. 사랑해서 사람입니다. 사랑은 아무나 하나? 사랑도 공부임을 깨닫습니다. 평생공부가 사랑공부요 사랑공부에는 끝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랑공부에는 영원한 초보자라 합니다.
오늘 말씀 주제도 사랑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보다시피 최후심판의 잣대는 바로 곤경중에 있는 구체적 이웃 사랑의 실천임을 보여 줍니다. 모든 인류가 예외없이 사람의 아들인 예수님 앞에서 곤경중에 있는 구체적 이웃 사랑의 실천으로 심판을 받습니다. 주님은 곤경중에 있는 이들과 자신을 일치시킵니다. 의인들에 대한 축복선언을 통해, 또 저주받은 이들에 대한 저주선언을 통해 확인하게 됩니다.
“너희는 1.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2.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고.
3.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였다.
4.또 내가 헐벗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5.내가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으며,
6.내가 감옥에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
추상적이며 애매모호한 사랑이 아니라 구체적 실천의 사랑입니다. 새삼 사랑은 추상명사가 아닌 실천동사임을 깨닫습니다. '언제 저희가 주님께 이런 사랑을 실천했느냐?'는 의인들이 질문에 주님은 명쾌하게 대답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곤궁중에 있는 작은 이들 하나하나가 주님의 형제들이란 말씀이 참 신선하고 놀랍습니다. 가까이 있는 형제들 하나하나가 주님의 형제들이자 주님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반대로 ‘언제 저희가 주님께 이런 사랑을 실천하지 않았느냐?’의 질문에 대한 저주 받은 이들에 대한 주님의 선언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다.”
그대로 오늘 최후심판 이야기는 우리의 회개를 촉구합니다. 모든 것은 다 때가 있습니다. 살아있을 때 찬미와 감사, 기도와 회개, 사랑의 실천이지 죽어 최후심판정에 섰을 때는 아무리 후회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살아서 사랑하라, 기뻐하라, 찬미하라, 감사하라 주어진 하루하루의 날들임을 깨닫습니다. 찬미와 감사, 기도와 사랑하기에도 턱없이 짧은 세상인데 미움과 불평불만으로 시간과 정력을 낭비함은 참으로 어리석고 허무한 어처구니 없는 일입니다.
기도도 공부도 전례도 좋지만 이웃사랑의 실천이 빠졌다면 참 공허할 것입니다. 바로 구체적 이웃 사랑의 실천이 최후심판의 잣대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제1독서 레위기도 구체적 이웃사랑이 금령들로 표현됩니다. 금령들의 항목을 헤아려보니 무려 18개 항목입니다. 악마는 디테일 안에 숨어있다는데 이렇듯 디테일에 철저한 금령들이니 악마도 도저히 숨어 있을 수 없겠다 생각됩니다. 첫 말씀과 마지막 말씀이 인상적입니다.
“나 주 너희 하느님이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주님을 닮아 우리 모두 거룩해야 한다는 주님의 명령입니다. 어떻게 거룩한 사람이 되는가? 바로 이어지는 이웃에게 해서는 안되는 금령들을 하지 않는 이웃사랑의 실천을 통해서입니다. 맨 마지막 말씀입니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나는 주님이다.”
주님은 단락이 끝날 때 마다 못박듯이, 도장 찍듯이 “나는 주님이다” 말씀하심으로 말씀의 엄중함을 강조합니다. 거룩함으로 시작하여 사랑으로 끝납니다. 사실 우리는 거룩하신 하느님, 자비하신 하느님이라 고백합니다. 참으로 하느님을 닮은 거룩한 사람은 자비로운 사람임을 깨닫게 됩니다.
최후심판의 잣대는 종교도 인종도 국적도 기도도 공부도 전례도 아닌 곤궁중에 있는 이웃 형제들에 대한 구체적 사랑의 실천입니다. 놀랍게도 곤궁중에 있는 이들 하나하나가 주님의 형제들이자 주님 자신이라는 주님의 선언입니다. 참으로 이웃을 통해 주님을 만나는 것이 건강하고 건전한 신비주의임을 깨닫게 됩니다. 어제 읽은 교황님의 감동적인 말씀입니다.
“세상에서 진정한 혁명은 날마다 묵묵히 일하는 이들을 통해 작고 가난한 이들이 더 이상 무시되지 않고 버려지지 않고, 포기되지 않고, 하느님의 자녀로서 그들의 존엄성에 따라 일어나 살아 갈 수 있을 때 비로소 이룩된다. 진정한 혁명은!”
주님은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곤궁한 이웃들에 대한 구체적 사랑 실천에 항구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십니다. 주님의 거룩한 사랑의 성체를 모신 형제들 하나하나가 ‘주님의 형제들’이자 ‘주님 자신’임을 깨닫게 해주는 미사은총이 참 고맙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구원의 축복받은 이들에 대한 주님의 말씀은 그대로 미사에 참석한 우리를 향한 말씀처럼 들립니다.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이들아, 와서, 세상 창조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차지하여라."(마태25,34).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