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력 좋은 삶과 믿음 -간절하고 항구한 기도-2022.3.10.사순 제1주간 목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Mar 10,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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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3.10.사순 제1주간 목요일                                                 에스4;17,12,14,16,23,25 마태7,7-12

 

 

 

탄력 좋은 삶과 믿음

-간절하고 항구한 기도-

 

 

 

결과가 아니라 과정입니다. 결과의 성공보다는 과정의 충실함이 우선입니다. 한결같은 분투의 과정이 바로 성공이요 결과는 그 다음입니다. 말 그대로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믿음의 삶을 뜻합니다. 삶이든 믿음이든 참으로 한결같음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간절하고 항구한 기도가 절대적입니다. 바로 이것이 영적탄력 좋은 삶입니다.

 

30년전 초창기 참 많이 강조했던 영적 탄력입니다. 세월 흘러 노쇠해 가면서 육신의 탄력은 떨어져도 영혼의 탄력인 믿음은, 희망은, 사랑을 날로 좋아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를 위해 간절하고 항구한 한결같은 기도가 절대적이라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정주영성의 핵심이자 주님의 전사로서의 필수 요소입니다. 제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좌우명 기도 첫 연입니다.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하늘 향한 나무처럼

비가 오든, 눈이 오든, 덥든 춥든

봄, 여름, 가을, 겨울

늘 하느님 불러 주신 이 자리에서

한결같이

하느님만 찾고 바라보며

정주의 나무가 되어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살다보니

작은 나무들이 이제는 울창한 아름드리

나무들이 되었습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받으소서.”

 

바로 ‘언제나 거기 그 자리’에서 한결같이 살아가는 베네딕도회 정주 수도승들의 모습에 대한 묘사이기도 합니다. 불가에서는 이런 정주의 불승들이 모인 사찰 공동체를 나무들이 우거진 숲을 뜻하는 뜻하는 말마디 “총림叢林”이라 일컫기도 합니다.

또 아주 예전 그러니까 24년전 여름철에 써놓고 주님의 전사로서 영적 전의戰意를 새롭게 했던, 그리고 자주 인용했던 담쟁이란 고백 자작시도 생각납니다.

 

“이제부터 다시 시작이다

작년가을 

붉게 타오르다 사라져 갔던 담쟁이

어느새 다시 시작했다

 

초록빛 열정으로

힘차게 하늘 향해 

담벼락, 바위, 나무 타오르기 시작했다

 

마침내

붉은 사랑으로 서리 내려 사라지는 날까지

또 계속이다

 

해마다 반복되는

제자리 정주의 삶에도

지칠 줄 모르는 초록빛 열정

 

다만 

오늘 지금 여기서

하늘 향해 타오를 뿐 내일은 모른다

 

타오름 자체의 과정이

행복이요 충만이요 영원이다

하루하루 일일일생 오늘 하루만 사는 초록빛 영성이다”-1998.6.3.

 

시공을 초월하여 지금도 여전히 공감, 감동하는 좌우명 같은 고백시입니다. 바로 오늘 복음 묵상중 떠오른 두 편의 시입니다. 오늘 복음은 참으로 믿는 자들의 삶과 믿음의 본질을 보여줍니다. 어떤 상황에도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말고, 좌절이나 절망하지 말고 한결같이 새롭게 시작하는 탄력좋은 삶과 믿음, 기도의 자세를 보여줍니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에게 주어질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바로 죽을 때까지, 살아 있는 그날까지 깨어, 끊임없이, 한결같이 시도하는, 도전하는 삶과 믿음, 기도의 자세를 뜻합니다. 이런 이들이 참으로 주님의 전사요, 참으로 살아 있다 할 수 있습니다. 이어지는 말씀은 어떤 형태로든 하느님 방식대로 참 좋은 응답이 있음을 말해 줍니다.

 

“너희 가운데 아들이 빵을 청하는데 돌을 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생선을 청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좋은 것을 얼마나 더 많이 주시겠느냐?”

 

바로 이것이 백절불굴의, 진인사대천명의 믿음의 본질입니다. 이래서 좌절이나 절망함이 없이 한결같이 기도를 하라는 것입니다. 참으로 기도하다보면 하느님의 뜻을 깨달아 알 것이며 하느님은 당신 생각에 가장 적절한 때 가장 좋은 최선, 최상, 최고의 방식으로 응답해 주신 다는 것을 체험할 것입니다. 참으로 최종의 영적 승자는 이런 탄력좋은 기도의 사람, 믿음의 사람에게 있습니다. 

 

전화위복轉禍爲福, 인간만사 세옹지마塞翁之馬라는 말도 있습니다. 무엇이 잘되고 무엇이 못되는 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합니다. 죽음의 순간에 깨달아 밝혀지는 일도 있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일희일비함이 없는 한결같이 영적 탄력좋은 삶이 정말 바람직합니다. 당장은 모르지만 지난 뒤, 내 고유한 삶의 성경책을 렉시오 디비나 하면 깨달아 알 것입니다.

 

바로 이런 기도의 모범이 재1독서의 기도의 여인, 에스텔입니다. 본문에는 장장 2페이지에 걸쳐 계속됩니다. 전후의 사정을 보면 하만의 중상 모략으로 온 유다인들이 절멸할 수 있는 풍전등화, 절체절명, 백척간두의 위기에 처한 상황입니다. 바로 에스텔의 간절하고 항구한 기도가 절멸의 위기에 처한 유다인들을 살립니다. 몇 감동적인 대목을 인용합니다.

 

“저의 주님, 저희의 임금님, 당신은 유일한 분이십니다. 외로운 저를 도와주소서. 당신 말고는 도와줄 이가 없는데, 이몸은 위험에 닥쳐 있습니다. 기억하소서, 주님, 저희 고난의 때에 당신 자신을 알리소서. 저에게 용기를 주소서. 당신 손으로 저희를 구하시고, 주님, 당신밖에 없는, 외로운 저를 도우소서. 당신께서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오늘 말씀에는 안 나오지만 왕비 에스텔의 기도의 결과 사필귀정, 해피엔딩으로 끝나 에스텔의 사촌 오빠이자 양부인 유다의 지도자 모르도카이의 승리로 귀결됩니다. 마침내 모르도카이 대신 유다인들의 절멸을 꾀하던 하만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짐으로 완벽한 에스텔의 승리, 하느님의 승리로 유다인들은 구원을 받습니다.

 

기도가, 한결같은 끊임없는 간절하고 항구한 기도가 답임을 절감합니다. 이래야 영적 탄력 좋은 신망애의 삶이요 믿음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에게 탄력 좋은 믿음을 선물하십니다. 

 

“하느님, 제 마음을 깨끗이 만드시고 구원의 기쁨을 제게 돌려주소서.”(시편51,12.14).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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